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순양검전의 비술(祕術)
심협은 정교한 어수지술로 또다시 물속에서 잠행을 이어갔다. 이제 취보당에서 사람을 보내 그를 뒤쫓게 했더라도 따돌렸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나치게 신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목숨이 걸린 일인 만큼 아무리 신중해도 부족했다.
“아무래도 실력이 부족하니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겠군.”
심협은 스스로에게 경고한 뒤에야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어느 강가에 자리 잡은 외진 방(坊)이었다. 그는 멀리 주민들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서야 이곳이 성 동쪽의 ‘곡지방(曲池坊)’이며, 근처에 유명한 황실정원, 부용원(芙蓉園)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심협은 잠시 주저했다. 안전을 보장하려면 장안성을 뜨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수선 자원이 이토록 풍성한 곳을 다시는 찾지 못할 터였다.
‘장안성의 인구는 백만에 이른다고 하니, 말썽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취보당도 찾지 못할 거야. 또한 이곳에는 여러 세력이 운집해 있으니 제아무리 취보당이라도 마음대로 활개 치지는 못할 터. 일단 여기서 수련 경지를 충분히 끌어올리는 게 낫겠어.’
이내 그렇게 결정을 내린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몇 번 주물러 외모를 바꾸고는 곡지방으로 향했다.
한나절 뒤, 그는 외지에서 온 행상으로 위장한 채 외진 곳에 있는 작은 집을 사들여 거처로 삼았다. 이곳 곡지방은 위치가 외진 데다가 각양각색의 하층민이 살고 있어서 인구 유동성이 큰 편이라 행적을 숨기기에 알맞았다.
이어서 심협은 다시 모습을 바꿔 근처의 다른 방(坊)으로 가서 사자(使者)를 하나 고용해 창평방의 주철에게 편지를 한 통 보냈다. 한동안 장안성을 떠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과 함께, 그 거처가 이미 취보당에 들통 났으니 사우흔에게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전하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적었다.
모든 일을 마친 심협은 곧장 새로운 거처로 돌아가 폐관수련을 준비했다.
곡지방 바깥의 곡하(曲河)와 거리가 아주 가까워 특별히 고른 집이었다.
그는 해모충(海毛蟲) 무춘(茂春)을 소환해 땅을 파게 했고, 이어서 어수지술로 뜰의 우물과 곡하를 연결하는 지하 통로를 뚫었다. 그런 후에야 심협은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는 우물 안에 나무기둥 몇 개와 석판 하나로 간이 수중 평대(平臺)를 조립했다. 그리고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수명을 늘려주는 유영단 세 알을 꺼내 한 알을 삼켰다.
단약은 곧장 한 줄기 차가운 기류로 변해 아랫배로 들어갔다.
이 기류는 뜻밖에도 한기를 내뿜었고, 심협은 쉴 새 없이 몸을 떨었다. 뺨도 빠르게 검푸른 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 차가운 기류는 체내에서 두어 바퀴 빙빙 돌더니 갑자기 기운이 바뀌어 얼음처럼 차가웠다가 불타는 듯 뜨겁게 변했다.
이에 심협의 안색도 검푸른 색에서 진홍색으로 빠르게 변했고, 정수리에서는 김까지 펄펄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뜨거운 기운들은 또다시 차게 변했다.
이렇게 냉기와 열기가 번갈아 나타나며 심협의 몸은 얼음과 불이라는 극과 극의 세례를 끊임없이 겪었지만, 정신은 갈수록 맑아졌고, 두 눈도 더욱 밝아졌다.
반 시진쯤 지나자 단약이 녹은 기운은 체내에 완전히 스며들었고, 그의 몸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제 몸 어디에도 불편한 곳이 없었고, 피로감과 통증마저 말끔히 사라졌으며, 전에 순양검배를 제련하며 소모했던 정혈도 대부분 보충됐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몸속에 사라진 지 오래였던 활력이 적잖이 되돌아온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수명이 늘어날 징조였다.
심협은 가부좌를 튼 채 운기조식하며 사흘간 몸속에 남은 약기운을 모두 흡수한 후에야 두 번째 유영단을, 다시 7일 뒤에는 세 번째 유영단을 복용했다.
우물 안에 가부좌를 튼 심협의 얼굴에는 혈기가 충만하고, 발그레한 것이 혈색이 아주 좋았다.
그의 짐작으로는 수명이 50년 정도는 회복된 것 같았다.
“드디어 한동안 수명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수련할 수 있겠군.”
