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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70화 (270/1,214)
  • 270화. 단양자

    꼬박 하루 밤낮이 지난 뒤, 심협은 작은 뜰에 섰다.

    쿠르릉!

    허공에 벼락이 연달아 내리치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공중에 떠 있는 푸른색 손도끼에서 몇 줄기의 푸른 번개가 날아가 뜰의 돌 탁자와 의자에 꽂혔다. 탁자와 의자는 마치 수박처럼 터져나가 한 무더기 자갈로 변해버렸다.

    “좋았어!”

    심협은 결인하고 푸른색 손도끼를 수거하며 기쁜 듯 웃었다.

    푸른 번개의 위력은 상당해서 소뢰부보다 훨씬 강력했지만, 낙뢰부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그러나 사용하기에는 훨씬 편리했고, 법력만 충분하다면 끊임없이 번개를 발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낙뢰부는 부적을 그려야 하고, 날씨에 맞춰 천둥번개를 거둬들여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것이다.

    심협이 손을 뒤집어 도끼를 거둬들이고 살굿빛 깃발을 꺼내 시험해보니, 그 위력도 범상치 않았다.

    그는 아직 완쾌되지 않은 상황이라 더 이상 시험해보지 않고, 손을 뒤집어 깃발을 거둬들인 뒤 방으로 돌아가 법력을 운공하여 상처를 치료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 심협이 거의 완치되어갈 무렵, 주철이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전해왔다.

    대당관부의 조사 결과, 장안성 취보당이 뜻밖에도 사교(邪敎)인 연신단과 관련되어 있어 집사와 장로 여럿이 연신단의 구성원으로 밝혀졌다는 것이었다.

    취보당의 당주는 크게 노하여 대당관부에 사과의 뜻을 전했고, 모든 당원들을 다시 철저히 조사했다. 이에 온 장안성이 발칵 뒤집혔고, 다른 상회들도 다들 불안해했다.

    이 소식을 들은 심협은 깜짝 놀랐고, 내심 정교금의 기백에 탄복했다.

    취보당이 어떤 세력이던가. 감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던 그곳을 들쑤셔놓다니, 역시 그 옛날 본조의 태조와 함께 천하를 손에 넣었던 맹장다웠다.

    다만 취보당이 연신단에 물들었다니, 마수수의 요청으로 저승에서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 그로서는 그녀가 이 일에 얽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는 마수수가 이 일에 연루되지 않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녀와 친분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만들어야 하는 단약은 그녀의 인맥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단 몸 상태가 완전해지면 제대로 조사를 해봐야겠군.”

    그가 그렇게 결심하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보니, 문앞에 선 사람은 바로 마수수였다.

    “마 소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심협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으나, 이어 적잖은 의심이 들었다. 그래도 우선은 마수수를 안으로 들였다.

    “심 공자님, 소매가 이번에 온 것은 사과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공자님이 단약을 만드시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한 일이 오히려 공자님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심협이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마수수가 허리를 깊이 숙여 예를 갖추었다.

    “이 일은 호용이 저지른 일이니, 마 소저께서 자책하실 필요 없습니다.”

    심협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말이야 그렇다지만, 저 때문에 심 공자님께서 위험을 겪으셨으니, 소매는 너무도 마음에 걸립니다. 연단사 어르신께서도 심 공자님께 미안해하시면서 제게 대신 사과를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마수수가 간곡하게 말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원망은 전혀 없으니 마 소저께서 대신 전해주시지요.”

    “심 공자님께서 개의치 않으신다 해도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여길 수가 없습니다. 저희의 잘못을 메우기 위해 연단사님께서 심 공자님께 단약을 대가 없이 만들어주겠다고 하셨지요.”

    마수수가 말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심협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쁜 듯 물었다.

    “물론이지요. 허나 연단의 일부 세부 사항은 공자님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공자님께서는 언제가 편하신지요?”

    심협이 그 일을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자 마수수도 이제야 조금 마음이 놓이는지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

    “지금도 좋습니다.”

    심협이 말했다.

    마수수가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아 연신단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녀의 표정과 행동은 결코 꾸며낸 것 같지 않으니 의심이 절반쯤은 사라졌다. 물론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단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그럼 가시지요.”

    마수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마당 앞에는 마차가 한 대 서 있었는데, 잿빛 옷의 마부가 두 사람에게 예를 갖추었다.

    심협은 그를 흘끗 보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었다. 경매가 있던 날에도 마수수의 마차를 몬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한 시진 정도를 달려 성 북쪽 어느 동네에 도착했다.

