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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68화 (268/1,214)
  • 268화. 관부의 초청

    정국공은 경매장에서 봤던 금괴장군이나 청화선고 등보다 훨씬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들처럼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없었고, 투박하면서도 친절한 모습이 호감을 자아냈다.

    “대당관부와 대당의 백성들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이 소인의 소원이니 어찌 감히 상을 바라겠습니까.”

    심협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 잘했다. 우리 수사들은 비록 속세를 초월했지만, 그래도 대당의 백성 아니겠느냐.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한데 안타깝게도 요즘 수선계에는 이런 각오가 있는 사람이 드물다!”

    심협의 말이 마음에 쏙 들었는지 정교금은 큰 소리로 칭찬했다. 이에 심협과 육화명은 황급히 한 마디씩 맞장구를 쳤다.

    “심 소자, 대당에는 너처럼 열성적으로 나라를 위하는 사내가 필요하다. 대당관부에 들어올 마음이 없느냐? 우리와 함께 나라를 지키고 인세의 평화를 지키지 않겠느냐?”

    정교금의 갑작스런 제안에 심협은 꽤나 마음이 동했다. 지금 그는 비록 자유롭긴 했지만, 혈혈단신이라 수련에 조언해줄 사람이 부족했으니까. 대당관부에 들어가는 것은 괜찮은 선택일 터였다.

    다만 얽힌 일이 많고 수명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기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사부님, 심형에게도 모시는 스승이 있을 테니 억지로 권하지 마시지요.”

    육화명은 심협의 얼굴에 주저하는 기색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그래? 그거 참…… 아깝구나.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면 찾아오거라. 대당관부의 대문은 늘 너에게 활짝 열려 있을 것이다.”

    정교금은 안타까운 듯 탄식하고는 그렇게 덧붙였다.

    “정국공대인의 깊은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협은 크게 감동하여 감사를 표했다.

    “자, 한담은 이쯤 하고……. 화명, 너와 심 소우(小友)가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임무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더냐?”

    정교금은 상석에 앉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좀 전까지의 투박함과 가벼움은 찾아볼 수 없었고, 위엄이 넘쳐흘렀다.

    “예, 사실 이번 저승 임무는 아주 수상쩍었습니다.”

    육화명 역시 진중한 표정으로 저간의 상황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사실 그가 아는 일은 많지 않았고, 도착하기 전의 상황은 심협에게서 들은 것이었다.

    “오, 연신단 사람이 경하용왕의 봉인을 건드릴 줄이야. 실로 예사롭지 않구나! 연신단은 내 잘 안다. 초라한 산수들을 긁어모아 음험하고 독살스런 일을 벌이지. 우리 대당관부와 다른 정도(正道) 종파들이 몇 번이나 토벌했으나,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취보당에도 그들의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건만……. 연신단의 세력이 예상보다 큰 모양이구나.”

    정교금은 다소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스승님, 그 경하용왕은 도대체 어떤 귀물입니까? 그의 귀혼(鬼魂)이 왜 저승에 봉인되어 있는 것입니까?”

    육화명의 이 질문은 심협도 계속해서 궁금해하던 내용이었다.

    “그 일은 당시의 기밀과 관련되어 있다. 태종 폐하께서도 연루되어 있으니 너희는 알 필요 없느니라.”

    정교금이 이렇게 답했을 때, 심협은 더욱 놀랐다. 경하용왕의 귀혼이 태종황제와도 관련이 있을 줄이야! 더욱 궁금해졌지만, 더는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예, 사부님. 그럼 이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육화명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물었다.

    “심 소우, 이 일을 어찌 처리해야 좋을 것 같은가?”

    정교금이 불쑥 질문을 돌리자 심협은 화들짝 놀랐다.

    “후배는 일개 벽곡기 수사일 뿐인데 어찌 감히 대당관부의 일에 참견하겠습니까? 국공대인께서 안배해주시면 그뿐이지요.”

    “아니다. 이번 임무에서 목숨을 잃은 수사들을 제외하면 심 소우가 가장 큰 피해자이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당연히 네 의견도 들어야지.”

    정교금의 말에 심협은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관부는 백성을 위하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진정으로 이를 해내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드물었다.

    “이 후배, 이번 임무에서 적지 않은 위험을 만났으나 결국 무사히 넘겼습니다. 그러니 원망하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국공대인께서 상황을 참작하시어 처리해주시면 될 것으로 압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렇게 답했다.

