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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67화 (267/1,214)
  • 267화. 사부님!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황성 근처의 거대한 관저 앞에 이르렀다.

    관저라고는 해도 이곳은 거대한 장원(*庄園: 귀족의 영지)에 더 가까워 보였고, 안에는 건물들이 길게 무리지어 늘어서 있었다.

    대문 근처에는 100여 명에 이르는 도검과 커다란 미늘창을 찬 철갑 병사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눈빛이 날카롭고 살기가 몸에 배어 있었다. 전쟁 경험이 풍부한 철혈의 전사임이 분명했다.

    “여기가 대당관부……?”

    심협은 놀란 눈으로 눈앞의 관저를 훑어보았다.

    그곳은 위엄이 넘쳤지만, 그가 상상했던 거대한 수선 세력과는 조금 달랐다.

    “대당관부는 수선 세력이라고는 하나 조정 관청의 하나이기도 해서, 엄밀히 말하자면 병부에 예속되어 있소. 그래서 입구를 병정들이 지키고 있는 거요.”

    육화명이 말했다.

    “그렇군요.”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육화명은 심협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 금빛 영패를 꺼내 손 가는 대로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대당관부 정문 앞의 호위병들이 길을 열었고, 두 사람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관저에 들어서자마자 심협은 매우 강력한 기운이 사방에서 전해져 와 꼼짝 못하게 만드는 걸 느꼈다. 아마 이 기운을 뿜어내는 이들은 모두 응혼기 수사인 듯했다. 그리고 이들의 기세 변화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정연한 것이 마치 엄격하게 훈련된 병사들 같았다.

    그는 간담이 서늘해져 얌전히 육화명 뒤를 따랐고, 감히 눈길도 함부로 돌리지 못했다.

    두 사람은 관저의 바깥 대청을 지나 방향을 틀어 어느 초수유랑(*抄手游廊: 정원 바깥을 따라 설치된 지붕이 덮인 복도)으로 들어섰다.

    그곳에 도착하자 강력한 기운들은 홀연히 사라졌고, 그제야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분들은 문을 지키는 호위병인데, 얌전히 굴기만 한다면 아무 일 없소.”

    육화명이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대당관부의 저력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밖에서 응혼기 수사는 아무 종파에나 가입해도 장로 자리를 얻을 수 있건만, 여기서는 고작 호위병에 불과한 것이다.

    회랑 주변에는 꽃과 나무가 가득했고, 담벼락에는 짙푸른 담쟁이덩굴이 가득해 눈앞이 모두 푸른빛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했다.

    회랑 근처에는 꽃밭과 연못, 정자 등이 있어 마치 정원처럼 아름다웠다.

    그런 정자들과 꽃밭 사이로는 수사들이 한가로이 산책을 하거나, 바둑을 두었고, 현을 타기도 했다. 절경과 어우러지자 그들이 마치 신선처럼 보였다.

    그들의 기백과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니 다들 출규기 고수로, 금괴장군이나 청화선고 등에게 결코 뒤처지지 않았기에 심협은 기겁했다.

    “저분들은 우리 대당관부의 객경(客卿)과 장로들이오. 조정에서 거금을 들여 모셔온 분들로, 면면이 만만치 않은 데다 성격이 괴팍한 사람이 많으니 함부로 저들의 미움을 사지 않는 게 좋소.”

    육화명의 조용한 목소리에 심협은 황급히 시선을 거두었다.

    두 사람은 잠시 후 회랑을 지났는데, 우아하면서도 품격 넘치는 화려한 건물들이 연이어 앞에 나타났다.

    “이 건물들은 지객당(知客堂), 수정당(守靜堂), 명인당(銘仁堂)으로, 모두 귀빈을 접대하는 곳이오.”

    육화명은 심협에게 하나하나 친절하게 소개했다.

    사실 규칙대로라면 외부 방문객들은 먼저 방문 보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심협은 육화명과 함께였기에 이런 절차들을 생략할 수 있었다.

    좀 더 지나자 건물들이 거대하고 위엄 있는 분위기로 확 바뀌었다.

    이곳은 대당관부의 핵심구역으로, 육화명의 소개에 따르면 대당관부의 내부는 천강당(天罡堂), 지살당(地煞堂), 사해당(四海堂), 벽력당(霹靂堂) 등 각기 다른 당구(堂口)로 나뉘는데, 각 당구마다 담당하는 일이 다르다고 했다.

