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49화 (249/1,214)
  • 249화. 돌 속의 영유

    땅거미가 내리자 심협은 다시 한번 소리 소문 없이 객잔을 떠나 지난번에 탐색을 마친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성 북쪽 어느 원외랑의 대저택인데, 막 들어가려는 순간 낮에 그 늙은 사기꾼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일단 가보자. 어차피 성 서쪽도 언젠가 찾아봐야 하니 조금 먼저 간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잖아?”

    그는 그렇게 결정하고는 몸을 돌려 성 서쪽으로 내달렸고, 금세 어느 작은 골목에 이르렀다.

    요 며칠간 심협은 당추현성을 샅샅이 살펴 두었는데, 이곳은 은류항(銀柳巷)이라는 곳이었다. 낮에 그 점쟁이 도인의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곳이기도 했다.

    그는 주위를 잠시 두리번거리고는 골목 안쪽의 큰 문이 있는 정원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 영고가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허리춤의 작은 주머니에서 들려왔다. 매우 절박한 소리였다.

    심협은 급히 주머니를 열었다. 그러자 영고가 곧바로 뛰쳐나와 자줏빛 그림자로 변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 커다란 문이 아니라 옆쪽의 어느 작은 뜰을 향해서였다.

    심협이 재빨리 쫓아가 보니, 곧 뜰 안의 어느 채마 밭 우물가에 이르렀다.

    우물 옆에는 평평한 청석 하나가 땅 위로 몇 촌가량 드러나 있었는데, 그 위는 축축하고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영고는 청석 위에 내려서서 재빠르게 기어가며, 돌 속으로 파고들려 했다. 그러나 파고들 수 없자 절박하게 소리를 질렀다.

    “이 청석이 바로……? 옥간에서는 어느 원외랑 집 문 앞이라 하지 않았던가?”

    심협은 잠시 멍하니 서서 망설였으나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

    “아! 천년영유가 발견되는 것은 수백 년 후다! 그러니 그 사이에 당추현성에도 변화가 있겠지!”

    그는 영고가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만약 혼자 와서 찾았다면 1년을 헤매도 이곳은 그냥 지나쳤을 테니까.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두 손을 결인하여 땅 위를 꾹 눌렀다. 그러자 땅속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채마 밭 땅바닥이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마치 아래에서 어떤 힘이 떠받치는 것처럼 우물가 청석이 서서히 떠올랐다.

    몇 번쯤 호흡할 시간이 지나자 물로 만들어진 커다란 손이 청석을 아래쪽에서 떠받쳤다.

    영고는 여전히 청석 위에 엎드린 채 더욱 흥분하여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파고들 빈틈을 찾는 듯했다.

    “이 녀석, 돌아와라!”

    심협은 손을 휘둘러 물줄기로 영고를 휘감아 허리춤의 작은 주머니에 던져 넣고는 또다시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옆 우물에서 물줄기가 한 가닥 튀어나와 청석 위를 휘감으며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쉬이익! 쉬익!

    연이어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청석을 덮은 해묵은 진흙과 이끼가 말끔히 씻겨나갔다.

    금세 원래의 면모를 드러낸 청석은 맑고 투명하게 반짝이는 녹옥으로 변했고, 땅 위로 드러난 가장 윗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몽롱한 녹색 빛을 발했다. 어떤 비취와 마노도 이 앞에서는 빛을 잃을 듯했다.

    “이게 무슨 옥돌이지? 범상한 물건이 아닌 듯한데…… 하긴, 천년영유를 담은 돌이니 당연히 예사 청석은 아니겠지.”

    심협은 중얼거리며 옥돌 앞으로 다가가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희미하고 맑은 향기가 청석 안에서 흘러나왔다. 우유나 양젖과 비슷한, 매우 신선한 향기였다.

    “책에 기록된 대로군. 맞게 찾은 거야!”

    심협의 눈에 희색이 돌았다. 그는 곧 손을 뒤집어 임랑환(*琳琅環:물건을 저장하는 반지모양의 저물법기)에 청석을 챙겨 넣었다.

    “그 점쟁이 도인이 맞힌 걸 보니 진짜로 점술 고수였던 모양이야!”

    그는 점쟁이 도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감탄했다.

