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완성된 단약
심협이 검결을 맺은 뒤 허공을 가리키자 순양검배는 순간 길이가 10장에 달하는 붉은 명주 천처럼 변하여 무지개처럼 쏘아져 나갔다.
지금껏 자모검이나 비취색 여의 같은 법기만 해도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생각했건만, 순양검배가 변하여 만들어진 검의 무지개, 즉 검홍(劍虹)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말하자면 산토끼와 독수리 같은 차이였다. 산토끼가 빠르다고는 하나 하늘을 나는 독수리에 비하면 어디 가당키나 하겠는가!
순식간에 10여 장을 뛰어넘은 검광이 뜰 한구석 푸른 거석(巨石)의 중간 부분을 휘감고 지나갔다.
쫙!
마치 두꺼운 종잇장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더니 그 커다란 바위가 중간부터 비스듬히 갈라졌다. 이어서 윗부분이 잘라진 경사면을 타고 천천히 미끄러지더니 이내 쿵하고 땅에 떨어졌다.
단면은 거울처럼 매끈했다. 마치 잘 갈아서 윤을 낸 것만 같았다.
뿐만 아니라, 청석 옆의 다른 돌덩이 두 개도 잘려나갔고, 가산 뒤쪽 땅바닥에도 길고 가느다란 베인 흔적이 생겨났다. 이 흔적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심협은 기쁨을 감추기 힘들었다.
순양검배의 위력은 자모검을 훌쩍 뛰어넘어 상품 법기에 맞먹었다.
사실 순양검전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막 연성한 순양검배의 위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체내에서 법력으로 천천히 품고 기르며 세월이 쌓여야만 점차 강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순양검배에는 홍련업화가 녹아들었고, 그 양도 많았기에, 막 연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위력을 보인 것이다. 더욱이 아직 검배 안에 있는 홍련업화의 힘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만약 검배 속 홍련업화의 힘을 이끌어낸다면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법기 등급으로 제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리라.
‘또한, 홍련업화는 천화이니 영혼을 불사를 수 있다는 강점도 있지.’
상대가 출규기라 해도 방심한 틈을 타 적절히 사용하기만 한다면 단번에 죽일 수 있을 터였다.
검배의 위력을 시연해본 후로도 심협은 멈추지 않고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러자 멀리 뜰 한구석에 있던 붉은 비검이 번쩍하고 사라지더니, 다음 순간 그의 손가에 붉은 빛이 희미하게 반짝이며 순양검배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이어서 심협이 결인하고 끌어당기자, 순양검배는 다시 붉은 검홍을 피워 자기 몸을 한 번 휘감더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심협이 흥분한 얼굴로 검결을 작동시키자, 붉은 검홍이 번쩍이며 그의 몸을 휘감은 뒤 더없이 빠르게 하늘을 빙빙 돌며 날았다. 어찌나 빠른지 육안으로는 한 줄기 붉은 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 보일뿐, 무엇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붉은 검광은 허공을 한바탕 날아다니다가 곧 다시 작은 뜰 안에 내리비치면서 심협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의 발아래에는 붉은 검광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순양검배의 또 다른 신묘한 용도, 순양검전에 기록된 어검비행술(御劍飛行術)이었다.
심협은 꿈속 세상과 현실 세계에서 하늘을 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무척 부러웠다. 물론 자신도 비행부를 이용하면 하늘을 날 수는 있었지만, 그 속도는 너무 느렸다. 또한 부적의 힘은 금방 소모돼 오랜 시간 비행할 수가 없었다.
순양검전의 어검비행술은 소모산의 독문비술(獨門秘術)로, 반드시 비행술과 호응하는 비검이 있어야만 했기에 자모검으로는 시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마침내 순양검배를 제련하여 어검비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순양검배의 위력이 강해질수록 어검비행 또한 훨씬 빨라질 테니 비행부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 이제 백 리 길도 금방이겠군.”
기분이 한껏 좋아진 그는 순양검배의 다른 신통력들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창백했던 낯빛은 금세 더 하얘져 백지장 같았다.
