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72화 (272/1,214)
  • 272화. 순양검배(純陽劍胚) (1)

    심협은 망산오우 사이의 대화를 대강 두어 마디 듣고는 내심 경계하고 있다가, 그들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알아차린 뒤에야 안도하며 속도를 높였다.

    서시에 도착한 그는 우선 재료 상점 몇 군데를 돌며 부적 재료들을 잔뜩 샀다. 지난번 사우흔이 사다 준 부적재료들은 이미 동이 났다.

    그 외에도 그는 순양검배를 제련할 때 필요한 물품들을 빠짐없이 사들였다.

    여기까지 마친 그는 처소로 돌아가 부적을 그리는 데에 몰두했다.

    이미 홍련업화를 얻었으니 더 이상 영화 때문에 근심할 필요가 없고, 이번 임무에서도 꽤나 많은 선옥을 얻었지만, 선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었다. 경매장에서처럼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타나도 선옥이 부족해 사지 못하는 일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마수수는 과연 잿빛 옷의 마부를 보내왔다.

    심협은 그를 의심하지 않고 천년영유 열 병을 넘겨준 뒤 계속 부적을 그렸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사흘이 지나갔다.

    심협이 방에 틀어박혀 열심히 부적을 그리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한 차례 들려왔다.

    붓을 놓고 일어나 대문을 열어보니 그 잿빛 옷 사내가 서 있었다.

    “심 공자님, 소저께서 연기실이 준비되었다고 알리라 하셨습니다.”

    잿빛 옷의 사내가 몸을 굽히고는 말했다.

    “알겠소. 나를 거기로 데려다주시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문을 닫은 뒤 마차에 올랐다.

    “단양자 대사께서는 이미 연단을 시작하셨소?”

    마차가 덜컹거리며 나아가는 동안 심협은 휘장을 걷어 올리고 마차를 모는 사내에게 물었다.

    “대사님께서는 영유를 받으신 뒤 곧장 제련에 들어가셨습니다.”

    잿빛 옷의 사내가 대답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휘장을 내린 뒤 눈을 감은 채 정신을 가다듬었다.

    반 시진 뒤, 마차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심협은 휘장을 걷어 올리고 밖을 내다보니 낯선 동네였다. 도로는 넓었고, 근처 건물들도 거대했다. 그러나 행인은 많지 않았고, 공기 중에는 불탄 것 같은 냄새가 풍겨왔다.

    “여기가 어디요? 취보당으로 간다 하지 않았소? 왜 이리로 온 것이오?”

    그는 조금 경계하며 물었다.

    “이곳은 성 서쪽의 숭화방(崇化坊)입니다. 외진 곳이라 토지와 가옥이 상대적으로 저렴하지요. 그래서 우리 취보당에서는 연단공방과 연기공방을 모두 이곳에 배치해 두었습니다. 바로 요 앞입니다.”

    사내의 설명을 듣고서야 심협은 마음이 놓였다.

    마차는 어느 정도 앞으로 더 가다가 처마가 나지막한 짙은 회색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이 건물은 무척 비밀스럽게 지어져서 한 칸씩 연결되어 있었는데,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굴뚝 몇 개가 우뚝 솟아 있었고, 그 안에서 짙은 연기가 끊임없이 솟아올라 높은 하늘에 흩날렸다.

    “여기가 취보당의 연기공방입니다. 심 공자님, 저를 따라 오시지요.”

    잿빛 옷의 사내는 마차를 길가에 세워 놓고는 심협을 잿빛 건물들 틈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는 하나같이 잿빛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나르거나 일을 인수인계했고, 사방에서 땅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심협은 이런 연보공방(煉寶功坊)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사방을 휘휘 둘러보았다.

    마수수가 미리 귀띔을 해놓았는지, 연기공방 사람들은 심협과 잿빛 옷의 사내를 막지 않았고, 두 사람이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두 사람은 안에서 이리 꺾고 저리 꺾으며 곧 어느 건물 안에 도착했다. 건물 안에는 시커멓고 넓은 방이 하나 있었는데, 창문은 없고 어두운 잿빛 돌문뿐이라 더없이 비밀스럽게 보호되고 있었다.

    방의 벽은 검은 돌로 지어졌는데, 틈 하나 없는 것으로 미루어 커다란 바위를 통으로 파서 만든 듯했다.

    “심 공자님, 도착했습니다. 이 방이 바로 연기실입니다.”