    이어서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법술을 시전하며 뒤집힌 땅바닥을 손으로 어루만져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큼지막한 은자를 작은 뜰의 주옥(主屋) 앞에 내려놓았다. 천년영유를 가져가는 보상인 셈이었다.

    일을 마친 그는 곧장 객잔으로 돌아갔다.

    우선 문과 창문을 잘 닫아 건 그가 결인을 하자 물줄기가 아래쪽에서 날아와 넓게 펼쳐지며 네모난 덮개를 이루더니 방 곳곳을 완전히 뒤덮었다.

    여기까지 일을 마친 심협은 푸른 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야. 여기가 가장 약해 보여.”

    심협은 청옥 중간의 약간 움푹 들어간 부분에 집중한 채 한 손을 뒤집어 자모검을 꺼냈다.

    쩡!

    자검 한 자루를 불러내 법술로 효력을 불러일으키자 청량한 소리가 울렸다. 그러더니 가는 칼날 하나가 자검에서 쏘아져 나와 청옥의 움푹 들어간 부분을 찔렀다. 그러자 청옥에 작은 구멍이 하나 생겼지만, 완전히 뚫리지는 않았다.

    “엄청 딱딱한 옥돌이로군!”

    심협은 내심 놀라 외쳤다. 7층 금제가 걸린 상품 법기로, 두꺼운 철조각도 거뜬히 뚫을 수 있는 자검의 힘으로도 이 청옥을 뚫지 못한 것이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손의 법결을 바꾸었다. 그러자 자검이 회전하기 시작했고, 쏘아져 나온 칼날도 방금 청옥에 생긴 구멍에 꽂힌 채 맹렬히 회전했다.

    잠시 후,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짙은 향기가 풍겨 나왔다.

    심협은 재빨리 결인하여 자검을 거두었다.

    청옥에는 굵기가 젓가락만한 구멍이 몇 촌 깊이로 뚫린 상태였고, 바로 그 너머로 언뜻 뽀얀 액체가 보였다. 기이하고 맑은 향기는 이 액체에서 풍겼다.

    “역시 천년영유였어! 하하하!”

    그는 기쁨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더니 곧장 결인하여 손을 끌어당겼다. 천년영유에도 수분이 담겨 있다 보니 즉시 어수지술(御水之術)에 천년영유가 구멍을 통해 이끌려 나왔다.

    청옥을 벗어난 천년영유는 전체적으로 뽀얀 젖빛이었지만, 미미한 노란빛도 띠고 있어 빛깔이 순수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과연, 지금 이 영유는 햇수가 부족해서 약효에 영향을 줄지도 모르겠어.’

    심협은 다소 아쉬워하며 하얀 옥병을 꺼내 영유를 받아 절반 정도 채웠다.

    하얀 영유가 가볍게 찰랑이며 기이한 향기가 코를 찌르자 한 모금 마시고픈 유혹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심협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돌 속 영유는 더없이 진귀한 것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고 백골을 살찌게 하는 효과가 있는 대신 그 안에 담긴 돌의 기운 때문에 곧바로 복용해서는 안 된다. 그냥 마셨다가는 오장육부가 딱딱하게 경화(硬化)되어 오히려 백해무익인 것이다.

    “고서의 기록에 따르면, 천년영유는 약효가 너무 강해서 단약으로 만들려면 상당한 연단(煉丹) 수법이 필요하다. 방법은 장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겠군.”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옥병을 챙겼고, 청옥의 구멍을 다시 막은 후 이 역시 임랑환에 챙겨 넣었다.

    기이한 향기가 완전히 흩어져 사라진 후에야 심협은 방을 뒤덮었던 물 방어막을 거두고 침상에 올랐다.

    “그나저나 그 노인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분명 신통력이 대단한 사람인 것 같은데 왜 사기꾼 노릇을 하는 걸까? 설마…… 인간 세상에서 장난을 치고 노는 신선이라도 되는 건가?”

    온갖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떤 고수건 또 어떤 목적이 있건, 심협은 날이 밝는 대로 다시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첫 번째로, 천년영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에 감사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로 앞으로 또 상대방에게 도움을 구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을 여기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 * *

    날이 밝자 심협은 바로 객잔을 나서 백화산 아래로 갔다.

