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가년성회(嘉年盛會)
반 각이 지나자, 영고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사납다기보다는 무기력해졌고, 언뜻 굴복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심협은 이 고충이 쉽게 길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바로 멈추지 않고, 짐시 더 통령술을 운공한 후에야 운공을 거두었다.
심협은 영고가 무기력하게 뻗어 있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손가락을 벤 뒤 한 번 튕겨 피 한 방울을 주머니 속으로 흘려보냈다.
피 냄새를 맡은 영고는 눈을 희미하게 반짝이더니, 분홍색 혓바닥을 번개처럼 뻗어 핏방울을 휘감은 뒤 꿀꺽 삼켰다. 그러자 녀석의 몸에는 핏빛이 가닥가닥 떠올랐고, 곧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아주 경쾌하게 꾸룩꾸룩 울었다.
심협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자신이 이미 이 영고를 굴복시켰으며, 조금만 더 훈련하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조심스레 주머니를 챙겨 허리춤에 달았다.
이제 푸른 자모검과 비취색 여의, 두 가지 법기를 살펴볼 차례였다.
심협은 먼저 푸른 자모검을 들고 구구통보결을 운공하여 제련했다. 자모검에서는 환한 푸른빛이 피어오르더니 곧 완전히 제련되었다.
심협이 결인하자 푸른 모검이 하늘로 날아올라 길이가 3장에 이르는 푸른 검광을 쏘아대며 허공을 날아다녔다. 마치 커다란 푸른 구렁이가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달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뒤이어 쨍그랑 하는 맑은 소리가 두 번 연이어 울리더니, 가늘고 작은 두 줄기 비검이 모검에서 발사되어 모검을 빙빙 맴돌며 작은 뱀처럼 날아다녔다.
지금 자모검의 기세는 대머리 사내가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강했다. 그보다는 심협이 법기를 조종해본 경험이 더 많기 때문이었다.
법기는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위력도 크게 향상되지만, 그럴수록 조종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일반적으로 심협 같은 벽곡기 수사에게는 하품 법기가 가장 적합했다. 중품 법기도 조종할 수는 있지만, 상품 법기를 사용하기는 너무 어려워 실전에서는 오히려 하품 법기보다 효과를 보기가 어렵기도 했다.
일단 조종자의 법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상품 법기의 금제가 복잡하여 조종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상품 법기는 오랜 시간 연마해야만 능숙하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법기의 효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 수사의 경지와 경험은 모두 중요하다. 심협은 꿈에서 이미 대승기에 이르러 법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금탑의 시련을 통해 적잖은 천병들의 전투 경험을 흡수했는데, 그 속에는 법기와 법보의 사용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법기와 법보를 조종하는 경험은 매우 풍부했다.
경지와 달리 이런 경험들은 현실로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그는 상품 법기를 비롯해 극품 법기까지도 조종할 수 있었다. 덕분에 풍부한 경험을 통해 법력의 부족을 어느 정도 보완하는 갓이 가능했다.
심협은 모검이 잠시 허공을 날도록 조종하다가 손을 흔들어 불러들이고는 가볍게 그 위를 어루만졌다. 이 법기는 퍽 만족스러웠다.
이 검은 위력 자체도 제법 뛰어난 데다가 세 개로 나눠지기 때문에 그처럼 법기의 조종 경험이 풍부한 사람 손에서는 더욱 위력적이었다.
자모검을 거둬들인 그는 비취색 여의에 구구통보결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모검과는 달리 비취색 여의 내부에서는 금제가 계속해서 진동하며 그의 법력이 침투하는 것을 막았다.
“설마…… 그 보타산 제자가 아직 살아 있어서 이 여의의 금제가 여전히 그의 통제하에 있는 것인가?”
지금 심협은 경지가 제법 높아졌지만, 정통 사문을 통해 키운 실력이 아니다보니 법기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그럼에도 원인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이 여의는 쓸 수가 없는 건데…….’
심지어 청삼 사내가 이 비취색 여의와 호응하여 추적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 여의를 챙기지 않고 가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심협은 낯빛이 변해 곧바로 이 비취색 여의를 버리려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쨌거나 상품 법기 아닌가!
