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50화 (250/1,214)
  • 250화. 황폐한 동네

    장안성은 배치가 전체적으로 현묘하여 마치 절세의 대진(大陣)을 이룬 것 같았는데, 온 장안 수도의 힘으로 땅속 영맥의 솟아오르는 영기를 억눌러 이곳의 천지영기를 강하게 만들었다. 수사(修士)들만이 아니라 평범한 백성들도 그 이득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의 노력으로 대자연을 억누르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심협은 탄복하며 언덕을 내려와 곧장 성으로 향했다.

    장안성은 전체적으로 네모꼴이었는데, 동서남북에 총 열세 개의 성문이 있고, 백여 개의 관도 덕에 사방팔방으로 통했다.

    심협은 장안성 동쪽, 동성의 어느 성문 앞에 이르렀다. 성문에는 ‘선덕문(宣德門)’이라는 세 글자가 커다랗게 적혀 있었고, 커다란 주문(主門) 양옆으로 작은 문 두 개가 더 있었다.

    주문은 오직 수레와 말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제공되는 문으로, 화물이 드나들었다. 왼쪽의 작은 문은 평범한 백성들이 출입했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반면 오른쪽 작은 문은 사람이 훨씬 적었지만, 그래도 한 무리가 길게 늘어서 있긴 했다. 이들은 모두 기품이 남달랐고, 발걸음에 바람이 일었다. 놀랍게도 모두 수사들이었다.

    평범한 백성들도 수사들에게 익숙해졌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심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오른쪽 돌문으로 들어가 행렬의 가장 끝에 섰다. 그 앞으로는 대여섯 명의 수사가 더 있었다.

    지금 그는 비록 신식이 없었지만 안목이 뛰어난 덕에 이 수사들의 경지를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었는데, 대다수가 연기기 경지였다.

    푸른 장포를 입은 청년 둘이 양옆에 서 있었는데, 둘 다 몸에 기이한 빛이 어른거리는 것으로 보아 벽곡기 수사들이었다.

    가장 앞에 선 황색 옷의 사내가 앞으로 나아가 선옥 한 덩이를 건네자 푸른 장포 청년 한 명이 푸른 영패를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한 줄기 푸른 빛이 영패에서 쏘아져 나가 사내의 몸을 비추더니 금세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청의의 청년이 곧 영패를 건네주자 황의의 사내는 한 손으로 받아 들고는 성큼성큼 성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심협은 또다시 감탄했다.

    앞에 선 사람들도 비슷한 절차를 거쳤고, 이내 심협 차례가 돌아왔다.

    “도우께서는 이쪽으로 오시지요.”

    두 청의의 사내 중 왼쪽 청년이 심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두 도우님들, 저는 장안에 처음 왔습니다. 제가 뭘 하면 되는지요?”

    심협은 선옥 하나를 꺼내 바로 내어주지 않고 공수하며 물었다.

    “아, 장안이 처음이시구려. 우리 두 사람은 대당관부 문하 수사들이오. 이 영패는 대당관부에서 발급한 일종의 신분증이지요. 장안성에 들어간 뒤로는 반드시 몸에 지녀야 하고, 잠시도 몸에서 떼어놓아서는 안 되오. 영패가 없는 사람은 장안에서 쫓겨나거나 때로는 옥에 갇히게 되기도 하니 말이오.”

    오른쪽 청년의 설명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이 영패는 그저 신분증일 뿐인 겁니까?”

    “그건 아니고, 경고 효과도 있소. 도우도 수선자들이 그 강력한 힘을 악을 행하는 데 썼다간 쉽게 큰 화를 부를 수 있음을 잘 알 테지요. 이곳은 우리 대당의 수도로 일국의 중심이니, 신중히 행동해야만 하오. 하여 모든 수선자는 입성할 때 반드시 영패를 차도록 규칙을 정한 것이니 도우께서 이해하길 바라오.”

    왼쪽의 청년이 친절하면서도 근엄한 목소리로 설명을 마쳤다.

    “아니, 그렇다면 이 영패에는 수사가 악을 행하는 걸 방지하는 힘이 있단 말입니까?”

    심협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건 말이오…… 우리 대당 관부에 다 방법이 있다오.”

    왼쪽 청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이상은 설명해주지 않았다.

    심협은 시선을 움직이고는 금방 깨달았다. 이 영패 안에는 특별한 금제가 걸려 있어 그것을 지닌 수사들을 감시할 수 있으리라.

    “당연히, 법에 위반되는 일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이 영패는 도우에게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을 거요.”

