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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54화 (254/1,214)
  • 254화. 경매 대회

    심협이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 보니, 면월거사와 금괴장군의 법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두 눈에서는 형광(螢光)이 반짝였다. 그것은 신혼의 힘이 일정 경지를 넘어서야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 두 사람의 수련경지는 적어도 출규기에 다다른 것 같았다.

    심협은 두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잠시 살피다가 시선을 거둬들였다.

    “헌원각에서 보타산의 청화선자에게도 초대장을 보냈으니, 별일이 없다면 그녀도 참석할 것입니다.”

    마수수의 이어진 설명에 심협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선옥 500개로는 인품 영화 한 떨기라면 어찌어찌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참여하는 고수가 많아질수록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은 떨어질 터였다.

    “제가 알기로, 그 세 선배님은 불 속성 공법을 수련하시지 않았어요. 연단술이나 연기술(煉器術)에도 정통하시지는 않으니, 영화 경매에 참여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겁니다.”

    마소소가 심협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지나가듯 말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심협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심 공자님, 억몽부 연구는 어찌 되어 가십니까?”

    마수수는 묻기 곤란한 듯 잠시 주저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직 깨달아가는 중일 뿐, 갈피를 잡지는 못했습니다.”

    심협은 코를 쓱 문지르며 멋쩍게 답했다.

    “아, 제가 너무 조급했군요.”

    마수수는 눈에 한 가닥 실망이 스쳐 지났지만, 이내 평정을 회복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마 소저, 안심하십시오. 내 기필코 성공하리다.”

    심협이 힘주어 말했다.

    그때, 회의장 입구가 한바탕 술렁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두 명의 여인과 사내 하나가 헌원각 집사 두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선 사람은 푸른 옷을 입은 아름다운 중년 부인으로, 온몸에서는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풍겨 나와 더없이 도도해 보였다.

    그녀 뒤를 한 쌍의 남녀가 따랐는데, 사내는 훤칠하고 여인은 아름다워 마치 한 쌍의 금동옥녀(金童玉女) 같았다.

    그들을 본 심협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 남녀는 다름 아닌 전에 완구성 방시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그 보타산 제자들이었던 것이다!

    “청화선자께서 오셨습니다.”

    옆에서 마수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곧바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누른 채 몇 번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손을 내렸을 때, 그의 용모는 크게 바뀌어 각진 얼굴에 가느다란 눈을 가진 청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이는 바로 사우흔에게 배운 날골역용술로, 심협은 요 며칠 동안 신행갑마부의 제조법을 알려주는 대신 그녀에게서 이 법술을 배웠다.

    이 날골역용술은 황정경과 방법은 달라도 효과는 똑같은 신묘함이 있었는데, 그는 꿈속에서 황정경을 수련해 본 경험이 있어서 비교적 쉽게 익힐 수 있었다. 심지어 사우흔보다 더욱 정교했다.

    그의 전신 뼈들이 작게 우드득 거렸고, 잠시 후 그는 키가 조금 작아진 반면 체격은 더 좋아져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심 공자님, 이게……?”

    마수수는 깜짝 놀라 심협을 위아래로 살폈다.

    “아, 일종의 역용술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 보타산 제자 둘과 맺힌 일이 좀 있어서요. 저들이 알아보면 좀 귀찮아질 겁니다.”

    심협은 사실대로 말하고는 그 두 사람을 흘끗 보았지만, 다행히 그들은 이쪽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이에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군요. 허나 심 공자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장안성 안에서는 싸움을 엄히 금하고 있어 그들이 공자님을 알아본다 해도 어쩌지는 못할 겁니다.”

    마수수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어쨌든 귀찮은 일은 피하는 편이 좋겠지요.”

    심협은 그렇게 말하고는 씩 웃었다.

    사우흔도 무씨 청년을 알아봤지만, 그녀는 지금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터러 역용술까지 쓸 필요는 없었다.

    청화선자 일행은 두 헌원각 집사의 안내를 받으며 면월거사와 금괴장군 옆에 놓인 홍목 탁자에 이르렀다.

    “청화 도우, 그대는 반년 전부터 폐관을 시작하여 두문불출이라 들었는데, 이번 경매 대회에서 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소이다. 하하하!”

    면월거사는 부채를 홱 접어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웃었다.

