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57화 (257/1,214)
  • 257화. 종규(鐘馗)의 부탁

    심협과 여합이 다가오자 청년은 그저 힐끗 보고는 곧 눈길을 다시 거두었고, 갑옷의 사내와 붉은 옷의 여인은 이들을 향해 걸어왔다.

    “여어, 신입이 왔군요.”

    붉은 옷의 여인이 한들한들 걸을 때마다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여러 도우들을 뵙습니다.”

    심협이 먼저 나서 포권하며 인사를 건넸다.

    “한 사람은 뚱한 얼굴이고, 한 사람은 얼굴을 반쯤 가렸고, 한 사람은 봐줄 수가 없는 얼굴인데, 드디어 잘생긴 사람이 왔네. 이번 임무는 손해 보지 않겠어. 호호호!”

    붉은 옷의 여인은 몸을 숙인 채 거리낌 없이 심협을 위아래로 빤히 훑어보더니, 입을 가린 채 가볍게 웃었다.

    “여합, 이분은……?”

    갑옷의 중년 사내가 포권하며 예를 갖추고는 물었다.

    “상회에서 새로 모집한 사람이오. 이번에 우리와 함께 움직일 건데 이름은 심협이라 하오. 심 도우 저기 저 홰나무 아래…….”

    여합이 심협과 일행을 서로 소개했다.

    홰나무 아래의 청년은 임청(林靑)으로, 그들 중 가장 먼저 상회를 따라 임무를 수행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경력이 풍부한 건 아니어서 지금껏 여섯 번 정도 임무를 수행했다.

    갑옷 사내의 이름은 금돈(金頓)이고, 붉은 옷의 여인은 운낭(雲娘)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임청보다는 조금 늦게 왔고, 총 네 번의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같은 임무를 맡은 적이 있다 보니 낯은 익었지만, 그렇다고 친한 사이는 아니라 그들에 대한 여합의 소개는 모두 간단하고 직설적이었다.

    그러는 사이, 옆 건물의 반달문으로 몸이 굽고 늙은 원숭이 같이 생긴 갈색 옷의 노인이 나타나더니 손에 검붉은 호리병을 하나 든 채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노인은 정수리 쪽은 이미 다 벗겨진 대머리였고, 귀에서부터 뒤통수까지 남은 머리카락도 가엾을 정도로 적어 어지럽게 목 뒤에 늘어져 있었다. 뺨은 둥글둥글했고, 긴 눈썹은 귀까지 늘어져 있었으며, 딸기코는 주독이 올라 붉게 빛났다. 아래턱에 자라난 긴 수염은 가슴까지 내려왔는데, 그 위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마시다 흘린 술이 아직 마르지 않고 남아 있는 듯했다. 전체적으로 온화해 보이면서도 조금 칠칠맞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심협의 반응과 달리 네 사람은 노인을 보자마자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호 어르…….”

    “어르신은 무슨 놈의 어르신. 몇 번을 말해? 호형이라고 부르든가 호 노형이라고 부르든가 해. 호 어르신 같은 입에 발린 소리 하지 말고.”

    노인은 술병을 치켜들며 툴툴거렸다.

    “호 선배님.”

    심협은 노인이 바로 여합이 말했던 호용 선배라는 것을 깨닫고 즉시 앞으로 나와 예를 갖췄다.

    “오? 자네가 수수 계집애가 말했던 새로 온 그 사람이로구먼. 이름이…… 그…… 뭐랬더라? 강찬이던가?”

    호용은 한참을 생각했지만, 막상 떠올린 것은 전혀 엉뚱한 이름이었다.

    “후배 심협이라 합니다.”

    심협이 대답했다.

    “그래, 맞아! 그거였군. 나를 잘 따라 오기만 하면 분명 안전하게 갔다가 곱게 돌아올 수 있을 거다.”

    호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리병으로 심협을 가리키며 말했다.

    심협은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조금 걱정이 됐다. 눈앞의 이 주정뱅이 같은 노인이 정말 임무를 잘 완수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다른 네 사람의 표정을 보니 이미 이런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 듯했다.

    “선배님, 이번 임무는 어디로 가서 수행해야 하는 겁니까?”

    심협이 물었다.

    호용은 그 말을 듣고 몸을 돌려 뒤쪽의 대전을 대충 가리키고는 입술을 삐죽였다.

    “바로 여기다.”

    “여기라고요?”

    심협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 되물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표정으로 보아 그들도 이해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일단 조급해 하지들 말아. 정말 여기로 가야 하니까.”

    호용은 또 술을 한 모금 들이붓고는 입을 닦은 뒤 말했다. 그러고서야 호리병 입구를 막아 허리춤에 달더니 수염을 한 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의관을 가다듬은 뒤 앞장서서 염라전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심협과 세 사람은 얼른 그 뒤를 따랐다.

    아직 대전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서늘한 바람이 대전 안에서 새어 나왔다. 분명 여름임에도 심협은 온몸이 싸늘해지며 조금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

    문지방을 넘어 염라전 안으로 들어서자 앞쪽 제사상 뒤편에 얼굴이 희고 정갈하며 머리에 면류관을 쓴 거대한 신상이 보였다. 민간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염라대왕이었다.