    오른쪽의 푸른 옷 청년이 말했다.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없이 손에 든 선옥을 건네주었다. 다른 사람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거북했지만, 대당관부에서 정한 규칙을 그처럼 변변찮은 사람이 지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하오.”

    청년이 선옥을 받은 뒤 심협을 향해 영패를 몇 번 흔들자, 푸른 빛이 쏘아져 나와 그의 몸을 덮었다. 이어서 영패 끄트머리에서 빛이 번쩍 하더니 곧 작은 사람 형체가 하나 나타났다. 바로 심협의 모습이었다.

    “오늘부터 그대가 장안성을 떠날 때까지 도우는 반드시 이 물건을 몸에 지녀야 하오. 성을 떠날 때 반납해야 하니 영패를 훼손해서도 안 되오.”

    청년의 당부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패를 챙겨 성안으로 들어섰다.

    마차가 네댓 대는 나란히 달릴 수 있을 법한 청석대로가 나타났고, 길 양옆에는 높고 커다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점이었다.

    심협은 금방 시선을 거두고는 걸음을 옮기며 사람을 붙잡고 창평방의 위치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깡마른 사내 하나가 길가에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심협에게 예를 갖추었다.

    “선사 대인께 인사 올립니다.”

    “그대는 누구시오? 내게 무슨 볼일이 있소?”

    심협은 상대방을 흘끗 보고는 살짝 경계하며 물었다.

    “소인은 관봉(關奉)이라 합니다. 선사 대인의 모습을 보아하니 장안에 처음 오셨군요? 저는 장안 토박이로, 이곳을 손바닥처럼 훤히 꿰고 있습니다. 그러니 분명 선사께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관봉이 재빨리 말하고는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심협을 쳐다보았다.

    “길 안내도 해주시오?”

    심협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난생처음이었으나, 생각해 보니 장안성은 너무나 넓어 자신 같은 외지 사람이라면 한참을 헤맬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소인은 마부올시다. 장안 곳곳 사정에 훤하여 감히 여러 선사 대인께 길안내를 해드리기도 하지요.”

    관봉은 허리를 살짝 숙이고는 손으로 자신의 마차를 가리키며 답했다.

    “가격은 어찌 되오?”

    심협은 마차를 힐끗거리고는 물었다.

    “하루에 두 냥씩입니다요.”

    관봉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며 미소를 지었었다.

    “그대가 그리도 장안성을 잘 안다면, 좋소. 내 그대를 고용하지. 길안내를 잘한다면 충분한 대가를 받게 될 것이나, 혹여 허튼수작을 부리기라도 했다가는…….”

    심협은 말 대신 길가의 돌 위에 발을 살짝 얹었다. 다음 순간, 푸른 빛이 번쩍이더니 돌은 쩍 소리를 내며 둘로 쪼개졌다.

    관봉은 기겁하여 수작질은 하지 않겠노라고 거듭 약속했다.

    “우선 성 서쪽 창평방으로 갑시다.”

    심협은 관봉의 마차에 올랐다. 사우흔과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계획보다 한 달이나 일찍 도착했으니 그녀가 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가보는 수밖에 없으리라.

    관봉은 부랴부랴 대답하고는 마차를 몰았다.

    심협은 마차 창 너머로 성내를 둘러보았다.

    장안성의 배치는 건업성, 춘화성과 달리 도로가 무척 많고 매우 질서정연해 모든 큰길이 남북으로 곧장 뻗거나, 동서로 가로지르며 서로 교차했다. 또한 이 큰길들 사이의 거리는 똑같아서,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마치 바둑판처럼 장안성 전체가 세밀하고 짜임새 있게 구획되어 있을 터였다.

    구역 하나하나가 각각 하나의 방(坊)으로 나뉘어 다스리다 보니 질서정연하여 어딘가를 찾아가기도 수월했다.

    관봉에게 물어보니, 창평방은 장안성의 서남쪽 구석에 위치해 있어 선덕문과 거리가 멀었다.

    심협은 거리를 따라 늘어선 상점들을 둘러보며 수선자를 위한 상점을 찾았다. 그러나 길을 몇 개나 지나치는 보통 사람들은 제법 보였지만, 수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 상점들 역시 수선과 관련된 물건을 파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듣기로는 장안성이 수선의 성지라 수선자가 엄청나게 많다던데, 어찌 수사는 한 사람도 없고, 상점도 죄다 보통 사람들의 물건만 파는 게요?”

