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55화 (255/1,214)
  • 255화. 연단(煉丹)의 실마리

    “800개!”

    금괴장군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무려 150개나 되는 선옥을 더 얹었다. 이에 다른 사람들이 화들짝 놀란 것은 물론이고 면월거사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현귀갑은 내가 반드시 얻고자 하니, 면월 도우께서 따라서 값을 올리려거든 뜻대로 하시구려. 허나 패가망신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금괴장군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를 패가망신시키겠다고? 일러도 아직 한참 이르오. 선옥 900개.”

    면월거사는 웃으며 말했지만, 조금 역정이 난 듯했다.

    “천개!”

    금괴장군은 면월거사가 놀라서 물러나지 않자, 인상을 쓰며 다시 값을 올렸다.

    그때, 느닷없이 맑고도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1500개!”

    그때까지 줄곧 말이 없던 청화선자가 곧바로 금괴장군을 뭉개버린 것이다.

    경매장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심지어 단상 위의 적수진인도 잠시 넋이 나갔을 정도니, 경매장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선옥 1500개? 청화 도우께서는 기백이 아주 대단하시오. 이 현귀갑이 진귀하기는 하나 그럴 정도의 가치가 있겠소?”

    금괴장군이 냉랭하게 말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고 없고는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그러니 금괴 도우께서 이 물건을 원하신다면, 값을 올리면 그뿐이오.”

    청화선자가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허허, 이 금모가 호구는 아니오. 청화 도우께서 그 물건을 원하시고, 선옥 1500개라는 높은 값까지 불렀는데, 금모가 어찌 그대를 방해할 수 있겠소?”

    금괴장군은 허허 웃고는 더 이상 값을 부르지 않았다.

    면월거사 역시 눈썹을 몇 번 들썩이기는 했으나, 포기한 기색이었다.

    한편, 적수진인의 눈에는 한 줄기 희색이 스쳐갔다. 헌원각에서 이 현귀갑에 부여한 예정가는 선옥 천 개 정도였는데, 무려 500개나 더 벌게 된 것이다.

    헌원각의 규정대로라면, 이 경매품들이 예정가를 넘길 시에 그 초과한 가격의 1할은 경매를 주관한 사람 몫이 된다. 그러니 이 현귀갑 하나만으로 그는 선옥 50개를 번 것이다.

    적수진인은 더 이상 값을 부르는 사람이 없는 듯하자 현귀갑의 소유권을 선포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선옥 2천 개!”

    금괴장군도, 면월거사도 아닌 경매장 한쪽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경매장을 또다시 침묵에 빠뜨렸다.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눈에 받게 된 사람은 널따란 검은 옷을 입은 수사로, 온몸을 꽁공 싸매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목소리도 불분명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그 흑의의 수사가 누구인지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값을 부른 뒤로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평온해 보였다.

    청화선자는 아미를 찌푸리고는 흑의의 수사를 빤히 보았으나, 이내 눈을 감고는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단상 위에 선 적수진인의 얼굴은 흥분으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몰래 심호흡을 한 뒤에야 안정을 되찾았고, 규칙에 따라 이 가격을 두 번 반복했다. 역시나 경매장 안에는 더 값을 부르는 이가 없었고, 그는 이 보물의 소유권을 선포했다.

    방금 전의 경매는 끝난 후로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의 관심거리가 됐다.

    적수진인은 잠시 기다렸다가 다음 경매를 진행했다. 이번 물건은 높이 1척의 붉은 목함이었다.

    목함을 열자 그 안에는 투명한 하얀색 수정구슬이 하나 들어 있었는데,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그 한가운데에는 놀랍게도 금빛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더욱이 수정구슬 너머까지 작열하는 기운이 전해졌다.

    “영화!”