    그는 면류관 양옆으로 향낭 귀마개를 드리우고 연잎이 뒤집힌 듯한 옷깃이 달린 넓은 소매의 장포를 입은 채,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홀(*笏: 관리가 임금 앞에 설 때 손에 쥐던 물건)을 쥐고 있었다. 진흙으로 만든 신상임에도 약간의 위엄과 기백이 느껴졌다.

    염라대왕 조각상 양쪽에는 검푸른 관복을 입은 판관 조각상이 하나씩 서 있었는데, 하나는 얼굴에 핏기하나 없이 하얗고, 반면 다른 하나는 안색이 꼭 악귀처럼 거무스레했다. 그들 모두 손에 문서와 판관필(*判官筆: 강철로 만든 붓 모양 무기)을 들고 있었는데, 세상에 널리 알려진 상선벌악(賞善罰惡)의 두 판관이었다.

    판관 아래 왼쪽에는 높은 관을 쓴 앙상한 체격의 조각상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검고, 다른 하나는 흰 것이, 바로 흑백무상이었다. 또 다른 한편에는 소머리와 말머리를 한 조각상이 나란히 서 있었다.

    심협의 눈은 마면의 얼굴에 조금 더 머물렀다. 마면 조각상은 입을 쩍 벌리고 이를 드러내고 있는 게 흉악해 보였다.

    ‘진짜 구혼마면(勾魂馬面) 선배와는 좀 다르군.’

    사방 벽에는 저승의 18층 지옥 광경이 화려한 빛깔로 생동감 넘치게 그려져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심장을 가르고 간을 파내는 것이며, 칼산과 불바다며, 부글부글 끓는 기름 솥 같은 처참한 장면들이었다.

    심협은 오래 보고 있기가 불편해 곧 시선을 거두었다.

    그때, 호용이 손바닥을 가볍게 뒤집자 그의 장심에서 난데없이 길고 검붉은 향 세 줄기가 나타났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향 끄트머리를 가볍게 문지르자 붉은 빛이 타올랐다.

    뒤이어 그는 두 손으로 이상한 법결을 맺고 향을 받쳐 든 채 염라대왕을 비롯한 신상들을 향해 공손히 절을 세 번 한 뒤, 향들을 향로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는 뒷짐을 진 채 뭔가를 기다리듯 한쪽 옆에 섰다.

    심협은 잠깐 향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향에서 뽀얀 젖빛 연기가 피어올라 조금도 치우치지 않고 곧장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그뿐, 별다른 기이한 점은 없었다.

    이에 심협이 흥미를 잃고 시선을 돌리려는데, 갑자기 세 향 줄기에 변화가 일어났다. 향 끄트머리의 불빛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누가 입김을 분 것처럼 검붉은 색에서 밝은 노란색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향불 세 점이 일제히 떨어져 내리는 순간, 둥근 삼족향로 위에 갑자기 특이한 표식이 떠올랐고, 곧이어 휘이잉 하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향로 안에 쌓여 있던 향이 타고 남은 재 틈에서 어렴풋한 소용돌이가 솟아올라 차츰 커지더니, 그들을 덮쳐왔다.

    심협은 무의식중에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누군가에게 어깨를 눌리고 말았다.

    “괜찮소. 호 어르신을 믿으시오.”

    여합의 목소리였다.

    심협은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긴장되어 경계를 늦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더 움직이기도 전에 재의 소용돌이가 이미 위에서 내려와 그를 뒤덮었다.

    삽시간에 사방이 검은 안개로 한 겹 뒤덮인 듯 온통 캄캄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바닥이 없는 구멍 속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의 두 발은 마침내 다시 바닥에 내려섰고, 사방을 뒤덮었던 자욱한 검은 안개도 차츰 엷어지는가 싶더니 차츰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잠깐 둘러보니 주위 하늘은 어둑어둑했고, 먼 곳에는 자욱한 연무가 한 층 끼어 있어 시야를 가렸다. 발아래 대지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아 황량했다.

    “이곳은……?”

    심협은 내심 깜짝 놀랐는데, 어째서인지 이곳의 대기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맞다. 여기가 바로 저승 경계이니라. 모두들 혼자 제멋대로 다니지 말고 나를 따라와.”

    호용의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역시 저승이었어!’

    심협은 생각이 떠오르자 당황했다. 그는 꿈속에서 저승에 들어왔고, 귀문관도 보았는데, 그때의 경험이 너무나도 인상 깊어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호용은 이미 익숙한 듯 금세 사람들을 데리고 어느 정자 앞에 이르렀다.

    정자 안에는 한 사람이 그들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딱 벌어진 체격에 눈에 띄는 새빨간 관포(官袍)를 입었고, 허리에는 커다란 붉은 검 한 자루를 차고 있어서 뒷모습만 보아도 충분히 위풍당당했다.

    “종규(鐘馗) 대인을 뵙습니다.”

    호용이 정자 계단 앞으로 다가가 포권하고 허리 숙여 예를 갖추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뒤따라 포권하고 허리를 굽히며 큰절을 했다.

