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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42화 (242/1,214)
  • 242화. 싸움을 못해요

    딩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많은 푸른 광점이 떠올라 주위를 둥둥 떠다녔고, 그중 가장 큰 광점은 세숫대야만 해 무척 눈길을 끌었다.

    ‘난 지금 동해 근처에 있으니, 저 푸른 빛 덩어리는 분명 동해일 거야. 동해에는 요족이 수없이 많으니 여기서 골라야지. 경지가 좀 높은 요괴와 통령할 수 있는지 봐야겠군.’

    심협은 신식을 뻗었다. 그러자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탁 트인 푸른 공간이 나타났다. 그는 이 공간에서 경지가 높은 요괴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동해에는 확실히 요물이 많아서, 머지않아 벽곡 후기의 요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허나 이 녀석은 안 돼. 기운을 보니 이제 막 벽곡 후기를 돌파했을 뿐이야.’

    그는 잠깐 요괴의 기운을 감지해본 뒤 곧장 다른 요괴를 찾았다. 그리고 금세 또다시 벽곡 후기 요괴 한 마리를 붙잡았다.

    ‘이 녀석……도 안 돼. 기운의 파동을 보아히니 힘 위주의 요물인 것 같군.’

    심협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요물들을 수색했고, 한참 뒤에는 마침내 요괴를 발견했다. 기운이 벽곡기 정점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요기의 파동이 복잡하고 기이하여 앞서 만났던 요물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이 녀석이다!’

    심협은 즉시 통령역요의 술법을 발휘했다. 그러자 무수한 검은 부적 문양들이 맞은편으로 세차게 흘러갔다.

    “누가 감히 이 어르신을 귀찮게 하는 것이냐!”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맞은편에서 전해져왔다. 그 요물은 영지가 이미 크게 트인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방촌산 제자인데, 도우가 나와 통령계약을 맺을 의향이 있는지 모르겠소. 나는 도우를 부려먹을 생각은 전혀 없고, 그저 나를 도와줄 이를 찾고 싶을 뿐이오.”

    심협은 잠깐 망설였다가 그와 소통을 시도했다.

    “무엄하다! 고작 인간족 수사 따위가 감히 이 어르신과 통령을 하다니!”

    맞은편의 요괴는 벌컥 성을 내며 날카로운 고함을 질렀다.

    심협은 속으로 ‘과연’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포기한 게 아니라, 더 이상의 소통 없이 전력으로 통령술을 시전한 것이다.

    요괴는 분노에 가득 차 연신 울부짖으며 거세게 저항했다.

    꿈속의 경험을 통해 심협은 통령역요 술법에 능숙했고, 얼마 전 진룡의 정혈을 마신 뒤로는 몸에 희미하게나마 용의 기운까지 품고 있었기에, 맞은편의 요괴를 압박하기가 더 수월했다.

    한나절쯤 지나자, 마침내 요괴가 버티지 못하고 굴복했다. 그 무렵, 심협의 체내에 남은 법력은 1할 정도였다.

    심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재빨리 통령술을 운공하여 통령 표식을 응집해낸 뒤 요괴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새로운 통령계약을 맺은 뒤, 심협은 통령술 운공을 마치고 눈을 감은 채 운기조식하며 재빨리 법력을 회복했다.

    잠시 후, 눈을 뜬 그는 결인하여 물줄기를 불러낸 뒤, 손을 그 안에 집어넣고 조용히 소환술을 운공했다.

    곧 눈앞의 물 덩어리가 진동하더니, 그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며 가운데에 검은 물구멍이 생겨났다.

    “열려라!”

    심협이 낮게 외치자 검은 물구멍이 크게 불어나더니, 분홍빛 요기 한 가닥이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키가 3장에 이르는 요괴가 구멍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이 요괴는 바닷가의 해모충(海毛蟲)처럼 생겼지만, 몇 곱절은 컸고, 상반신은 분홍빛이었으며, 그 위로 가시 같은 뼈가 가득 자라나 있었다. 하반신은 부드러워 보였는데, 짧고 작은 발들이 줄지어 자라 있었고, 머리에는 섬뜩한 녹색의 작은 눈 한 쌍이 가늘게 실눈을 뜬 채 심협을 빤히 보고 있었다. 입도 꽉 닫힌 채로 때때로 몇 번 꿈틀거릴 뿐이었다.

    “나는 심협이라 하오. 귀하는 이름이 어찌 되시오?”

    심협은 눈앞의 요괴를 훑어보며 물었다. 외형이 특이한 것으로 보아 기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을 게 분명했다.

