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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77화 (277/1,214)
  • 277화. 귀신을 제압하는 법기

    심협은 이내 생각을 접고, 더는 헛되이 슬픔에 잠겨 있지 않기로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수지술을 운공하여 물길을 통해 처소로 돌아왔다.

    “귀신을 어디서 잡아온단 말인가?”

    심협은 한동안 장안성에 머물렀지만 이곳 어디에 귀물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더욱이 장안성에서 알게 된 수사는 마수수와 육화명, 사우흔, 이렇게 셋뿐이라 물어볼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마수수와는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사우흔은 일을 마치고 돌아왔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수련 경지가 비교적 낮다 보니 그녀가 아는 산수들도 대단한 귀물의 종적을 알고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결국 물어보기에 가장 좋은 상대는 육화명이었다.

    심협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체내에서 콩 볶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뼈마디가 움직였다. 그는 우물가로 가서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의 그는 얼굴이 길고 멍청해 보이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외모와 분위기 모두 예전과 전혀 달라서 아무리 절친한 사람이라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반년 동안 그는 수련만 한 것이 아니라 <연신비전>도 자세히 살펴본 덕에 육신에 대한 깨달음이 더욱 깊어졌다. <연신비전>에도 육신의 구조를 바꾸는 비술이 있어 날골역용술(捏骨易容術)과 서로 통하는 점이 많았다.

    이제 그는 날골역용술을 더욱 정교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고, 지속시간도 훨씬 길어졌다.

    심협은 다시 한번 몸을 자세히 살펴본 뒤에야 몸을 일으켜 처소를 떠나갔다.

    심협은 우선 서시로 가서 천공각(天工閣)이라는 상점에 들어섰다. 진열대마다 도검 등 갖가지 무기들이 놓여 있었지만, 실은 법기 제련 사업을 하는 곳이었다.

    ‘귀신을 잡으러 가려면 준비가 필요하지.’

    우선, 귀물을 잡아넣을 수 있는 법기가 없으면 귀신을 잡아도 말짱 헛수고다.

    심협은 이제 서시의 여러 상점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는데, 법기 제련 사업만 놓고 보자면 가장 큰 상가는 헌원각이다. 그러나 헌원각은 취보당과 관계가 꽤 깊기에 피하고 싶었다. 이곳 천공각도 법기 제련 사업에서는 나름 유명한 곳이니 필요한 법기를 구할 수 있을 터였다.

    천공각은 내부가 매우 넓었다. 계산대와 진열대는 모두 진귀한 홍삼목(紅杉木)으로 만들어졌고, 그 위에 놓인 법기는 금제에 뒤덮여 있음에도 은은한 영력 파동이 전해져 오는 게 모두 등급이 낮지 않은 듯했다.

    심협은 이 광경을 보고는 제대로 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손님, 어떤 법기를 찾으십니까? 본점의 물건들은 모두 연기의 대가들이 만든 것으로, 품질은 확실히 보장됩니다.”

    푸른 옷의 시종이 다가와 그를 맞았다.

    “귀물을 집어넣을 수 있는 법기가 있소? 상등품을 원하오.”

    심협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을 때, 시종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심협이 농을 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한 후에야 큰 고객을 만났음을 깨닫고는 해맑게 웃으며 그를 급히 안쪽 별실로 안내했다.

    다른 시종 두 명이 영차를 올렸고, 수많은 기이한 과일들도 받쳐 들고 왔다.

    심협은 과일들에 담긴 충만한 영력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 영과(靈果)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낯선 곳에서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손도 대지 않았다.

    잠시 후, 별실의 문이 움직이더니 아까 그 푸른 옷의 시종이 푸른 수포(*繡袍: 수를 놓은 중국식 웃옷)를 입은 소녀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표 소저, 바로 이 귀빈께서 법기를 구입하고자 하셨습니다.”

    푸른 옷의 시종은 수포 차림의 소녀에게 공손히 말한 뒤 곧 물러갔다.

    심협이 돌아보니, 스물이 조금 못 된 소녀인 듯했데, 얼굴은 복사꽃 같았고, 맑고 고운 눈동자에 새하얀 치아가 자못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 여인은 냉랭한 눈으로 심협을 무심코 흘끗 봤을 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귀물을 집어넣는 법기, 그중에서도 상등품만 원하신다고요? 감히 천공각에 와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배짱이 좋다고 해야 하나요?”

