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47화 (247/1,214)
  • 247화. 점쟁이 도인

    “영화가 찾기 어렵다는 거야 저도 압니다. 혹시 가년성회에도 없겠습니까?”

    심협이 물었다.

    “평범한 인품 영화는 밑천만 넉넉하다면, 가년성회에서 살 수 있을 거예요. 애는 좀 먹겠지만……. 그러나 그런 특별한 효력을 지닌 영화라면 운에 맡겨야겠지요. 제가 몇 년 전에 어느 대회에서 현진성염(玄眞聖焰)을 직접 본 적이 있긴 합니다만…… 몇몇 큰 세력이 쟁탈전을 벌인 끝에 선옥 천 개에 가까운 값으로 낙찰되었습니다.”

    사우흔이 과거를 떠올리며 설명하자 심협은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현진성염? 그건 고작 지품 영화가 아닙니까! 그런데 선옥 천 개라니…… 정말 가격이 만만치 않군요.”

    현진성염은 여러 광석을 쉽게 녹이고 융합할 수 있어 법기를 제련하는 데 좋았지만, 순양검배를 만들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영화가 일단 나타났다 하면 곧 여러 강한 세력들이 앞다투어 차지하려 들 테니, 우선 심 도우는 선옥을 최대한 많이 모으는 데 집중해야 할 겁니다.”

    “사 도우의 가르침에 깊이 감사드리오.”

    사우흔의 당부에 심협은 포권을 하며 감사를 표했다.

    “심 도우도 가년성회에 관심이 있다 하셨으니 빨리 출발하지요. 장안에 빨리 도착할수록 더 잘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가년성회에는 반드시 참가할 것입니다만, 그전에 준비가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석 달 뒤에 장안에서 만나면 어떻겠소?”

    심협이 잠깐 생각해보더니 제안했다.

    “그것도 좋지요. 그럼 저는 먼저 가서 영화를 수소문해볼 테니, 심 도우께서는 장안에 도착하시면 성 서쪽 창평방(昌平坊)으로 저를 찾아오세요.”

    심협은 의아했지만,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사 도우께 신세 좀 지겠습니다.”

    심협은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별일 아닙니다. 감사하실 것까지야…….”

    사우흔은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인사를 남긴 채 떠나갔다.

    심협도 그녀를 눈으로 배웅하고는 홀로 남게 되자 지도를 꺼내 잠시 살핀 뒤 달주 방향으로 출발했다.

    * * *

    달주의 위치는 장안에서 멀지 않은데, 토지가 비옥하고 물자가 풍부했다. 대당 조정에서 요 몇 년간 거듭 선정(善政)을 베풀었고, 수도에 인접한 곳인 만큼 탐관오리들의 수탈도 적은 편이었기에, 달주 백성들은 살림이 꽤 넉넉했다.

    달주의 작은 현(縣)인 당추현(唐秋縣)은 홍량미(紅梁米)라는 특별한 양곡으로 이름난 곳이었다.

    홍량미는 향기롭고 맛이 진할 뿐만 아니라 달짝지근해서 고관대작들 사이에서는 여느 쌀보다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많은 상인이 당추현성으로 와서 홍량미를 사들였고, 덕분에 당추현성은 크게 번창했다.

    현성의 한 번화가에는 홍향주루(紅香酒樓)라는 3층짜리 주루(酒樓)가 있는데, 당추현성에서는 무척 유명했다. 홍량미로 빚은 홍량주(紅梁酒)가 이곳의 대표적인 술인데, 빛깔은 피처럼 붉고, 매우 향기로워 서역에서 가져온 포도주에 비견될 정도였다. 이에 많은 외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때마침 점심때라 홍향주루는 층마다 손님들로 가득했다.

    3층 어느 창가 자리에는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이 홀로 앉아 있었는데, 한 손으로는 선홍색 홍량주를 받쳐 든 채, 다른 손으로는 푸른 옥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홍향주루 3층은 시끌벅적했고, 곳곳마다 술잔이 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가 부른 사람도 동하게 할 만한 음식 냄새가 풍겼으나, 청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서는 마치 신선처럼 맑은 느낌이 배어나온 터라 적지 않은 손님들이 그를 힐끔거리는 중이었다.