‘구구통보결로 다시 한번 시도해보고, 정말 금제를 풀 방법이 없다면 그때 버려도 늦지 않다!’
그는 그렇게 결심하고는 구구통보결을 운공해 다시 제련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온 힘을 다해 족히 1각을 제련했다. 푸른 빛이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와 비취색 여의 속으로 계속 들어갔다.
심협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는데, 눈빛에서는 희색이 느껴졌다.
구구통보결은 과연 현묘했다. 이 비취색 여의의 금제는 외부의 힘에 점거당했지만, 그가 전력을 다해 제련하니 조금씩 약화돼 그 안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또다시 1각 정도가 지나자, 여의의 표면에 밝은 초록빛이 떠오르며 마침내 그 안의 1도 금제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심협은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온 힘을 다해 제련을 이어갔다.
* * *
순식간에 한 시진이 지났다. 이때 비취색 여의는 눈부신 초록 빛을 한 덩이 피워내더니 맹수의 포효 같은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그의 손에서 날아가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비취색 여의 윗면에는 8도 금제 문양이 떠오르더니 반짝였다.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심협이 결인을 하자 허공을 빙빙 맴돌던 비취색 여의가 멈추더니 갑자기 앞으로 날아갔다. 뒤이어 끄트머리에 달린 새빨간 정석이 크게 반짝였고, 여의가 뿜어내는 청록빛과 한데 어우러져 붉고 푸른 두 가지 빛깔의 긴 무지개로 변해 놀라운 영력의 파동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마치 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처럼 날아가 멀리 있는 3장 높이의 커다란 바위에 꽂혔다.
우르릉!
집채만 한 바위가 산산조각 났고, 아래 바닥까지 커다란 구덩이가 하나 뚫렸으며, 반경 수십 장의 땅까지 계속해서 떨리다가 잠시 뒤에야 평정을 되찾았다.
“대단해! 자모검에 비해 공격 방식은 단조롭지만, 파괴력은 반월환보다도 강하군! 역시 보타산의 법기다워.”
심협은 감탄하며 손을 들어 비취색 여의를 불러들였다. 그의 시선은 그 끝에 박힌 새빨간 정석 위에 꽂혀 있었다.
사실 방금 공격은 이 법기의 진정한 위력은 아니었다. 아무리 조종 경험이 풍부하다고는 해도 지금 그는 벽곡 중기에 불과하니 상품 법기의 모든 위력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심협은 이 정석이 품은 힘을 전부 끌어낼 수만 있다면 이 비취색 여의의 공격력은 한층 더 높아질 것임을 직감했다.
“심 도우, 괜찮아요? 무슨 일이죠? 아, 법기를 시험해본 건가요?”
사우흔은 방금 전의 굉음에 놀란 듯 다가오며 물었다.
“이 여의는 그 보타산의 청삼 사내에게서 빼앗아온 것인데, 수련을 마치고 내친김에 제련했습니다. 그럭저럭 괜찮군요.”
심협은 여의를 거둬들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 법기가 그 보타산 제자의 것이라고요? 그자는 아직 살아 있잖아요! 그렇다면 심 도우가 이 법기를 갖게 된 것은 복이 아닌 화입니다! 아, 잠깐. 이미 제련했다고요? 그게 어찌 가능합니까!”
사우흔의 낯빛은 거듭 바뀌었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법기 안의 법력에 남겨진 흔적은 내가 이미 지워버렸소. 그러니 그가 법기와의 호응으로 쫓아올 일은 없지 않겠소?”
심협이 웃으며 물었다.
“만약 여의의 금제가 완전히 풀렸다면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게 어찌 가능하단 말입니까? 법기에 담긴 법력의 흔적을 지우려면 경지가 법기의 원래 주인보다 훨씬 뛰어나거나, 뛰어난 제련법을 사용해야만…… 심 도우, 설마……?”
사우흔은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물어보려 했지만, 곧 심협의 비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내 우연한 기회에 꽤나 강력한 제련법 하나를 우연히 얻게 됐소.”
