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저승의 땅 귀신
심협은 속으로 조금 의아했다. 그들이 가야 할 곳은 도대체 어떤 곳인가? 저 높은 착귀천사가 번거롭다 여기지 않고 이렇게까지 거듭 주의를 주어야만 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란 말인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높은 보수에 신경이 팔렸는지, 아니면 이번 임무에 자신감이 충만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다지 우려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설명을 마친 종규는 정자 밖으로 나오더니, 멀지 않은 곳의 툭 튀어나온 바위 옆에 걸음을 멈췄다.
심협은 그 바위가 검붉은 빛깔임을 알아차렸다. 사방에는 보일 듯 말 듯한 검은 안개가 한 층 덮여 있었지만, 주위와 어우러져 그리 눈에 띄지는 않았다.
종규는 한 손으로 인을 맺고 주문을 몇 번 읊조린 뒤, 갑자기 손가락을 모아 그 바위를 가리켰다. 그러자 검붉은 바위 위에 곧 원형의 선명한 붉은색 표식이 나타났고, 바위 주위의 검은 안개가 확장되기 시작하더니 둥근 반달문이 되어 사람들 앞에 우뚝 솟았다.
심협은 반달문 안쪽을 살펴보았지만, 온통 캄캄해 밤하늘과 다름없었다.
“가자!”
호용은 사람들에게 손짓하고는 종규에게 공수 한 뒤, 앞장섰다. 그리고 그가 반달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짙은 흑막에 물결 같은 잔잔한 파동이 일렁이더니, 뒤이어 그의 모습을 집어삼켰다.
갑옷 차림의 중년 사내, 금돈이 그 뒤를 바짝 따라 반달문으로 들어갔다.
다음으로는 임청이 종규에게 포권을 하고는 사라졌다.
“심형, 갑시다.”
여합도 심협을 툭 치더니 걸음을 옮겼다. 반면 붉은 옷의 여인, 운낭은 심협에게로 다가와 한 손으로 그의 팔뚝을 붙잡고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심 도우 뒤를 따라가도 될까요?”
입구까지 갔던 여합이 뒤를 돌아보고는 기이하게 웃더니 가만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너무 바짝 붙지만 않으신다면야 따라오시는 건 괜찮습니다.”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팔을 빼며 그렇게 말하고는 안개 속 반달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를 본 운낭은 요염한 웃음을 띤 채 그 뒤를 따랐다.
흑막 속으로 들어가자 눈앞이 온통 칠흑같이 어두워졌지만, 한 걸음 성큼 내딛으니 다시 시야가 밝아졌다. 그들은 이미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숲속에 와 있었다.
다만 조금 이상한 것은 풀과 나무들의 빛깔이 푸른색이 아니라 약간 검은색을 띤 검푸른 색이라는 것이었다. 나무줄기 곳곳의 가지와 마디에는 종양(腫瘍)이 울룩불룩 솟아 있었고, 그 위로 하얀 솜털이 한 겹 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운낭이 다가왔다. 심협이 돌아보니 아까 자신이 걸어 나온 곳은 굵직한 고목 줄기였고, 그 위로는 부드러운 푸른 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 고목은 숲 전체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빛깔이라 할 수 있는 나무였다.
“호 어르신, 왜 이곳 도처에 사악한 기운이 스민 것 같은 느낌이 들까요?”
여합이 묻자 호용은 허리춤의 호리병을 끌러 술을 한 모금 벌컥 들이킨 뒤,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를 그리 많이 줄 이유도 없고, 우리 차례가 오지도 않았겠지.”
“여 오라버니, 무서워요? 호호호!”
운낭이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었다.
“그대 같은 여인네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내가 뭘 무서워한단 말이오?”
여합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는 걸걸하게 말했다.
그때, 호용이 호리병을 허리춤에 매며 한마디를 툭 내던졌다.
“어랍쇼? 이렇게 빨리 오다니, 내 아직 준비도 다 못했는데…….”
그 말에 심협은 바짝 긴장한 채 손을 소매 안으로 거둬들이며 임랑환을 숨겼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뒤집어 소맷부리에서 금도를 꺼내는 척하며 손에 쥐었다. 금도에 빛이 번쩍이더니 눈 깜짝할 새에 3배로 길어지며 금빛 문양이 새겨진 장도가 되었다.
다른 네 사람의 반응도 매우 기민했다. 임청은 등 뒤에 멘 푸른 장검을 뽑았는데, 검날은 심협의 예상보다 더 가늘었고, 검은 끝으로 갈수록 더욱 폭이 좁아져 마치 커다란 바늘 같아 보였다.
금돈도 금빛 장도 하나를 빼들었다. 장도의 모양과 구조는 당에서 자주 보이는 횡도(橫刀) 같았으나, 칼날에는 복잡한 부적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심협의 금도보다 더 정교하고 화려했다.