    “흥! 이놈아, 인간족의 그런 비열하고 파렴치한 통령술로 이 어르신을 제압했다고 해서 이 어르신이 고개를 조아리고 명령에 따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 동해 수족은 너의 인간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해모충이 씩씩대며 말했다.

    “아까 말했을 텐데? 귀하를 부려먹을 생각은 없다고 말이오. 그저 최근 흉악한 무리들이 나를 노리고 있어서 대비를 좀 해두려는 것뿐이오. 조만간 계약을 해지할 생각이고…….”

    심협은 눈썹을 찡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흥!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으냐? 인간족은 간교하기 짝이 없지.”

    해모충은 콧방귀를 뀌었는데, 가느다란 눈에는 교활한 빛이 스쳐 지났다.

    “믿고 말고는 그대 마음이나, 내 통령술은 고수께서 전수해준 것이니 내가 죽으면 그대도 따라서 순장 당하게 될 거요. 그러니 내 충고하건대, 허튼 수작 부릴 생각일랑 마시오.”

    심협의 말투도 싸늘하게 식었다.

    해모충은 심협의 말에 마치 거짓말을 하려다가 들킨 것처럼 몸을 떨더니, 잔뜩 골이 나서는 눈을 부릅뜨고 심협을 노려보았다.

    “지금 우리는 한배를 탔으니 힘을 합치는 게 낫소. 난 통령술로 귀하를 혹사시키고 싶지 않으니, 귀하도 내가 그리하도록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하오.”

    심협의 이어진 말에 해모충은 한 쌍의 작은 눈으로 여전히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잠시 뒤에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널 돕게 하려면 상의할 수야 있지. 허나 네놈이 먼저 내 질문에 답을 해줘야 할 것이다.”

    “말하시오.”

    심협이 아래턱을 슬쩍 들어올렸다.

    “네 몸에 어찌 용족의 기운을 지닌 것이냐?”

    해모충의 눈에 엄숙한 표정이 스쳤다.

    “나는 동해의 구태자 오홍과 아는 사이요. 그가 내게 용혈을 조금 주었지.”

    심협은 잠시 주저했으나, 이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동해 용족은 동해의 왕인지라 그 일을 말하는 게 이 해모충 요괴를 굴복시키는 데 더 유리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말에 해모충 요괴의 표정이 변했고, 눈빛도 흔들렸다.

    “귀하가 구태자의 벗이라 하니, 귀하에게 의탁하는 것도 이 어르신을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니겠구려.”

    그 와중에도 자신을 어르신이라 칭한 것이 우습긴 했으나, 어쨌든 해모충 요괴는 잠시 후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좋소. 그럼 나도 약속하리다. 앞으로 반드시 도우를 소중히 대할 것이고, 그대와 나는 서로 평등한 벗이 될 것이오.”

    심협은 웃음을 띠며 공수했다. 그리고 해모충은 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귀하의 이름은 무엇이오? 어떤 능력을 지녔소? 이 심모가 알아야 계획을 세우기 좋아서 말이오.”

    심협이 물었다.

    “그냥 무춘(茂春)이라고 부르면 되오. 나의 주된 능력은 두 가지요. 하나는 땅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지.”

    해모충 무춘은 그렇게 말하더니 몸을 구부렸다. 그리고는 빠르게 꿈틀거리며 순식간에 땅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잠시 후, 몇 장 너머의 지면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난데없이 검은 구멍 하나가 생겨났고, 그곳에서 무춘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좋소.”

    심협이 두 눈을 반짝이며 칭찬했다.

    “내 두 번째 능력은 독을 뿜는 거요.”

    무춘은 심협의 칭찬에 득의양양해 말하더니 입을 벌려 뭔가를 내뱉었다. 그러자 분홍빛 안개 한 가닥이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심협은 멀리 서 있다가 달콤한 향기를 맡게 됐는데, 그 순간 몸이 휘청하고 흔들렸으며, 갑자기 어지럽고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화들짝 놀라 급히 뒤로 물러서는 동시에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전신에 기혈이 흐르도록 했다. 그제야 어지러움은 천천히 물러갔다.

    “내 독기는 아주 맹렬해서 숨을 참아도 피부에 스며들어 침투할 수 있소. 당신네 인간족의 육체는 연약하여 특별한 체질이거나 독에 대처하는 전문적인 공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내 독에 쉽게 쓰러지겠지.”

    무춘이 도도하게 말했다.

    “좋소. 수고하셨소, 무춘.”

    심협은 내심 기뻐하며 결인하여 통령도를 열고 해모충 무춘을 돌려보냈다.