    “폐관이야 우리 같은 수사들에게는 일상 아니겠습니까? 헌원각 경매 대회 같은 드문 기회를 신첩이 어찌 놓칠 수 있겠어요? 한데 금괴장군이야말로 댁에서 목숨 걸고 폐관 중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청화선자가 자리에 앉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금괴장군이 그녀를 돌아보며 웃었다.

    “하하! 대승기는 덮어놓고 수련만 한다고 돌파할 수 있는 게 아니더이다. 이 금모는 기분전환을 좀 하러 나왔소. 다른 기연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그 말에 청화선자는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마음을 가다듬었다.

    잠시 후, 장내 좌석이 거의 다 찼고, 회의장 앞 단상 위에는 어느새 훤칠한 체구의 노인 한 명이 나타나 있었다.

    “여러 도우님들, 헌원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노인은 웃으며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공수했다. 그의 두 손은 새빨간 것이, 어떤 기이한 공법을 수련하는 모양이었다.

    “적수진인(赤手眞人)! 저자는 뇌(雷)씨 집안 객경 아닙니까? 언제 헌원각에 들어갔단 말이오?”

    사우흔이 깜짝 놀란 듯 그렇게 말하자 심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명한 사람이오?”

    “장안성의 몇 안 되는 연기 대가라 할 수 있지요. 근래 들어 헌원각에서는 뛰어난 인재들을 널리 받아들였으니, 분명 후한 이득을 약속했을 것입니다.”

    마수수가 말했다.

    “뇌가에서 흔쾌히 그를 놓아주었단 말입니까?”

    “헌원각에는 그들만의 방법이 있답니다.”

    사우흔의 의문에 마수수가 가볍게 답했다.

    그때, 적수진인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경매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러분께 알릴 것이 있소이다. 이 늙은이의 신분은 여러분들 모두 잘 아실 테지요. 헌원각에서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이번 경매에 물건을 낙찰 받은 손님이라면 모두 이 늙은이의 용광로로 법기를 제련할 기회를 한 번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회의장 전체가 왁자지껄하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기쁘면서도 놀라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헌원각은 정말이지 장사할 줄 안다니까.”

    사우흔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저 기회 때문에라도 이제 많은 이들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라도 하나씩 낙찰받으려 하겠군요.”

    마수수는 사우흔의 말에 깊이 공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심협은 이 상황에 더욱 초조해졌다. 그는 본래 영화를 찾으러 왔지만, 법기를 제련할 기회도 얻을 수만 있다면 당연히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는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경매품인 한 갑의 오행금사(五行金沙)부터 경쟁이 치열하여, 선옥 열다섯 개에서 시작했으나 금세 서른 개까지 올랐다. 그리고 끝내 선옥 서른여덟 개에 낙찰되었다.

    다음으로는 6도 금제가 걸렸고 속박 기능을 지닌 고리 모양 법기였는데, 역시나 치열한 경쟁이 있었고, 결국 어느 코주부 영감이 선옥 85개에 가져갔다.

    이후 온갖 보물과 단약, 법기, 공법 고서 등등이 차례차례 끊임없이 나왔는데, 품질이나 수량이나 모두 귀시 경매보다 훨씬 훌륭했다. 다만 법기 제련 기회 덕인지 전체적인 가격은 매우 높았다.

    심협이 그토록 기다리는 영화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덕분에 그의 안목도 크게 트여 이제 각 등급 법기의 가격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하품 법기는 선옥 20개에서 출발했고, 중품 법기는 최소 50개 이상이었으며, 상품 법기는 적어도 120개 이상이어야 살 수 있었다.

    극품 법기는 아직까지 경매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우흔과 마수수의 말대로라면 극품 법기는 그야말로 진귀했다. 벽곡기 수사(修士)는 말할 것도 없고, 응혼기 수사까지도 하나 손에 넣을까 말까 싶다 보니 시가가 적어도 선옥 300개 이상이었다.

    덕분에 심협은 자신이 한 달 반 정도 고급 부적을 그려 선옥을 300개가량 벌었으니, 극품 법기 하나를 사는 데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도 알게 됐다. 이어서 다음번 꿈속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부적 그리는 기술을 열심히 연구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벌써 20여 개의 경매 물품들이 나왔지만, 영화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심협은 줄곧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오히려 사우흔이 한 번 나서서 신혼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단약 하나를 낙찰 받았다.