    두 사람이 벗이라고는 해도 심협은 외부인이니 육화명도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었다. 이를 알기에 심협도 더는 캐묻지 않고 그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낯빛이 살짝 변해 걸음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어느새 커다랗고 둥근 빛의 장막이 나타나 있었는데,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을 띤 검의 허상 일곱 개가 떠 있었다.

    거대한 검의 외곽에는 아주 작아진 검영(劍影)이 하나의 고리 형태를 이루었고, 더 바깥쪽에는 검영이 한층 또 있었는데, 크기가 더 작았다.

    빛 장막 위의 검영은 이렇게 겹겹이 쌓여 일곱 층으로 나뉜 채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는 대당관부가 창건된 곳이오. 본조(本朝)의 태조께서는 큰 대가를 치르고 상청(上淸: 하늘, 옥청(玉淸), 태청(太淸)과 함께 도가의 삼청(三淸) 중 하나)의 고수 한 분을 모셔와 칠절검진(七絶劍陳)을 설치하시며 우리 대당관부의 수호법진으로 삼으셨소. 이야기에 따르면, 이 법진은 주선검진(誅仙劍陳)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라금선(*大羅金仙: 도교 36천 중 가장 높은 대라천에 사는 영생불멸의 신선)도 그 안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혼비백산했다 하오.”

    육화명의 심협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모습을 보고는 간략히 소개했다.

    “칠절검진!”

    심협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머리 위의 검진은 얼핏 봐도 비범해 보였지만, 대라금선까지 죽일 수 있을 정도라니, 대당관부의 저력은 정말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갑시다.”

    육화명은 심협을 재촉해 방향을 틀더니 어느 외지고 좁은 길로 들어섰고, 금세 조그마한 2층짜리 정사(*精舍: 도교의 사원) 앞에 이르렀다.

    “국공대인이 여기 계시오?”

    심협은 눈앞의 작은 건물을 훑어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아니오. 이곳은 내가 거처하는 곳이오.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좀 있으니 국공대인은 잠시 후에 뵈러 갈 것이오.”

    육화명은 그 말을 남기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조금 난처했지만, 그래도 육화명의 뒤를 따라갔다.

    그가 작은 건물에 발을 채 내딛기도 전에 방에서는 짙은 주향(酒香)이 풍겨왔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소리도 들려왔다.

    심협은 어안이 벙벙해져 돌아보니, 육화명이 방바닥에 앉아 커다란 술단지 하나를 끌어안은 채 시원하게 들이키고 있었다. 옆의 탁자 위에는 술단지가 몇 개나 더 놓여 있었다.

    심협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웃었다.

    “육형이 말한 중요한 일이 술 마시는 거였소?”

    심협은 조금 멍해졌다.

    “휴, 이제 좀 살 것 같군!”

    육화명이 술단지를 내려놓고 손등으로 입가의 술을 닦아내며 말했다.

    “내게는 술 마시는 것이 제일 큰일이오. 하루라도 안 마시면 뱃속의 술벌레들이 반란을 일으킨다오. 국공대인께서 바깥 임무를 수행할 때는 술을 못 가지고 가게 하시는 바람에 요 며칠 먹고 싶어 죽을 뻔했소.”

    육화명은 장난스레 웃으며 또다시 몇 모금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대 모습을 보니 꼭 몇 년 동안 술 구경을 못한 사람 같구려.”

    심협이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하루만 못 봐도 3년은 떨어져 있었던 것 같지요. 하하하!”

    육화명의 탄식에 심협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심형도 좀 드시려오?”

    육화명이 심협 앞으로 술단지 하나를 슥 밀었다.

    “잠시 후면 국공대인을 뵈러 가야 하니 사양하겠소.”

    심협은 부드럽고 순한 주향에 마음이 동했지만, 어쩔 수 없이 사양했다.

    육화명도 더는 권하지 않고 혼자 세 단지나 마시고서야 일어서더니 꺼억 트림을 했다.

    “갑시다.”

    그들은 작은 건물을 떠나 어느 대전 밖에 이르렀다.

    “여기는 대당관부의 의사(議事)대전으로 국공대인께서 평소 공무를 처리하시는 곳이오.”

    육화명은 심협을 데리고 곧장 그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은 밖에서 보면 높이 우뚝 솟아 있어 근처 다른 전각보다 훨씬 높았지만, 내부 장식은 수수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탁자와 의자를 제외하면 갖가지 병기들로 가득 찬 병기 선반 두 줄이 전부였다.

    “여기가 정말 의사대전이란 말이오?”

    심협은 믿을 수가 없어 되물었다.