    이곳은 창평방처럼 고요했지만,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바닥에는 낙엽 한 장,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곳곳의 가옥과 건물들도 모두 크고 화려한 것으로 보아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임이 분명했다.

    “여기는 연수방(延壽坊)입니다. 이웃이 바로 황성이지요. 단양자(丹陽子) 대사(大師)님의 거처가 바로 요 앞에 있습니다."

    마수수가 말했다.

    단양자, 바로 그 연단사의 이름이었다.

    “단양자 대사께서 사시는 곳은 참으로 이채롭군요.”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이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이곳의 영기가 다른 곳보다 훨씬 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왼쪽 지역에서는 커다란 용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깊고 거대한 위압이 전해져왔는데, 그곳이 바로 황성이었다.

    그의 기억대로라면 대당관부도 이 부근에 있을 터. 태산 두 곳이 짓누르고 있으니 이곳은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리라.

    “이곳은 영기가 짙고 환경도 조용하며 황성에 가까우니 안전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요. 그래서 연단과 수련에 가장 적당한 장소랍니다. 심 공자께서 이곳이 마음에 드신다면 여기로 옮겨오시지요. 제가 살 곳을 알아봐드릴 수 있습니다.”

    마수수가 말했다.

    “아, 그건 괜찮습니다. 이 심모는 늘 멋대로 지내온 사람이라 이런 단정한 동네에서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겁니다.”

    심협이 웃으면서 말했다.

    “심 공자께서도 농을 할 줄 아시는군요. 호호호!”

    마수수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두 사람은 한담을 나누는 사이 어느 저택 앞에 이르렀다.

    저택 대문 양옆에는 사람 키만 한 불사자 조각상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대문 옆에는 정자가 하나 있었고, 그 안 돌 탁자에는 남녀가 뒤섞인 다섯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다.

    우두머리는 긴 수염이 희끗희끗한 유복(*儒服: 유학자의 옷차림) 차림 노인이었다. 이들은 수시로 굳게 닫힌 대문을 바라보았는데, 표정에는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 사람들은……?”

    심협이 궁금한 듯 물었다.

    “단양자 대사의 연단술은 장안성에서 명성이 자자하답니다. 저분들은 다들 대사께 단약을 만들어달라고 청하러 온 이들일 테니,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마수수는 그들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저택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잠시 뒤, 굳게 닫혔던 대문이 삐걱거리며 아주 조금 열리더니 하늘을 찌를 기세로 머리를 땋아 올린 여자아이가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다. 보아하니 겨우 일고여덟 살밖에 되지 않아 보였는데, 보송보송하고 오동통한 것이 꼭 도자기 인형 같아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마 언니!”

    여자아이는 마수수를 보고는 활짝 웃었다. 마수수와 잘 아는 사이인 듯했다.

    하지만 아이는 곧 뒤에 선 심협을 보더니 작은 얼굴에 잔뜩 경계하는 표정을 드러내며 위아래로 그를 훑어보았다.

    “소소(小蘇), 이분은 심 공자님이란다. 내 벗이야. 단양자 대사님과 만나기로 약속을 해 두었는데, 지금 뵐 수 있을까?”

    마수수가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물었다.

    “심 선배님이셨군요. 실례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막 단약을 완성하셔서 지금 방에서 쉬고 계십니다. 저를 따라 오세요.”

    여자아이는 마수수의 말을 듣고 심협을 향해 공손히 예를 갖춘 뒤 두 사람을 안내했다. 그 모습이 애어른 같아 심협은 남몰래 웃음이 나오려 했다.

    한편, 바깥 정자에서 기다리던 다섯 사람은 이 광경을 보고 술렁거렸다. 이들은 이미 정자에서 10여 일을 기다렸음에도 문지방조차 넘어보지 못했건만, 심협과 마수수는 그냥 들어간 것이다.

    단양자 대사의 연단술은 명성이 자자했는데, 그 연단술만큼이나 괴팍한 성깔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면 공짜로 단약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선옥을 갖다 바쳐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큰 오라버니께서는 견문이 넓으시지요. 저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다섯 사람 중 녹색 치마를 입은 젊은 여인이 참지 못하고 유포(儒袍) 차림의 노인에게 물었다.

    “얼굴과 복색, 대화 내용을 보아하니, 저 소녀는 취보당의 신예, 마수수일 걸세. 다만 저 사내가 누군지는 나도 모르겠구먼.”

    유포의 노인이 잠시 생각해본 뒤 말했다.

