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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56화 (256/1,214)
  • 256화. 저승의 임무

    잠시 후, 2층 방문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심협은 즉시 문을 열고 그녀를 맞아들였다.

    “마 소저, 이른 아침부터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그 일에 답이 온 것입니까?”

    심협은 자리에 앉은 마수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물었다.

    “그날 공자님과 이야기한 뒤 바로 상회에 돌아가 물어보았더니, 우리 상회의 공봉(供奉)들 중에 정말 연단사가 있더군요. 다만 영유단(靈乳丹)을 만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마수수가 찻잔을 받아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은 뒤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정말 있습니까? 그것 참 다행입니다.”

    심협은 모처럼 기뻐서 활짝 웃었다. 하지만 이어진 마수수의 말에 웃음기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심 공자님, 우선 미리 기뻐하지 마십시오. 그 연단사는 우리 상회 공봉들 가운데 계급이 가장 높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분을 청해 연단에 도움을 받으려면 대가가 만만치 않을 거예요.”

    “그야 당연하지요. 저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한데 그 선배님께서 얼마를 원하시는지 알고 있습니까?”

    심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단약을 만드는 일은 법기를 제련하는 것보다 더욱 마음을 써야 해서 평소 이 연단사께서는 상회 외의 부탁은 받지 않으십니다. 다행히 제가 그분과  교분이 좀 있어 겨우 승낙하셨지요. 선옥 800개를 보수로 지불해야 하는 것 외에, 끝에 단약이 얼마가 만들어지든 그 3분의 1을 떼어 가시겠답니다.”

    마수수의 말에 심협은 미간을 찌푸렸다. 선옥 800개만 해도 예상을 훌쩍 넘는 가격이거늘 영유단의 3분의 1까지 떼어가려 하다니, 이는 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대가는…… 정말 좀 예상 밖이군요. 혹시 협상의 여지가 있습니까?”

    심협은 머뭇거리면서도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심 공자님, 제가 일부러 공자님을 난처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이지 이 선배님은 본디 타고난 성품이 괴팍하십니다. 저니까 그분 앞에서 말을 좀 할 수 있었지, 다른 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신다니까요. 그리고 그분은 늘 두말하지 않는 분이라, 저는 그분이 누구와 값을 흥정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마수수는 손가락으로 찻잔을 가볍게 돌리며 난처한 듯 말을 맺었다.

    심협은 그녀의 말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 된 이상, 저도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겠군요. 허나 그래도 마 소저께는 진심으로 감사하오.”

    심협이 포권하며 감사를 전하자 마수수는 잠시 눈썹을 찡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뭔가 생각에 잠겼다.

    “마 소저……?”

    심협이 조용히 부르자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조금 머뭇거리며 말했다.

    “사실 그 선배님이 공자님을 도와 단약을 만들게 할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한데…… 시도해보시겠습니까?”

    “무슨 방법입니까?”

    심협이 재빨리 물었다.

    “심 공자님, 저승의 임무라고 들어보신 적 있나요?”

    “얼핏 들어본 적은 있소. 혹시 마 소저가 말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저승 임무와 관련 있는 거요?”

    심협은 그렇게 물으면서도 어리둥절했다.

    “네, 맞아요. 그 선배님께서는 일종의 명령단(冥靈丹)을 만들려고 줄곧 저승의 특산물인 영재, 황천수정(黃泉水晶) 찾고 계십니다. 안타깝게도 그 물건은 저승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인지라 이승에서는 아무리 애써도 찾기 힘들지요. 공자님께서 그 물건을 구해오실 수만 있다면…….”

    마수수는 너무 황당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 못내 민망한 듯 말끝을 흐렸다.

    “황천수정이라……. 그리 진귀하다면 쉽게 구할 수는 없겠지요?”

    심협은 구혼마면과의 경험을 통해 저승의 물건은 모두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지요. 허나 마침 우리 상회에서 최근 저승 임무를 하나 받아들일 계획입니다. 포상 물품 중에 이 황천수정이 있으니, 원하신다면 이번 임무에 함께 참가하실 수 있게 해보겠습니다.”

