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59화 (259/1,214)
  • 259화. 혈시(血屍)

    심협 일행이 몸을 가누고 제대로 서기가 무섭게 동갑(銅甲) 음병들이 코앞까지 돌진해왔다. 우두머리가 말을 몰며 장창을 곧장 내찌르자, 창끝에 시퍼런 빛이 응집되어 도깨비불처럼 곧장 심협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심협은 금도를 휙 치켜 올리고 칼날을 비스듬히 하여 올려 베었다. 칼날에서는 금빛이 크게 번쩍이며 창끝의 어두운 빛과 맞부딪쳤다.

    카캉!

    음병은 말을 몰아 돌격하는 기세가 맹렬했고, 장창을 휘감은 힘도 강력했다. 하지만 심협의 두 발은 뿌리라도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고, 그는 그 상태로 두 손으로 칼자루를 꽉 움켜쥐고는 위로 세차게 올려쳤다.

    캉!

    금도에서 빛이 일렁이자, 반호(弧) 형태의 도광이 거꾸로 솟구쳐 올라 청동장창을 기이한 각도로 내리 눌렀다가 갑자기 튕겨 나갔다. 다음 순간, 도광이 지나간 곳의 청동갑옷은 완전히 갈라졌고, 음병이 타고 있던 백골 군마도 이 강력한 충격에 앞발굽을 높이 쳐들며 뒤로 물러났다.

    백여 명의 동갑 음병들이 일제히 돌진하던 기세는 심협에게 잠시 가로막혔지만, 후방의 군대가 계속해서 돌격해왔다. 이에 운낭과 여합을 포함한 네 사람도 그 진영으로 뛰어들어 함께 뒤섞여 난전을 벌였다.

    심협이 옆에서 비스듬히 찔러오는 장창과 백골 말은 물론 그 위의 병사까지 함께 베어 떨어뜨리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심협은 속으로 생각했다.

    ‘망했다!’

    과거에 그는 진법 책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책에 따르면 기병들이 즐겨 쓰는 전투대형 중 좌우 양 날개를 포위해 중간의 적군을 반복해서 공격함으로써 상대방의 전열을 흐트러뜨리고 적군에게 심한 타격을 주는 것이 있었다.

    후방에는 이런 음병들이 더 있어서 돌진해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만약 양쪽에서 서로 협공하여 서로가 뿔 모양을 이루며 충돌하는 형세라면, 일행의 수련 경지가 이 음병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해도 위험할 터였다.

    하지만 심협은 곧 자신의 걱정이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줄곧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호용이 나선 것이다.

    그는 여유로운 동작으로 호리병을 다시 허리춤에 묶고는 손목을 슬쩍 돌렸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갑자기 사람 허리 높이의 살굿빛 깃발이 하나 나타났다. 그 위에는 검은 실로 기이한 짐승 그림이 수놓아져 있었다. 개의 머리에 사자 몸을 하고, 등 뒤에는 한 쌍의 날개가 달린 짐승이었다.

    “풍후(風犼)!”

    심협은 곧바로 깃발에 그려진 짐승을 알아보았다.

    “공격!”

    호용의 입에서 가벼운 외침이 터져 나오자, 커다란 살굿빛 깃발이 휘리릭 말리더니 반대쪽에서 돌진해 오는 동갑음병을 거세게 휩쓸었다.

    콰쾅! 콰르릉! 꽝! 우르릉! 펑!

    삽시간에 온 숲에 흙먼지가 날리고 돌이 굴러다녔으며, 큰 바람소리에 이어 온갖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어서 줄줄이 검은 풍인(風刃)이 울부짖으며 튀어나와 허공에 모이더니, 어지러운 풍벽(風壁)을 이루어 휘몰아쳤다.

    동갑음병 수십 명이 풍벽에 휘말렸고, 이내 그들의 청동갑옷은 그야말로 종잇장처럼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마치 무수히 모인 날카로운 칼과 도끼가 살진(殺陣) 속으로 돌진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청동갑옷으로 뒤덮였던 백골음병과 군마는 풍인에 휘말려 그대로 가루로 부서져 내렸다.

    그러나 호용은 이 일격의 효과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손에 든 커다란 깃발을 세차게 휘둘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살굿빛 커다란 깃발에서 짐승의 포효 비슷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더욱 난폭한 풍인이 깃발에서 줄줄이 휘몰아쳐 나와 검은 풍벽으로 변해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사방을 휩쓸었다. 풍벽이 지나간 자리의 바위와 나무들은 모두 무너져 내렸고, 동갑음병들은 바람을 보고 뿔뿔이 도망쳤다.