    심협이 참지 못하고 묻자 관봉이 선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장안성이 대당의 수선 성지라는 말은 맞으나, 선계와 범계는 어쨌든 다르지요. 하여, 조정에서는 수선자들이 일반 백성들과 너무 자주 접촉하기를 바라지 않고, 그래서 성 서쪽의 서시(西市)를 따로 마련해 여러 선사 대인들께서 활동하시도록 제공하고 있습지요.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로 가셔야 합니다.”

    “아, 그랬구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차는 거의 반 시진 동안 줄곧 달린 뒤에야 어느 외진 골목 앞에 멈춰 섰다.

    “선사 대인, 철모자(鐵帽子) 골목에 도착했습니다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관봉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심협은 눈앞의 광경에 다소 당황하고야 말았다.

    그 동네는 인가가 매우 적었고, 관리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지 길바닥에는 낙엽이 가득한 것이 좀 전까지의 번화하고 시끌벅적한 곳들과는 사뭇 달랐다. 심지어 드문드문 보이는 인가들도 대부분 대문을 꼭 걸어 닫아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관봉, 여기는 왜 이리 황폐한 것이오?”

    “선사 대인께 아룁니다. 여기는 너무 외진 곳이라 소인도 거의 와본 적이 없어서…….”

    장안성을 손바닥처럼 꿰고 있노라고 호언장담했던 관봉으로서는 면이 상하는 일이었기에 그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멋쩍게 답했다.

    심협은 개의치 않고 마차를 나섰다.

    이 평창방은 꽤나 넓어서, 그는 사우흔을 어찌 찾아야 하나 난감했다.

    그때, 삿갓을 쓴 노인이 저 앞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심협은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사우흔의 이름은 숨긴 채 성씨와 외모만을 묘사해가며 그녀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

    바로 그해에 사우흔은 백가에서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비술을 훔쳐 달아났으니, 관부에서 지명수배를 내렸을까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이 비록 장안이기는 하나,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사씨 성을 쓰는 아가씨? 글쎄올시다. 평창방에 머무는 이들은 대부분 거친 사내들이라…….”

    노인은 잠시 생각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심협은 노인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더 안으로 향했다.

    이후 몇 사람이나 붙잡고 물어봤지만, 누구도 사씨 성을 쓰는 아가씨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다고 답했다.

    동네 가장 깊은 곳에는 대강 지어진 움막이 하나 있었는데, 허름한 대장간이었다. 그곳에서는 키가 작고 다부진 체격의 중년 사내가 벌겋게 달아오른 철배(鐵胚)를 쇠망치로 두드리고 있었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심협이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키 작은 사내는 하던 일을 멈추었다.

    “공자께서는 무슨 일이시오?”

    “저는 사씨 성을 가진 아가씨를 찾고 있습니다. 스무 살 정도 되었고, 용모가 아주 아름다운데, 혹시 그런 사람을 아십니까?”

    질문을 받은 키 작은 사내의 눈에는 찰나의 순간 알아채기 힘든 묘한 기색이 얼핏 스쳤다. 그러나 그는 곧장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씨 성을 가진 여인이라……. 그런 이는 들어본 적 없는데…….”

    “그렇습니까. 그럼 실례했습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소 무거워진 마음으로 대장간을 떠났다.

    “심 선사님, 아직 사람을 못 찾으셨습니까?”

    관봉이 다가오며 묻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였다.

    “잠깐! 공자의 성이 심가요? 이름은 어찌 되시오?”

    키 작은 사내가 갑자기 심협을 불러 세웠다.

    “저는 심협이라 합니다. 왜 그러시는지요?”

    심협은 발걸음을 멈추고 대장장이 사내를 돌아보며 답했다.

    “어느 협자를 쓰시오?”

    사내는 대답 대신 다시 질문을 던졌고, 더욱 의아해진 심협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의기로울 협(俠)자를 씁니다. 대형께서 그건 왜 물으십니까?”

    “그대가 심협이구려. 나를 따라오시오.”

    키 작은 사내는 쇠망치를 내려놓고는 몸을 돌려 움막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심협이 재빨리 따라가려는데, 관봉이 그를 끌어당기며 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선사님, 조심하십시오. 장안성의 겉모습은 비단처럼 화려하지만, 나쁜 놈들도 적지 않습니다. 몰래 재물을 노리고 목숨을 빼앗는 일도 부지기수로 많지요.”

    “그런 걱정일랑 말고, 그대는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면 되오.”

    심협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관봉의 모습에 호감이 생겨 웃으며 조용히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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