    심협은 잿빛 옷의 사내에게 가볍게 감사 인사를 한 후 벽을 매만져보았는데, 몹시도 차갑고 반들반들해서 마치 비단결 같았다.

    “이건 무슨 돌이오? 아주 특이해 보이는데…….”

    “이건 오한석(烏寒石)이라 합니다. 아주 단단한 데다 열을 차단하는 효능이 있지요. 본당의 선배 고수께서 북쪽 끝 지방에서 채굴하여 옮겨왔습니다. 평범한 재료로 연기실을 지으면 몇 년 못 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망가질 수 있지요.”

    잿빛 옷의 사내는 설명을 마치고는 은빛 영부(*靈符: 신령이 깃들어 있다는 부적) 하나를 꺼내 연기실 돌문 위에 대고 눌렀다. 그러자 영부 표면에 곧 하얀 빛 덩어리가 나타나더니 그대로 녹아들어갔다.

    돌문 위로 하얀 빛이 한 층 떠올랐지만, 빠르게 흩어지면서 문이 천천히 열렸다.

    “심 공자님, 안으로 드시지요.”

    사내는 심협을 안내해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방 내부는 꽤 넓었지만, 둘레는 10여 장밖에 되지 않았다. 한쪽 옆에는 커다란 주물 화로가 있었는데, 화로 바닥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붉은 숯덩이가 쌓여 있었다.

    주물 화로 근처에는 커다란 광주리가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주먹만 한 엷은 진홍색 탄석(碳石)이 들어 있었다.

    옆의 벽에는 조롱박 모양 단지 두 개가 걸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주물화로 외에도 방 다른 편에는 커다란 주물대와 망치, 집게 등의 공구가 갖춰져 있었다.

    “내 연기술에 정통하지 않으니, 이곳 물건들을 어찌 다루는지 귀하가 조금 설명해줄 수 있겠소?”

    심협은 방 내부를 훑어 눈에 담고는 잿빛 옷의 사내에게 말했다.

    “예. 우선 이것들은 특수한 재료들을 혼합하여 만든 적원탄(赤元碳)입니다. 불이 탈 때의 온도가 평범한 불꽃보다 훨씬 높지요.”

    잿빛 옷의 사내가 광주리 안의 진홍색 탄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심협은 탄석 한 덩이를 집어 들고 두어 번 살펴본 뒤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잿빛 옷의 사내는 이어서 벽에 걸린 작은 단지를 떼어냈는데, 그 안에는 모래알 같은 검붉은 가루가 들어 있었다.

    “이 조그마한 단지들 안에는 화초분(火硝粉)이 담겨 있는데, 화롯불의 온도를 한 단계 더 높여줍니다. 적원탄과 화초분을 합치면 대부분의 영재를 녹일 수 있지요. 아, 물론 영화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요.”

    그 말을 들은 심협은 내심 기뻐했다. 순양검배의 재료들을 녹이는 데는 그리 높은 온도가 필요하지는 않으니 눈앞에 있는 주물화로의 불꽃만으로 충분했다.

    잿빛 옷의 사내는 주물 화로의 불꽃 온도를 어떻게 조절하는지와 주물대 위에 있는 갖가지 도구들의 사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심협은 이를 하나하나 마음에 새겼다.

    “공자님께서는 혹시 다른 물건이 더 필요하신지요?”

    “아니오. 이 정도면 충분하오. 앞으로 나는 이곳에 꽤 오래 머물 것이니,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게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소.”

    “분부해둘 테니 안심하십시오. 어느 누구도 공자님을 방해하지 못할 겁니다.”

    잿빛 옷의 사내는 믿음직하게 말했다.

    사내는 심협이 다른 말을 하지 않자, 눈치껏 인사를 하고 떠나가면서 돌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자 바깥의 빛은 완전히 차단되었지만, 다행히 천장에 빛을 내는 형석(螢石)이 설치되어 어둡지 않았다.

    심협은 방바닥을 가볍게 쓸어내고 평평한 빈터를 청소한 뒤, 이런저런 재료들을 꺼내 땅바닥에 진문을 새기며 법진을 하나 설치했다. 순양검전에 기록된 것으로, 검의 제련을 돕는 용도였다.

    그는 법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전에 꿈속 장수촌에 있었을 때 그곳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기 위해 법진을 한 번 설치해봤던 게 전부였다.

    눈앞의 이 연검법진(煉劍法陳)은 꽤 복잡한 데다 지금 심협은 수련 경지도 낮아서 무려 사흘이 걸려서야 설치를 마칠 수 있었다.

