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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51화 (251/1,214)

251화. 뜻밖의 손님

관봉을 안심시킨 심협은 키 작은 사내를 따라 뜰로 들어갔고, 머지않아 어느 담 모퉁이에 이르렀다.

키 작은 사내가 손으로 담 모퉁이의 벽돌 몇 개를 연달아 누르자, 갑자기 벽이 안으로 움푹 꺼져 들어갔다. 그리고 두어 번 호흡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문이 하나가 나타났다.

문 너머는 무척 좁은 골목이었는데, 앞으로 구불구불 이어져 있어 어디로 통하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대장장이 사내가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그 뒤를 따르면서도 경계심을 놓지 않고 가만히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주위의 동정을 살폈다.

두 사람은 작은 골목을 따라 잠시 걷다가 곧 작은 뜰 밖으로 나왔다.

“심 공자,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오.”

사내는 그 말을 남기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심협이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광경이 퍽 아름답고 고요했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새소리와 벌레들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아, 번화한 장안성이 아니라 한적하고 깊은 산골짜기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잠시 뒤, 키 작은 사내가 다시 나왔다.

“심 공자, 안으로 드시지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심협은 이 이상한 사람을 흘끗 보고는 뜰 안으로 들어갔다.

뜰은 넓지 않았다. 2층짜리 가옥 네 채가 있었고, 뜰 중앙에는 청석이 깔린 길이 하나 나 있었다. 길 좌우에는 기다란 대나무와 화초들이 심겨져 있어 고즈넉한 느낌을 더했다.

그때, 하얀 형체 하나가 방 안에서 걸어 나왔다.

“심 도우,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사우흔이었다.

“사 도우, 여기 계셨군요. 그대는 참으로 만나기가 쉽지 않구려. 하하하!”

심협이 웃으며 농을 건네자 사우흔이 미안한 듯 말했다.

“미안해요. 이렇게 빨리 오실 거라고는 생각지 못해서……. 내 요 며칠 폐관수련을 하느라 주철(周鐵)에게 조심히 지키라 해두었거든요. 그가 워낙 조심스러운 사람이라 심 도우도 고생했겠네요.”

“그저 농을 한 것뿐입니다. 바깥의 그 대형은 정말 신중한 사람이라 이 심모, 진심으로 탄복했을 따름이오.”

심협이 웃으며 손사래를 치자 사우흔도 미소를 되찾았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장안에는 언제 오신 건가요?”

“한나절쯤 됐소. 장안성에 오자마자 곧장 여기로 달려왔습니다. 사 도우께서는 영화에 대한 단서를 좀 찾으셨는지요?”

심협은 만나자마자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 조금 미안했으나, 너무도 궁금한 일이라 참지 못하고 물었다.

“수소문을 해보니, 이번 가년성회에 영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더군요. 다만 그 등급은 알아내지 못했어요. 어떤 종류든 영화는 부르는 게 값일 테지요.”

사우흔은 심협이 멋쩍어하는 것도 개의치 않고 흔쾌히 답했다.

그 말에 심협은 내심 흥분했으나,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잠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심협이 물었다.

“사 도우, 혹시 이곳에 평판이 좋은 부적 상점이 있습니까?”

지금 심협이 가진 선옥은 200개도 채 되지 않았다. 평범한 벽곡기 수사(修士)의 눈에는 큰돈이겠지만, 영화를 사기에는 부족할 터였다. 그렇다고 언제 사용하게 될지 모르는 법기들이나 목숨이 달린 영약인 천년영유를 팔 수는 없었기에 부적을 팔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안성은 대당의 수도인지라 상점들은 대부분 정당하게 장사를 합니다. 부적 상점도 마찬가지지요. 부적을 그려서 팔려고요? 백가에 있을 때 심 도우께서 부적 제조에 뛰어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합니다만, 가년성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때까지 충분히 마련이 될까 걱정이군요.”

“벌 수 있는 만큼은 벌어봐야겠지요.”

사우흔의 우려에 심협은 그렇게 답하고는 웃었다.

“제가 알기로 장안성의 백부당(百符堂)과 옥진각(玉珍閣), 취보당(聚寶堂) 모두 평판이 괜찮아요. 다만 그 상점들에는 부적을 대는 부적술사들이 따로 있어서 외부 부적술사의 부적은 어지간하면 받지 않을 겁니다.”

사우흔의 대답에 심협은 낙뢰부와 정신부 등의 부적에 대해 대강 이야기해주었다.