그는 황급히 순양검배를 집어 들고는 방으로 들어가 뽀얀 유백색 단약을 하나 꺼내 먹은 뒤 무명공법을 운공했다.
* * *
한나절이나 지나 눈을 뜬 심협은 안색이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
“순양검배를 제련하면서 정말로 원기가 많이 손상되었구나. 적어도 2, 3년은 고되게 수련해야 완전히 회복되겠어.”
순양검배를 제련하는 것만으로도 원기가 꽤 상한 데다, 홍련업화를 녹이기 위해 혈제술을 쓰면서 정혈이 더욱 크게 손상된 것이다.
심협은 작게 탄식했다. 그나마 얼마 전에 용혈을 복용한 덕에 수명도 늘어났고 기혈도 훨씬 왕성해졌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진즉 쓰러졌을 터였다.
하지만 심협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토록 위력적인 순양검배를 만들었으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문 밖에 방문을 사절한다는 팻말을 걸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수련을 이어갔다.
* * *
보름이 훌쩍 지났을 때, 심협은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의 온몸은 푸른 빛에 뒤덮여 있었는데, 빛이 한 차례 크게 일렁이더니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심협의 안색은 훨씬 좋아져서 적어도 창백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이는 체력이 회복된 것일 뿐, 손상된 정혈은 시간을 두고 회복해야 했다.
심협은 길게 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련을 그만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양자와 약조한 한 달이 지난 터라 단약이 다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뜰을 가로질러 나가보니 마차 한 대가 바깥에 서 있었다. 그 옆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바로 잿빛 옷의 사내, 손동이었다.
“심 공자님.”
심협이 나오자 손동이 급히 다가와 예를 갖추었다.
“그대가 어찌 여기에 있는 것이오? 무슨 일이 있소?”
심협은 뭔가 이변이 일어난 것인가 싶어 긴장했다.
“아씨께서 보내셨습니다. 오늘이 약조한 날이니 심 공자님께서 단양자 대사님께 찾아가 상황을 물으실 테니, 대기했다가 안내하라 말씀하셨지요.”
심협은 손동의 대답을 듣고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린 마수수의 총명함에 감탄했다.
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탔고, 마차는 금세 연수방 단양자의 처소에 이르렀다.
심협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멀지 않은 곳의 정자를 한 차례 훑어보았다. 그 안에는 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으니, 바로 망산오우였다.
그들도 심협을 발견했는데, 우두머리인 유포 차림의 노인 외의 나머지 네 사람은 심협을 바라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심협은 이들을 상대하기 귀찮았기에 외면한 채 곧장 문을 두드렸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리고, 소소라는 이름의 여자 아이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심 공자님이시군요. 들어오세요.”
방문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소소가 문을 열고 그를 맞았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일전에 지났던 길을 따라 금세 응접실 입구에 이르렀다.
“허허, 심 도우는 마 소저 말대로 성미가 급하구먼. 한 달의 기한이 이르자마자 바로 달려온 걸 보면 말일세.”
응접실 입구에 이르자 단양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응접실에는 단양자 외에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바로 마수수였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심협을 바라보았다.
“마 소저께서 이리 총명하시니, 범부(凡夫)인 심모의 짧은 생각이 어찌 소저의 두 눈을 피할 수 있겠소? 하하하!”
심협은 응접실로 들어가며 마수수와 인사를 나눴다.
“과찬이십니다, 심 공자님.”
마수수가 생긋 곱게 웃는 모습을 보며 같이 미소를 짓던 심협은 이내 단양자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그 눈빛에서는 절박함이 엿보였다.
“기왕 대사님께서 저의 급한 성미를 아셨으니, 빙빙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단약은 완성되었습니까?”
“이 늙은이는 약조를 저버리는 소인배가 아닐세. 당연히 세 가지 단약 모두 이미 만들어 놓았지.”
단양자는 담담하게 웃으며 앞쪽의 탁자를 향해 소매를 떨쳤다. 그러자 탁자 위에 하얀 빛이 번쩍 스치더니 하얀색, 푸른색, 붉은색 세 개의 약병이 나타났다.