    심협은 ‘종규’라는 두 글자를 듣고 속으로 깜짝 놀라, 일순 절하는 것조차 잊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일찍이 종규의 명성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민간 전설 속 명성이 자자한 착귀천사(捉鬼天師)로, 세간에 귀신을 잡고 마물과 싸우는 전기와 일화를 무수하게 남겼다. 더욱이 구혼마면까지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존경해 마지않는 존재였다.

    그제야 상대는 돌아섰는데, 뜻밖에도 벌악(罰惡) 판관 못지않게 못생긴 얼굴이었다. 입가와 아래턱에는 커다란 콧수염과 턱수염이 덥수룩해 강호의 호객(豪客)처럼 보이기도 했다.

    손에는 쥘부채도 하나 들고 있었는데, 어찌 보아도 고고한 척 허세를 부린다는 느낌뿐이었다.

    하지만 심협은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종규가 착귀천사가 되기 전에는 비범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단지 추한 외모 때문에 급제하지 못했음을 여러 고서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선배님을 뵈옵니다.”

    심협도 정신을 차리고는 급히 포권하며 말했다.

    “다들 너무 예의 차릴 것 없네. 호용, 또 다시 임무를 받으러 온 겐가?”

    종규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그 말에도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허리를 숙인 채였고, 호용만이 허리를 펴더니 허리춤의 호리병을 두드리며 말했다.

    “술값은 벌어야 하잖습니까? 한데 오늘 임무를 부여해주는 사람이 종규 대인이실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원래는 구혼마면이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일이 좀 생겨서 내게 부탁했네. 이참에 나도 잠시 쉬고 좋지, 뭐. 근데 왜 다들 아직도 엉덩이를 뒤로 빼고들 있나? 너무 예의 차리지 말라니까.”

    종규는 심협 등이 아직도 포권을 하고 있는 모습에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심협과 사람들은 그제야 허리를 폈다.

    “자, 쓸데없는 말은 집어 치우고…… 이번 임무에 대해 들은 바가 있겠지?”

    종규가 묻자 호용이 포권하며 답했다.

    “그저 일부만 들었을 뿐입니다. 송구스럽지만 대인께서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지요.”

    “저승에는 이승과 서로 교차되는 비지(*飛地: 타국 내의 자국 영토)가 하나 있네. 그 안은 오랫동안 강력한 원념에 휩싸인 상태라, 죽은 이의 망령은 원념에 물들기 쉽고, 여귀나 흉살로 변해 서로를 물고 뜯고 집어삼키게 되지. 지금은 이미 응혼 후기 수사(修士)와 맞먹는 귀장을 잉태했으니, 그리로 가서 그것을 죽여 없애야 하네.”

    종규의 말에 여합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응혼 후기라…….”

    다른 사람들도 잇달아 안색이 변했지만, 호용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지금 그놈의 수련 경지는 아직 별게 아니지만, 머지않아 귀왕(鬼王)이 될 자질이 있는 놈일세. 그래서 반드시 그전에 제거해야 해. 만약 그놈이 거기서 탈출한다면 분명 한쪽에 큰 화가 될 게야.”

    종규는 근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허허, 이번 임무는 책임이 막중하군요. 우리가 전력을 다해야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호용의 얼굴은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그전에, 그대들에게 주의를 좀 주어야겠네. 처음 이상을 발견했을 때 음차(*陰差: 저승사자) 부대를 들여보냈다네. 허나 그들 모두 원념에 물들어 지금은 오히려 귀장 휘하의 가장 강력한 음병(陰兵)들이 되었지. 그대들과 같은 인간들은 음혼들처럼 강하게 침투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마음을 굳게 지키고 경계해야 하네.”

    종규가 주의를 주자 호용이 포권하며 감사를 표했다.

    “일깨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이전에 이미 두 무리의 인간족이 귀신을 멸하러 그 안에 들어갔다네. 허나 아직까지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어. 그대들이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을 발견하거들랑 적당한 방법으로 구조해도 좋네. 데리고 돌아올 수 있다면 추가로 사례금도 줄 것이네.”

    여기까지 들은 여합이 불쑥 물었다.

    “감히 선배님께 묻습니다. 이번 임무의 포상은 무엇입니까?”

    “그대들이 그 귀장을 죽여 없애는 데 성공한다면, 인솔자에게는 선옥 200개가, 다른 이들에게는 100개가 내려지네. 그 외에도 황천수정과 음영단, 옥수골(玉髓骨) 같은 영재와 단약이 있네. 다만 수량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어찌 나눌지 알아서들 정하게.”

    종규의 대답으로 보수가 상당히 두둑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들 정신이 번쩍 들었고, 심협은 포상 중에 황천수정이 있다는 말에 안도했다.

    “들어가기 전에 한마디 더 주의를 주자면, 귀신을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일세. 거기서 죽으면 저승에서도 그대들의 넋을 거둬들일 수 없어. 그리 되면 떠도는 넋이 되어 결국에는 원념에 물들어 의식 없는 악령이 되고 말지.”

    종규가 또다시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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