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71화 (271/1,214)

271화. 연기공방(煉器工坊)

“감사합니다, 대사님.”

심협은 이미 마수수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단양자가 직접 그렇게 말해주니 기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심 도우의 천년영유는 내가 이미 보았네. 햇수가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분명 천년영유이니 조금 정제만 하면 되네. 허나 유영단은 종류가 몇 가지나 되고 종류마다 효능이 각기 달라 특별히 수수에게 말해 심 도우를 만나보기로 했지.”

“대사님께서는 정말 박학다식하시군요. 저는 그저 천년영유로 만든 단약이 죽은 사람을 살리고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말만 들었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유영단이 몇 가지 종류로 나뉘고 각각 어떤 효능을 지녔는지요?”

심협은 먼저 단양자를 치켜세우고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박학다식이라니, 당치 않네. 이 늙은이가 손에 쥔 단방(*丹方: 도사가 단약을 조제하는 기술)에 따르면, 천년영유를 정제하여 수명을 늘리고, 상처를 치료하고, 맥을 개척하는 세 가지 효능의 단약을 만들 수 있네.”

단양자는 수염을 비틀며 말을 이었는데, 고고한 자태와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수명을 늘리고 상처를 치료하는 효능은 이해할 수 있사온데, 맥을 개척하는 단약은 구체적으로 어떤 효능을 지녔습니까? 경맥을 개척하는 겁니까?”

“그렇다네, 척맥유영단(拓脈乳靈丹)은 글자 그대로 경맥을 개척하는 효능이 있지. 법맥에도 효과가 있어 더 많은 법력을 수용하게 해준다네.”

단양자의 설명에 지금껏 침착함을 유지했던 심협도 더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천년영유로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만 여겼지, 이렇게 많은 효능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자질이 낮아 법맥이 세 줄기밖에 없고, 다른 수사들에 비해 법력이 약한 편이라 근심이었다. 그러나 척맥단으로 법맥을 확대할 수 있다면 이 문제도 해결되리라.

“그 세 가지 단약 모두 제게 유용한데, 혹시 모두 만들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너무 번거로우시다면 보수를 지불하겠습니다.”

심협은 포권하며 물었다.

“그리 번거로울 건 없지만, 심 도우가 보내온 영유는 양이 많지 않아 한 가지를 만드는 것만으로 벅찰 걸세.”

단양자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대사님. 천년영유는 조금 더 있으니 충분할 겁니다.”

심협의 말에 단양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심 도우에게 영유가 더 있다고? 얼마나 더 있는가?”

“전에 보내드린 것의 열 곱절은 될 겁니다.”

심협이 천년영유를 발견한 옥돌 안에는 못해도 30병 정도 있을 것 같았지만, 함부로 내막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기에 그는 그렇게 둘러댔다.

“심 도우에게 천년영유가 그리 많을 줄은 몰랐구먼! 그 정도면 충분하네!”

단양자는 놀란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영유들은 몸에 지니고 다니지 않으니, 나중에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때 곁에 있던 마수수가 끼어들었다.

“심 공자님, 번거롭게 다시 한번 다녀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를 믿으신다면 그 영유를 소매에게 맡겨주시지요. 제가 사람을 보내 여기로 가져오겠습니다.”

“그것도 좋지요.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마 소저.”

심협은 마수수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보이고는 말했다. 이전에도 마수수를 거쳐 천년영유가 담긴 병을 단양자의 손에 전달했으니 불안할 게 없었다.

“단양자 대사님, 단약들을 제련하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심 도우가 세 가지 단약을 모두 원하니, 아마도 한 달쯤 걸릴 걸세.”

단양자가 잠시 생각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유영단은 수명을 얼마나 늘려주는 겁니까?”

심협이 가장 큰 관심사를 물었다.

“심 도우의 천년영유는 햇수가 모자라서 정제를 거친다고 해도 약효가 진정한 천년영유보다 못할 거라네. 유영단을 만든 뒤 첫 알을 복용하면 아마 수명이 30년 정도는 늘어날 게야. 두 번째 알의 약효는 반으로 줄어들 것이고, 세 번째 알도 같은 식일 거라네. 게다가 3알 이후로는 증수유영단(增壽乳靈丹)을 복용해도 거의 효과가 없을 게야.”