    “심 소우가 그리 말하니 이 일은 내가 처리하도록 맡기려무나. 안심해라. 반드시 네게도 만족스러운 답을 주마.”

    정교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심협은 깊게 포권을 했다.

    “예, 국공대인의 결정을 전적으로 따르겠습니다.”

    “좋다. 이제 너희는 나가 보거라.”

    두 사람은 몸을 일으켜 정교금에게 예를 갖추고 물러났다.

    “육형, 나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물러가겠소.”

    심협은 대전을 나와 곧바로 육화명에게 작별을 고했다.

    “심형, 이렇게 그냥 가려는 거요? 한나절만 머물다 가지 그러시오. 내게 좋은 술이 좀 있는데, 임무 보고를 마쳤으니 안심하고 한잔합시다.”

    육화명이 진심으로 아쉬운 듯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으나 정말 중한 일이 있소. 내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육형을 찾아오리다. 그때 통쾌하게…… 세 잔쯤 마시겠소. 하하하!”

    “세 잔으로 되겠소? 세 단지는 마셔야지! 하하하!”

    육화명 역시 호쾌하게 웃으며 답했다.

    “좋소, 육형 말대로 하지요.”

    심협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육화명의 배웅을 받아 대당관부를 나왔다.

    그는 곧장 창평방의 처소로 되돌아갔다. 사우흔은 아직 돌아오기 전이었다.

    심협은 주철에게 성안 상황을 눈여겨보다가 이변이 생기면 즉시 알려달라고 부탁한 뒤, 처소로 돌아갔다.

    다행히 몸에는 큰 이상이 없었기에 그는 침상 위로 벌렁 드러누웠다.

    이번 임무 내내 신경은 곤두서 있었고,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탓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래서 침상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 * *

    심협은 꼬박 이틀 밤낮을 자고는 사흘째에 겨우 눈을 떴다. 푹 잔 덕에 외상은 거의 완쾌됐고, 내상도 많이 호전되어 있었다. 이틀 정도만 더 휴식을 취하면 완전히 회복될 것 같았다.

    그는 먼저 밖으로 나와 정원을 한 바퀴 둘러봤다. 지난 이틀 동안 외부인이 들어온 흔적이 없는 것에 안심하며 다시 방으로 돌아가 탁자 앞에 앉았다.

    그가 손을 흔들자 탁자 위에 한 무더기 물건들이 쏟아졌다. 이번 임무의 보상으로 받은 것들이었다. 200개의 선옥과 주먹만 한 누런색 수정 하나, 흑백의 약병 두 개 그리고 굵기가 팔뚝만 한, 하얗고 투명하게 빛나는 해골 세 토막.

    이 누런색 수정은 황천수정으로, 반투명하면서도 담황색 광채를 내뿜었다.

    심협은 황천수정을 집어 들고 법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수정 주위의 노란 광채가 곧 열 배쯤 밝아졌다.

    노란 광채가 심협의 두 눈동자를 비추자, 그는 곧 다른 사물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시야에는 오직 노란 광채만이 쉬지 않고 회전하면서 마치 만화경을 보는 듯한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깜짝 놀라 급히 눈을 감고 가만히 공법을 운공했다.

    한참 뒤에야 어질어질한 느낌이 사라졌고, 눈을 떴을 때는 시야도 정상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정말 대단한 보배로구나!”

    심협은 수정을 만지작거리며 감탄했다.

    이전에 귀시에서 구입한 <귀계영재대전(鬼界靈材大全)>에서 그는 이 황천수정에 대한 기록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 물건은 황천대하에서 났는데, 쓰임새가 다양했다. 단약을 만들 수도 있고, 미혼(*迷魂: 사람의 마음을 미혹시킴)류의 신통력을 수련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하며, 눈이 부시게 해 시야를 방해하는 법기를 제련할 수도 있다. 비록 황천죽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귀중한 재료였다.

    그는 황천수정을 만지작거리며 다른 것과 맞바꾸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미련을 버렸다. 제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지금 그에게는 수명을 연장시켜줄 단약보다 중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심협은 황천수정을 내려놓고는 하얗게 빛나는 해골 토막들을 살폈다.

    해골에서는 강력한 음기 파동이 간간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가 예전에 얻은 귀소환의 재료보다 훨씬 상품이었다.