    곧바로 누군가 그 금빛 불꽃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심협은 꼿꼿이 바로 앉아 단상 위의 물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번 물건도 지극히 값진 보물입니다. 역시 알아본 분들도 많군요. 맞습니다. 이 금빛 불꽃은 바로 인품 영화인 금양현화입니다.”

    적수진인이 영화를 소개하는 동안 심협은 마수수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했다.

    “취보당의 소식이 과연 정확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마 소저.”

    “우리 취보당은 어쨌거나 장안성에 세력이 좀 있으니 정보 하나 알아보는 것쯤은 어렵지 않지요. 이제 뒷일은 심 공자님 형편에 달렸군요.”

    마수수가 가볍게 웃으며 답하자 심협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금양현화는 인품 영화 순위에서 37위를 차지했습니다. 순수한 양의 기운을 지닌 영화로, 음귀(陰鬼)의 기운을 억제하는 데에 능하고, 단약과 법기를 제련하는 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시작가는 선옥 200개입니다.”

    적수진인이 선포하기가 무섭게 호가가 이어졌다.

    “선옥 210개!”

    “220!”

    “235개!”

    금양현화의 명성은 실로 대단해, 심협이 미처 나서기도 전에 가격이 치솟았다.

    심협은 마음이 급해져 곧바로 손에 쥔 옥패를 들어올렸다.

    “선옥 300개!”

    그가 단번에 선옥 30개를 더 얹어 버리자, 몇몇이 경쟁에서 빠졌다.

    “선옥 310개!”

    “320!”

    하지만 수사(修士) 두 명이 여전히 그를 쫓아왔다. 한 사람은 잿빛 머리칼의 사내였고, 다른 한 사람은 붉은 웃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정말 금양현화가 필요한 것 같아 보였다.

    “선옥 350개!”

    심협이 다시 30개를 끌어올리자, 잿빛 머리칼의 사내는 한숨을 내쉬더니 더는 값을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붉은 웃옷의 여인은 오히려 이를 악물고 따라붙었다.

    “선옥 360개!”

    “400개!”

    심협은 무표정한 얼굴로 또다시 선옥 40개를 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붉은 옷의 여인도 심협을 사납게 노려봤을 뿐, 이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경쟁에서 물러섰다.

    심협은 이 모습에 살짝 안도하며 남몰래 장내의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단상 위에 있던 적수진인의 눈빛이 조금 침울해졌다.

    이 금양현화가 선옥 400개라면 솔직히 조금 헐값이었다. 하지만 심협이 나름 뛰어난 수완으로 경쟁자들을 물리쳐버렸으니, 규칙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309호 귀빈께서 선옥 400개를 제시하셨습니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할 분이 없습니까?”

    적수진인이 소리 높여 물었다.

    경매장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하여 대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금괴장군과 면월거사, 청화선자는 마수수의 말대로 금양현화 경매에는 나서지 않았고, 이제 심협은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러나 바로 그때, 별안간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옥 410개!”

    심협은 낯빛이 굳어져서는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가 눈동자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녀다. 또 내 일을 망치러 왔어!’

    그는 속으로 몰래 분노를 터뜨렸다.

    여인은 다름 아닌 청화선자 뒤에 있던 그 이씨 성의 소녀였다.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공교롭게도 또다시 자신을 괴롭히는 셈이 됐다.

    “430개!”

    심협이 옥패를 들고 값을 댔다.

    “선옥 480개!”

    이씨 소녀는 심협을 흘끗 본 뒤 좀 귀찮다는 듯 단번에 선옥 50개를 더 얹었다.

    “선옥 500개!”

    심협은 속으로 불길한 느낌이 들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가를 댔다.

    “선옥 600개.”

    이씨 소녀는 싸늘하게 웃더니, 단숨에 선옥 100개를 더했다.

    심협은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안색이 조금 창백하게 변했다.

    “심 공자님, 영화가 보기 드물다고는 하나 장안성 안에 가끔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제 값이 너무 높아졌어요.”

