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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43화 (243/1,214)

243화. 뒤쫓아 오다

“주인님께 아룁니다. 우리 불가사리 일족은 원래부터 행동이 느리고 둔해서, 약간의 환술과 봉쇄술만 할 줄 압니다. 그래서 적을 만나면 일단 피하지요.”

백성이 얌전하게 답했다. 동시에 그의 몸에 하얀 빛이 한 겹 떠오르더니 몸이 빠르게 줄어들었고, 금세 잿빛 돌덩이로 변했다. 요기의 파동도 완전히 사라져 평범한 돌덩이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이게 바로 너희 불가사리 일족의 환술이로구나? 아주 훌륭해.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아!”

심협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어 그 위를 톡톡 두드렸다. 촉감도 평범한 돌과 똑같았다.

“이게 우리 불가사리 일족이 타고난 환술 신통력입니다. 아주 진짜 같죠. 게다가 우리 종족만 가진 봉쇄능력을 쓰면 자신의 요력을 봉인할 수 있지요. 그래서 알아챌 수 있는 요물이 거의 없어요!”

잿빛 돌에서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빠르게 커져 금세 다시 불가사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두 가지 능력을 결합하면 자신을 숨기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로구나. 그럼 너희에게는 적을 공격하는 데에 쓸 수 있는 능력은 없느냐?”

심협이 기대를 머금고 다시 물었다.

“적을 공격하는 데에도 이 두 능력을 씁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살아 있는 게 없어서 보여드릴 수가 없네요.”

백성도 이제 긴장이 많이 풀린 듯한 목소리로 땅 위에 반듯이 누워 있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야 쉽지.”

심협은 몸을 돌려 쌩하니 날아갔다가 곧 다시 돌아왔는데, 오른손에는 검은 악어 꼬리를 붙잡고 있었다. 이 악어도 요족이지만, 지닌 요기가 매우 옅어서 연기기에도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더욱이 악어는 심협이 지닌 강력한 법력 파동을 감지하고는 바들바들 떨며 아예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 악어를 상대로 보여주겠니?”

심협은 악어를 백성 앞에 내던지며 말했다.

악어는 땅에 떨어지자마자 재빨리 달아나려 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백성이 입을 벌리고 하얀 빛을 뿜어내 정확히 악어를 맞혔다.

악어는 곧 온몸이 안개처럼 하얀 빛에 한 층 감싸이더니 빠르게 변형되어 눈 깜짝할 새에 작고 하얀 불가사리로 변했다. 작은 불가사리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꼼지락거렸으나, 안타깝게도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건……? 다른 생명체를 강제로 변형시키는 것인가?”

심협은 정말로 깜짝 놀랐다. 악어는 모습만 변한 게 아니라 몸에 지닌 요기의 파동도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요력까지도 봉인된 것이 분명했다.

“불가사리 일족의 능력을 다른 생명체에게 쓴 것뿐입니다. 별로 특별할 건 없지요. 우리는 보통 이 능력으로 상대방의 행동을 제약하고, 그 틈에 도망가지요.”

백성이 답했다.

“왜 도망치려 하느냐? 상대가 이미 이렇게 됐는데 왜 기회를 틈타 반격하지 않고?”

심협은 놀라워하면서도 이해가 가질 않아 물었다.

“이건 결국 환술일 뿐이지 진짜로 상대의 몸을 불가사리로 바꾸는 게 아니거든요. 그들의 육신에는 여전히 방어력이 남아 있고, 우리 불가사리족에게는 별다른 공격력이 없으니 당연히 빨리 도망치는 게 좋지요.”

백성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구나.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야.”

심협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상대를 강제로 변형시키는 이런 능력은 사실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갑자기 다른 형태로 변해버린다면 제아무리 침착한 사람이나 요괴라 해도 한동안 당황해 쩔쩔맬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불가사리족의 이런 능력은 상대의 수련 경지까지 봉인해버리니, 그야말로 상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만약 불가사리족에게 강력한 물리적 공격 수단이 있었더라면 그들은 진작 바다를 휩쓰는 종족이 되었을 터였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터였다. 백성은 그의 통령수가 되었으니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면 어지간한 강적은 물리칠 자신이 있었다.