단양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수명을 50여 년밖에 늘릴 수 없겠군.’

다소 아쉬웠으나, 일단은 그거면 됐다. 일전에 용혈을 복용해 수명이 20여 년 늘어난 데다, 유영단의 50여 년까지 더하면 그 안에 응혼기에 다다를 자신이 있었다. 그럼 손실된 수명을 완전히 메울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대사님. 한 달 뒤에 다시 방문하지요.”

심협은 단양자에게 예를 갖추어 감사 인사를 건넸다.

“내 온 힘을 다할 테니 한 달 후에 보세나.”

단양자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마친 심협은 마수수와 함께 작별을 고했다.

연단 일이 해결되어 마음을 짓누르던 커다란 바윗덩이가 사라졌으니 이제 순양검배에 대해 고민할 차례였다.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마수수에게 물었다.

“마 소저. 취보당에 법기를 제련하는 장소가 있습니까?”

순양검배를 제련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은 다 갖춰졌고, 평범한 법기와 달리 이 검배는 제련하는 데 특별한 연기술이 필요치 않았다. 게다가 순양검전(純陽劍典)에 상세한 제련 방법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필요 없이 연기실(煉器室)에서 보조해주기만 하면 스스로 제련할 수 있을 터였다.

“법기를 제련하는 곳이요? 우리 취보당에 연기공방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그 곳에 연기실이 몇 개 있지요. 심 공자께서는 무얼 하려 그러십니까? 혹시 사람을 청해 법기를 개선하려 하십니까?”

마수수가 궁금한 듯 묻자 심협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법기를 개선하려는 것이 아니라, 심모가 특수한 물건 하나를 제련하려는데, 연기실이 필요해서요. 번거로우시겠지만 마 소저께서 자리를 하나 마련해주실 수 있을지요? 대가가 필요하다면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심협이 공수하며 말했다.

“사람을 시켜 연기실 하나만 마련해드리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대가라니요. 언제 필요하신가요?”

“최대한 빨리요.”

심협은 순양검배를 제련하고 싶어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서 준비하지요. 삼일 내로 준비할 수 있을 테니 때가 되면 심 공자님께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마수수의 말에 심협은 가볍게 공수했다.

“고맙소. 그럼 마 소저의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천년영유는 언제 받을 수 있을지요? 제가 사람을 보내 최대한 빨리 단양자 대사님께 보낼까요?”

마수수가 물었다.

“오후면 준비될 겁니다. 제가 머무는 곳으로 사람을 보내 찾아가시지요.”

“네, 그럼 그 마부를 보낼게요.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니 심공자께서는 안심하세요.”

마수수는 멀지 않은 곳의 마부를 힐끔 보면서 말했다.

심협도 그 잿빛 옷의 사내를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연수방을 떠나 곧 헤어졌고, 마수수는 마차를 타고 떠났다.

심협은 처소까지 데려다준다는 마수수의 제안을 사양하고 서시로 향했다.

* * *

“이 정도 따라 오셨으면 이제 나와서 이야기를 해보시지요.”

길을 따라 걷던 심협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불쑥 말했다.

“엥?”

누군가 놀란 듯한 소리를 냈고, 이내 뒤편 골목 한구석에서 희미한 빛이 하얗게 번득이더니 다섯 개의 형체가 나타났다. 단양자 대사의 저택 밖에서 기다리던 다섯 사람이었다.

유포를 입은 노인이 우두머리였고, 금박부채를 든 백의의 청년이 두 번째였으며, 청년 옆에는 붉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가장 뒤에 서 있는 키가 크고 건장한 두 사내 중 한 사람은 표범처럼 용맹한 오모에 몸집이 컸고, 다른 한 사람은 아주 탄탄한 체구에 피부가 까무잡잡했으며 한쪽 눈에는 검은 안대를 하고 있었다. 그 둘의 눈에는 마치 야수처럼 서슬퍼런 빛이 번쩍였다.

“도우께서는 재주를 숨기고 계셨구려. 나의 은신부를 간파하다니, 탄복했소.”