    “정국공께서는 무인 출신이신지라 무예 연마하시기를 즐기신다오. 게다가 그 어르신께서는 금은옥기나 골동품, 진귀한 보물 따위는 모두 사람의 마음을 부패하게 만드는 물건이라 여기시니, 무예를 닦는 대전 안에 나타나는 것을 엄금하고 있지요.”

    육화명이 웃으면서 말했다.

    “국공대인은 정말 훌륭한 분이로군요.”

    심협이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육 사형, 그리고 도우 분, 차 좀 드시지요.”

    두 시종들이 나와서 두 사람에게 각각 영차(靈茶)를 한 잔씩 건넸다.

    “국공대인께서는 안에 계신가?”

    “폐하께서 정사를 논의하고자 국공대인을 부르셔서 조정에 드셨는데, 아직 돌아오시기 전입니다.”

    육화명의 물음에 시종 한 사람이 말했다.

    “오, 그럼 잠시 기다립시다.”

    육화명이 약간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심협에게 말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 옆에 앉았다.

    이들은 반 시진을 넘게 기다렸지만, 육화명이 여러 해 동안 보고 들은 이야기를 맛깔나게 해주었기에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잠시 후,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는데, 어딘가 급한 발걸음 같았다.

    “국공대인께서 돌아오셨소!”

    육화명이 눈꼬리를 움찔하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체구가 건장한 노인이 걸어 들어왔다.

    금빛 갑옷을 입은 노인의 얼굴에는 짙은 구레나룻이 가득했고, 퉁방울만 한 눈이 더없이 위풍당당해 보였다.

    “제기랄, 벼슬을 했더니만 매일같이 조정에 나가야 하고……. 정말 귀찮아 죽겠네. 확 그냥 때려치워?”

    심협은 앞으로 나아가 예를 갖추려다가 노인의 입에서 나온 거친 언사에 멈칫했다.

    육화명은 마치 ‘보시오. 내 말이 맞잖소’라고 말하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심협을 쳐다보더니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사부님, 제자가 돌아왔습니다.”

    그는 노인에게 몸을 굽히고 예를 갖췄다.

    “사…… 사부……?”

    심협은 말 그대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육화명과 정교금은 사제관계였던 것이다!

    “망할 놈아, 술내가 진동을 한다! 또 술 마시러 쪼르르 달려갔겠지? 지난번에 혼쭐난 것으로는 아직 모자라는 게로구나! 어디 말해봐라. 이번 일을 그르친 건 아니겠지?”

    정교금은 코를 킁킁거리더니 눈을 부라리며 손을 번쩍 들어 때리는 시늉을 했다.

    “사부님, 제자는 이번 임무 중에 술을 절대 마시지 않았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 마신 겁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저기 심 도우에게 물어보십시오. 그가 두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육화명은 황급히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나면서 변명했다.

    “오, 한 녀석 더 있었구만? 성이 심가냐? 이 썩을 놈의 말이 정말 사실이야?”

    정교금은 심협을 위아래로 한 차례 훑어보며 따지듯 물었다.

    “심협이 정국공을 뵙습니다. 육형의 말은 사실입니다. 그는 확실히 임무를 완수한 뒤에 마셨습니다.”

    심협이 앞으로 나아와 예를 갖추며 답했다.

    “좋아, 이번에는 봐주마.”

    정교금은 콧방귀를 뀌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심협을 바라보았다.

    “네 이름이 심협이라고?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녀석, 근골도 괜찮아 보이고, 사람도 성실해 보이는 게, 저 술쟁이와는 다르구나. 한데 이놈과 어울려 술판이나 벌이고 다니는 게냐?”

    그는 심협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본 뒤 걸걸하게 말했다.

    “어르신, 오해십니다. 제가 이렇게 찾아뵙게 된 것은 대인께 아뢰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옵니다.”

    당황한 심협이 포권을 하며 황급히 말했다.

    “아이고, 사부님! 여기 심형은 제가 예전에 알게 된 벗입니다. 답수결을 제게 전수해 주었지요. 이번 임무에 그도 연루되었기에 이 제자와 함께 사부님을 찾아뵙고 저간의 사정을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육화명이 다가와 끼어들었다.

    “오, 답수결이 너의 법술이었구나. 그 법술은 우리가 물 요괴를 막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 대당관부에서 네게 신세를 졌으니,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 오거라. 하하하!”

    정교금은 심협의 어깨를 힘껏 두드리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이 노인은 힘이 놀라울 정도로 세서, 심협은 어깨가 부서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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