“백성, 너희 불가사리 일족의 능력은 상대를 얼마나 오랫동안 강제로 변형시킬 수 있느냐? 어떤 경지의 적수이든 효과가 있는 것이냐?”

심협은 잠깐 생각해본 뒤 물었다.

“길면 1각 정도까지 변형시킬 수 있는데, 수련 경지가 저를 훨씬 뛰어넘지만 않으면 통할 거예요. 예전에 응혼 초기 바다뱀이 저를 노린 적이 있는데, 이 능력으로 그를 몇 번 호흡할 동안 봉인하고 필사적으로 벗어나 석굴로 숨어 들어서 화를 면했거든요.”

백성은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운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응혼기 요족도 봉인할 수 있다고!”

심협은 그 말에 감탄했다. 비록 몇 번 호흡할 동안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백성, 네 능력은 매우 쓸모 있으니, 앞으로 적을 만나면 도움을 좀 청하마.”

심협이 진지하게 말했다.

“주인님, 그런데 저는 육지에 올라오면 완전히 꼼짝도 할 수 없는걸요? 게다가 제 몸은 아주 약해서 작은 공격에도 중상을 입을 수 있고요. 아, 절대로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말은 그렇게 했으나 백성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걱정하지 마라. 내 너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테니까. 그때 가서 너는 내 지시를 듣고 그 변형 능력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기만 하면 돼.”

심협이 토닥이자 백성은 그제야 조금 안심했다.

이후 심협은 백성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통령도를 열어 그를 돌려보냈다.

두 번 연속으로 마음에 드는 조력자와와의 통령에 성공한 그는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바깥으로 나가보니 하늘은 온통 캄캄했고, 칠흑 같은 밤하늘에는 몇 줄기 별빛이 반짝였다. 참으로 고요하고 평온해 보였다.

심협은 바닷바람이 섞인 공기를 한 모금 들이마셔 흥분을 천천히 가라앉혔다. 그리고 막 돌아가 수련하려는데, 멀리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빠르게 다가왔다.

심협은 굳은 얼굴로 몸을 날려 근처의 커다란 바위 뒤에 숨었다.

잿빛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가까워졌는데, 자세히 보니 묘령의 소녀였다.

“사 도우, 드디어 오셨군요.”

심협이 바위 뒤에서 걸어 나오며 인사를 했다. 소녀는 바로 사우흔이었다.

“심 도우, 역시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습니다.”

사우흔은 심협을 보고는 긴장이 풀린 목소리로 가볍게 웃었다.

“미안합니다. 사 도우께서 주의를 줬는데도 제가 얌전히 있지 못하고 소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도망쳐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협은 겸연쩍은 얼굴로 포권을 했다.

“괜찮습니다. 사람들에게 들어 보니 벽수문의 엽중이 세를 믿고 핍박했다지요? 저였더라도 참지 않았을 거예요. 어쨌든 일은 터졌으니 우주에 오래 머물기보다는 빨리 뜨는 게 좋겠어요.”

그때였다. 어디선가 싸늘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뜬다고? 너희는 어디도 갈 수 없다!”

뒤이어 사람 그림자가 느릿느릿 걸어 나왔는데, 놀랍게도 엽중이었다.

그의 뒤에서 10여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 벽수문 제자들은 빠르게 흩어져 심협과 사우흔을 중간에 두고 둘러쌌다.

전에 만났던 보타산의 청삼 사내는 엽중 옆에 서 있었는데, 심협을 바라보는 눈빛이 더없이 싸늘했다.

“나를 미행했구나! 어찌 그럴 수가……?”

사우흔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흥! 우리 벽수문의 능력을 어찌 너희 산수 따위가 상상할 수 있겠느냐?”

머리가 살짝 벗겨진 푸른 옷의 사내가 콧방귀를 뀌며 비웃는 투로 말했다. 그는 허리춤에 작은 청록색 주머니를 하나 차고 있었는데, 때때로 불룩 부풀어 오르며 몇 번 꿈틀대는 것이, 안에 어떤 생물체가 들어 있은 것 같았다.

심협의 시선은 그 작은 주머니에 잠시 머물렀는데,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기색이었다.