“하얀 병에 든 것은 증수유영단(增壽乳靈丹)이고, 푸른 병에 든 것은 척맥유영단(拓脈乳靈丹), 붉은 병에 든 것은 요상유영단(療傷乳靈丹)일세.”
단양자의 설명을 들은 심협은 하얀 약병을 집어 들고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새하얀 단약 세 알이 들어 있었다. 단약은 맑고 투명해 마치 얼음으로 만든 환약 같았고, 진한 영유의 맑은 향기와 옅은 한기를 뿜어냈다.
“단약이 약간의 한기를 띠는 것은 백년한수(百年寒髓)를 사용했기 때문일세.”
심협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으나, 두 눈은 여전히 세 알의 단약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의 입가에는 빙긋이 미소가 걸렸다.
그는 수명을 늘리는 유영단을 본 적은 없지만, 겉모습과 약의 기운으로 미루어 이 단약들은 분명 비범할 터였다.
그는 하얀색 약병의 마개를 덮은 뒤, 나머지 두 병의 마개를 열었다.
푸른 병 안에는 청록색 단약 일고여덟 알이 들어 있었다. 크기는 증수유영단보다 약간 작았고, 영유 외에 마른 나무 냄새가 약간 섞여 있었다.
반면 붉은 병에 담긴 요상유영단은 담홍색이었는데, 역시 일고여덟 알쯤 되었고, 맑고 신선한 이슬 향기가 느껴졌다.
“이 두 단약의 약효는 무엇입니까?”
심협의 물음에 단양자는 거침없이 답했다.
“척맥유영단의 약효는 설명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네. 사람마다 다르지만, 정상적인 법맥이라면 이 척맥단 여덟 알을 복용하는 것으로 아마도 3할에서 4할 정도는 확대할 수 있을 걸세.”
곁에서 이 말을 들은 마수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놀라기는 심협도 마찬가지였다. 척맥유영단에 법맥 개척 효능이 있음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기껏해야 2할 정도일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양자의 말을 잘 곱씹어보면 4할 이상일 수도 있다는 의미 같았다.
“더 많은 척맥유영단을 복용하면 법맥을 계속 확대할 수 있는 것입니까?”
심협은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다시 물었다.
“약리적으로는 수사가 어떤 단약을 복용하든 수량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그 단약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약효가 줄어들기 시작한다네. 척맥유영단도 마찬가지지. 내 판단으로는 법맥을 최대 5할까지 확대할 수 있을 걸세.”
단양자가 잠시 생각해본 뒤 답하자, 심협은 내심 약간 실망했지만, 곧 이 생각을 접었다. 법맥을 5할이나 확대할 수 있다면 이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니, 어찌 불만을 갖겠는가. 심협은 그리 탐욕스런 사람이 아니었다.
“요상유영단은 순조롭게 제조되어 약효가 예상보다 좋다네.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백골을 살찌게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리 중한 상처라도 숨만 붙어 있다면 구할 정도는 되지.”
단양자는 자랑하듯, 그러나 뻐기는 기색 없이 덧붙였다. 그리고 그 말은 심협을 더욱 기쁘게 했다. 요상유영단의 약효도 예상한 것보다 뛰어나니, 앞으로의 여정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대사님의 연단술은 실로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셨군요. 소인은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
그는 단약들을 챙기고는 깊게 허리를 숙이며 공수했다.
단양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런 찬사야 무수히 들어봤던 터라 크게 기쁘지도, 딱히 무안하지도 않은 듯했다.
“심 공자님, 뜻하는 바를 이루셨으니 축하드립니다.”
마수수가 다가와 축하인사를 건넸다.
“마 소저의 도움에도 깊이 감사하오.”
심협도 마수수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닙니다. 소매는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드렸을 뿐인 걸요. 모든 공은 온전히 단양자 대사님의 뛰어난 솜씨 덕분이지요.”
마수수의 말에 심협도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