    “저 두 사람이 저리 쉽게 들어가는 걸 보니 단양자 대사와 사이가 퍽 좋은가 봅니다. 그렇다면 그 일을 저들 두 사람에게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노인 옆에서 흰옷을 입은 청년이 손에 든 금박부채를 흔들며 말했다.

    “둘째 형님의 말이 옳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 모두 눈동자가 환하게 밝아졌다.

    * * *

    심협과 마수수는 소소의 안내를 받아 바깥 대청에 이르렀다.

    우아하게 꾸며진 대청 한가운데에는 자단목 가구 한 벌이 있었는데, 더없이 정교하고 섬세해 얼핏 보기에도 대가의 작품인 것 같았다. 또 대청 벽면에는 산수화 족자가 몇 폭 걸려 있었고, 방의 귀퉁이들마다 훈향(*熏香: 태워서 향기를 내는 향료)도 피워져 있었다. 그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고급 향료임이 분명했다.

    “마 언니, 여기 잠시 앉아 계세요. 제가 가서 할아버지를 모셔올게요.”

    소소는 익숙하게 손님을 대접했고, 두 사람에게 각각 영차를 한 잔씩 내온 뒤, 빠른 걸음으로 안쪽으로 향했다.

    “참으로 영리한 아이로군요. 저 아이가 단양자 대사의 손녀입니까?”

    심협은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어린 누이를 떠올렸다.

    “아니요. 단양자 대사님께서는 일생의 정력과 시간을 단도(丹道)에 바치신 까닭에 혼인하지 않으셨답니다. 저 아이는 단양자 대사께서 출타하셨을 때 만난 아이인데, 홀로 불쌍하게 지내는 것을 보시고는 데리고 돌아오셨지요.”

    마수수의 말에 심협은 내심 놀랐다. 단양자는 성격이 괴팍하다지 않았던가?

    “단양자 대사께서는 정말 선한 분인 모양이군요.”

    “그래서 선한 일을 하면 보답을 받는다지요? 소소는 착하고 영특할 뿐만 아니라 연단술에도 자질이 뛰어나 단양자 대가의 뒤를 잇게 될지도 모릅니다.”

    마수수가 웃으며 공감했다.

    심협은 그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연단술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타고난 재능이 상당해야 했다. 그가 알기로 연단사가 되려면 먼저 세찬 불꽃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며, 이해력이 뛰어나야 했다. 나아가 막대한 재력이 뒷받침 되어야 했는데, 충분한 연단 경험을 거쳐야 단도의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꿈속 세계의 도움을 받아 많은 것을 빠르게 깨달을 수 있었지만, 연단사가 될 엄두는 내보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가 마수수의 말에 답했다.

    “허허, 수수 말이 틀렸다. 선한 사람이라는 호칭을 이 늙은이는 감당치 못해. 그저 당시에 이 아이와 연이 있었을 뿐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가 내 집 앞에 꿇어앉아 삼일 밤낮을 울었대도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을 게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집이 커다란 백발의 노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하얗게 센 머리와 달리 얼굴은 젊어 보였다.

    “단양자 대사님.”

    마수수가 즉시 일어나 공수를 하고 공손한 태도로 예를 갖췄다.

    심협도 급히 일어나 공수했다.

    “자네가 바로 심협이구먼?”

    단양자는 마수수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도 시선은 심협을 향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심협입니다.”

    심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 도우. 얼마 전 이 늙은이 때문에 그대가 위험에 빠졌다고 들었네. 내 자네에게 사과함세.”

    단양자는 미안해하는 기색으로 심협에게 몸을 굽혔다.

    “대사께서는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미 지난 일입니다. 당시 제가 자청해서 참여한 임무이니 대사님께서 마음 쓰실 것 없습니다.”

    심협은 황급히 상대를 부축해 일으키며 답례했다.

    단양자는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은 연단의 대가 아닌가! 그런 그가 자신과 같은 젊은이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건 대당관부의 압박에 못 이긴 것이건 상관없었다. 하물며 이제 이 노인에게 자신의 수명이 달린 단약을 부탁해야 하니 더욱 좋은 관계를 맺어야 했다.

    “심 도우가 책망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되었네. 수수 말을 들어보니 심 도우가 이 늙은이에게 천년영유로 단약을 만들어달라고 청하려 한다더군. 성의 표시로 이 늙은이가 기꺼이 무상으로 도우에게 유영단을 만들어주겠네.”

    단양자는 여전히 따뜻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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