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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44화 (244/1,214)
  • 244화. 불리한 형세

    다음 순간, 거대한 물결이 빠르게 덮쳐 대머리 사내를 내리쳤다.

    콰쾅!

    “크악!”

    사내는 몸을 크게 떨더니 피를 왈칵 토해냈다. 하지만 그는 물러나기는커녕 미친 듯이 고함을 내지르면서 체내의 법력을 전부 인수결에 주입했다. 그러자 그의 두 손을 휘감은 푸른 빛이 순식간에 열 배는 밝아지더니 물결을 다시 한 번 힘차게 끌어당겼다.

    이번에는 거대한 물결 위로 희미한 푸른 빛이 한 층 떠오르더니, 가까스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물결은 벽수문 사람들을 비켜지나갔다.

    물결에 직격당한 커다란 나무들이 그대로 꺾였고, 바닥에도 깊은 자국이 생겨났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본 엽중의 얼굴에는 노기가 스쳐지나갔다.

    그때,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삼 사내의 웃음이었다. 비록 그 웃음에 다른 뜻은 없었다고는 하나, 엽중의 눈에는 부끄럽고 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쓸모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다들 뭘 하고 있는 것이냐!”

    그가 버럭 호통을 치자 살기가 사방에 흘러넘쳤고, 간담이 서늘해진 벽수문 제자들은 황급히 부기들을 움직여 다시 심협과 사우흔을 공격했다. 하나하나는 연기기 경지에 불과했지만, 십여 명이 연합하니 그 위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무리하게 맞설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심협은 사우흔에게 조용히 한마디를 건넨 뒤, 발에 달그림자를 반짝이며 순식간에 몇 장이나 옆으로 가로질렀다.

    그는 그동안 쉬지 않고 수련한 데다 꿈속의 경험까지 더해져 사월보가 대성의 경지에 이를 기미가 보였다. 이에 한 걸음 내딛자 마치 1척을 1촌으로 줄인 것처럼 거의 십여 장을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사우흔은 싸울 태세를 취하고 있다가 심협의 말과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의 행동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즉시 손을 멈추고 다른 쪽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너희는 가서 저 계집을 상대하고, 이 좀도둑놈은 내게 맡겨라!”

    분노에 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대머리 사내가 몸의 부상을 억누르고 뱀 모양 비검을 움직이며 심협을 뒤쫓았다.

    사내의 말에 벽수문 사람들은 일제히 부기들을 사우흔에게 쏘아 보냈다.

    한편, 대머리 사내는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옷소매를 크게 떨쳤다. 그러자 뱀 모양 비검이 강렬하게 번득이더니, 길이 1장의 검광을 내뿜으면서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그 속도는 다른 부기들보다 월등히 빨랐다.

    심협은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손바닥에서 검은 빛을 번뜩이며 귀소환을 손에 쥐고 허공에 휘둘렀다.

    귀소환에 검은 빛이 번뜩이자 흉악한 귀신 머리가 번쩍 나타나 입을 쩍 벌렸다.

    “끼야아아!”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고, 실체를 지닌 듯한 검은 음파가 순식간에 몇 장 길이에 굵기는 물통만 한 검은 빛기둥으로 뭉쳐 뱀 모양의 비검을 때렸다.

    하지만 이 비검은 그의 용 문양 금도보다도 등급이 높은 법기였고, 결국 예리한 검기가 일렁이면서 쫙 하는 소리와 함께 음파를 쉽게 쪼개버렸다.

    귀소환은 반법기인지라 현재 심협의 경지로 발휘시킨 위력도 만만치 않아서, 뱀 모양 비검은 귀소환의 음파들을 깨뜨린 대신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그 틈을 타 심협은 두 발 위로 달그림자가 스쳐 지나는 상태로 날아갔다.

    이 광경을 본 대머리 사내는 표정의 교활하게 변하더니 두 손으로 결인하여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러자 뱀 모양 비검에서 1척 정도 길이의 푸른 빛이 갈라져 나왔다. 이는 아주 작은 비검 두 자루로, 쏜살같이 심협을 덮쳐왔다.

    한데 작은 비검 두 자루는 놀랍게도 뱀 모양 비검보다 훨씬 빨라서, 번쩍이는가 싶더니 심협의 머리로 날아와 그를 엇갈리게 베어갔다.

    “자모검(子母劍)!”

    심협은 깜짝 놀라 두 발 아래 달그림자의 빛을 세차게 내뿜으며, 앞으로 날아가던 방향을 갑자기 틀어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가듯 뒤로 날아갔다.