“네 이놈! 빨리도 달아났더구나. 내가 보낸 사람이 네놈을 놓쳤으니 말이야. 네놈이 이 계집과 함께 방시에 들어갔다는 걸 알아내지 못했더라면 정말로 놓치고 말았겠지.”

엽중은 사우흔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심협만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래서, 뭘 어쩔 생각이오?”

심협은 여전히 침착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형, 저자는 그대의 심기를 거슬렀지요. 어찌 처리하시렵니까?”

엽중은 보타산 청삼 사내의 비위를 맞춰주는 듯한 투로 말했다.

“엽형,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여기 온 것은 그저 이 사매 대신 그 두 가지 영재를 되찾아오기 위해서일 뿐, 이 둘을 어찌 처리할지는 당연히 엽형이 결정할 일이지요. 다만, 저들은 귀문(貴門)의 규칙을 무시하고 방시에서 소란을 피웠으니 엄히 처벌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지 못할까 염려되는군요.”

“무형 말씀이 지당합니다. 여봐라, 저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엽중이 끄덕거리고는 고개를 돌려 담담히 분부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벽수문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며 일제히 움직였고, 이내 십여 개의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비검과 비도 등 갖가지 부기들로, 살기등등하게 심협과 사우흔을 공격해왔다.

그중 뱀의 몸처럼 약간 휘어진 푸른 비검이 뿜어내는 빛이 가장 밝았는데, 법기 등급임이 틀림없었다. 이를 꺼낸 사람은 바로 아까 그 대머리 사내였다.

심협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게 어디 잡으러 온 것인가! 이들은 자신들을 죽여 없앨 계획인 것이 분명했다.

“물러서시오!”

심협은 사우흔을 휙 끌어당겨 뒤로 물러나면서 손을 들어 휘둘렀다. 그러자 두 무더기 재가 손에서 흩날려 두 발 위에 달라붙었다. 저들이 나타났을 때부터 몰래 신행갑마부 두 장을 꺼내 효력을 발휘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슈욱!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두 줄기 검은 그림자로 변해 쏜살같이 몇 장을 물러남으로써 부기들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콰르릉! 쾅!

부기들의 검광이 방금 전까지 두 사람이 서 있던 곳을 때리면서 지면이 크게 흔들렸고, 연기와 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심협은 이 상황을 보면서 왼손은 뒷짐을 진 채 오른손을 결인하여 끌어당겼다.

촤라락!

기이한 소리와 함께 기다란 물줄기가 근처 호수에서 날아와 빙글 한 바퀴 돌더니, 몇 장 높이의 물결이 되어 그들을 바짝 뒤쫓던 십여 명의 벽수문 제자들을 내리쳤다.

거의 동시에 가느다란 물줄기가 뒤쪽 지면을 뚫고 나와, 그의 왼손을 휘감으면서 사람 머리통만 한 물의 공을 이루며 빠르게 회전했다. 이 물 공의 안에는 검은빛이 스쳤고, 그 안에서 검은 물구멍이 나타났다.

심협이 왼손을 내려치자 물의 공과 그 안의 검은 물구멍 모두 땅바닥에 녹아들어 사라져버렸다.

그의 연이은 동작들은 은밀했던 데다가 거대한 물결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벽수문 일행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옆에 있던 사우흔만이 이를 볼 수 있었는데, 그녀의 눈에는 약간의 당혹감이 어렸지만 캐묻지는 않았다.

“우리 벽수문 제자들 앞에서 어수지술(御水之術)을 쓰다니, 그야말로 강가에서 우물을 파는 격이구나! 와하하!”

대머리 사내는 거대한 물결이 휘몰아쳐 오는 것을 보며 껄껄대더니, 재빨리 두 손을 결인했다. 그의 두 손에 푸른 그림자가 어른거렸고, 파도 같은 푸른 빛 두 줄기가 날아가 거대한 물결을 막으며 옆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물결에 담긴 법력은 끊어지지 않았다. 물결과 끈끈하게 융합되어 있어 대머리 사내의 인수결(引水訣)은 마치 개미가 커다란 나무를 흔들려 든 것처럼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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