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48화 (248/1,214)
  • 248화. 점을 치다

    “도장께서는 정말 신선이시군요! 소인이 멋모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그는 후원의 불기운이 잡히자 안도하며 현진도인을 공손하게 안으로 모셨다.

    “노 신선님, 정말로 신통하십니다. 소인 집 풍수 좀 봐 주십시오!”

    “도장님, 우리 아들이 곧 과거를 보는데 앞길이 어떤지 그 아이 앞날을 헤아려 주실 수 있는지요?”

    “도장님, 우리 딸이 올해 벌써 스물셋이나 되었는데 아직 시집을 못 갔습니다. 그 아이 마음에 드는 낭군이 어디 있는지 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다른 구경꾼들도 존경심이 가득한 얼굴로 백의의 도인에게로 몰려들었다.

    한편, 심협은 1층으로 내려와 은자를 계산대에 올려두고는 도인 쪽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가게를 나섰다.

    ‘방금 후원의 불은 사고가 아니었다. 저 도인이 동전 점을 치고 있을 때, 수상쩍은 자가 장작더미 위로 몰래 불쏘시개를 던졌지.’

    그러나 해야 할 일이 있는 그로서는 다른 일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더욱이 이런 강호의 사기꾼들을 들춰서 폭로하기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주루를 나선 심협은 근처 객잔으로 가 묵었다.

    대낮에는 현성 곳곳을 오가는 사람이 많아 천년영유를 찾기 좋은 때가 아니었기에, 그는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

    고급 객실을 빌린 그는 함부로 와서 방해하지 말 것을 점소이에게 당부한 뒤, 침상머리에 앉아 허리춤에서 작은 녹색 주머니를 꺼내 열었다.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자줏빛 그림자가 튀어나와 그의 어깨에 올라탔다. 바로 그 영고였다.

    “소자(小紫), 저녁에도 네 후각에 기대야 할 것 같구나. 물건을 하나 찾아야 하거든.”

    심협은 손을 내밀어 영고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줏빛 도마뱀은 심협의 손가락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머리를 갖다 부벼댔다. 이미 그에게 완전히 굴복당한 모습이었다.

    이 영고야말로 그가 천년영유를 찾기 위해 준비한 비장의 한 수였다. 꿈속 옥간의 기록대로 천년영유가 큰 바위에 밀봉되어 있다 하더라도 영고의 예민한 후각이라면 분명 냄새를 맡을 수 있을 테니, 굳이 돌을 들춰낼 필요가 없으리라.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일단 천년영유의 냄새를 맡아봐야 그 기억에 따라 냄새를 좇아 추적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지금 어떻게 천년영유의 냄새를 먼저 맡아보게 한단 말인가!

    게다가 고충은 요수와 달리 영지가 아주 낮아서, 자신이 찾는 물건을 설명해줄 수도 없었다.

    “됐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천년영유 같은 영물이라면 이 고충도 일단 냄새를 맡는 순간 뭔가 반응을 보이겠지.”

    심협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손가락을 베어 피 한 방울을 영고에게 먹인 뒤, 다시 작은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어느덧 땅거미가 내렸고, 시끌벅적했던 당추현성은 곧 깊은 잠에 빠져들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심협은 조용히 객잔을 빠져나왔고, 금세 성 동쪽에 도착했다.

    목숨이 달린 일인 만큼 감히 요행 따위를 바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원외랑이라고 할 만한 대갓집들은 하나하나 모두 찾아다닐 생각이었다.

    심협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지체 높아 보이는 집 앞뜰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다가가서 문 앞 땅바닥을 살피기 시작했다.

    영고는 어깨 위에서 열심히 냄새를 맡아댔다.

    하룻밤이 훌쩍 지나갔다.

    그 옥간에서 천년영유는 문 밖에서 찾을 수 있다고만 했지, 그 문이 정문인지 후문 밖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어떤 문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니 심협은 꼼꼼히 하나하나 찾아봐야 했기에 하룻밤 동안 고작 서른 채 정도를 살펴볼 수 있었다. 조사해 봐야 할 집들의 100분의 1도 살피지 못한 것이다.

    날이 밝아 더 이상 남의 집 담장을 넘어 다니며 살펴보기가 어려워지자 심협은 객잔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10일간 그는 낮에는 수련하고 밤에는 수색을 이어간 끝에 당추현성의 1할 정도 되는 가구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천년영유는 찾지 못했다.

    심협은 그리 낙심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조금 답답했기에 열하루 째 정오 무렵에는 성 외곽의 백화산(百花山)을 유람하기로 했다.

    수많은 꽃이 자라는 덕에 백화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산 위에는 오래된 절이 하나 있었고, 풍경이 빼어나 현지 사람들이 자주 찾았다.

