소설리스트

대몽주-278화 (278/1,214)
  • 278화. 사기

    심협은 화예의 아름다운 자태에 매료된 듯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잠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여 건곤대를 살펴보았다.

    잠시 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은 약간 흐리멍덩한 것 같았다.

    “이 물건은 얼마요?”

    “그 물건은 손상되긴 했지만 품질이 아주 높고 신통력이 기이한 데다, 위력이 평범한 상품 법기보다 뛰어나답니다. 허나 도우는 이 건곤대와 인연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니 소녀 더도 말고 딱…… 선옥 300개만 받지요. 어떠신지요?”

    화예의 마음속에는 희색이 번득였다. 그녀는 눈에 물결 같은 빛을 일렁이며 심협의 눈을 빤히 바라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였다. 심협은 화예를 보며 두 눈에 예리한 빛이 번쩍였고, 흐리멍덩했던 표정이 찰나에 완전히 사라졌다.

    “선옥 300개? 정녕 그렇단 말이오?”

    “이…….”

    화예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넋이 나갔다.

    심협은 그녀가 멍해진 순간을 틈타 손을 휘둘러 재빨리 그녀의 허리춤에 잇는 녹색 향낭을 낚아챘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화예는 놀라움과 노여움이 뒤섞인 고함을 내질렀고, 표정에는 약간의 두려움마저 스쳐 지났다.

    사삭!

    화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별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자색 옷을 입은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나타났다. 세 사람 모두 강력한 기운의 파동을 내뿜었는데, 두 남자는 벽곡기 정점, 젊은 여인은 응혼기였다.

    “귀하께서는 뉘시기에 감히 우리 천공각에서 행패를 부리십니까?”

    자색 옷의 여인이 서릿발 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심협을 노려보며 물었다.

    심협은 이런 상황을 마주하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손에 약간 힘을 주어 향낭을 찢어버리며 태연자약하게 웃었다.

    “행패?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한단 말이오?”

    그 순간, 분홍빛 향료 알갱이가 향낭에서부터 흘러나오면서 짙고 그윽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 바로 화예에게서 풍기던 그윽한 향기였다. 다만 향낭 밖으로 나오면서 그 향기는 훨씬 더 짙어진 상태였다.

    이 광경을 본 화예의 얼굴에는 약간 겁먹은 기색이 드러났다.

    “여러분은 모두 천공각의 고수이고 다들 박학다식한 분들이실 테니, 이 매정향(魅情香)은 따로 설명해드릴 필요가 없을 테지요. 이 물건은 여기 화예 도우께서 몸에 차고 있었던 것이오. 매정향과 미술(*媚術: 눈길로 남자를 유혹하는 법술)로 흥정해 칠도금제가 걸린 상품 법기 하나에 선옥 300개를 달라고 하니, 천공각은 장사를 이렇게 하는 모양이구려. 허허허!”

    심협의 목소리는 매우 커서, 그의 말을 들은 손님들이 하나둘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자색 옷의 수사들이 들어오면서 문을 닫지 않은 상태라 바깥에까지 목소리가 퍼진 것이다.

    자색 옷의 여인은 안색이 돌변하여 소매를 떨쳐서는 바람으로 별실의 문을 닫았다.

    “이건 무슨 의미요? 나를 죽여 입막음이라도 하겠다는 것이오?”

    심협이 싸늘하게 외치자 몸 표면에서 푸른 빛이 세차게 뻗어 나와 빛 덮개를 만들어 온몸을 감쌌다. 이어서 그의 손에 푸른 빛이 스치자 자모검과 비취색 여의가 나타났고, 두 줄기 강력한 법력 파동이 휘몰아쳤다.

    “도우, 오해십니다! 장안성 안에서는 싸움을 금하고 있는데 우리 천공각이 어찌 감히 법을 어기려 하겠습니까? 도우께서는 법기를 거두시지요. 대화로 해결 못 할 일은 없다지 않습니까?”

    자색 옷의 젊은 여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급히 뒤에 선 두 사내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즉시 물러섰고, 자색 옷의 여인도 두어 걸음 물러났다.

    한편, 화예는 이제 다소 멍해진 표정으로 한쪽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심협은 사방을 쓱 둘러보며 결인해 자모검과 비취색 여의를 거둬들이고는 턱을 살짝 치켜들며 물었다.

    “귀하는 이 일을 어찌 해결할 생각이시오?”

