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41화 (241/1,214)
  • 241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나의 응심조(凝心爪)를 뚫다니, 제법이구나. 어쩐지 감히 우리 벽수문의 구역에서 소란을 피운다 했더니 과연 믿는 구석이 있었군.”

    엽중은 노기 어린 얼굴로 싸늘하게 비웃더니 성큼성큼 압박해왔다. 그러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곁에 서 있던 푸른 옷의 사람들도 이동해 심협을 은근히 둘러쌌다.

    “소란을 피운다고? 나는 그저 방시의 규칙을 따라 물건을 샀을 뿐이오. 귀하가 이러는 것은 머릿수에 기대어 나의 영재를 강제로 뺏고자 함이오?”

    심협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그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저들은 수가 많긴 했지만 다들 연기기 경지였다. 심지어 엽중 역시 그와 같은 벽곡 중기에 불과했다.

    “무엄하다! 감히 완구성에서 그리 말하다니! 이분이 어떤 분인지 알기나 하는 것이냐?”

    엽중 옆에 있던 푸른 옷의 중년 사내가 노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 그 말인즉, 이분의 신분이 대단하니 나는 때리면 때리는 대로 얻어맞고, 얌전히 영재를 갖다 바치지 않으면 이 방시에서 살아 나갈 수 없다, 이 말이오? 그리 말하니 도대체 댁들의 신분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구려.”

    심협이 조소를 숨기지 않자 푸른 옷의 중년 남자는 말문이 막혀 순간 대꾸할 말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네, 네놈이 감히…….”

    그 무렵, 광장의 산수들이 이 소란 통에 분분히 모여들어 수군대기 시작했다.

    엽중과 푸른 옷의 중년 남자는 점점 낯빛이 험악해졌다. 이 방시는 그들 벽수문의 돈줄인 만큼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진다면 분명 장사에 영향을 끼칠 것이고, 종문에 돌아가면 벽수문의 문주가 절대로 가벼이 넘기지 않을 터였다.

    그때, 백의의 소녀 옆에 있던 청삼 차림의 사내가 가볍게 웃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하하, 도우께서는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기는 방시로 물건을 사고파는 곳 아니오? 그러니 우리 가격을 따져봅시다. 주인장, 그대는 저 두 가지 영재를 얼마에 팔았소? 그 두 배를 낼 테니 우리에게 양보해줄 수 있겠소?”

    심협은 미간을 팩 찌푸렸다. 그는 이미 선옥을 지불했지만, 만약 주인장이 마음을 바꾼다면 상대방이 기회를 틈타 일을 저지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된다면 상황은 퍽 귀찮아질 터였다.

    “저…… 죄송합니다만, 이 두 가지 영재는 제가 이미 이쪽 도우께 팔았습니다. 이미 선옥을 받았고요. 돈과 물건을 확실히 주고받으면 다시 무르지 않는다는 방시의 규칙에 따라, 저 두 물건은 이미 소인의 소유가 아니게 되었습지요.”

    외팔이 주인장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그리 말하자 심협은 그에게 약간의 존경심이 생겨났다.

    하지만 청삼 차림의 사내는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가, 이내 다시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심협에게로 눈을 돌렸다.

    “도우, 우리 두 사람은 보타산 문하의 제자들이오. 그 두 재료는 이(李) 사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인데, 내 값을 세 배로 쳐줄 테니 우리에게 양보해 주시는 게 어떻겠소?”

    “보타산!”

    사내의 말이 끝나자 군중 틈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백의의 소녀는 사내가 사문을 드러낸 것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아미를 살짝 찡그렸지만, 저지하지는 않았다. 그저 심협의 손에 들린 두 영재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한편, 청삼의 남자는 주위의 반응에 만족한 듯 다소 오만한 미소를 지었는데, 심협이 느끼기에 마치 내려다보는 듯한 기색이었다.

    ‘보타산…….’

    심협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궁장 차림 여인이 섭채주를 데려간 뒤로 그는 보타산이 어떤 곳인지 사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아쉽게도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다행히 꿈속에서 만난 백소운에게서 보타산의 내력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가 예전에 추측했던 것처럼 보타산은 남해 관음대사(*觀音大士: 관세음보살)의 도량이었다. 뿐만 아니라 더없이 거대한 종문으로, 관음보살의 가르침을 받들어 청심영성술(淸心寧性術)을 수련하며 오행주술에 더 정통했다. 명성과 세력, 실력, 무엇으로 보나 보타산은 화생사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니 보타산은 명문정파라 할 만했지만, 궁장 차림 여인이 일방적으로 섭채주를 데려간 후로 심협은 보타산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미안하오. 이 두 영재는 나도 오랫동안 찾던 물건이라 팔 생각이 없소.”