    이 한순간의 변화가 너무도 갑작스러웠던 터라 두 자루 비검도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그를 놓쳐버렸다.

    그 순간, 심협이 소매를 가볍게 털었다. 그러자 금빛이 한 줄기 튀어나왔다. 용 문양이 새겨진 용문금도(龍紋金刀)였다.

    위잉!

    금도는 울리는 소리를 내며 길이가 반 장에 이르는 금빛 도광을 내뿜었다. 도광은 허공에서 한 바퀴 둥글게 돌면서 순식간에 금빛 소용돌이를 이루더니 단번에 작은 검 두 자루를 안으로 휘감아 들였다.

    대머리 사내는 황급히 작은 두 자루 검을 움직여 필사적으로 빠져나오려 했다. 그러나 금빛 도광의 소용돌이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작은 검들을 꽉 휘감은 탓에 작은 검 두 자루는 한동안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한편, 심협은 남은 손으로 귀소환을 작동시켜 음파를 내뿜어 음도(音刀)를 만들어낸 후 금빛 소용돌이를 바짝 뒤따르던 푸른 모검을 베어버렸다.

    대머리 사내는 이 광경에 크게 놀라면서도 분노했다. 이 자모검은 한 차례 탐험에서 얻은 그의 비장의 무기였기 때문이다. 모검은 6층 금제가 새겨져 있는 중품 법기였고, 두 자루 자검은 작고 가늘어 보이는 형태와 달리 그 위에 7층 금제가 새겨져 이미 상품 법기가 되어 있었다.

    한데 지금, 그 상품 법기가 상대의 하품 법기에 묶이고 말았으니, 이게 어찌 가능하단 말인가!

    사내는 진노하여 온힘을 다해 공법을 운공하면서 모검을 재촉했다.

    그때, 몇 척 앞의 땅바닥이 미미하게 흔들리더니 연분홍빛 머리가 빠끔히 올라와 입을 쩍 벌렸으나, 마음이 급해진 사내는 이를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이 머리에서는 분홍빛 기체가 뿜어져 나와 주위의 먼지 속에 섞여들며 소리 없이 대머리 사내의 허리를 감쌌다.

    전력으로 공법을 운공하던 사내는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난다 싶은 순간, 눈앞이 빙빙 돌면서 힘이 쑥 빠져나갔다. 자연히 체내 법력의 흐름도 느려지면서 자모검의 푸른빛도 금세 약해졌다.

    “독!”

    사내는 깜짝 놀라 혀끝을 꽉 깨물었다.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며 잠시나마 정신이 들었고, 그 틈에 법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맹독을 억누르려 했다.

    그러나 그의 몸속에 침입한 맹독은 놀랍게도 전혀 막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빠르게 법력을 따라 온몸 구석구석까지 빠르게 퍼져나갔다.

    대머리 사내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어닥쳐 곧장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채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힘을 잃었고, 눈앞에는 분홍빛 광채가 줄줄이 떠올랐고, 강렬한 현기증이 머릿속을 덮쳐왔다.

    쿵!

    그는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한 줄기 수인이 날아와 사내의 목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피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대머리 사내는 순식간에 황천길로 떠났다.

    심협은 사내의 시체를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을 죽이려 했으니 자신도 사정을 봐줄 이유가 없었다.

    땡그랑!

    주인의 법력을 잃고 검광이 사라진 자모검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심협은 결인한 손을 휙 끌어당겨 자모검을 수거했다.

    이 비검은 푸른 빛이 영롱했고, 촉감이 얼음처럼 차갑고 매끄러웠으며, 법력의 파동이 간간이 넘실거려 확실히 그의 금도보다 훨씬 상품이었다.

    그는 슬쩍 훑어보고는 능숙하게 손바닥을 뒤집어 비검을 임랑환에 챙겨 넣었다.

    심협과 대머리 사내의 싸움은 순식간에 마무리됐고,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엽중과 청삼의 사내 역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분명 우세를 점하고 있던 대머리 사내가 왜 갑자기 비명횡사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감히 우리 벽수문의 장로를 죽이다니! 목숨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엽중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는 노기를 띠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심협은 놀라기는커녕 도리어 내심 기뻤다. 그는 뒤로 물러서면서 결인을 맺었다. 그러자 줄곧 허공에 뜬 채 그의 곁을 지키던 금도가 빛을 번쩍이며 적에 맞서려는 듯했다. 다만 이 칼 위에는 방금 상품 법기인 자검에 휘감겼을 때 생긴, 긁힌 자국이 몇 줄 나타났다.