    청년은 동해만에서부터 근 한 달을 달려온 심협이었다. 그는 수행 초기에 오감이 크게 증가한 후로 한동안은 통제할 줄을 몰라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답답함을 느꼈었다. 그러나 수련 경지가 높아지면서 통제가 자유로워지자 외부의 소음이나 향기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도 다른 손님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혼자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푸른색 옥판은 심협이 대머리 사내에게서 빼앗아 온 물건이었다.

    요 며칠 동안 자세히 연구해본 끝에 그는 옥판의 금제를 풀고 그 안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었다.

    <벽파결(碧波訣)>이라는 공법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십중팔구 벽수문에서 전승되는 공법일 터였다. 현묘하다면 현묘한 공법이었으나, 무명공법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 당연히 수련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옥판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까닭은 옥판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법술 3개가 각각 용천술(涌泉術), 천우침술(千雨針術), 선와참(漩渦斬)이기 때문이었다.

    이 3가지 법술 모두 평범한 물 계열 법술로, 전혀 심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심협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무명공법의 어수지술(御水之術)도 현묘하기는 했지만, 이런 구체적인 법술은 부족했다. 그렇다보니 적과 맞설 때면 지닌 힘조차 제대로 쓰기 어려웠다. 신력을 지니고도 정교한 무공은 일초반식도 모르는 것처럼, 이 공법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차에 이 법술들을 보니, 그는 마침내 어수지술을 정교하게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듯해 기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법술은 빈틈도 꽤 많았는데, 특히 그중 어수변화법(御水變化法)은 무명공법에 담긴 어수지술의 정교함에 미치지 못했다.

    심협은 요 며칠간 이 3가지 법술을 깊이 연구하고 무명공법으로 끊임없이  개량한 결과 제법 소득이 있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이번 여정은 내내 순조로워서 펼쳐볼 기회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잡다한 생각들을 거두고 창밖으로 현성을 내다보았다.

    이번에 그가 당추현성에 온 것은 천년영유를 찾기 위함이었는데, 꿈속에서 본 옥간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그것은 당추현성의 어느 원외랑(員外郞) 나리 댁 대문 앞 돌 속에 숨겨져 있을 터였다.

    다만 옥간에 그 원외랑의 성씨가 적혀 있지 않았으니, 규모가 춘화현성의 세 배는 될 법한 이 당추현성에서 수천수백 명의 원외 중 그 정체를 알아내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름아닌 수명과 직결된 일 아닌가! 아무리 번거롭다 하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아내야 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준비를 좀 해둔 터라, 어쩌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심협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면서 다음 일을 계획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저 아래쪽에서 한바탕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그의 생각이 끊겼다.

    심협은 인상을 찌푸리고 창문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창 너머로 보이는 주루 입구 근처에는 몇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하얀 옷을 입은 도인이었다. 수염과 머리칼은 전부 하얗게 셌지만, 피부는 어린아이처럼 부드럽고 연했으며, 입고 있는 도포가 바람을 따라 펄럭이는 것이 학골선풍(鶴骨仙風)의 모습이었다.

    백의의 도인은 손에 푸른 대나무 장대를 하나 들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선인지로(*仙人指路: 선인이 길을 알려줌)라는 커다란 네 글자가 적힌 하얀 천 조각이 걸려 있었다. 다시 보니 도인은 꼭 관상쟁이처럼 보였는데, 주루의 주인장과 점원이 그와 입씨름 중이었다.

    심협이 잠시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그 백의의 도인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찾아와 홍향주루의 풍수를 봐주겠노라 한 듯했다.

    한창 바쁠 시간에 풍수나 볼 리가 있겠는가? 주인장은 점원을 시켜 동전 10여 푼쯤 쥐어주고 쫓아보려 했는데, 백의의 도인이 뜬금없이 벌컥 화를 낸 것이다. 그러더니 그 많은 손님들 앞에서 홍향주루는 풍수가 안 좋고, 가게 안 장식이 온당치 않다고 지적해가며, 묘법(妙法)으로 풀지 않는다면 반드시 쇠락이 닥쳐 장사를 말아먹게 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 어찌 이런 말을 너그러이 받아들이겠는가? 그리하여 쌍방이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도사는 심상문(心相門)의 제36대 계승자 현진도인(玄眞道人)이라네. 본문의 천강신(天罡神)은 하늘의 도에 정통하니 미래를 점칠 수 있지. 주인장, 내 그대 관상을 보아하니, 미간은 넉넉하지만 눈 아래 누당(*淚當: 눈꺼풀이 움푹 들어간 곳)에 작은 흉이 있어 자녀의 운이 막혔구먼. 그대에게는 처첩이 많지만 지금까지 후사가 없지. 내 말이 틀렸는가? 허허!”