    “소첩, 이 일의 자초지종을 모두 이해하였습니다. 우리 천공각에서 사람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이런 부끄러운 일이 생겼으니, 도우께 해명할 것입니다.”

    자색 옷의 젊은 여인이 공수하며 말하더니 곧장 화예에게로 돌아서며 날카롭게 꾸짖었다.

    “네가 감히 이런 짓을 벌이다니, 간덩이가 부었구나! 네 죄는 용서할 수 없다! 오늘부터 천공각에서 너의 모든 직무를 제하고 형당(*刑堂: 고대에 고문을 진행하던 곳)에 넘겨 죄를 다스릴 것이다!”

    화예는 비참한 표정으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종들이 그녀를 소저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사실 그녀는 천공각 각주의 친자식이 아니라 그의 어느 먼 친척이다. 그리고 그 덕에 천공각 집사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한데 이제 이런 추악한 일로 해임을 당했으니, 각주도 그녀를 비호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더욱 그녀를 무시할 테니, 다시는 신세를 고칠 가망이 없을 터였다.

    화예는 그런 와중에도 심협이 어떻게 매정향을 알아차릴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일단 양이 아주 적었고, 그녀는 다른 향료로 그 향을 가렸다. 자신의 유혹술과 어우러지면 이 지극히 은밀한 수법은 응혼기 수사라고 해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대담하게 손님들을 속였던 것이다.

    “예, 속하(*屬下: 부하가 상사에게 자신을 낮춰 이르는 말) 벌을 받겠습니다.”

    화예는 넋을 잃은 것처럼 멍한 목소리로 답했다.

    “물러가거라!”

    자색 옷의 여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꾸짖자, 화예는 힘겹게 일어나 물러갔다.

    심협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냉소했다. 그의 신혼의 힘은 평범한 벽곡기 수사들보다 강하고, <연신비전>을 숙독하면서 훨씬 더 오묘하게 운행되고 정교해졌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매혹적인 향기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터였다.

    “도우께서는 이번 처리에 만족하십니까?”

    자색 옷의 젊은 여인이 심협을 돌아보며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역시 귀각은 공명정대하구려. 그럼 우리 이제 이 건곤대 얘기를 좀 해볼까요? 귀하께서 보시기에 이 주머니 값은 얼마인 것 같소?”

    심협도 더는 몰아붙이지 않고 다시 건곤대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 물건은 상품법기에 속하나 내부의 금제가 이미 적잖이 손상되어 아마 완전히 폐기되기 직전일 테지만, 효력은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도우께서 마음에 드신다면 선옥 80개에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자색 옷의 젊은 여인은 신식으로 건곤대를 감지해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시원시원하시구려. 하하!”

    심협은 껄껄 웃고는 선옥 80개를 꺼내 탁자 위에 두고 일어났다.

    “도우, 방금 전 일을 비밀로 해주시겠습니까? 대신 우리 천공각의 최고급 귀빈 영패를 드리겠습니다. 이 영패만 있으면 본각의 어떤 상점에서든 선매권(先買權)을 행사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건 가격의 2할을 깎아드립니다.”

    자색 옷의 여인은 심협을 뒤따라와 은빛 영패를 꺼내 건네며 말했다.

    심협이 살펴보니 영패의 한쪽 면에는 망치 두 자루가, 다른 면에는 ‘천공(天工)’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알겠소. 내 그리 하리다.”

    심협은 영패를 챙기고는 별실 문을 밀어젖히고 밖으로 나갔다.

    별실 안쪽을 엿보고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심협에게 꽂혔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거리의 인파 속으로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자색 옷의 여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돌아서서 천공각 안으로 향했다.

    천공각에서 멀어진 심협은 어느 작은 골목에 몸을 숨기고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는 또다시 날골역용술로 외모를 바꾼 뒤에야 이동했다.

    품속의 건곤대를 가볍게 어루만지는 심협의 눈에는 한 줄기 기쁨이 스쳤다. 방금 구구통보결로 상태를 확인해보니, 훌륭한 상품 법기임이 분명했다. 또한 그 안의 칠도금제도 보통이 아니어서 귀신을 잡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화예가 말했던 두 가지 흩어진 금제도 아직 완전히 허물어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완전히 망가지지만 않으면 적당한 재료를 구해 복원할 수도 있을 터였다.