“심 도우께서 그런 고급 부적도 만드실 줄 안다니, 대단하군요! 장안성에도 고급 부적술사는 많지 않으니, 그런 부적이라면 팔수 있을지도 몰라요.”

사우흔은 그녀답지 않게 자기 일처럼 흥분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막상 심협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다만 그 부적들을 그리는 데는 아직 미숙해 성공률이 높지 않소. 그러니 선옥을 충분히 벌어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요.”

“문제는 또 있어요. 심 도우께서 그런 고급 부적들을 그리는 데 성공한다면 파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상점들은 분명 가격을 낮추려 들 거예요. 도우께서 저를 믿으신다면 차라리 부적을 제게 맡기시지요. 소녀가 나서서 팔면 상점들에게 파는 것보다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사우흔이 심협을 보며 제안하자, 심협이 주저하며 답했다.

“물론 사 도우를 믿습니다. 아만 번거롭고 힘이 드는 일일 텐데 사 도우의 시간을 빼앗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오.”

“저는 장안에 산수 친구가 많으니 부적을 파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아요. 당장은 중요한 일도 없고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이득을 좀 얻을 생각이니 헛수고는 아니지요.”

사우흔이 눈을 깜빡이고는 웃으며 말했다.

“사 도우가 그렇다고 한다면야 그리 하겠습니다. 부적을 판 값의 2할을 사 도우께 드리리다.”

“심 도우, 제 말을 오해하셨군요. 제가 말한 이득은 그게 아니에요. 지금 세상이 혼란스러우니 좋은 부적을 내다 팔면서 저도 동지들을 좀 사귈 수 있을 겁니다. 그 교분만으로도 저는 큰 이득을 얻는 셈이지요. 게다가 제게 수익을 나눠주기까지 하면 심 도우는 어찌 충분한 선옥을 마련할 수 있겠어요?”

사우흔은 심협이 오해한 듯하자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 도우에게 고생을 시키고 모든 소득을 나 혼자 가질 수는 없소.”

심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심 도우, 나는 그대를 벗이라 여겼건만, 이리 나오다니요. 이는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오!”

사우흔이 고운 얼굴을 굳히며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협은 그동안 사우흔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왔기에 약간이라도 사례하고 싶었던 것인데, 뜻밖에도 그녀의 반응이 이토록 거세니 당황했다.

“사 도우, 내 잘못했소. 그대의 호의를 무시한 게 아니니 마음 푸시오.”

심협은 사과를 하고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아, 하나 더 궁금한 것이 있소. 장안에 혹시 고명한 연단사가 있소?”

“단약 만들 사람이 필요하십니까? 장안성은 대당의 중심이니 당연히 연단사도 있지요. 다만 그들은 모두 대당관부나 규모가 큰 일부 종파에 있고, 지위도 높아 우리 같은 산수들로서는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연단사를 찾으려다가는 도우께서도 아마 실망하게 될걸요?”

사우흔은 씁쓸하게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방법이 없단 말입니까?”

심협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듣고 나자 실망감이 밀려왔다.

“저는 방법이 없지만, 다른 도우들에게 수소문해 본다면 혹시 또 모르지요.”

그가 실망한 듯하자 사우흔이 위로하듯 말했다.

“그럼 이 일도 사 도우의 도움을 좀 받겠습니다.”

심협은 다시 공수하며 말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데다 연단사에 대한 정보도 갈피가 잡히지 않아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 탓에 서시에 구경하러 갈 흥도 나지 않았다. 차라리 풍경이 아름답고 조용한 이곳에서 부적을 그리고 수련을 하는 편이 나을 듯했다.

심협은 밖으로 나가 관봉에게 약속한 보수를 치르고는 그를 떠나보낸 뒤, 다시 안뜰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가지고 있던 선옥을 몽땅 꺼내 사우흔에게 넘기며 부적 재료의 구입을 부탁했다. 기왕 도움을 받기로 했으니 이런 일은 그녀에게 맡기고 자신은 부적을 그리는 데 몰두할 생각이었다.

* * *

금세 보름이 지나갔다.

사우흔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실제로 심협의 부적들을 꽤나 좋은 가격에 팔아치운 것이다.

고급 부적을 그리는 성공률은 높지 않았지만, 값이 괜찮은 편이라 처음 투자한 것보다 백 개가량 많은 선옥을 벌어들였다. 건업성에서 소뢰부를 그려 팔았던 것보다도 배는 빠른 속도였다.

