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53화 (253/1,214)
  • 253화. 헌원각(軒轅閣)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지나고, 두 사람은 어느 탁 트인 거리에 나타났다. 거리 양옆으로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크고 높은 데다 장식은 휘황찬란해, 장안성 일반 백성들의 상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곳의 상점들은 전체적으로 금제가 걸려 있어서 여러 빛깔의 눈부신 영광(靈光)을 발했으며, 밤에도 번쩍거리면서 온 거리를 대낮처럼 환하게 비췄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 대부분은 수사들로, 하나같이 수련 경지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 거리는 서시 전체로 보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언뜻 봐도 이와 비슷한 규모의 거리가 적어도 스무 개는 넘었고, 서로 교차하며 거대한 번화가를 이루었다.

    면적만 따져도 이 방시는 완구성의 절반은 족히 넘을 정도였고, 각 거리마다 인파가 넘쳤다. 상점과 좌판은 하늘의 별처럼 헤아릴 수가 없었으니, 완구성 방시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대당 제일의 방시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았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번화한 곳이군요.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소!”

    십협이 찬탄을 금치 못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서시도 처음 건립되었을 당시에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역대 천자들께서 힘껏 밀어주셔서 몇 차례 확장을 거친 뒤에야 지금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지요. 마침 중원절 가년성회가 열려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이 정도로 시끌벅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우흔의 설명에 심협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당 조정에서도 알게 모르게 수선(修仙)의 힘을 길렀다는 건데, 당연한 일이었다. 수사들은 보통의 군대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군대는 나라를 지킬 수 있지만, 군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도 많았다.

    심협도 과거에는 이런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았으나, 꿈속에서 천 년 뒤의 여러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그는 사우흔과 함께 여러 상점들을 둘러보았다.

    상점들은 완구성 방시, 즉 귀시의 그것들과 비슷했다. 대체로 여러 가지 수선물품과 영재, 부적, 단약, 법기 같은 물건들을 판매했는데, 품질이나 종류는 이쪽이 훨씬 뛰어나 심협은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옥이 충분치 않았다. 한 달 넘게 부지런히 부적을 그렸건만, 이전에 가지고 있던 것까지 더해도 그에게는 선옥이 500여 개에 불과했다. 이걸로는 영화를 구입하는 데에도 부족할 가능성이 높으니, 그가 어찌 다른 물건에 눈독을 들이겠는가?

    두 사람은 이내 방시 깊은 곳의 어느 거대한 상점 앞에 이르렀다.

    이곳은 매우 넓어서 보통 상점 서너 채를 합친 만큼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고, 높이도 다른 상점들보다 훌쩍 높아 가히 군계일학이라 할 만했다. 입구 양쪽에는 각각 옥으로 조각된 위풍당당한 핏빛 기린이 있었고, 대문 위에는 헌원각(軒轅閣)이라는 세 글자가 적힌 거대한 편액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 글자도 생기가 넘쳐 마치 편액에서 솟아나와 천지를 뒤덮을 법한 호탕한 기백이 느껴졌다.

    “헌원각은 역시 취보당과 함께 3대 상회에 드는 세력답군요. 명불허전이에요. 편액의 세 글자는 1대 각주가 직접 쓴 것이라던데, 그의 실력은 실로 헤아릴 수 없이 심오하군요.”

    사우흔이 거대한 편액을 올려다보며 경탄했다.

    “그의 수련 경지는 적어도 진선(眞仙)의 경지에 이르렀을 겁니다.”

    심협도 편액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심 도우께서는 그걸 어찌 아십니까?”

    사우흔이 의아한 듯 물었으나, 심협은 희미하게 웃을 뿐 답은 하지 않았다. 그는 꿈속의 경험과 안목으로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나,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이번에 헌원각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경매에 진귀한 보물이 많이 나올 것이라더군. 그래서 나는 전 재산을 가지고 왔다네! 보아하니 손(孫)형도 나서려는 것인가?”