    수포 차림 소녀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나는 그저 원하는 바를 말했을 뿐이오. 귀각에서 이 거래를 원치 않는다면 나도 필요 없소. 서시에 법기 상점이 천공각만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오.”

    심협 역시 말투가 언짢았다.

    소녀는 천공각에서 지위가 아주 높은 데다 아리따운 외모 덕에 그녀 앞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에 그녀는 노기가 치솟았지만, 곧 이를 억눌렀다.

    “귀물을 제압하는 상등 법기라…… 당연히 본각에는 그런 물건들이 있지요. 허나 값이 놀랍도록 비싸답니다.”

    그녀의 경멸에 찬 미소와 목소리에도 심협은 평온하게 답했다.

    “물건만 괜찮다면야, 당연히 제값을 치러야 하지 않겠소?”

    그 대답에 소녀의 눈빛도 조금은 진지해졌다.

    “귀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소녀는 한결 온화해진 말투로 말하고는 바깥으로 나갔다가 잠시 후에 돌아왔다. 그 잠깐 사이에 소녀는 뜻밖에도 연녹색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또한 그녀의 몸에서 그윽하고 좋은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심협은 건조한 눈으로 소녀를 위아래로 두어 번 훑어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소녀의 뒤에는 시종 한 명이 뒤따랐는데, 손에 받쳐 든 나무 상자 세 개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예를 갖춘 뒤 재빨리 물러갔다.

    “오래 기다리시게 했습니다. 소녀가 아직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저는 화예(花蕊)라 합니다. 아까는 제가 말실수를 하였으니 도우께 용서를 구합니다. 도우께서는 존함이 어찌 되십니까?”

    소녀는 심협 옆자리에 앉아 아까 전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꾸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감미롭고 부드러웠다.

    “저는 일개 산수로, 처음 장안에 왔습니다. 이름을 말해도 귀하께서는 모르실 테니 굳이 아실 필요 없습니다.”

    심협의 태연한 답에 화예는 시선을 돌려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우의 말씀이 옳습니다. 소녀가 쓸데없이 말이 많았군요. 우선 이 법기들부터 보시지요. 우리 천공각의 법기로, 하나하나 모두 상등품입니다.”

    그녀가 세 개의 나무상자를 하나씩 열었다.

    첫 번째 나무 상자에는 검은 발우(*鉢????: 절에서 쓰는 승려의 공양 그릇)가 들어 있었다. 옅고 기이한 검은 안개가 발우를 감싸고 있었는데, 음산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갑자기 주위가 약간 서늘해졌다.

    두 번째 상자에는 검은 밀짚인형이 들어 있었는데, 정수리와 명치, 단전 부분에는 각각 작은 은빛 침이 꽂혀 있어 조금 기묘해보였다.

    마지막 상자에는 검은색 작은 주머니가 들어 있었다. 마치 어떤 구렁이 가죽을 정제해서 만든 것처럼, 윗면에 수많은 비늘조각이 촘촘히 돋아 있는 주머니였다. 오래 사용한 것 같아 보이는 이 주머니의 가장자리에는 약간 마모된 흔적까지 있었고, 은색 해골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보십시오, 도우. 이 발우는 취음발(聚陰鉢)입니다. 본각의 연기 대가께서 커다란 현음석(玄陰石)으로 사흘 밤낮을 제련하여 만든 것이지요. 안에는 5도 금제를 담고 있고, 벽곡 중기 이하의 모든 귀물을 잡아넣을 수 있습니다.”

    화예의 소개를 들으며 심협은 검은 발우를 집어 들고 구구통보결을 운공했다. 그러자 살짝 반응이 있었다. 그 안에는 확실히 5도금제가 걸려 있었는데, 꽤나 신묘했다.

    하지만 그가 이번에 잡으러 갈 귀물은 경지가 적어도 벽곡기 정점에 이르러야 쓸모가 있었기에, 이 취음발로는 부족했다.

    “취음발이 부족하다 싶으시면 이 상혼초우(喪魂草偶)를 좀 보시지요. 6도금제가 담겨 있는데, 이는 중품 법기의 최대치랍니다.”