심협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머릿속을 비웠고, 눈을 감은 채 꿈에서 정리했던 벽곡기 수련 당시를 가만히 되짚어봤다.
정리가 끝나자 이원진수가 담긴 옥병을 꺼내 한 방울 따라서 피부에 발랐다. 그러자 짙은 수령(水靈)의 힘 한 줄기가 체내로 스며들더니, 단전 속 법력이 발동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심협은 숨을 깊게 한 모금 들이마시고 즉시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이원진수가 품은 수령의 기운을 흡수했다. 이 기운은 당시의 삼원진수가 품은 것보다 훨씬 강해서, 무명공법이 활발하게 작동해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을 한 바퀴 돌았고, 꿈속의 수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속도였다.
그는 무명공법을 운공해 이원진수를 흡수하며 이원진수 속 수령의 기운이 조금씩 흡수되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수령의 힘이 우물 바닥의 수맥에서 줄줄이 모여들어 그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심협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장안성은 남첨부주 영맥(靈脈)의 중심지라 영기가 짙고, 모여드는 수령의 기운도 꽤 훌륭하군.’
지금 속도대로라면 머지않아 벽곡기 정점에 도달할 수 있을 터.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뜻이기도 했다.
* * *
눈 깜짝할 새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어느새 연말이 다가오면서 날씨는 제법 차가워졌다.
날이 밝자마자 성안에는 차가운 안개가 깔렸고, 곡하 위로도 안개가 자욱했다. 그리고 강에는 아직 얼음이 얼지 않아 고깃배 한 척이 고기를 잡고 있었다. 배 위에는 어부 네다섯 명이 있었는데, 피부는 까무잡잡했고, 손발은 거칠고 투박하여 얼핏 보아도 다들 오랜 세월 물 위에서 살아온 사람들 같았다.
뱃머리의 건장한 사내가 몸을 흔들며 막 손에 든 그물을 던지려던 차였다.
콰르릉!
커다란 소리가 강바닥에서 들려오더니, 고요했던 수면에서 마치 천둥이 폭발한 듯 갑자기 크고 작은 소용돌이가 무수히 솟구쳤다. 물거품이 사방으로 튀었고, 물보라가 넘실거리며 강의 수면 전체가 끓어오르는 듯했다. 간간이 세찬 바람이 일어나 안개들마저 전부 흩어버렸다.
고깃배도 소용돌이에 휩쓸려 빙글빙글 돌았지만, 다행히 모두가 재빨리 선실로 뛰어든 덕분에 밖으로 내던져지지는 않았다.
호흡 몇 번 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강은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큰형님, 이게 웬일이오? 설마 이 강바닥에 요괴가 있는 건 아니겠지요?”
아까 막 그물을 던지려 하던 건장한 어부가 차츰 고요해지는 수면을 보며 아직도 두려운 듯 선장을 향해 물었다.
배의 선장은 60세 정도 되어 보이는 노인으로, 손에 담뱃대를 들고 있었고, 얼굴에는 온갖 세상풍파를 겪은 기색이 가득했다. 그 역시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침착했다.
“헛소리! 여기는 장안성이다. 어느 요괴가 사리분별 못 하고 감히 여기 와서 난동을 부린단 말이냐?”
선장은 건장한 어부에게 눈을 부라리고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이오?”
어부도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거듭 물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선사 대인께서 방금 물속에서 법술을 부리신 것 같다.”
선장은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인 뒤 연기를 내뱉으며 천천히 말했다.
“선사 대인! 아직 계실까요? 우리 가서 인사나 올립시다. 혹시 알아요? 장수하는 선단이라도 좀 구할 수 있을지…….”
건장한 어부가 나서서 그리 말하자 다른 어부들도 눈을 반짝였다.
장안성에는 수사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일부 높은 사람들뿐이다. 이들처럼 가난한 백성들은 여전히 수선자에게 엄청난 동경심을 품고 있었다.
“지랄들 말고 어서 노나 저어!”
선장은 건장한 어부를 매섭게 노려보고는 퉁명스레 명했다. 이에 어부들은 찍소리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한데 고깃배가 천천히 몇 리를 나아갔을 때, 선장은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큰형님, 왜 그 선사님을 못 부르게 한 거요?”
건장한 어부가 조금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리자 선장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너희들 설마 선사 대인들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럼 아니란 말이오?”