    “무슨 말씀! 내 집안 밑천은 유(劉)형과는 비교가 안 돼. 나는 이번에 천목금철(天鉬金鐵)이나 몇 덩이 사서 내 현금대법(玄金大法)을 오중천(五重天)까지 수련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네.”

    “하긴, 내 들어보니 이번 경매는 예전과 달리 화생사와 보타산, 대당관부의 고수 선배님들께서도 오신다더군. 그러니 진짜 좋은 물건이야 그 윗분들 차지일 걸세. 우리는 분수에 넘치는 생각일랑 일찌감치 접자고.”

    헌원각으로 들어가던 수사들이 나누는 한담을 들으며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우리도 들어갈까요?”

    사우흔이 그런 심협을 흘끗 보고는 물었다.

    심협은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어제 마수수의 전갈을 받았기 때문이다. 금양영화가 오늘 헌원각 경매에 나타날 것이니 함께 참석하자는 초대를 받은 것이다.

    “심 공자님, 오셨군요.”

    저 앞에서 고운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멀지 않은 곳의 마차에서 마수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몸에 딱 맞게 재단된 푸른 치마를 입었는데, 그 위에는 푸른 광택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게 평범한 옷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 기이한 치마에 마수수의 뽀얀 피부와 아름다운 곡선이 어우러져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 소저께서는 일찌감치 와계셨나 봅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드렸군요.”

    심협이 살짝 공수했다.

    “아닙니다. 저도 막 도착했을 뿐이에요. 이쪽 언니 분께서는……?”

    마수수는 엷게 미소 짓고는 사우흔을 바라보며 물었다. 두 사람은 일찍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이분은 내 벗인 사 도우입니다. 사 도우, 여기는 마수수 소저입니다. 취보당 휘하의 수사이지요.”

    심협이 두 사람을 대신해 간단히 서로를 소개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반응을 살피고는 건업성에 있을 당시에도 사우흔은 마수수를 전혀 몰랐을 거라 생각하게 됐다. 그러니 마수수 또한 사우흔을 몰랐을 터. 사우흔은 그때 백가에서 보물을 훔쳐 달아났으니 그 일이 퍼져 나갔다면 그녀가 적잖이 성가시게 될 테니 조심해야 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 소저.”

    사우흔은 일찍이 심협에게서 마수수의 존재에 대해 들었기에 매무새를 가다듬고 예를 갖추어 인사를 건넸다.

    “별 말씀을요. 사 언니를 알게 된 것은 소매의 영광입니다.”

    마수수도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이후 세 사람은 곧장 헌원각으로 들어갔다.

    “오늘 경매에는 우리 헌원각에서 초대한 귀빈들만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세 분 도우께서는 초청장을 지니셨는지요?”

    각각 검은색과 노란색 장포를 입은 두 병사가 앞을 막아섰고,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마수수는 어째서인지 그 고운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세 장의 금빛 초대장을 꺼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무엄하다! 감히 수 아가씨께 무례를 범하다니! 어서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곧이어 검고 노란색 긴 치마를 입은, 엷은 자줏빛 눈썹에 미간에는 붉은 주사점을 찍은 여인이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자심(紫心) 집사님!”

    두 병사는 당황한 기색으로 황급히 비켜섰다.

    “수 아가씨, 이 호위병들이 견식이 얕아 아가씨를 알아보지 못했으니, 죄를 묻지 말아주십시오. 안으로 드시지요! 두 도우께서도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자심 집사는 마수수에게 환하게 웃어준 다음 공손히 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딱 봐도 지위가 낮지 않은 듯한 자심 집사가 마수수에게 이리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 보아, 취보당에서 마수수의 지위는 그녀의 말과 달리 평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우흔의 눈에도 알아차리기 힘든 미묘한 기색이 스쳐갔다.

    “자심 집사께서는 친절하시군요.”

    마수수는 가볍게 웃었으나, 심협과 사우흔에게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다.

    “수 아가씨께서는 어떤 물건을 사시려고 이번 경매에 참석하셨습니까?”

    자심 집사가 세 사람을 안으로 안내하면서 물었다.