    ‘본래 상태로 복구할 수만 있다면 그 가치는 아마 나의 모든 상품법기보다 더 높으리라!’

    심협은 흐뭇한 마음을 안고 부적상점 두 곳에서 봉인 효과를 지닌 부적들을 구입한 뒤 서시를 떠났다.

    그는 장안에서 가장 유명한 주장(酒庄)을 찾아가 거금을 들여 좋은 술 한 단지를 산 뒤, 대당관부로 향했다. 어느새 날골역용술을 풀고 원래 모습을 되찾은 상태였다.

    대당관부 입구에 도착하자 수위들이 앞을 막아섰고, 그중 용모가 수려한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 다가와 말했다.

    “도우, 앞쪽은 관부의 요지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오.”

    “저는 심협이라고 합니다. 대당관부 육화명의 벗이니 귀하께서 대신 기별해주시길 청합니다.”

    심협은 그렇게 말하고는 선옥 한 덩이를 꺼내 남들 몰래 청년 수위의 손에 쥐어주려 했다. 청년은 선옥을 받지 않은 채 공수했다.

    “심 공자셨군요. 육 선생은 지금 관내에 계시니 제가 대신 가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청년은 빠른 걸음으로 관부 안으로 향했고, 다른 수위들은 곁눈질도 하지 않고 아까 상황을 못 본 것처럼 여전히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심협은 수위들의 이런 모습에 과연 정교금이 군대를 다스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당관부가 이리도 공정하고 엄격하니 역시 대당왕조와 백성들의 수호신답다고 찬탄했다.

    잠시 뒤, 그 청년 수위가 곧 돌아왔다.

    “심 공자님, 육 선생께서 안으로 드시랍니다. 선생께서는 지금 관부 일을 처리하느라 한창 바쁘시니 우선 은안전(銀安殿)으로 가셔서 잠시 앉아 기다리시지요. 금방 그리로 오실 겁니다.”

    청년 수위가 공손히 말했다. 다행히도 육화명은 외부 임무가 없었던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심협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청년을 따라 대당관부로 들어갔다.

    청년은 심협을 접객실로 데려가 영차까지 한 잔 올린 뒤에야 물러갔다.

    대당관부 방문이 두 번째인 심협은 구경하느라 바빴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조용히 앉아 눈을 감은 채 정신을 가다듬었다.

    잠시 후, 한바탕 쾌활한 웃음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왔다.

    “심형, 시간 날 때 찾아와 술 한잔하기로 해놓고 오늘에야 오다니, 나를 아주 제대로 기다리게 하셨소. 하하하!”

    방 밖에 나타난 육화명은 환하게 웃으면서도 약간의 서운함과 원망이 담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미안하오. 내가 별 볼 일 없는 한가한 사람이긴 하나, 한동안 온갖 일에 시달렸지 뭐요. 육형께서 이해해주시오. 내 사과의 뜻으로 여아홍(女兒紅)을 한 단지 사왔으니, 받아주길 바라오.”

    심협이 자리에서 일어나 암적색 술단지 하나를 꺼냈다. 술단지는 굳게 막혀 있었음에도 맑고 진한 술 향기가 코를 찔렀다.

    심협은 문득 좀 전에 수위들과의 일이 떠올랐다. 대당관부에서는 뇌물을 엄금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 술도 뇌물이라 보일 수도 있다.

    “이 술은 육형과 우정을 나누기 위한 것이지 뇌물이 아니니 걱정 마시오.”

    심협이 웃으며 재빨리 한 마디 덧붙였다.

    “하하, 심형, 공연히 걱정할 것 없소. 이 육모는 규율에만 목을 매는 외골수는 아니오. 규율은 마음에 새기면 그뿐,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니 모든 규칙을 엄격히 따르고 융통성 없이 구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요. 이 백주산장(百酒山庄)의 맛 좋은 술은 적어도 50년은 되었을 터인데, 심형이 정말 정성을 들인 선물인 듯하오. 하하하!”

    술단지를 받아 들고 주향(酒香)을 맡는 육화명의 표정은 그야말로 황홀해 보였다.

    “육형 마음에 들다니, 다행이오.”

    심협도 육화명이 만족하는 모습에 내심 기뻐했다.

    “당연히 마음에 들고말고요. 갑시다. 우리 가서 실컷 마셔봅시다. 하하하!”

    육화명은 심협을 잡아끌고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