    하지만 풍벽은 매우 빨라서 이내 동갑음병 10여 명을 따라잡았고, 커다란 검은 입처럼 그들을 꿀꺽 집어삼켰다. 잠시 후 뱉어낸 것은 고철 한 무더기와 산산이 흩어진 백골들뿐이었다.

    다른 한쪽에서 심협과 사람들도 힘을 합쳐 동갑음병들을 물리치고 있었다. 호용 쪽의 전과(戰果)를 본 그들의 마음속에는 존경심이 솟아올랐다.

    “보시오. 내가 호 어르신만 잘 따르면 아무 걱정 없다 했잖소. 허허허!”

    여합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심협을 보고 말했다.

    “호호,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상회 사람들 모두가 기꺼이 호 어르신을 따라 임무를 수행하려 하겠어요?”

    운낭도 교소를 지으며 말했다.

    “떠들 시간 있으면 어서 싸우기나 하시오! 이러다가는 호 어르신 홀로 일을 다 끝마치실 테니, 우린 정말 날로 먹으러 들어온 게 되는 거요! 얼른 힘을 내서 귀장을 죽이러 갑시다!”

    금돈이 전의가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른 사람들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시 적진으로 돌진할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숲속에서 또다시 다급한 마찰음이 한 차례 들려오더니, 일고여덟 줄기의 사람 그림자가 밀림 깊은 곳을 빠르게 가로질러 돌진해왔다.

    정신을 집중해 자세히 살펴보던 심협은 순간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다.

    막 튀어나온 이 사람 그림자들은 온몸에 선혈이 낭자하여 마치 누군가가 방금 살가죽을 벗겨낸 것처럼 온몸의 피와 살이 모조리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흐릿했고, 한 쌍의 눈알은 밖으로 툭 불거져 나와 몹시도 끔찍하고 흉악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서는 산 사람이 지닌 영광(靈光)을 찾아볼 수 없었고, 동공이 풀려서 몇 곱절은 커져 있었는데 실로 공허하고 무감각해 보였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가 거대한 바위처럼 떨어져 내렸고, 그 상태로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심협의 가슴을 찌르려 했다. 밖으로 드러난 피와 살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이 소름끼쳤다.

    한데 어디선가 물이 몰려들더니 반구 형태의 장막이 되어 앞을 가로막았다.

    그 핏빛 그림자가 물의 장막을 찌르자 두 팔은 아무런 막힘없이 물의 장막을 뚫고 심협의 명치를 향해 돌진해왔다.

    심협이 살짝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주먹을 꽉 쥐자, 핏빛 그림자에게 뚫린 물의 장막이 순식간에 뭉치면서 눈 깜짝할 새에 굵은 물줄기가 되어 상대를 꽁꽁 옭아맸다.

    핏빛 그림자는 두 팔을 마구 휘저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심협이 막 다가가려는데, 뒤에서 호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조심해라! 절대 그 혈시(血屍)를 건드리면 안 돼! 일단 시독(屍毒)에 감염되면 순식간에 저놈들 같은 꼴이 될 게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혈시의 몸에 붙은 피와 살이 꿈틀꿈틀 움직이더니 갑자기 점점 더 빨라지면서 몸 전체가 뒤틀리고 변형되기 시작했다. 물줄기에 묶인 곳은 수축하여 작아지고, 묶이지 않은 곳은 크게 팽창했다.

    이를 본 심협은 주먹을 다시 더 세게 그러쥐었고, 물줄기도 혈시의 변화를 따라 조여들기 시작했다.

    퍽!

    혈시는 물줄기에 묶인 곳이 그대로 잘려나가며 여러 시체 조각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땅에 떨어진 시체 조각들은 곧 빠르게 꿈틀거리며 서로 모여들었고, 놀랍게도 다시 하나로 합쳐져 서서히 사람의 모습을 이루더니 일어서려 했다.

    휙!

    그때, 갑자기 불줄기가 날아와 혈시의 몸에 떨어졌고, 순식간에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혈시는 불길에 완전히 파묻혀 온몸에서 검은 연기를 뭉게뭉게 피워냈는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악취가 풍겨 나왔다.

    심협은 즉시 코를 가리고 물러나면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운낭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요염하게 웃으면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마워할 필요 없다는 표시인 듯했다.

    호용도 곧 일행 곁으로 돌아왔다. 그가 손에 든 살굿빛 깃발을 앞으로 말아 올리자 또다시 파란 풍인이 무수히 휘몰아치며 음병들을 크게 한 무더기 날려버렸다.

    “됐다. 여기서 시간 끌지 말자. 귀장 잡으려고 너희를 데려온 거지, 이깟 졸개들에게 시간 허비하러 온 게 아니야. 가자.”