    심협은 웃으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자 청삼 사내는 화가 치밀었는지 낯빛을 굳히고는 싸늘하게 말했다.

    “그런 하잘것없는 재료에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어 보이는구려.”

    보타산의 지위는 숭고하여 모두가 우러러보았고, 그는 줄곧 이를 영광으로 여겨왔던 터였다. 사문의 이름만 대면 상대가 누구건 공손해지기 마련이었는데, 뜻밖에 오늘 한낱 산수 같아 보이는 자에게 무시를 당하니 분노가 치민 것이다.

    “오, 귀하의 말뜻은 나를 죽여서라도 보물을 빼앗겠다는 것이오? 그게 보타산의 방침인 모양이지? 정말이지 내 견문이 넓어졌습니다그려.”

    심협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볍게 비웃었다. 심지어 일부러 목소리를 조금 높인 터라 구경꾼들의 수군거림도 조금 더 커졌다.

    마침 청삼의 남자도 자신의 말이 부적절했다고 여겨 내뱉자마자 후회하던 참인데 심협이 비꼬기까지 하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고, 몸에서도 푸른 빛이 번득였다.

    “무(武) 사형,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백의의 소녀가 손을 뻗어 청삼 사내의 앞을 가로 막으며 조용히 꾸짖었다.

    무 사형이라 불린 사내는 소녀를 흘끗 보고는 억지로 분노를 억누르며 고개를 돌렸다.

    “도우, 방금 무 사형은 심사가 좋지 않아 내키는 대로 말한 것뿐이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귀하의 존함이 어찌 되십니까? 어느 문파를 계승하셨는지요?”

    백의의 소녀는 심협을 바라보고는 옷섶을 가다듬고 예를 갖추었다.

    “저는 일개 산수라 문파가 없습니다. 이름은 더욱 입에 올릴 가치가 없으니 굳이 말할 것도 없지요.”

    심협도 포권하며 예를 갖췄지만, 바보가 아닌 만큼 당연히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도우께서 말하길 원치 않으시니, 소녀도 당연히 강권할 수는 없지요. 허나 소녀는 그 두 영재가 꼭 필요합니다. 그러니 이리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의 췌맥단(萃脈丹) 한 병과 바꾸는 것이지요. 췌맥단은 법맥을 배양하는 효능이 있는 단약으로, 벽곡기 수사로서는 얻기 힘든 영약입니다. 수련 시간을 족히 10년 이상 절약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백의의 소녀가 푸른 약병을 하나 꺼내며 고운 소리로 말하자, 오히려 놀란 것은 무 사형이었다.

    “췌맥단! 사매, 그건 사부님이 방촌산에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바꿔 오신 진귀한 단약이다! 어찌 고작 영재 두 개와 맞바꿀 수 있단 말이냐?”

    허나 백의의 소녀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얼굴을 가리고 있는 심협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까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소? 이 두 영재는 저도 오랫동안 애타게 찾았던 물건이오. 그러니 바꾸지 않을 거요.”

    심협은 푸른 약병을 보고도 여전히 고개를 저었으나, 말투는 조금 누그러졌다.

    말을 마친 그는 더 이상 이들과 얽히고 싶지 않다는 듯 두 재료를 품에 챙겨 넣고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푸른 옷을 입은 벽수문 제자들 몇 명이 심협의 길을 막아섰다.

    “내 듣기로, 벽수문이 문파들을 엄히 다스리는 까닭에 완구 방시도 줄곧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어떤 싸움도 엄금한다던데……. 뜬소문이었던 모양이오? 아니면 자기들은 싸워도 괜찮다는 거요?”

    심협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차게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멀리 전해질 정도로 커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였다.

    길을 막은 사람들은 표정이 굳더니 엽중을 바라보았다.

    엽중은 소태라도 씹은 듯한 얼굴로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길을 막았던 벽수문 사람들이 심협에게 길을 터주었다.

    심협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빠른 걸음으로 좌판이 늘어선 광장을 떠났다.