    백의의 도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는 옷소매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 지금껏 화가 나서 으름장을 놓던 주인장은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사실 그는 이미 마흔을 넘겼고, 처와 첩을 셋이나 들였음에도 여태껏 후사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일평생 가장 큰 고민으로,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릴까봐 줄곧 감춰온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 도인이 단박에 이 비밀을 폭로하자, 주인장은 분노와 부끄러움이 뒤섞인 가운데 깜짝 놀라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또한 그대는 두 눈썹의 숱이 적으나 송곳같이 뾰족하고, 왼쪽 눈썹 끝에 작은 사마귀 하나가 있구려. 이 자리는 부모와 웃어른을 주관하는 자리라, 영존(*令尊: 상대방의 아버지를 높이는 말)께서는 이미 세상을 뜨셨고, 영당께서는 병환이 깊으시구먼. 아니라고 할 텐가?”

    현진도인은 옷만큼이나 하얗게 센 수염을 쓰다듬으며 현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주인장은 다시 한번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그 반응만 보더라도 도인의 말이 또 적중한 게 틀림없었다.

    이쯤 되자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놀라기 시작했다.

    심협도 마찬가지였다.

    ‘운명은 허무하고 변화무쌍하여 점을 치는 것은 모두 강호의 속임수라 여겼건만, 저 도인은 어찌 저리 신통하게 맞힌단 말인가? 세상에 정말 운명을 헤아리는 신통력이 있단 말인가?’

    심협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주인장이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도, 도장님 말씀이…… 맞긴 합니다만…… 그, 그런 일들이야…… 조금만 수소문해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오?”

    “허허! 주인장이 전생상(前生相)을 믿지 않으니, 내 이번에는 후생상(後生相)을 봐주겠네.”

    현진도인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동전 세 개를 꺼내더니 손에 쥔 채 가볍게 세 번을 흔들더니 땅에 뿌렸다.

    짤그랑!

    동전들이 땅을 구르다 쓰러지더니 이내 멈췄다.

    심협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눈은 모두 동전들을 따라갔다.

    ‘내 관상술에는 문외한이니, 저게 속임수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가 없군.’

    심협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현진도인이 말을 꺼냈다.

    “이 괘는 이괘(離卦)라네. 이(離)는 불을 주관하니, 그대의 주루에 오늘 화재가 나겠구먼.”

    도인이 가볍게 놀란 소리를 내더니, 몸을 굽혀 동전들을 주우며 말했다.

    그 말에 주인장은 노기를 드러냈지만, 더는 도인에게 함부로 호통을 치지 못하고 그저 얼굴만 시뻘겋게 상기되었다.

    심협이 반신반의했으나, 다음 순간 그는 웃으며 후원 쪽을 힐끗 바라보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때, 홍향주루 후원에서 갑자기 깜짝 놀란 비명이 들려왔다.

    “불이다! 후원 나뭇간에 불이 났다! 어서 불을 꺼!”

    후원 담벼락 근처에 쌓여 있던 땔감 무더기에 불이 나면서 짙은 연기가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장은 멍하니 혼이 나갔고, 주루 손님들도 얼이 빠져버렸다.

    “가서 불 꺼! 빨리!”

    주인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다급히 외쳤다.

    그러자 점원 몇 명이 급히 후원으로 달려갔고, 손님들은 난리라도 난 것처럼 수군댔다. 이제 백의의 도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존경심이 가득했다.

    한편, 후원에서는 주방 일꾼 몇 명이 표주박이며 대야 따위에 되는 대로 물을 퍼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였다.

    촤악!

    느닷없이 커다란 물줄기 한 덩이가 땔감더미 위에 나타나더니 쏟아져 내리면서 불길을 절반 이상 잡아버렸다.

    주방 점원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멀거니 멈춰 섰다.

    “거기 멍하니 서서 뭐해? 어서 불을 끄지 않고!”

    때마침 달려온 다른 점원들이 버럭 호통을 쳤고, 그제야 주방 일꾼들도 정신을 차리고 다시 불길로 달려들었다.

    땔나무 위의 불은 이미 대부분 꺼진 터라 불길은 금세 잡혔다.

    그리고 이제 주인장은 더 이상 백의의 도인을 의심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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