    마수수는 그렇게 제안했으나, 심협은 다소 머뭇거렸다.

    “허나…… 내 듣기로 저승 임무를 받으려면 적어도 응혼기 수사여야 한다더군요. 저의 보잘것없는 실력으로는 자격이 안 되지 않겠소?”

    “맞는 말이긴 해요. 하지만 이번 임무는 단체로 출정할 계획이라 무리를 이끄는 사람만 응혼기 경지면 됩니다.”

    “그렇다면 마 소저의 호의를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제가 경솔하게 갔다가 상회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임무 내용을 상세히 알려주십시오.”

    마수수의 친절한 설명에 심협은 미소 지으며 포권했다.

    “심 공자님,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지 마세요. 보통 저승의 임무는 귀신을 멸하고 사악한 기운을 없애는 것과 관련 있습니다. 심 공자께서는 부적술에 정통하시고 또 대단한 뇌부를 지니셨으니, 어쩌면 오히려 이 임무의 적임자이십니다.”

    마수수가 심협에게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그리 말씀하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오. 하하하!”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래도 주의는 드려야겠지요? 이런 임무는 대부분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특히 이번에 보수가 아주 높으니 귀물을 죽여 없애는 것도 만만치 않겠지요. 그러니 깊게 생각해보고 결정하세요. 내일 오전까지 답을 주시면 됩니다.”

    마수수는 실로 우려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지금 결정하겠소. 그 임무, 나도 하겠소.”

    “출정까지는 아직 보름이나 남았으니 너무 급하게 결정하실 거 없습니다. 시간은 충분해요.”

    심협이 대차게 나오자 오히려 마수수가 당황하여 덧붙였다. 그러나 심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한 모습이었다.

    “더는 생각할 것도 없소. 하겠습니다. 더욱이 마 소저께서 저를 위해 이리도 많이 생각을 해주셨으니, 제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소저의 호의를 저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과연 심 공자님은 담력과 식견이 남다르십니다. 대신 이번에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 임무를 이끄는 이는 우리 상회의 응혼기 공봉이신데, 이미 저승 임무를 여러 차례 수행해보셨거든요. 이제껏 실패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매번 임무의 피해도 매우 낮았지요. 그분의 말만 잘 따르시면 별문제 없을 거예요. 저 또한 그분께 공자님을 더 살펴 달라고 부탁드릴 거고요.”

    마수수가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 소저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심협이 포권하며 또다시 감사를 표하자 마수수는 멋쩍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심 공자님, 제게 그리 예의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

    마수수는 웃으며 그리 말하고는 잠시 후에 떠나갔다.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심협도 처소를 떠나 상점들이 운집한 서시로 가서 부적지와 부묵에 필요한 재료를 한 무더기 샀다. 남은 보름 동안 최대한 많은 부적을 그려 저승임무에 대처할 생각이었다.

    * * *

    보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이른 아침, 심협이 취보당으로 가기도 전에 처소 문 밖에 마차가 한 대 와 있었다. 마 수수가 보낸 마차로, 그를 집결지까지 태워 줄 것이라고 했다.

    심협은 부적과 법기를 잘 챙긴 뒤 곧 마차에 올라 곧장 성 서쪽으로 향했다.

    마차는 길을 따라 한참을 달렸고, 어느 거대한 방문(坊門: 옛날 저잣거리의 입구에 세워 놓은 문)을 지날 때, 심협은 마차 휘장을 걷어 올리고 밖을 내다본 뒤에야 성 서북쪽 영흥방(永興坊)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왜 이리로 온 것이오?”

    심협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집결지가 영흥방에 있습니다요.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곧 도착할 겁니다.”

    마부가 설명했다.

    귀신 잡는 임무이니 성 밖에서 집합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다소 의외였다.

    마차는 영흥방 안의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줄곧 달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멈춰 섰다.