우두머리인 유포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믿기 힘들다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무슨 용건인지 모르겠으나 어서 말씀하시지요.”

심협은 살짝 미소 지으면서 손으로 허리춤에 달린 작은 녹색주머니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사실 감지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그가 이들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추적만이 아니라 역추적 능력도 지닌 영고 덕분이었다.

“나는 방월공(方月公)이라고 하외다. 여기 네 사람은 나의 의남매들이지요. 우리 다섯은 청평군(淸平郡) 망산(邙山)에 살고 있는데, 수선계의 벗들이 체면을 보아 망산오우(邙山五友)라는 칭호를 붙여주었소. 여기 도우께서는 존함이 어찌 되십니까?”

유포차림 노인이 공수하고 말했다.

“내게는 빙빙 돌려 말하는 습관이 없소. 용건이 있으면 곧바로 말씀하시지요.”

심협은 저들의 의도에 장단을 맞춰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저들은 자신을 몰래 따라왔다. 좋은 뜻을 품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그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 가명이나 꾸며대며 그들과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기도 귀찮았다.

심협의 거리낌 없는 말에도 소양이 꽤 높은 듯한 유포차림 노인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뒤에 선 네 사람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특히 맨 뒤의 두 사내는 흉악한 눈빛을 번뜩이는 것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망산오우는 모두 벽곡기 수사들로, 실력이 범상치 않았다. 다섯 모두 예전부터 적잖은 명성을 쌓았고, 의남매의 결의를 한 뒤로는 기세가 더욱 대단해졌다. 특히 요 몇 년간은 청평군에서 종파 세력이든 다른 산인(*散人: 세상일을 버리고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 패거리든 이들을 다소 두려워하고 꺼렸으니, 어찌 이리 무시당한 적이 있었겠는가.

유포차림 노인은 손을 들어 올려 두 사내를 저지하고는 살짝 웃었다.

“도우의 말이 맞소. 그럼 이 늙은이도 빙빙 에둘러 말하지 않겠소. 우리 다섯 사람이 이번에 장안성에 온 것은 단양자 대사께 단약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청하기 위함인데, 안타깝게도 아직 원을 이루지 못했소. 아까 도우께서 곧장 대사님의 저택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는데, 아마도 단양자 대사님과 친분이 두터울 테지요. 그러니 귀하의 도움을 청하고자 하오. 도우께서 도와준다면 반드시 후하게 사례하겠소.”

말을 마친 유포 차림의 노인은 공수하며 한 번 깊이 절했다.

붉은 치마의 젊은 여인과 백의의 청년도 따라서 공수로 예를 갖추었다. 그러나 맨 뒤의 두 사내만큼은 여전히 냉기가 풀풀 날리는 눈으로 심협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일 때문이라면 귀하께서는 실망하실 겁니다. 저와 단양자 대사는 깊은 친분 따위 없으니 말이오. 나는 그저 벗의 도움으로 대사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뿐이오. 여러분의 일을 돕고 싶어도 내게는 그럴 능력이 없군요.”

심협은 단박에 거절했다. 능력이 된다 해도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일면식도 없는 저들을 도울 새가 없었다. 게다가 단양자가 만들어낼 유영단이 꼭 필요한 그로서는 이럴 때 찾아가 그의 미움을 사고 싶지도 않았다.

저 유포 차림의 노인이 말한 사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 들어 수많은 보물들을 얻은 심협으로서는 벽곡기 산수 몇 사람의 사례라는 말에 딱히 구미가 당길 이유도 없었다.

말을 마친 심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심협이 그렇게 떠나가려 하자 이제는 붉은 치마의 젊은 여인과 백의의 청년도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멈춰라! 여기는 장안성이지 청평군이 아니야! 그리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청한 것이니 저리 나오는 것도 당연하지. 어찌 이런 일로 원한을 맺으려 드느냐!”

유포의 노인이 네 사람을 흘끗 보고는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사람은 유포차림 노인을 매우 존경하는지 다들 그 말을 따랐다.

이 무렵, 심협의 그림자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노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네 사람을 데리고 몸을 돌려 단양자의 저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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