심협은 적당히 얼버무렸지만, 내심 예상을 웃도는 구구통보결의 위력에 역시 방촌산의 비전 공법은 놀랍다며 감탄하는 중이었다. 그런 뛰어난 보결이 있으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법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쓸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만으로도 통쾌했다.
사우흔은 심협이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았지만, 제련법을 이용했음을 숨기지 않자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끝까지 캐묻고 싶지는 않았던 그녀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이곳은 위험하니 오래 머물러서는 안 돼요. 최대한 빨리 출발하지요. 장안에 당도하면 안전할 겁니다.”
장안성은 대당의 수도로, 건업성보다 열 배는 번화한 도시다. 성안에는 수많은 수선자(修仙者)가 있고, 조정에서 봉한 수선호국아문(修仙護國衙門) 대당관부(大唐官府)가 있으니 진정한 수선 거성(巨城)이라 할 만한 곳이라 사우흔의 말대로 그곳에 도착한다면 안전해질 것이다. 다만 그녀가 묘하게 서두르는 기색이 엿보였기에 심협으로서는 다소 의아했다.
“사 도우께서는 장안에 급한 용무가 있는 게요?”
“그야 당연하지요. 석 달 뒤면 중원가절(*中元佳節: 죽은 혼령을 기리는 명절)이니 장안에서 가년성회(嘉年盛會)가 열릴 거예요. 모처럼의 기회이니 당연히 가야지요.”
사우흔의 말에 심협은 멋쩍은 듯 뺨을 긁적이며 다시 물었다.
“가년성회? 그게 뭡니까?”
그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해마다 열리는 중원절 가년성회는 3대 축제의 하나로, 온 대당 수선계의 큰 행사예요. 매번 다른 지방의 수사(修士)들도 장안으로 모여드는데, 가히 만선운집(滿仙雲集)이라 할 만하지요. 행사장에는 진귀한 보물들이 널려 있어 평소 보기 힘든 고급 영재와 단약, 법기, 심지어 법보까지 두루 갖춰져 있답니다. 한마디로, 선옥만 충분하다면 거의 못 살 물건이 없단 얘기지요.”
사우흔은 당당하면서도 차분히 이야기하는 것이, 중원절 가년성회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커 보였다.
“그리 큰 행사가 있다니! 정말 무엇이든 살 수 있단 말입니까?”
심협은 솔깃해 다시 물었다.
“물론 꼭 그런 건 아니죠. 설령 선옥이 있다고 해도 필요한 보물을 만나는 행운이 있어야 하지요. 그래도 가년성회에는 상점이 많아 온갖 경매와 교환회가 줄을 잇긴 해요. 원하는 물건이 있는 건가요? 저는 몇 번 참가해봐서 성회 상황을 그럭저럭 알고 있으니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 심모에게 사고 싶은 물건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만, 가년성회에 영화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사우흔의 친절한 대답에도 심협은 잠깐 주저하다가 슬쩍 말을 꺼냈다.
“사실 영화를 찾고 있소.”
“영화요? 천지간에 잉태된 그런 특별한 불꽃은 평범한 산수들이 쓸 만한 물건은 아닐 텐데……?”
사우흔은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제가 법기를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영화를 녹아들게 해야만 완성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귀물을 억제하는 효과를 지닌 것이 가장 좋지요. 사 도우께서 아는 바가 있다면 부디 가르쳐주십시오.”
심협이 깍듯하게 공수하며 말했다.
“구종천품 영화(九種天品靈火)는 전설 속 선가의 물건이라 세간에 있는지 없는지도 불분명하고…… 삼십육종지품 영화(三十六種地品靈火)도 워낙 희귀한 물건이라 기연이 없으면 볼 수조차 없지요. 그나마 쉽게 볼 수 있는 백팔종인품 영화(百八種人品靈火)조차 제가 알기로는 어딘가에 나타났다는 소문만 돌아도 대부분 큰 세력들이 장악해서 연단사와 연기사(煉器師)를 양성하는 데 쓴다더군요. 귀물에 대한 억제 효과까지 있는 영화라면 더더욱 찾기 어렵겠습니다.”
사우흔은 묘한 표정으로 심협을 슬쩍 보며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