    말을 마친 호용이 커다란 손을 휘두르자, 앞에 어렴풋한 빛이 반짝이며 황지부적 수십 장이 날아 나왔다.

    부적 위에는 기괴한 모양의 사람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윤곽은 사람과 다름없었지만, 그 안에 필획이 가로세로로 뒤얽혀 있었고, 마치 먹줄 하나를 이어서 만든 그림 같기도, 문자 같기도 했다.

    부적들이 흩어지며 땅에 닿는 순간, 종이에서 큰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 안에 그려진 사람 모양 도안이 갑자기 길게 늘어나면서 종이 밖으로 뻗어 나왔다. 그리고는 빛에 휩싸여 온몸이 새카만 그림자로 변해 혈시와 음병들을 덮쳤다.

    “부적 꼭두각시?”

    심협은 속으로 경탄했다.

    그는 예전에 고서에서 그런 부적에 대해 읽은 적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껏 실물은 본 적이 없었다. 오늘에야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쓰는 것을 본 것이다.

    “허허, 보아하니 어린 도우가 이 괴뢰부(傀儡符)에 아주 관심이 많은 듯하군. 나중에 가르쳐주마. 어떠냐?”

    심협의 눈빛에서 동경과 갈망을 읽은 호용이 씩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 정말이십니까?”

    심협은 너무도 기뻐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왜, 내가 너에게 맹세라도 해야겠느냐? 어린놈이 속고만 살았나. 쯧!”

    호용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꾸짖듯 말하자 심협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후배가 어찌 감히…….”

    그 모습을 본 호용은 피식 웃더니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가자, 이 부적 꼭두각시들은 얼마 버티지 못해. 그전에 귀장 놈을 찾아야 한다고.”

    말을 마친 그는 앞장서서 몸을 휙 돌려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심협은 그의 자연스러운 미소와 여유 넘치는 태도에 존경심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우거진 숲을 가로지르는 동안에도 뒤쪽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작아졌지만, 아무튼 호용의 말대로 그 부적 꼭두각시의 전투력은 분명 낮은 편인 듯했다.

    “호 어르신, 그 귀장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찌 찾아야 합니까?”

    여합이 입을 열고 물었다.

    “호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너희들…… 됐다. 호 어르신보다는 차라리 선배님이 낫겠구만.”

    호용은 어쩔 수 없겠다는 듯 한숨을 폭 내쉬며 말했다.

    “네, 호 선배님. 하하하!”

    여합이 즉시 호칭을 바꿔 부르고는 껄껄 웃었다.

    “귀장이라는 놈이니 자연히 이 구역에서 음살의 기운이 가장 짙은 놈이겠지. 나에게 심살반(尋煞盤)이 하나 있으니 그게 가리키는 대로 찾기만 하면 그 귀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게다. 다만 가는 길에 저런 놈들이 적잖을 테니 피해서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호용은 상황을 설명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선배님께서 신식을 펼치셔서 살피시다가 음병 떼를 만나게 되면, 우리가 그냥 피하면 그만입니다.”

    줄곧 말이 없던 임청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거야 당연히 쉽지. 다만 조금 귀찮아서 말이다. 계속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방을 경계하는 건…… 좀…… 심심한데…….”

    호용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일순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모두 벽곡기 수사(修士)로, 아직 응혼기에 들어서지 못해, 신식을 잠시도 밖으로 내보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 호용이 아니면 신식으로 감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가장 싫어하는 게 귀찮은 일과 돈 쓰는 일이야. 내게 염식부(斂息符)가 몇 장 있으니 한동안 너희들의 기운을 막을 수 있을 게다. 너희가 일부러 법력을 크게 움직이지만 않으면 기운이 새어 나가지 않을 거야. 그럼 그 음병귀물들 몰래, 조용히 발걸음을 서두를 수 있겠지.”

    호용은 자기 생각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더니 가볍게 그가 손목을 돌리자, 손바닥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푸른 재질의 부적 몇 장이 나타났다.

    심협은 청상지를 보자마자 이 부적이 평범한 하급 부적이 아님을 깨달았고, 호용이 방금 망설였던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염식부의 사용법은 간단하다. 단전이나 단중에 붙이면 돼. 법력을 움직일 필요도 없이 부적이 스스로 너희의 법력을 빌려 작동해 기운을 가려줄 게다.”

    호용이 부적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말했다.

    심협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조금 망설였다. 단전은 수행의 근간이니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 단중 역시 인체의 중요한 혈 자리인 만큼 이 부적을 그런 곳에 붙이는 데 본능적으로 약간 거부감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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