    곧이어 또 다른 보물이 경매대에 올랐다. 사람 머리만 한 옥돌로, 경매대에 내려놓을 때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린 것으로 보아 매우 무거운 듯했다.

    이 누르스름한 옥석 안쪽에는 황토색 빛 한 덩이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는데, 무겁고 중후한 무토(戊土: 천간 중 하나로, 높고 큰 산을 가리킴)의 영기 파동이 안에서 천천히 뿜어져 나와 그 자리에 큰 산이 우뚝 솟은 것만 같았다.

    “이것은 상고시대 영물인 현귀판(玄龜板)입니다. 오직 영기가 짙은 산맥 깊은 곳에만 둥지를 트는, 천 년 이상 된 현귀로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재질이 단단할 뿐만 아니라 매우 짙은 무토의 원기를 품고 있습니다. 법기와 법보를 제련하는 매우 훌륭한 재료로, 전해지기로 상고시대의 귀중한 보물인 번천인(番天印)은 99종의 구천 영물을 정련하여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지요.”

    적수진인이 득의만면하여 소개했다.

    “현귀갑(玄龜甲)! 이런 귀중한 보물이 나타나다니!”

    “현귀갑은 원래 산신옥(山神玉)으로 불릴 만큼 귀해서 벌써 수백 년 동안이나 아무도 본 적이 없는데…… 가짜는 아니겠지?”

    “헌원각에서 언제 가짜를 팔던가? 분명 진품일 걸세.”

    “저걸 어떤 법기 안에 녹여 넣든지 법기의 위력과 등급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다던데…… 심지어 법보가 될 수도 있다더군. 아이고, 주머니 사정만 충분했더라면…….”

    적수진인이 소개를 채 마치기도 전에 수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심협도 눈을 빛내며 무의식적으로 손의 임랑환을 매만졌다. 만약 저 현귀갑을 손에 넣어 오악진형인 안에 녹아들게 한다면, 그 위력은 어느 정도가 될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신물(神物)은 일개 벽곡기 수사 나부랭이인 그가 손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심협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고는 옆에 있는 금괴장군, 면월거사, 청화선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세 사람도 단상 위의 현귀갑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흥미가 생긴 게 분명했다.

    “여러분,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이 현귀갑은 본각에서 이미 고수를 찾아 감정했으니까요. 분명 진품이며, 만약 가짜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본각에서 10배로 배상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경매를 시작하지요. 시작 가격은 선옥 300개올시다.”

    적수진인이 여유롭게 말했다.

    심협은 입이 쩍 벌어졌다. 역시 이 현귀갑은 놀랍도록 비쌌다. 시작가가 극품 법기 한 개 값 아닌가!

    막 나서려 하던 사람들도 대부분은 그 가격에 마음을 접었다. 선옥 300개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 적지 않지만, 그것은 시작가일 뿐이니 진짜 거래가는 분명 이 숫자를 훨씬 뛰어넘을 터였다.

    그때, 어떤 돈 많고 통 큰 사람이 먼저 나섰고, 이후 몇 차례 가격 경쟁을 거치자 현귀갑의 값은 금세 선옥 500까지 올라갔다. 그 값을 부른 사람은 화려한 옷을 입은 땅딸막한 남자였는데, 가뜩이나 걸걸한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이를 부득부득 가는 모양새로 보아 전 재산을 털어 넣은 듯했다.

    한데 그때, 다른 목소리가 불쑥 울려 퍼졌다.

    “550개!”

    마침내 금괴장군이 나선 것이다. 그는 단번에 선옥 50개를 더 얹어버렸다.

    땅딸막한 남자는 몸을 움찔 떨더니, 마치 바람 빠진 공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하! 금 도우도 이 현귀갑에 흥미가 있었구려. 기왕 이리 되었으니 저도 재미삼아 껴볼까요? 580개!”

    옆에 있던 면월거사도 껄껄 웃으며 손을 들고 호가(呼價)했다.

    “600개!”

    금귀장군은 현귀갑이 마음에 들었는지 즉시 값을 올렸다.

    “대당관부가 재력이 막강하고 기세가 대단하기는 하나, 나도 집안 밑천이 좀 있다오. 650개.”

    면월거사는 쥘부채를 펼치며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고, 아무도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두 사람이 경쟁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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