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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73화 (273/1,214)
  • 273화. 순양검배(純陽劍胚) (2)

    심협은 하얀 가루를 조금 가져다가 검붉은 소검 위에 뿌린 뒤 주물화로의 불꽃 속에 집어넣고 달구기 시작했다.

    하얀 가루는 빠르게 불타올라 마치 소금이 물에 닿은 것처럼 차츰 소검 안으로 녹아들었다.

    그는 곧 또 다른 재료를 집어 들어 순양검전에 기록된 방법대로 계속해서 검배에 녹여 넣었다.

    이렇게 하루 낮밤 동안 모든 재료가 검배로 녹아들면서 그 외형도 변해버렸다. 검붉었던 색깔은 담홍색으로 변했고, 조금 투박해 보였던 몸체는 훨씬 정교해졌다.

    검 전체가 예리하고 서슬 퍼런 기백을 여실히 드러내며 세찬 기운을 뿜어냈다.

    심협은 멈추지 않고 한 손으로 결인했다. 그러자 순양검배가 씽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 바닥의 법진 한가운데에 둥둥 떠 있었다.

    그가 결인하고 또다시 가리키자, 바닥의 법진에서 갑자기 웅웅거리는 둔탁한 소리가 울리면서 강력한 영력 파동이 폭발했다. 그리고는 거대한 붉은 빛이 법진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 붉은 빛은 겹겹이 서로 교차하면서 거대한 붉은 연꽃 송이를 이루었다.

    법진 한가운데 떠 있던 순양검배도 갑자기 밝아지더니, 그 위에서 투명하게 반짝이는 붉은 빛이 세차게 피어올랐다. 동시에 검배 주위를 감싸고 빠르게 돌면서 붉은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법진의 정확한 효과를 알지 못했던 심협은 이 광경에 살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하얀 석합을 꺼내 법진 안에 놓았다. 그리고는 결인하여 손바닥 두 개를 응결해낸 뒤 거리를 두고 석합을 여는 동시에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한 줄기 푸른 빛이 날아와 석합 속으로 녹아들었다.

    석합에 홍련업화를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는 그동안 구구통보결로 이 물건을 제련해보려 했다. 하지만 하얀 석합은 부기나 법기와는 달리 구구통보결로도 제련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 시도가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이제 석합 속 금제의 힘을 조금이나마 비집어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푸른 빛이 녹아들자 석합에는 희미한 하얀 빛이 한 층 떠올랐다. 뒤이어 사람 머리만 한 홍련업화가 그 속에서 튀어나오더니, 뜻밖에도 영지(靈智)를 품은 생물처럼 밖으로 달아났다.

    심협이 황급히 주문을 읊어 법진을 작동시키자, 홍련업화 앞쪽의 붉은 빛이 모여들더니 빛 덮개를 이루었다.

    펑!

    가벼운 폭발음이 울리면서 홍련이 빛 덮개에 부딪혀 튕겨나갔다.

    동시에 법진 안의 붉은 연꽃도 천천히 돌기 시작하면서 흡입력을 발하며 홍련업화를 뒤덮었다.

    이 힘에 휩싸인 홍련업화는 있는 힘껏 몸부림치긴 했지만, 그 힘은 법진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천천히 법진의 붉은 연꽃 꼭대기로 끌려갔다. 그리고 이내 법진의 힘으로 인해 그 자리에 갇히고 말았다.

    심협은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계속 결인하여 법진을 작동시키는 동시에 입을 벌리고 순수한 법력을 뿜어내 순양검배에 녹아들게 했다.

    순양검배가 뿜어내던 붉고 반짝이는 빛이 곧 환하게 밝아지더니, 주위의 붉은 소용돌이가 곱절 이상 커졌다.

    쉭! 쉭!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여러 갈래의 붉은 검기가 소용돌이에서 뿜어져 나와 날아오르더니 번개처럼 홍련업화의 한 귀퉁이를 휘감고 빠르게 베었다.

    촤아악!

    날카로운 소리에 이어 주먹만 한 홍련업화가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그 뒤, 붉은 검기들은 계속해서 홍련업화를 휘감은 채 아래쪽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당겼다.

    심협은 오른손으로 법진을 작동시키면서 왼손으로는 순양검배를 향해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붉은 소용돌이가 회전하기 시작했고, 커다란 입처럼 홍련업화를 집어삼키려 했다.