그는 마음이 조금 들떠, 다음번 꿈속에 들어가게 되면 기회를 마련해 이 부적들을 더 제대로 연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성공률을 소뢰부의 절반까지만 끌어올려도 지금보다 곱절은 빨리 선옥을 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선옥을 버는 것과 달리 연단사를 찾는 일은 순조롭지 않아, 사우흔이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마땅한 연줄을 찾지 못했다.

“됐다. 가년성회 뒤에 다시 방법을 생각해보자.”

심협이 한숨을 내쉬고는 청상지를 한 장 가져다가 부적을 그리려 할 때였다.

똑똑똑!

누군가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곳은 그와 사우흔만 아는데, 그녀는 아침 일찍부터 부적을 팔러 갔다가 보통 오후가 되어야 돌아왔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까지 문을 두드린 적이 없었다.

‘설마 그 대장장이인가?’

심협은 내심 경계하며 밖으로 나가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넋이 나가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문 앞에는 푸른 옷을 입은 생기발랄한 소녀가 서 있었다.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 눈은 맑으며, 입술은 붉었다. 미간에 선홍빛 화전(*花鈿: 고대 중국에서 여인들이 얼굴에 붙이던 장식)을 붙이고 있는 그녀는 바로 마수수였다.

“마 소저…… 어찌 그대가……?”

“왜요? 심 공자께서는 소녀가 보기 싫으신가요?”

멍한 모습의 심협을 바라보며 마수수는 귀밑머리를 가다듬고는 방긋 웃었다.

그녀는 말이며 표정, 손짓 하나까지 우아해, 건업성에서 봤던, 겁도 많고 수줍음도 많던 소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럴 리가요! 다만…… 마 소저가 찾아온 게 너무 뜻밖이라……. 게다가 내가 알던 마 소저와는 다른 사람 같으니 놀랄 수밖에요. 어서 들어오시지요.”

심협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마수수를 뜰로 들어오게 했고, 바로 응접실로 안내했다.

“그때 저는 건업성에 유배를 당한 상황이었습니다. 말썽을 피하기 위해 예전의 모습으로 가장했을 뿐, 심 공자를 속이려는 뜻은 없었으니 양해해 주세요.”

마수수는 옷섶을 가다듬고 예를 갖췄다.

“유배요?”

심협은 다른 말보다도 그 단어가 귀에 꽂혔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소매(小妹)는 취보당 휘하 사람으로, 당시 잘못을 저질러 건업성의 작은 상점으로 좌천을 당했었지요. 그러다가 마침내 최근에야 사면을 받아 장안성 본당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수수가 자리에 앉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한 말에 심협은 깜짝 놀랐다.

“마 소저가 취보당 사람이라고요?”

그는 장안에 온 지 보름이 되도록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사우흔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 장안성의 강력한 문파들 이름을 알게 되었다.

장안성에서야 당연히 대당관부가 우두머리지만, 화생사나 보타산 등의 큰 문파는 성안에도 수사(修士)들이 주둔했다.

취보당 또한 장안성의 큰 세력 중 하나인데, 대당관부나 화생사 등의 종파와는 달리 장사를 하는 곳이었다. 무려 장안성의 3대 상회 중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휘하에 분당(分堂)이 구름처럼 많아 당나라의 거의 모든 수선대성(修仙大城)에 퍼져 있었다. 심지어는 당나라 바깥에도 취보당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대단한 세력이었다.

“소매는 그저 취보당의 작디작은 구성원에 불과할 뿐, 큰 인물은 아닙니다.”

마수수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작디작은 일개 구성원조차도 이 심모의 행방을 쉽게 알아낼 수 있을 정도이니, 취보당의 위세는 정말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군요. 하하!”

심협이 웃으며 깊은 뜻이 담긴 듯 말했다.

“심 도우께서는 오해 마세요. 소매가 이번에 찾아 온 것이 경우 없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악의는 없어요. 제가 여기 온 것은 이 부적 때문입니다.”

마수수는 손을 저으며 황급히 말하더니 오른손을 뒤집었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자줏빛 부적지가 한 장 나타났다. 바로 정신부였다.

한데 그 부적의 필획과 문양이 낯이 익었다. 그가 직접 그린 부적이니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제야 마수수가 어떻게 이곳을 찾았는지 깨달았다.

“그해 건업성에서 소매는 심 공자께서 그리신 부적을 수없이 많이 팔았지요. 하여 공자의 부적에 담긴 습관은 퍽 잘 알고 있답니다. 우연히 이 부적을 얻게 됐을 때, 심 공자님의 흔적을 알아보고 취보당 인맥을 동원해 찾아왔지요.”

과연 마수수의 해명은 심협의 예상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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