“너희들 말이야, 선사 대인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적어. 내가 알기로는 선사들도 옳고 그름을 나누는데, 정도(正道)의 선사들은 확실히 백성들에게 잘해주시지. 그러나 사도(邪道)의 선사들은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 강도나 요괴보다 훨씬 무섭다고! 그러니 선사를 만났다고 해서 정파인지 사파인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다가갔다가는…….”
선장은 말끝을 흐렸지만, 어부들은 그 말에 몸서리를 쳤다.
* * *
방금 소용돌이가 일었던 곳의 물속 10여 장쯤 아래에는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바로 심협이었다.
그는 가슴 앞에 두 손을 맞잡고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미간에서 희미한 밝은 빛이 반짝였고, 온몸에 푸른 빛이 감돌면서 둘레가 몇 장이나 되는 광구(光球)를 이루었다. 그 속에서는 무수한 푸른 물결의 허상이 요동치고 있었다.
강물은 광구에 막혀 있어서 그의 옷은 조금의 물기도 없이 말끔했다.
“역시…… 안 되는 건가?”
심협이 한숨을 내쉬며 결인했던 두 손을 풀자 미간의 밝은 빛이 빠르게 사라졌다.
반년의 고된 수련을 거치며 그는 이원진수의 힘으로 수련경지를 벽곡기 정점까지 끌어올렸다. 과정은 그런대로 순조로운 편이었다.
또한 척맥유영단 여덟 개도 복용하여 체내의 법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꿈속에서 응혼기를 돌파했던 경험과 크게 증가한 법력으로도 실제로는 응혼기 돌파에 실패하고 말았다.
응혼기로 올라가는 원리는 사실 간단하다. 전신의 법력과 정기 그리고 기혈의 힘을 운행하여 머릿속 깊은 곳의 신비한 관문인 천문(天門)에 주입하는 것이다.
천문은 혈자리가 아니라 인체와 신혼(神魂)이 만나는, 심오하고도 심오한 곳인데, 벽곡기 정점에 이르러야 비로소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천문을 관통하기만 하면 법력과 기혈의 힘으로 대뇌를 개발하여 머릿속 신혼의 힘을 강화시킴으로써 사람 형상의 신혼을 응련해 응혼기에 진입할 수 있다. 그러니 응혼기에 진입하는 것은 그저 혈 하나 뚫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 간단한 일이 너무도 어려워 수많은 사람을 좌절시켰다. 정원혈(精元穴)은 사람의 뇌 깊숙한 곳에 있기에 열 때는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자칫 실수하면 뇌를 다쳐 백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한 걸음을 내딛으면 신혼을 응련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선자와 천지의 연결을 크게 강화시키고 천지의 영기를 이끌어 골수 깊은 곳에 주입함으로써 환골탈태하고 수명을 늘릴 수 있다.
꿈속에서 심협의 자질은 가히 인간의 것이라 볼 수 없을 정도라서 몸속에 스무 줄기의 법맥이 열려 있어, 법력이 아주 두터웠다. 그러니 큰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정원혈을 뚫고 신혼을 응련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혀 달랐다. 그에게는 법맥이 세 줄기밖에 없었고, 척맥단을 복용해 법맥을 개척했음에도 법력은 여전히 너무나 빈약했다. 꿈속 경험을 보탠다고 해도 무리였다.
‘아무래도 외력의 도움이 필요하겠군.’
심협은 속으로 탄식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낙담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리 큰 희망을 품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해봤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제 두 번째 방안을 동원할 계획인 것이다.
순양검전에 기록된 비술 중에는 응혼기 진입에 도움을 주는 것도 있었다. 바로 귀신으로 정신을 수양하는 방법이었다.
응혼기의 관건은 정기로 정신을 보양하는 것인데, 혼체(魂體)인 귀신은 신혼의 힘과 비슷하기에 귀기로 머릿속 천문을 자극해 신혼의 힘이 빠르게 길러지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다만 이 비술을 시전하려면 여귀(厲鬼)가 한 마리 필요하고, 또한 귀물의 수련 경지가 높을수록 성공확률도 높아진다.
심협은 문득 지난일이 떠올랐다.
“춘추관에서 수련하던 시절, 스승님께서 백하진 마씨 집안에 귀신을 쫓으러 가셔서 그 흉악한 여자귀신을 붙잡아 기르셨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스승님도 훗날 응혼기를 돌파하기 위해 준비를 하셨던 것인가?”
그 일에 생각이 미치자 불현듯 춘추관 시절이 생각났다. 스승인 나 도인과 전철생, 백소천…….
안타깝게도, 이제 백소천 외의 다른 사람들은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