    한편, 바깥쪽 법진도 빠르게 회전하면서 보이지 않는 힘의 도움을 받아 붉은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자, 소용돌이의 위력이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홍련업화는 강력한 영성을 품은 천화답게, 위험을 느끼자마자 있는 힘껏 저항했다.

    방금 붉은 검기들이 홍련업화를 벨 수 있었던 것은 검기가 화살처럼 빨랐기 때문이었다. 이제 홍련업화를 검배 안으로 녹아들게 하려면 공을 들여 정교하고 섬세하게 천천히 녹여낼 수밖에 없었다.

    * * *

    눈 깜빡할 사이에 또다시 반 시진이 지났다.

    심협의 낯빛은 창백했고, 체내에 남은 법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법진을 작동시키면서 동시에 검배를 제련하느라 법력 소모가 커진 탓이었다.

    하지만 미리 준비를 해뒀던 그는 뽀얀 단약 하나를 꺼내 삼켰다.

    이 약은 호용의 저물 반지에서 얻은 것으로, 복용하고 나니 곧 단전에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돌면서 소모된 법력이 곧 천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홍련업화는 여전히 소용돌이 속에 둥둥 뜬 채 녹아내리지 않고 버티려 들었다.

    ‘역시 천화는 대단해! 이렇게 조그만 덩어리도 난공불락이라니…….’

    심협은 속으로 감탄했지만,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만약 녹이기 쉬웠다면 홍련업화는 천화가 아니었을 테니까.

    영화는 하늘이 내고 땅이 기른 것으로, 정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순양검전에서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 정혈의 힘으로 혈제술(血祭術)을 발휘하여 순양검배 법진의 효력을 불러일으켜 영화를 정제하는 방법도 있으나, 이는 몸에 부담이 매우 크고, 심지어는 본원(本元: 몸의 원기)이 손상될 수도 있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미뤄둔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뽀얀 단약은 그리 많지가 않아 금세 다 떨어졌다. 결국 심협은 결단을 내리고는 그 방법을 운공하여 얼굴에 핏기가 돌게 한 다음, 혀끝을 깨물고 입을 열어 정혈을 내뱉었다.

    혈광(血光) 한 줄기가 화살처럼 튀어나와 순양검배 안으로 녹아들어갔다. 뒤이어 심협이 손가락을 입에 넣고 깨문 뒤 계속 결인하자, 푸른 법결이 계속해서 줄줄이 쏘아져 나왔다.

    쿵!

    가벼운 소리가 울렸고, 순양검배에 눈부신 핏빛이 한 층 떠올랐다. 이어서 수많은 핏빛 부적 문양이 우후죽순처럼 솟아 나와 소용돌이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우우우!

    소용돌이의 회전 속도가 금세 빨라지면서 마치 먼 옛날 마신(魔神)의 낮은 읊조림 같이 낮은 소리를 냈다. 동시에 그 위력도 열 배나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혈제술이 아득히 먼 곳의 어떤 강한 존재와 소통하는 방법이라도 되는 것인지, 한 줄기 사나운 기운이 소용돌이에서 솟아올라 홍련업화를 감싸더니 홍련업화 자체에 깃들어 잇는 영성과 맞부딪쳤다.

    홍련업화는 순간 용솟음치며 힘껏 저항했지만, 법진의 소용돌이와 혈제술의 거듭된 공격에 결국 반 시진 만에 무너져 내렸다.

    홍련업화는 천천히 핏빛 소용돌이에 집어삼켜져 사라졌다.

    순양검배에 새겨진 법진이 차차 밝아지더니, 그 안에서 홍련업화의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거리다가 한참 뒤에야 가라앉았다.

    홍련업화를 집어삼킨 순양검배는 엄청난 보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지금까지보다 곱절은 강해진 기운을 뿜어내면서 울었다. 경쾌한 검명(劍鳴)이었다.

    심협은 잔뜩 긴장되어 있던 안색을 마침내 누그러뜨리면서 법진과 순양검배의 효력을 불러일으켰다.

    한층 굵어진 여러 줄기의 붉은 검기가 다시 날아와 홍련업화를 베었다.

    * * *

    순식간에 보름이 지났다.

    연기실 앞 뜰에서는 잿빛 옷차림의 사내가 초조한 기색으로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었다. 마수수의 인맥 덕에 심협에게 이 연기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취보당에서 최근 큰 금액으로 연기 주문을 받았기에 이 연기실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가 이리저리 둘러대고 사정해 며칠 더 시간을 벌 수 있었지만, 상대방 쪽에서 재촉하는 탓에 더는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이 일을 맡지 말았어야 했어. 하아.”