    “엽형, 조심하시오. 그자는 독을 쓰는 데에 능한 듯하니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됩니다.”

    청삼 사내가 주의를 주었다. 그는 무춘의 존재를 감지하지는 못했으나, 명문대파 출신답게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엽중은 분노에 가득 차 있었지만 이성을 잃지는 않았기에, 그 말을 듣고는 즉시 멈춰 서서 눈을 부릅뜨고는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눈이 멀어 버릴 듯한 푸른 빛과 함께 문짝만 한 푸른 개산월(開山鉞)이 튀어나와 산을 허물고 바다를 가를 기세로 심협의 머리를 베려 했다.

    하지만 거대한 개산월이 채 닿기도 전에 한 줄기 광풍이 휘몰아쳤다. 바람은 칼처럼 세차고 날카로워 피부를 가를 기세로 반경 십여 장 안의 먼지와 독기를 전부 날려 보냈다.

    “상품 법기!”

    심협은 동공이 움츠러든 채 발에 달그림자를 일렁이며 단숨에 예닐곱 장을 물러났다.

    쾅!

    굉음과 함께 개산월이 방금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내리찍으면서 흙먼지가 일었고,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 순간, 청삼의 사내가 다른 쪽에서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는 끄트머리에 불꽃처럼 붉은 보석 한 알이 박힌 비취색 옥여의가 들려 있었다.

    사내가 손을 휘두르자 비취색 여의가 녹색의 기다란 무지개로 변하여 심협을 공격해왔다. 이 녹색 무지개에는 개산월 같은 예리함은 없었지만, 뿜어내는 영압은 훨씬 위였다.

    심협의 낯빛이 굳어졌고, 그는 계속해서 사월보를 시전해 줄줄이 잔상을 드리운 채 멀리 날아가면서 왼손을 결인하여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금도가 녹색 무지개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금도는 금빛을 번득이면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자 주위로 1장에 이르는 거대한 금도의 허상이 생겨나 녹색 무지개를 매섭게 내리쳤다.

    퍼펑!

    폭발음이 울리면서 커다란 금도의 허상이 터져 나갔고, 그 안의 금도 또한 산산조각 나며 광풍을 일으켰다.

    녹색 무지개는 잠깐 멈춰 섰고 속도 또한 눈에 띄게 느려졌으나, 멀쩡히 날아왔다.

    “하앗!”

    심협은 기합을 지르며 녹색 무지개에 한 손을 내리꽂았다. 그러자 물줄기가 날아와 순식간에 길이가 몇 장에 이르는 거대한 칼을 이루었고, 줄줄이 푸른 빛이 그 위를 휘감은 채 손바닥을 따라 녹색 무지개로 향했다.

    금도의 폭발로 생겨난 광풍이 단숨에 잘려나갔다. 동시에 거대한 물의 칼은 순식간에 몇 장을 뛰어넘어 녹색 무지개 위를 사납게 베었다.

    콰쾅!

    굉음과 함께 물의 칼이 터져나갔다. 그러나 녹색 무지개 또한 마침내 부서지면서 푸른 여의로 변해 날아갔다.

    심협은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한 걸음 물러났으나, 그 와중에도 오른손을 결인하여 번쩍 치켜들었다.

    노란 빛 한 줄기가 심협의 손에서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 빛이 향한 곳은 비취색 여의가 아니라 청삼의 사내였다.

    거의 순식간에 청삼 사내의 머리 위에 나타난 것은 바로 오악진형인이었다.

    오악진형인 위에서는 빛이 연이어 번쩍였고, 황토색 산 그림자 다섯 개가 나타나 태산같이 짓눌렀다. 심협은 이미 구구통보결로 오악진형인의 모든 금제를 제련했기에 산봉우리 허상 하나하나가 모두 앞서 동관이 불러냈을 때보다 훨씬 컸다.

    갑자기 온 하늘이 어두워졌고, 공기도 훨씬 무거워져 진짜 산봉우리들이 떨어져 내린 것만 같았다.

    청삼 사내는 안색이 급변하여 재빨리 옷소매를 털었다. 그러자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황토색 둥근 방패 하나가 나타났다. 방패 위에는 네 짐승의 부조가 조각되어 있었는데, 각각 청룡, 백호, 주작, 현무였다. 네 성수(聖獸)는 눈부신 노란 빛을 피워내며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뿜었다. 비취색 여의보다 더 상품임이 틀림없었다.

    방패는 나타나자마자 즉시 하늘로 솟구쳐 회전하며 다섯 산봉우리에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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