    심협은 산을 한 바퀴 거닐면서 청산녹수의 아름다운 경치와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을 보자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한데 그가 백화산에서 내려올 때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점괘로 반평생 잘못 든 길을 바로잡아 드리오! 관운, 재운, 인연, 풍수 어느 하나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소이다!”

    보아하니 산기슭에 좌판이 하나 서 있었는데, 그 뒤에는 붉은 가사(袈裟)를 입은 한 노승이 앉아 있었고, 옆에는 점괘산명(*占卦算命: 점 봐드립니다)이라는 글귀가 적힌 하얀 천이 세워져 있었다.

    노승 옆에는 소년 사미승도 서 있었는데, 눈이 반짝반짝 생기가 도는 것이 아주 총명하고 영리해보였다.

    심협은 두 사람을 슬쩍 보고 지나쳐 가려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이 노승은 민머리인 데다 얼굴에 수염 한 올 없었지만, 심협은 그가 바로 그날 홍향주루에서 사람들을 속였던 그 도인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더욱이 옆에 선 사미승은 바로 주루 후원에 불을 질렀던 사람이었다.

    백화산은 당추현성의 유명한 유람지라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니, 이 두 사기꾼이 변장을 하고는 여기까지 온 것이리라.

    심협은 상황이 퍽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전에는 두 사람을 봐주었더니만, 또다시 만났음에도 여전히 사기를 치고 있자 한바탕 혼쭐을 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쿵!

    가까이 다가간 그가 묵직한 은자를 내던지자, 두 승려는 깜짝 놀랐다.

    “빈승은 요공선사(瞭空禪師)라 합니다. 고산종(古算宗) 금광사(金光寺)의 관상술을 전승한 제72대 계승자이지요. 손님께서는 무슨 점을 보시렵니까?”

    노승은 탐욕스러운 눈으로 탁자 위의 은자를 보았으나, 곧장 집어들거나 건드리지 않은 채 심협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별일은 아닙니다. 선사님의 보상(寶相)이 엄숙한 것을 보니 도행이 분명 심오한 것 같아 경모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제가 머지않아 시험을 보러 상경해야 하기에 선사님께 가르침을 청하러 온 것뿐입니다.”

    심협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담담히 말했다. 그러자 노승이 그를 잠시 살폈는데, 이내 눈에 밝은 빛이 스치더니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손님께서는 서생은 아닌 듯합니다. 과거를 보러 가는 것 같지도 않고요.”

    “오,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심협은 짐짓 놀란 척하며 물었으나, 실제로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수선(修仙)하기 전에도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 때문에, 이런 사기꾼 점쟁이들이 갑자기 놀랄 만한 말을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먼저 그렇게 상대의 기를 눌러 자신이 고수라는 인상을 주고는 서서히 주도권을 차지하다가, 결국 상대방이 완전히 자신을 믿고 순순히 돈을 내놓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천기(天機)인지라 함부로 누설할 수 없습니다.”

    노승은 신비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럼 선사님께서 제 관상을 한번 봐주시지요. 먼저 말씀하시고, 선사님 말씀이 틀릴 경우 제가 낯빛을 바꿨다고 탓하시면 안 됩니다.”

    심협은 입꼬리를 슬쩍 당기고는 목소리 높여 말했다.

    이 소리에 주위의 유람객들이 관심을 보이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내 보니, 젊은이의 얼굴빛이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어렸을 때 큰 병에 걸렸던 적이 있군요. 병세에 오래 시달려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다행히도 고수의 도움을 받은 덕에 차츰 좋아졌고요. 맞지요?”

    노승은 심협을 몇 번 뜯어보더니만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번에는 심협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노승이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인가 싶어 자세히 살폈지만, 끝내 별다른 것을 알아내지 못했다. 노인은 분명 신선과 같은 풍모였지만, 법력의 흔적이 털끝만큼도 없는, 분명 평범한 사람이었다. 한데 어찌 자신의 과거 병치레를 알아본단 말인가!

    “어렸을 때 분명 그런 경험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병은 이미 완쾌되어 지금은 아주 건강합니다.”

    심협은 다소 진중해진 목소리로 답했다.

    “사람의 일생 동안 생로병사에는 액운이 거듭되는 법이지요. 시주께서는 그 당시 큰 화를 넘겼지만 앞길이 여전히 다사다난하니, 이를 풀 수 있는 묘법이 없다면…….”

    노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끝을 흐렸다.

    “제게 어떤 겁운이 있습니까? 솔직히 말씀해주십시오.”