    이 옥수골(玉髓骨)은 그리 특별한 데는 없지만 무척 단단해서 법기를 제련하기에 훌륭한 재료였다. 특히 음(陰)속성 법기를 제련하는 데 적합했으며, 내다 팔면 선옥 30여 개와 맞바꿀 수 있을 터였다.

    심협은 두 개의 약병을 집어 들었다. 하얀 약병에 든 것은 전에 한 번 복용했었던 음영단이었고, 검은 병 안에 든 것은 짙푸른 빛깔의 단약이었다.

    임무를 완수하고 보고할 때 종규가 이 푸른 단약의 이름과 효능을 약간 설명해주었다. 이름은 음칩단(陰蟄丹)으로, 복용하면 호흡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고,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며, 마치 죽은 것 같은 효과가 36시진 동안 지속된다고 했다.

    “모두 좋은 물건들이니 팔지 말고 남겨두자.”

    그렇게 결정한 그는 물건들을 모두 챙겼고, 뒤이어 은빛 반지를 꺼냈다. 바로 호용의 시신에서 가져온 저물법기였다.

    ‘응혼 후기 수사의 저물법기이니 분명 좋은 물건들이 적잖이 있을 거야.’

    그는 기대감을 가지고 법력을 반지에 주입해 제련하기 시작했다.

    은빛 반지 속의 공간은 좁은 방 한 칸 정도 크기로, 임랑환보다 훨씬 작았다. 대신 그 안에는 꽤나 많은 물건이 들어 있었는데, 대부분은 선옥이었다. 80여 개에 이를 듯했다.

    “선옥이 이렇게나 많다니! 호용 그 늙은이, 알고 보니 부자였군!”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곧장 다른 물건들도 살폈다.

    위쪽에 검은 실로 괴수 풍후 도안이 수놓아진, 사람 허리 높이의 살굿빛 깃발 하나, 푸른색 손도끼 하나, 하얀 약병 두 개, 약 서른 장쯤 되는 노란 부적, 자줏빛 고서 한 권 그리고 잿빛 목함 하나였다.

    심협은 손을 휘둘러 이 물건들을 전부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

    커다란 살굿빛 깃발과 푸른색 도끼는 호용이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모두 강력한 법기였다.

    그는 두 법기를 손에 쥔 채 구구통보결을 운공하여 각각의 등급을 알아냈다. 깃발은 6도 금제를 품고 있는 중품 법기, 도끼는 8도 금제가 담겨 있는 상품 법기였다.

    “좋았어! 중품 법기와 상품 법기 하나씩을 또 얻었구나!”

    심협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살굿빛 깃발은 중품 법기에 불과하긴 해도 공격 범위가 넓어 마음에 들었다. 마침 그는 이런 공격수단이 필요하던 차였다.

    푸른 도끼는 번개 속성의 법기로, 하마터면 여기에 두 동강이 날 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만큼 공격력이 강력한 법기였다.

    심협은 손을 흔들어 두 법기를 임랑환 안으로 챙겨 넣었다. 잠시 후에 제련할 생각이었다.

    그는 계속 다른 물건들을 살폈다. 하얀 약병들에는 뽀얀 단약이 들어 있었는데, 약의 기운으로 미루어 회복 단약일 듯했다. 부적들은 호용이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칠흑 같이 검은 그림자로 변할 수 있는 괴뢰부(傀儡符)였다.

    한편, 자줏빛 고서에는 호용이 수련하는 감뢰결(撼雷訣) 공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등급이 높은 공법이긴 했지만, 심협에게는 이미 무명공법이 있었기에 수련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감뢰결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뒷부분에 뇌법(雷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는데, 이를 통해 소뢰부와 낙뢰부에 대한 깨달음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

    심협은 자줏빛 고서를 내려놓고 마지막 잿빛 목함을 집어 들었다. 한데 그가 열려고 하니 목함에서 한 줄기 검은 빛이 확 피어올랐다.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고, 심협은 안색이 급변해 재빨리 잿빛 목함을 내던졌다.

    거의 동시에 검은 불꽃이 솟아올라 목함이 소리 없이 타올랐다.

    목함은 책상위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고, 기이하고 소름끼치는 소리가 나더니 검은 불꽃이 눈 깜짝할 사이에 탁자를 태워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았다.

    심협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검은 불꽃은 대단히 사나워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의 손은 불구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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