    사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말로 후회막급이었다.

    그는 마수수와 함께 심협을 두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래서 마수수가 심협을 얼마나 깍듯하게 대하는지를 알았기에 이번 임무를 자청했다. 이번 기회에 마수수에게 점수를 좀 따보고 싶었을 뿐인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한 시진만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나오지 않으면 억지로 들어가는 수밖에…….’

    그는 그렇게 결심하며 속으로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끼이익!

    굳게 닫힌 채 열릴 줄 모르던 연기실 대문이 갑자기 둔탁한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당연히 심협이었다.

    심협은 무척 초췌했고, 뺨도 살짝 꺼진 데다가 눈에 띄게 야윈 모습이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흥분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심 공자님, 드디어 나오셨군요.”

    잿빛 옷 사내는 화들짝 놀라며 다가갔는데, 놀란 기색 못지않게 기쁨도 느껴졌다. 심지어 그의 말투에는 원망하는 기색마저 살짝 배어 있었다.

    “오, 나를 이리 애타게 기다렸다니, 무슨 일이 생겼소?”

    심협이 눈썹 꼬리를 으쓱 움직이며 농을 건넸다.

    “아, 아닙니다. 공자님께서 들어가신 지 오래라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됐지 뭡니까. 공자님 안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데, 괜찮으신 겁니까?”

    사내가 다급히 변명했다.

    잿빛 옷의 사내가 속에 없는 말을 한다는 걸 눈치 빠른 심협이 어찌 알아채지 못하겠는가?

    “괜찮소. 법기를 제련하느라 원기를 좀 소모했을 뿐이오. 혹시 나 때문에 귀당의 사업에 지장이 생긴 건 아닌지요?”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잿빛 옷의 사내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 모습이 너무 과장된 듯해 심협은 내심 마음이 쓰였으나, 더는 사내를 곤란하게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다행이오. 내 일은 다 처리했으니 연기실을 비워 드리리다.”

    심협이 그렇게 말하자 잿빛 옷 사내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바로 연기공방 사람에게 전하겠습니다요.”

    심협은 작별인사를 건넸다. 이곳은 취보당의 연기공방으로 매우 은밀한 곳이니 자신 같은 외부인이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여긴 것이다.

    잿빛 옷의 사내 역시 간절히 바라던 바였기에 심협이 먼저 이렇게 나오니 무척 고마웠다. 그는 즉시 연기실을 공방에게 돌려준 뒤, 심협을 마차로 창평방까지 안내했다.

    “손동(孫同) 형, 나를 대신해 마 소저께 감사 인사 전해주시오.”

    심협이 포권을 하자, 잿빛 옷의 사내 손동 역시 포권으로 예를 차렸다.

    “소인이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공자님.”

    심협은 손동이 인사를 남긴 후 마차를 몰고 떠나가는 것을 눈으로 전송하고는 창평방의 처소로 돌아갔다. 이어 대문을 닫아걸고는 뜰로 나와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 순간,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빛이 한 줄기 튀어나와 그의 앞에 떠올랐다. 길이 1척 정도의 단검으로, 검신 전체가 핏빛처럼 붉었고, 표면에는 순수한 붉은 빛살이 반짝였다. 맹렬하게 작열하는 태양처럼 위풍당당한 검의(劍意)가 뿜어져 나와 반경 몇 장을 뒤덮었다. 외부의 힘이 그 범위를 침범하면 심협이 의식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적을 다치게 할 수 있었다.

    심협은 눈앞의 진홍색 단검을 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보름 동안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순양검배가 제대로 제련됐던 것이다.

    “공격!”

    그가 순양검전의 검결을 맺으며 외치자 순양검배가 즉시 튀어나가 뜰 안을 휩쓸고 다녔다. 그 군더더기 없고 재빠른 움직임이 마음에 쏙 들었다. 마치 팔이 하나 더 생겨난 것만 같았다.

    ‘이 순양검배는 내 정혈로 제련한 본명법기(本命法器)인 만큼 역시 여타의 법기들과는 다르구나.’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뜰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커다란 바위 몇 덩이가 가산(*假山: 중국 전통 조경에서 정원에 돌로 만들어놓은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청석은 굵기가 족히 맷돌 받침만 했고, 높이는 사람 키에 이르는 데다가 매우 매끄럽고 견고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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