    벽수문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두렵지 않다. 다만 계속 이곳에 남아 있으면 분명 위험해질 터였다. 그렇기에 즉시 방시 입구로 향했고, 금방 입구의 푸른 광문(光門)에 이르렀다.

    그는 잠시 망설이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술집을 바라보았다. 사우흔은 아직 방시에 있고, 두 사람은 술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만나기도, 그렇다고 그녀에게 전갈을 보내기도 적당치 않았다. 그랬다가는 벽수문에게 발각될 것이고, 그녀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됐다. 내가 방시에서 그리 큰 소란을 피웠으니, 분명 곧 사 도우의 귀에 들어가게 될 거야. 그녀는 영리하니 그게 나라는 걸 추측할 수 있겠지.’

    심협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광문에 발을 들여 놓았다.

    눈앞이 아득해졌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다시 외진 작은 골목이었다.

    심협은 그곳에 머물지 않고 또 다른 외진 곳을 찾은 뒤,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원래 입고 있던 옷은 불살라버렸다.

    수선계(修仙界)에는 본래 갖가지 괴상한 수법이 셀 수 없이 많은 법. 방금 방시에서 상대가 그에게 어떤 수작을 부렸을지 누가 알겠는가?

    옷이 완전히 타버린 것을 확인한 그는 빠르게 완구성을 벗어났고, 잠시 생각한 끝에 천갱 객잔 쪽으로 향했다. 그래야 사우흔이 자신을 찾아올 수 있을 테니까.

    심협은 곧장 천갱 객잔으로 향하지 않고 크게 우회했다. 도중에 작은 강을 지나게 됐을 때는 물속으로 들어가 피수결(避水訣)을 이용해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천갱 객잔은 고요했다. 직접 겪지 않았더라면 이곳에서 얼마 전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있었다고는 상상하기도 힘들 터였다.

    그는 천갱 객잔에 오래 머물지 않고 다시 천갱으로 향했다. 그리고 금세 지난번에 폐관했던 곳에 이르러 은폐된 곳을 찾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는 다소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벽수문과 보타산 제자들의 미움을 산 것이 두렵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그들의 보복에는 대비해야 했다.

    “허나 나는 막 벽곡 중기를 돌파한 터라 짧은 시간에 수련 경지를 더 끌어올리기는 힘들다. 실력을 상승시키려면 외부의 힘에 의지하는 수밖에…….”

    하지만 재료를 빠짐없이 모았다고는 해도 영화가 부족하여 아직 순양검배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도 방시에서 부적 재료를 샀으니 다행이지 뭔가.”

    그는 평평하고 커다란 바위를 찾아 부적에 필요한 재료들을 꺼내 올려놓았다. 이어서 두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부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 * *

    그는 이튿날 정오 무렵이 되어서야 손을 멈추었다. 방시에서 구입한 부적 재료들은 이미 다 써버린 후였다.

    성과는 만족스러웠다. 정신부 다섯 장, 쇄갑부 여섯 장에 신행갑마부와 청풍파장부를 각각 여덟 장, 아홉 장을 얻었다. 가장 등급이 낮은 소뢰부(小雷符)는 거의 서른 장에 이르렀다.

    “이 부적들이 좋기는 하지만 모두 보조용 부적이라 공격력은 약하다. 낙뢰부(落雷符)를 몇 장 얻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뇌우가 내리는 날씨가 아니니…….”

    심협은 혀를 차며 부적들을 하나하나 석합 안에 챙겨 넣은 뒤, 몸을 일으키려다가 우뚝 멈췄다.

    “아! 내가 왜 통령역요의 술법을 잊고 있었지? 벽곡기에 진입해 통령할 수 있는 숫자가 세 마리가 되었으니, 벽곡기 요괴 한 마리를 더 통령할 수 있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즉시 자리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곧 정, 기, 신은 절정의 상태를 회복했다.

    곧이어 그가 결인한 손을 흔들자 물줄기 하나가 허공에 응집되어 수인(水刃) 모양으로 변하더니 땅에 흙구덩이 하나를 팠다. 그리고 심협이 결인하여 끌어당기자 물줄기가 날아와 흙구덩이 안으로 향했다.

    심협은 물웅덩이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는 통령역요 술법을 운공했다. 그러자 눈앞이 곧 캄캄해지더니 신식의 공간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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