한편, 여합은 등 뒤에서 커다란 놋쇠 도끼를 꺼냈다. 그가 도끼로 땅을 짚자 쿵 하고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한데 운낭만은 아무런 무기도 꺼내지 않고 두 손으로 염화지(*拈花指: 꽃을 꺾는 듯한 수인) 모양을 만들어 몸 앞에 교차시켰다. 마치 춤을 추려는 듯한 그 자세 그대로 그녀는 심협에게 눈을 한 번 찡긋했다.
하지만 심협의 주의력은 주위를 경계하는 데 쏠려 있어 그녀의 요염한 눈짓은 관심도 받지 못했다.
스슷!
풀숲에서 무언가 스치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울리기 시작했는데, 이 소리는 갈수록 빈번하게 들렸다.
“왔구나!”
호용이 크게 외치며 구부정한 몸을 곧게 펴며 손을 크게 내리쳤다.
펄럭!
그의 옷소매가 허공을 가르며 한 줄기 금빛을 뿜어냈는데, 이 금빛은 수십 장에 이르는 금빛 손바닥이 되어 저 앞쪽을 공격했다.
퍼펑!
앞에 일렬로 늘어선 물통 굵기의 검푸른 고목 일고여덟 그루가 일순 쪼개지면서 폭풍이 휘몰아쳐 아래쪽 관목 덤불까지 평평하게 밀어버렸다. 이에 시야가 훤히 펼쳐졌다.
앞쪽 숲이 텅 비자, 음산한 바람과 살기가 갑자기 얼굴로 연이어 몰아쳤다. 정신을 집중하고 바라보니 숲속에 검은 기운이 넘실대는 게 보였다. 그 기운은 흐릿한 그림자를 휘감은 채 그들 쪽으로 돌진해왔다.
검은 기운이 가까이 밀어닥치면서 심협은 마침내 흐릿한 그림자들이 놀랍게도 실제와 허구 사이의 무엇임을 분명히 보았다. 대부분 그림자들 상반신은 실체였지만 하반신은 헛것으로, 허공에 뜬 채 유령처럼 오르락내리락했던 것이다.
이 형체들 중에는 이미 마른 뼈가 되어버린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대다수의 얼굴에는 축 처진 싯누런 피부가 붙어 있었다. 눈구멍 안에 아직 남은 부패한 눈알들은 피에 굶주린 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정말이지 역겨운 것들이군.”
운낭이 혐오스럽다는 듯 내뱉고는 염화지 상태의 손바닥을 앞으로 불쑥 휘둘렀다. 그러자 그녀의 붉은 치마에서 날실과 씨실이 갑자기 뻗어 나가 아주 가느다란 붉은 실 수십 가닥으로 변해 곧장 날아갔다.
실이 지나간 곳에는 붉은 빛이 번쩍였고, 실들은 마치 실을 꿴 바늘처럼 곧장 음혼(陰魂) 악귀 일고여덟의 가슴을 뚫고 꼬치처럼 꿰어버렸다. 뒤이어 붉은 실들은 위로 휙 치켜 올라가면서 이 음혼 악귀들을 높은 하늘로 끌어올리더니,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활활 타올라 집어삼켰다.
고작 몇 번 호흡할 시간 동안 음혼 악귀들은 처참하게 울부짖다가 불길에 타서 재가 되어 흩어졌다.
‘다행히 이 귀물들은 그리 강해보이진 않는군.’
심협은 속으로 조금 안도하며 자세를 가다듬었고, 급하게 나서지는 않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임청과 금돈이 각각 나서서 한 사람은 한 손을 결인하여 푸른 비검을 조종하면서 음혼들 대열 사이를 누볐다. 비검이 몇 차례 오가자 음혼 악귀 열 마리 정도가 가슴이 꿰뚫렸다.
다른 한 사람은 곧장 음혼 악귀 무리 속으로 달려들어 두 손으로 쥔 칼을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마치 채소 썰듯이 음혼들을 하나하나 동강 내버렸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다른 악귀들을 더 죽이기도 전에, 앞서 그들 손에 ‘죽임 당한’ 음혼들의 상처 입은 곳에 검은 안개가 빠르게 모여들었다. 가슴이 뚫렸든 허리가 동강났든 그렇게 순식간에 회복되더니 하나둘 다시 일어났다.
두 사람 모두 이 상황에 잠깐 놀랐으나, 곧장 다시 법기를 조종하여 싸우기 시작했다. 다만 이번에는 두 사람 모두 음혼 귀물들의 몸통이 아닌 머리통을 공격했다.