    “이번 귀각의 경매에 참석한 것은 여기 두 분이 찾는 물건이 있어서일 뿐, 저는 그저 동석자입니다.”

    “그렇군요. 두 분 도우는 제가 어찌 불러드려야 할지요? 또 어떤 물건을 사려고 하십니까? 신첩이 두 분을 위해 미리 준비할 수 있사온데…….”

    자심 집사는 심협과 사우흔을 가볍게 훑어보며 습관적으로 물었다.

    “저희는 그저 산수들일 뿐이니 딱히 별다른 호칭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을까 싶어서 왔을 뿐인데, 어찌 감히 귀하께 폐를 끼치겠습니까?”

    심협이 그렇게 답하자 자심 집사는 더 캐묻지 않고 일행을 안내했다.

    잠시 후 이들은 어느 회의장에 이르렀는데, 그곳은 작은 광장이라 해도 좋을 만큼 넓었고, 좌석이 수백 개나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회의장 가장 앞쪽에는 붉고 네모난 탁자 수십 개가 있었는데, 그 위에는 수많은 영과(靈果)와 차 따위가 놓여 있었다. 모든 탁자 주위에는 홍목으로 만든 커다란 의자도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 너머의 붐비는 자리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보아 귀빈석임이 분명했다.

    “세 귀빈들께서는 이쪽에 앉으시지요. 경매대와 가까워 더 잘 보이실 겁니다.”

    자심은 세 사람을 네모진 탁자 자리로 안내했다. 경매를 진행하는 높은 단상과 무척 가까운 자리였다.

    그녀는 이어서 세 사람에게 경매 절차를 간단히 설명하고는 각자에게 번호가 적힌 옥패를 하나씩 건넨 후, 인사를 남기고 다른 손님들을 접대하러 떠나갔다.

    심협의 옥패에는 309라는 번호가 적혀 있었다. 옥패에 법력을 약간 불어넣자 빛이 번득였다.

    “저는 일개 산수인데 이런 귀빈석에 앉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게 다 마 소저 덕분이군요.”

    사우흔이 약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마수수에게 말했다. 그녀는 장안에서 머문 시간이 심협보다 훨씬 길어서 헌원각 경매의 귀빈석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집안 어른께서 취보당에서 승진을 하신 까닭에 장안성 도우들이 그분의 얼굴을 보아 소녀의 체면을 좀 세워준 것뿐이지요. 한데 사 언니께서는 오늘 어떤 물건을 사시려는 건가요?”

    마수수가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두 여인은 죽이 잘 맞는지, 곧 심협은 내버려둔 채 대화에 빠져들었다.

    심협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경매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도록 회의장의 좌석은 절반가량만 찬 상태였다. 그 사람들의 차림새는 서로 달랐지만, 대부분 표정에서 큰 기대감이 느껴졌다.

    “제가 아까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늘 화생사와 보타산, 대당관부에서도 이 경매에 참석하는 이가 있다더군요.”

    심협은 시선을 거두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맞아요. 화생사의 면월거사(眠月居士), 보타산의 청화선자(靑華仙子)가 지금 장안성 안에 있지요. 저분이 바로 면월거사이시고, 옆에 계신 분이 대당관부의 금괴장군(金魁將軍)이십니다.”

    마수수가 멀리 홍목 탁자 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심협과 사우흔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홍목 탁자 뒤에는 마흔 전후로 보이는 백의의 사내가 있었다. 이목구비는 무척 평범했으나 손에 든 하얀 쥘부채를 가볍게 흔드는 모습이 무척이나 우아했다. 그가 바로 면월거사였다.

    그 뒤로는 훤칠한 청년이 하나 서 있었는데, 그도 백의 차림인 것으로 보아 면월거사의 제자인 듯했다.

    면월거사가 앉은 곳 옆의 탁자 뒤로는 금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전신에 묵직해 보이는 갑옷을 입어 사람 자체가 금으로 된 산처럼 굳건해 보이는 그가 바로 금괴장군이었다. 그는 수행하는 사람 없이 혼자 경매장에 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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