    “어제 그 노승은 오늘도 여기서 관상을 볼 것이라 했지.”

    하지만 해가 중천에 뜨도록 그 노승과 그의 제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심협 외에도 적잖은 사람이 그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때가 되었지만, 노승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심협은 떠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흩어지자 어제 노승이 자리를 폈던 곳에 와서는 영고를 풀어놓았다.

    소자는 땅에 내려오자 납작 몸을 엎드린 채 코를 박고 냄새를 몇 번 맡은 뒤,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갔다.

    심협은 황급히 쫓아갔다.

    소자는 성 밖을 한 바퀴 돈 다음, 끝으로 성 북쪽 어느 황폐한 옛 절에 이르러 심협에게 두어 번 꾸르륵거렸다.

    심협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소자가 낸 울음소리는 여기서부터 냄새가 끊겨 더는 추적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수고했다. 들어가 쉬거라.”

    그는 손을 휘저어 소자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는 오래된 절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그러나 결국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냄새가 왜 끊겼을까? 이곳은 수원(水源)도 없는데……. 설마 그 노인이 하늘을 날아서 가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가 정말 고수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심협은 절 밖에 서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만약 상대방이 정말 하늘을 날아갔다면 냄새도 바람을 따라 흩어졌을 터. <약선집>의 기록에 따르면, 허공에서는 한나절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더는 영고가 추적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했다.

    이후로도 심협은 바로 단념하지 않고 당추현성에서 이틀을 더 머물며 매일 성 안팎을 찾아다녔지만, 아쉽게도 끝내 노인의 종적을 찾지 못했다. 이에 어쩔 도리가 없어진 그도 포기하고는 두 다리에 신행갑마부를 각각 한 장씩 붙이고 장안을 향해 곧장 내달렸다.

    * * *

    사흘이 지났을 때, 심협은 어느 높은 언덕 위에서 저 멀리를 내다보았다.

    수백 장 너머로 웅장한 성이 보였는데, 거대한 청옥을 하나하나 쌓아올려 만든 백여 장 높이의 깔끔한 성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양쪽으로 쭉 뻗은 거대한 성벽은 그 끝이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저 앞에 서면 사람은 한 마리 개미처럼 보잘것없어지리라.

    저곳이 바로 대당의 수도, 장안이다.

    장안성 밖은 폭이 백 장에 이르는 해자(垓子)로, 콸콸 흐르며 파도가 거세게 용솟음치는 모습이 커다란 강줄기와 견줘도 손색이 없었다.

    백옥으로 만든 거대한 다리들이 해자 위에 걸쳐진 채 성문과 연결되어 인파가 끊이지 않고 드나들었다.

    어림군(禦林軍)이 무리 지어 성벽 위와 백옥대교 위를 오가며 순찰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빛나는 은 갑옷에 손에는 장창을 들었고, 걸을 때마다 울리는 착착 소리까지 더해져 절로 위압감이 드는 모습이었다.

    멀리 바라보니, 성벽 안으로 탁 트인 도로들이 사방팔방으로 뚫려 곳곳마다 마차행렬과 행인이 빽빽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크고 높은 건물들과 궁전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무수한 강줄기들이 성안을 가로지르면서 푸른 물결이 넘실거렸고, 그 위를 놀잇배며 어선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다녔다.

    일찍이 일국의 수도인 장안의 장관에 대한 얘기는 자주 들었지만, 직접 보게 되자 심협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건업성도 꽤나 번화한, 당의 중요한 성중 하나지만, 눈앞의 장안성에 비하면 작고 낡은 현성 같았다.

    ‘장안성은 역시 우리 대당의 수도답구나. 주변 백국을 승복시켰다더니, 수도의 웅장함만 보아도 다른 나라에서 신복(臣服)할 마음이 생기겠는걸!’

    심협은 속으로 감탄했다.

    장안성에 가까워지자 그는 이곳이 단순히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천지영기도 다른 곳보다 훨씬 짙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그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장안성은 온 남첨부주의 영맥(靈脈)이 교차하는 곳이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맥 복지(福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곳에 도읍을 정할 리 없지 않은가.

    심협은 대승 후기에 다다른 꿈속 세상에 비해 현실의 경지가 백분의 일 정도로 낮긴 했지만, 아직 안목은 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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