음혼 악귀들의 머리가 쪼개지가 몸뚱이도 따라서 빠르게 부패했고, 결국은 검은 안개 덩어리가 되어 다른 악귀들의 몸속으로 녹아들어갔다. 반면 그 남은 혼백들을 흡수한 악귀들은 몸이 더욱 단단하게 실체화되었다.
“허허, 서로 흡수할 수도 있단 말인가? 재미 있구만!”
여합이 차게 웃더니 뭔가 주문을 외웠고, 손으로 법결을 맺어 앞을 향해 뻗었다. 그러자 느닷없이 흙과 돌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러 개의 자갈들이 공중에 떠올라 누런 광채에 둘러싸인 가운데 뾰족한 돌송곳이 되어 음혼 악귀들을 찔러 들어갔다.
수십 개의 돌송곳이 울부짖는 소리를 내면서 마치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음혼 귀물들을 헤집고 날아들었고, 순식간에 10여 마리 귀물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중 몇몇 귀물은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완전히 재로 변했고, 남은 귀물들의 상처에서는 노란 광채가 맴돌았다. 이들은 마치 몸에 돌덩이라도 짊어진 듯 바닥에 고꾸라져 일어나지 못했다.
이를 살피던 심협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 사람들의 법력 속성은 각자 다르지만, 수단은 하나같이 강력했다. 특히 여합은 둔하고 투박한 듯하면서도 흙 계열의 술법을 꽤나 정교하게 제어했다.
“이 귀물들은 음양의 경계지점에 존재하여 몸이 허구와 실제 사이에 끼어 있다. 그러니 번개나 불로 제압하는 게 최고야. 다른 방법도 효과는 있겠지만, 효율적이지는 않지.”
호용이 그렇게 말하면서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시선을 심협에게로 돌렸다. 마치 모두들 솜씨를 보여줬으니 이제 네 차례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심협은 원래 금도로 공격할 생각이었지만, 호용의 말을 듣고는 생각을 바꿔 소뢰부를 일곱 장 꺼냈다. 손가락 사이에 소뢰부를 끼운 뒤 법력을 살짝 주입한 그는 능숙하게 부적을 내던졌다.
소뢰부들이 날아가자 순간 번갯불이 번쩍였고, 새하얀 번갯불 몇 줄기가 영사(靈蛇)처럼 솟구쳐 나왔다. 한데 놀랍게도 이 번갯불들은 투명한 물줄기들에 이끌려 정확하게 음혼들의 머리를 때렸다.
콰르릉! 쾅!
우렛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고, 번갯불에 명중당한 음혼 악귀의 정수리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곧 하나 둘 재가 되어 사라졌다.
“잘했다.”
호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심협에게 눈빛을 보냈지만, 눈에 드러난 감정은 제각각이었다.
“심 도우는 잘생겼을 뿐 아니라 솜씨도 보통이 아니네. 우리 둘은 하늘의 번개로 불꽃이 튀어 땅에 불이 난 격이니 천생연분 아니겠어요? 오호호!”
운낭이 눈을 반짝이며 심협에게로 다가왔다.
심협은 저도 모르게 뒤로 조금 물러나 그녀와의 거리를 약간 벌렸다.
그때였다.
꽈르릉!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더니, 밀림 깊은 곳에서도 박자를 지닌 진동이 간간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가까워졌다.
심협의 눈동자가 약간 졸아들기가 무섭게, 난데없이 다른 숲속에서 커다란 말 한 마리가 사람 키만 한 관목 덤불을 헤집고 돌진해왔다. 말은 피와 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백골이었고, 두 눈구멍에서는 시퍼런 도깨비불이 일렁였다.
백골 군마 위에는 역시나 하얀 해골 하나가 타고 있었는데, 온몸에는 청동갑옷을 둘렀고, 손에는 청동 장창을 들고 있었다. 창 위에는 검푸른 녹이 잔뜩 슬어 있었지만, 그 기세만큼은 아주 사나웠다.
백골 기병이 앞장서서 돌진하자 바로 그 뒤에 똑같은 놈들 백여 명이 달려 나와 군대가 돌격하는 기세로 심협과 사람들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음병차도(*陰兵借道: 야심한 밤에 숲속이나 들에서 군대가 행진하는 것이 보이는 심령현상)!”
운낭이 가볍게 외쳤다. 좀 전까지 얼굴 가득했던 장난기는 사라진 상태였다.
여합을 비롯한 사람들도 음혼과의 전투를 멈추고 다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백여 명의 음병을 맞이했다.
영식(靈識)이 없어 그저 산 사람의 피에 대한 본능적인 갈구 때문에 공격해온 음혼 귀물들보다는 음병들의 전력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도 영식을 얼마 갖추지 못했지만, 전투에 대한 본능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기에 기병 하나하나가 연기 초기 또는 중기 수사와 견줄 만했다. 하물며 한데 모여 집단으로 발휘하는 힘은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