    마수수는 심협이 실망하는 모습에 재빨리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럼 마 소저께 신세를 좀 지겠으니 다시 눈여겨 살펴주십시오.”

    심협이 숨을 한 번 깊이 들이 마시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단상 위의 적수진인은 얼굴에 살짝 흥분한 표정으로 값을 두 번 연달아 묻고는 곧 금양현화의 소유권을 선포했다.

    경매는 차츰 절정에 이르렀고, 이후로도 영재와 보물, 진귀한 단약과 법기가 잇따라 나왔다. 심지어 극품 법기까지도 여럿 나왔으나, 우울해진 심협은 아무런 관심도 생기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시진이 지나갔고, 경매는 드디어 끝을 보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경매장의 분위기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마지막 경매품이자 총 16도 금제가 담겨 있고, 법보까지 겨우 반걸음 남았으며, 극도로 강력한 음파공격을 내뿜을 수 있는 극품 법기 백음편종(百音編鐘)이 선옥 2600개에 금괴장군의 소유가 되면서 비로소 경매는 완전히 끝났다.

    심협 일행은 인파를 따라 헌원각을 떠났다.

    바깥은 하늘이 환하게 밝아 있었고, 서시에는 여전히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아마도 밤새 떠들썩하게 보낸 것 같았다.

    금양영화를 눈앞에서 놓친 심협은 크게 낙담하여 한가롭게 거닐 마음이 없었기에, 곧 사우흔과 인사를 나누고 떠나려 했다.

    “심 공자님, 제가 계속해서 영화를 수소문해볼게요.”

    마수수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심협은 애써 웃어 보이며 공수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마 소저.”

    “그리고 연단사에 관한 일은…… 이제 가년성회가 끝났으니 그분께 연락해보겠습니다. 분명 며칠 안에 결과가 있을 거예요.”

    심협은 그 말에 침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져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마수수는 급한 용무가 있는 듯, 줄곧 밖에서 기다리던 마차를 타고 떠났다.

    심협과 사우흔은 서시에 머물지 않고 곧장 창평방으로 돌아왔다.

    “심 도우, 제가 볼일이 좀 있어서 장안성을 며칠 떠나 있어야 합니다. 그 동안은 부적을 팔기 힘들게 됐군요.”

    사우흔은 창평방 밖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들어가지 않고 말했다.

    “그건 괜찮습니다만, 사 도우께서는 무슨 일을 하러 가십니까? 혹시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말씀하십시오.”

    “그저 사소한 일이라 저 혼자서 족하니 심 도우께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사우흔이 웃으며 말하자 심협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철은 제 오랜 벗입니다. 그는 수사가 아니지만, 장안성에 오래 머물렀기에 성안 많은 곳들을 잘 압니다. 또 일처리도 꼼꼼하여 믿을 만하니, 필요한 일이 있거든 그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심협은 사우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급한 일인지, 사우흔은 몇 마디 당부를 마치고는 즉시 일어나 떠났다.

    * * *

    며칠 뒤, 어느 이른 아침. 창평방 담장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연이어 울리더니 곳곳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심협이 기거하는 작은 집과는 제법 떨어진 곳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멀리서 들려오는 연기 냄새와 그 소란을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좌선하던 그는 일어나서 뜰 쪽의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바깥의 제법 오래된 홰나무 위에서 재잘대는 참새들이 보였고, 한밤중까지 울던 매미 울음소리는 오히려 잦아들었다.

    멀리 바라보니, 한쪽 거리에는 길을 따라 많은 상점이 깃발과 간판을 내걸고 문을 활짝 열어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내원 쪽의 마당 문이 열리더니 아름다운 소녀가 다가왔다.

    소녀는 아래층에 이르러 위를 올려다보며 심협과 시선을 마주치자 상큼한 미소를 내비쳤다. 바로 마수수였다.

    그녀의 방문은 다소 뜻밖이었지만, 심협은 예의 있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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