    해모충의 두 가지 능력은 모두 무척 쓸 만했다. 특히 독기 공격은 자신도 조금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다만 한 가지 옥에 티라면, 그 독기가 형체와 빛깔, 냄새가 있다 보니 상대에게도 쉽게 발각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나름의 해결책은 있었다. 밤에 내뿜거나, 싸울 곳에 미리 연기를 피워두면 독기의 존재를 잘 덮어 가릴 수 있을 터였다.

    강력한 요괴를 통령해내고 나니, 심협은 흥분을 이기기 힘들었다. 사우흔이 오기 전에 한 마리 더 통령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통령역요 술법에는 제한이 있는데, 지금 세 마리로 이미 그 한계에 이르렀다. 소귀나 낭생의 통령계약을 해지해야만 다른 요물과 계속 통령할 수 있을 터였다.

    문득 꿈속에서 소귀가 배신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그러자 살의가 일었다.

    ‘만약 지금 소귀를 죽여 버린다면 백소운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소귀가 없었으면 그들은 그날 검문관을 탈출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어쩌면…… 아니, 됐다.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게 돼 있지. 고민해봐야 소용없다.’

    심협은 고개를 젓고는 통령술을 운공하여 소귀와 소통했다.

    그는 상대를 한 차례 위로한 뒤 끝내 그와의 통령계약을 해지했다.

    낭생은 전투력이 제법 훌륭하니 남겨두기로 했다.

    이후, 심협은 가부좌를 튼 채 호흡을 가다듬으며 소모된 법력을 회복했다.

    한 시진 정도가 지난 뒤 법력이 모두 회복되자, 그는 인을 맺어 물결을 소환하고 다시 통령역요 술법을 썼다. 그리고 그의 신식은 동해의 범위에 들어가 새로운 요괴를 찾았다.

    한참 후에야 심협은 벽곡기 정점인 데다가 기운도 특별한 요괴를 또 한 마리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요괴의 기운은 무춘과는 전혀 달라서, 그에게 일종의 진법 금제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게 무슨 요물이지? 금제술(禁制術)에 능한 건가?’

    심협은 잠시 생각해본 뒤, 좋은 조력자일지도 모르니 통령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는 즉시 통령역요의 술법을 운공하여 검은 부적 문양을 무수히 쏟아내며 상대방에게 침투했다.

    “누구야? 누가 나를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야?”

    심협은 순간 당황했다. 건너편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너무도 앳되었던 것이다.

    ‘설마…… 유아기 요괴란 말인가?’

    하지만 그는 손을 멈추지 않고 계속 통령술을 운공해 상대의 정신을 압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너편의 요괴는 화가 나서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실력이 제법이었으나, 저항하는 힘은 아주 굼떴고, 짜임새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자 와앙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요괴는 굴복했다.

    ‘우, 울었어? 도대체 무슨 요괴지?’

    심협은 멍하니 있다가 다급히 정신을 차리고는 통령 표식을 응결하여 상대에게 전달한 뒤, 소환술을 시전했다.

    물 덩어리가 생겨나더니 그 안에서 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탁자만 한 요괴 하나가 안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심협은 또다시 멍해졌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커다란 불가사리였다. 온몸은 뽀얀 젖빛에 한복판은 엷은 자줏빛을 띠었으며, 그 위로 가늘고 긴 입과 커다란 눈이 한 쌍 달려 있었다. 그 눈은 눈물을 가득 머금었는데, 잔뜩 겁먹은 눈빛이었다.

    ‘동해는 정말 넓기도 하구나. 이런 요괴도 다 있고…….’

    심협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보시오, 수족 도우. 이름이 무엇이오?”

    “주인께 아룁니다. 저…… 저는 백성(白星)이에요.”

    커다란 불가사리는 쭈뼛쭈뼛 대답했는데,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심협은 상대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눈썹을 으쓱 치켜세웠다가, 곧 상대가 자신의 통령역요 술법에 겁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성이로구나. 무서워할 것 없다. 난 널 결코 해치지 않아. 그저 함께 싸울 동료를 찾으려는 것뿐이란다. 그래서 너와 통령계약을 맺은 것이고, 머지않아 계약을 해지할 생각이다.”

    그가 웃으며 말하자 백성의 표정은 조금 풀어졌으나, 이내 더욱 겁을 집어먹은 듯했다.

    “하지만 주인님. 저…… 저는 싸움을 못해요.”

    “너의 경지는 이미 벽곡기 정점에 이르렀는데, 어찌 싸울 줄을 모른단 말이냐? 그럼 위험이 닥치면 어떻게 하고?”

    당황한 심협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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