    그는 순양검전에 설명된 대로 선옥 스무 개를 법진 안 알맞은 자리에 올려놓고는 착오가 없는지 다시 한번 꼼꼼히 점검한 뒤, 인을 맺은 손으로 가리켰다.

    곧 법진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광풍이 포효하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방 전체가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심협은 기쁜 듯 활짝 웃으며 재빨리 결인하여 법진의 작동을 멈추었다.

    법진을 잘 설치한 뒤, 심협은 주물대 옆으로 가서 손을 흔들어 순양검배를 제련할 재료들을 꺼냈다.

    그는 곧바로 화로에 불을 붙이지 않고 먼저 여러 재료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들은 잘게 자르고, 어떤 것들은 가루로 빻았다.

    한나절을 꼬박 보내고 나서야 재료들을 하나하나 다 처리할 수 있었다.

    준비 작업을 마친 그는 잠깐 쉬면서 정기신을 모두 절정의 상태로 회복한 뒤, 본격적으로 순양검배를 제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화로에 불을 붙이고 먹색 세 발 정로(*鼎爐: 세 발 달린 솥 모양 향로)를 꺼내 화로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은 간이 연기로(煉器爐)인데, 주로 연기 초보자들이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심협은 연기술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이 세 발 정로면 충분했다.

    불꽃이 날름날름 타오르면서 세 발 정로가 금세 검붉게 변해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그는 손을 뒤집어 커다란 옥병을 하나 꺼내서는 그 안에 담긴 은백색 액체를 정로에 쏟아부었다. 이 은백색 액체의 이름은 쉬영로(淬靈露)였는데, 나무 속성 영재 안의 불순물을 정제하는 영액(靈液)이었다.

    이어서 새빨간 영목 한 조각을 가져왔다. 바로 순양검배를 제련하는 주재료인 화린목이었다. 화린목을 세 발 정로 안에 넣고 화롯불을 불러일으켜 달구기 시작했다.

    눈 깜빡할 새에 서너 시진이 지나갔고, 세 발 정로의 온도도 따라서 점점 높아졌다. 그 안의 쉬영로는 반 이상 증발되었고, 남은 액체들은 걸쭉해지기 시작했다. 한편, 화린목 표면에는 붉은 점액들이 방울방울 떠올라 녹을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심협은 벽에 걸려 있는 화초분을 가져와 화로에 넣었다. 그러자 화롯불이 갑자기 곱절은 거세졌다.

    다시 두 시진이 지나자, 화린목은 마침내 완전히 녹아 쉬영로에 섞여 들어가면서 순수하고 깨끗한 붉은 점액으로 변했다.

    화린목 안의 불순물들도 완전히 불타 없어진 뒤였다.

    심협이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법력 한 줄기가 날아와 정로 속의 이 액체들을 감쌌다. 뒤이어 그가 결인하고 끌어당기자 붉은 액체가 세 발 정로 안에서 날아와 주물대 위에 놓인 길이 2척의 푸른 옥돌에 떨어졌다.

    청옥에는 검 모양의 홈통이 하나 있었는데, 붉은 액체가 그 안에 떨어지면서 빠르게 퍼져 나가 곧 검 모양 홈을 가득 채웠다.

    주물화로를 떠난 붉은 액체는 빠르게 응고되며 작고 검붉은 검으로 변했다.

    심협은 혀끝을 깨물어 정혈을 한 모금 뿜어냈다.

    펑!

    가벼운 소리와 함께 정혈이 폭발하면서 핏빛 안개가 되어 검붉은 소검(小劍)을 뒤덮었다.

    이어서 심협이 두 손을 결인하자 핏빛 안개가 작은 검을 감싸고 빙글빙글 돌더니 그 안으로 완전히 녹아들어 사라져 버렸다.

    그 뒤 심협이 열 손가락을 다시 펼치자, 푸른 빛 열 줄기가 그의 손끝에서 날아가 날카롭고 가느다란 열 줄기의 푸른 실로 변했다. 그리고는 소검이 완전히 굳어지지 않은 틈을 타 검의 몸체 위에 부적 문양을 하나하나 빠르게 새겼다.

    부적 문양은 뻗어나가면서 희미하게 작은 법진을 이루었다.

    1각 뒤, 심협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손끝의 푸른 광선을 흩어버렸다.

    검붉은 소검은 이미 완전히 굳어졌고, 그 위에는 법진이 새겨진 뒤였다.

    하지만 아직 순양검배의 제련은 끝나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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