    심협은 마차에서 뛰어내린 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웅장한 기세의 거대한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사람 키만 한 석조 사자 두 마리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 위세가 더없이 비범해보였다.

    “성황묘(城隍廟)…….”

    심협은 건물 문머리에 걸려 있는 편액을 보며 의아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가 의심스러워하는 사이, 마차 한 대가 뒤에서 달려왔다. 그 마차에서는 굵은 베로 만든 짧은 옷을 입은 건장한 사내가 내리더니 등에 커다란 놋쇠 도끼를 멘 채 성큼성큼 걸어왔다.

    가까이 다가온 사내는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심협을 힐끗 보더니 걸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대도 임무 때문에 왔소?”

    심협은 상대를 짧게 훑어보았다. 이마가 넓고, 콧대가 높지 않으며, 입술은 매우 두꺼워 우직하고 소박해 보였다. 심협은 조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갑시다.”

    건장한 사내는 커다란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먼저 계단을 올랐다.

    심협은 잠깐 망설이다가 곧 발걸음을 옮겨 따라갔다.

    “내 이름은 여합(呂合)이오. 그대는 이름이 어찌 되오?”

    남자는 심협이 따라 올라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저는 심협이라 합니다.”

    “보아하니 그대는 임무에 처음 참가하는 모양이오?”

    여합은 심협을 한 번 훑어보고는 다시 물었다.

    “그렇소. 도우께 많은 가르침 부탁드리오.”

    “뭘 가르치고 말고 할 것도 없소. 나도 겨우 세 번째 참가라……. 여튼, 호용(胡庸) 선배만 바짝 따라가면 되오.”

    “호용 선배요?”

    심협이 생소한 이름에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호용 선배를 모르시오? 이번 인솔자요. 그 선배 뒤만 얌전히 따라다니면서 지휘대로만 하면 쉽게 목숨을 잃진 않을 게요.”

    여합은 믿음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 호용 선배라는 분이 그리 대단한 분이오? 어떤 사람입니까?”

    “뭐, 물어볼 것 없소. 곧 보게 될 테니까. 어쨌든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잘난 체하며 나서지 말고 호용 선배의 지시를 따르면 되오.”

    여합은 대답하기가 귀찮은 듯 그리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지방을 넘어 성황묘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성황묘 전전(前殿)에는 문무재신들이 모셔져 있어 향불이 한창 타올랐고, 참배객들이 줄지어 공덕함에 향화전(香花錢)을 넣었다. 중전(中殿)은 성황노야(城隍老爺)의 대전(大殿)으로, 역시 참배객이 많았다. 그러나 향화전을 넣는 사람은 조금 적었고, 반대로 성심을 다해 절하는 사람은 훨씬 많았다.

    심협과 여합이 중전을 지나 후원에 이르니 사람들이 곧 뜸해지기 시작했다.

    뒤쪽에 우뚝 선 대전이 눈에 들어왔고, 문머리에는 검은 바탕에 금칠로 ‘염라전(閻羅殿)’ 세 글자가 크게 적힌 편액이 하나 걸려 있었다.

    대전 앞 광장에는 두 명의 사내와 여인 한 사람까지, 모두 세 명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들은 가까운 사이는 아닌 듯 서로 약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그중 썩 잘생겼지만 깡마른 체격에 얼굴이 창백한 청년은 허리 뒤로 가늘고 긴 푸른 장검을 비스듬히 찬 채 대전 앞마당 늙은 홰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그의 눈길은 무성한 홰나무 잎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와 멀지 않은 곳, 대전의 난간 근처에는 초승달 모양 면갑(面甲)으로 얼굴 왼쪽을 가린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몸에 갑옷을 반만 걸쳐 명치 부위만 감쌌고, 허리에는 금빛 장도 하나를 차고 있었다.

    그 사내와 네댓 걸음 떨어진 곳에는 붉은 치마를 입은 풍만한 여인이 난간에 기대 있었다. 그녀의 자태는 그리 아름답지 않았고 화장도 너무 짙었지만, 젖가슴이 매우 풍만해 옷을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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