    심협이 궁금해 참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지러운 세상, 겁운은 수천수만이니, 그 속에 몸담고 있는 한, 천신이며 불타(*佛陀: ‘석가모니’의 다른 이름, 즉 부처)라 하더라도 이를 면하기 어렵지요. 하물며 우리 같은 범인이야……. 젊은이는 혈색이 불그스레하고 정기가 충만하지만, 미간이 창백한 것이, 겉으로는 강해보이나 속은 텅 빈 수수깡이구려. 그런 고로, 젊은이의 겁운은 수(壽), 명(命) 두 글자에 들었을 것입니다. 맞지요?”

    노승은 말을 마치고는 허허롭게 웃었다.

    “뭐가 속 빈 수수깡이고, 수명에 겁운이 들었단 말이오? 난 그런 거 안 믿습니다. 그리 점을 잘 친다면, 왜 내가 여기 있는지를 점쳐 보시지요.”

    심협은 더없이 놀랐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야 쉽지요. 다만 빈승이 배움을 마치고 하산할 때 남의 관상을 봐줄 때는 반드시 돈을 받는다는 규칙을 정한지라…….”

    노승은 한 줄기 미소를 내비치며 또다시 말끝을 흐렸다.

    “허! 그럼 일단 정확히 맞혀보시지요. 내 은자는 가져가기 쉬운 게 아니오.”

    심협은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은자를 또 한 덩이 꺼냈다.

    “손님께서는 마음 놓으시지요. 우리 사부님의 법술은 고명하니, 분명 손님을 대신해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겁니다.”

    옆에 선 사미승이 웃으며 그리 말하고는 날렵하게 은자 두 덩이를 챙겼다.

    “내 바라는 바요.”

    심협은 사미승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노승은 품에서 마개가 달린 죽통을 하나 꺼내고 다른 손으로 동전 6개를 꺼내 그 안에 집어넣은 뒤, 품에 안고 경건한 표정으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열 번쯤 호흡할 만한 시간이 지났을 때, 노승은 눈을 번쩍 뜨고는 죽통을 흔들기 시작했다.

    짤그랑거리는 소리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어떤 기묘한 운율을 띤 채 울리면서 알 수 없는 평온함마저 느껴졌다.

    ‘이 늙은이가 수작을 부리는 것 같긴 하지만, 전부 속임수는 아닌 것 같군.’

    심협은 죽통이 흔들리는 것을 눈으로 따라가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노승은 죽통을 아홉 번 연달아 흔들더니 죽통 마개를 열어 동전들을 탁자 위에 가볍게 쏟고는 두 줄로 세운 뒤, 잠시 자세히 훑어보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점괘가 나왔소?”

    심협이 눈썹꼬리를 치켜 올렸다.

    “자, 이것은 절괘(節卦)에 초구(初九)라, 틈을 노리고 왔으니 진(秦)과 류(柳)가 서로 맞부딪히면 얻을 수 있을지니. 젊은이가 이곳에 온 것은 뭔가를 찾기 위함이지요?”

    노승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이제 심협은 믿기 힘들다는 눈빛이었고, 표정은 살짝 굳어지고야 말았다.

    “진 자는 서쪽을 의미하니 그 물건은 성 서쪽에 있을 것이요, 류 자는 버드나무라는 뜻이 아니라 구체적인 장소를 가리키는 것일 터. 젊은이는 성 서쪽으로 가서 버들 류 자가 들어간 지명을 찾으면 되겠소.”

    노승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그를 보는 심협의 낯빛은 어두웠다 밝아지기를 반복했고, 마음속에는 거센 풍랑이 몰아쳤다.

    ‘나는 천년영유를 찾는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린 적이 없다. 한데 이 노승은 어떻게 알아맞힌 것인가? 설마 그가 정말 만사를 점칠 수 있단 말인가?’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심협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는 노승의 점괘가 맞았음을 직감하고는 우르르 몰려들었다.

    “스님, 저도 일이 하나 있는데 점 좀 봐 주십시오.”

    “대사님, 저도 점 좀 한 번 봐주십시오.”

    “여러 시주들께서 성원해주시니 이 노승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빈승은 규칙이 있어 매일 점을 세 번만 본다오. 오늘은 점괘를 세 번 다 보았으니, 시주들께서는 점을 치시려거든 내일 다시 오시지요. 아가, 판 접어라. 우리 어디 가서 술이나 한…… 흠흠! 탁발하러 가자꾸나.”

    노승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예를 갖춘 뒤, 점괘산명 글귀가 적힌 흰 천을 뽑아 들고 성큼성큼 자리를 떴다.

    “사, 사부님! 기다려주십시오!”

    사미승은 조금 힘겹게 탁자를 들고는 노승을 쫓아갔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도 막아서지 못하고 다소 낙담했다.

    심협은 두 사람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들이 사라진 뒤에야 눈길을 거두었다.

    “저 노인 말이 진짜일까?”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성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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