    화예는 심협이 취음발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듯하자 황급히 두 번째 검은 밀짚인형을 소개했다.

    “이 물건은 어느 경지의 귀물을 가둬둘 수 있소?”

    심협은 밀짚인형을 집어 들고 다시 구구통보결을 운공해 감응하면서 물었다.

    “이 상혼초우의 몸체에는 3도금제가 걸려 있고, 은침 세 개에도 각각 금제가 한 겹씩 깃들어 있습니다. 귀물을 그 안에 빨아들인 뒤, 다시 바늘 세 개로 귀물의 혈규를 고정시키면 벽곡 후기의 귀물도 충분히 가둘 수 있지요.”

    화예가 말했다.

    “벽곡 후기라……. 아직 부족하군. 혹시 벽곡기 정점의 귀물을 가둬둘 수 있는 법기가 있소?”

    심협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화예의 고운 눈망울이 움찔 움직였다.

    “벽곡기 정점이요?”

    “없소?”

    심협의 낯빛이 살짝 가라앉았다.

    “아니요, 그저 감탄한 것뿐입니다. 귀물을 제압하는 법기는 재료도 희귀하고 만들기도 까다로워 본각에도 많지는 않습니다. 한데 도우께서는 참으로 운이 좋으시군요. 공교롭게도 본각에서 사흘 전에 어느 산수로부터 이 건곤대(乾坤袋) 법기를 사들였지 뭡니까? 호호호!”

    화예는 웃으면서 마지막 나무상자에 있던 검은색 작은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오, 이 물건에 어떤 특이점이 있소? 벽곡기 정점의 귀물을 가둘 수 있는 게 확실하오?”

    심협이 낡은 검은 주머니를 보고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그 사람 말에 따르면, 이 건곤대는 그의 조상인 어느 고수가 상고시대 종문인 현음문(玄陰門)에서 전승되어 온 연기 방법에 따라 음망(陰蟒) 아랫배의 부드러운 가죽을 기초로 삼고, 여기에 열여섯 가지 악독한 것을 보충하여 81일 동안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이 주머니는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는데, 크게는 방 하나 크기로 변할 수 있지요. 귀물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도 집어넣을 수 있고, 감금 능력이 탁월해 주머니에 들어가면 나오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화예의 자세한 설명에 심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보니 이 물건이 괜찮은 것 같았다.

    “이 건곤대는 거둬들이고 가두는 능력이 전부가 아니랍니다. 도우께서 상대를 죽이고자 하신다면 건곤대 안의 금제를 작동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강한 독기를 내뿜어 귀물이든 생물이든 순식간에 고름덩어리로 만들 수 있지요.”

    화예는 뒤이어 손으로 난화지(*蘭花指: 엄지와 중지를 한데 모으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펼친 손 모양) 결인을 하고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검은색 작은 주머니가 곧바로 날아올라 커다란 자루로 변하더니, 주둥이에서 시커먼 빛을 뿜어내 별실 안의 단단한 나무의자 하나를 휘감았다.

    다음 순간,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가 사라졌다. 검은 주머니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잠시 뒤, 주머니 입구에서 검은 빛이 번쩍하더니, 안에서 썩은 흙 같은 나무 찌꺼기가 코를 찌르는 냄새와 함께 튀어나왔다.

    “썩 괜찮아 보이는구려. 이 건곤대에는 몇 가지 금제가 담겨 있소?”

    심협이 마음에 든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 주머니는 본디 9도 금제를 담은 상품법기이온데, 안타깝게도 손상된 적이 있어서 그중 금제 두 가지가 걷히고 지금은 일곱 가지만 남았지요. 허나 이 주머니에 쓰인 재료가 상품 중의 상품이라 귀신을 제압하는 진귀법기(鎭鬼法器) 중에서는 단연 군계일학이라 할 수 있답니다.”

    화예는 설명하는 도중에 손을 휘저어 자루를 거둬들인 뒤 심협에게 건넸다.

    심협이 건곤대를 받아들던 중 두 사람의 손가락이 살짝 닿았다. 그러자 화예는 교태로운 소리를 내며 고운 얼굴에 엷은 홍조를 띠는 것이 사람 마음을 몹시도 설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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