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계획을 바꾸다
심협이 의식을 집중하며 다시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자, 도자기병에서 또 한 방울의 용혈이 날아와 그의 입으로 흘러들었다.
영기가 스며들던 그 느낌이 다시 가슴과 배에 나타났고, 뜨거운 열기가 단전으로 쏟아져 들어오더니, 방금 전처럼 그에게 이끌려 임맥을 지나 백회혈까지 올라갔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맴돌던 법력이 마침내 한 걸음 더 나아가 머리 뒤쪽의 독맥 규혈(竅穴)로 돌진해, 뇌호(*腦戶: 뒷머리 우묵한 부분의 혈자리)혈과 아문(*瘂門: 뒷머리에 있는 경혈)혈을 지나 대추(*大椎: 목 뒤쪽 혈자리 중 하나)혈까지 곧장 내달렸다. 다만 이번에는 힘이 더욱 빨리 소모되어, 대추혈에 이른 뒤 다시 멈춰 서서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이를 지켜보던 심협은 결단을 내리고는 손바닥을 휙 들어 올렸다. 그러자 도자기병에 남아 있던 용혈이 전부 쏟아져 나와 그의 목구멍을 타고 단숨에 뱃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위잉!
심협은 머릿속이 한 차례 울리는 걸 느꼈다. 펄펄 끓는 열기가 순식간에 온몸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심협은 사지의 끝부분부터 정수리 머리카락 깊은 곳까지 전기가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쾌하기 그지없는 느낌에 그는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 힘은 곧 또다시 단전으로 몰려들었다가 분출되듯 힘차게 솟구쳐 나와 삽시간에 독맥에 있는 규혈들을 하나하나 관통했다. 그러자 예전에 응련했던 세 줄기 법맥도 따라서 파란 빛을 내뿜었다.
사방에서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천지영기가 심협의 몸 주변을 감싸고 깔때기 모양의 소용돌이를 이루더니 끊임없이 그의 몸속으로 영기를 끌어들였다.
심협은 온몸이 팽창하는 것 같기도 하고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괴로우면서도 왠지 모를 쾌감도 드는, 기이한 느낌이었다. 그는 신식을 굳게 지키면서 무명공법을 전력으로 운공하여 천지영기를 받아들이는 것과 몸 안에서 운화하는 속도를 점점 끌어올렸다.
잠시 후 심협의 옷은 땀에 푹 젖었고, 몸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마치 운무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 * *
“크아아아!”
길고 통쾌한 울부짖음에 이어 그림자 하나가 창문을 통해 튀어나오더니 천갱의 숲속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숲속을 빠르게 질주해 월아호 속으로 곧장 뛰어들었는데, 어찌나 빠른지 그 모습이 흐릿해 보일 정도였다.
호수에는 한바탕 물보라가 일었고, 그 사이로 사람 그림자 하나가 솟구쳐 올랐다. 반라의 몸을 드러낸 그는 바로 심협이었다.
그가 손을 들어 하늘을 찌르듯이 가리키니, 법력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그저 생각만을 했을 뿐인데도 발밑에서는 끓어오르는 것처럼 물거품이 일었다. 그러더니 굵직한 물기둥이 솟아 나와 그의 몸을 떠받친 채 천갱과 거의 같은 높이까지 치솟았다.
그는 물결 위에 선 채 멀리 객잔 쪽을 바라보다가, 숲속 고목의 우듬지에서 누군가가 가볍게 뛰어올라 빠르게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바로 사우흔이었다.
“심 도우는 역시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는군요. 겨우 3일 만에 벽곡 초기에서 중기로 접어들다니, 축하합니다.”
사우흔은 심협을 위아래로 한 번 훑은 뒤 포권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제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실은 오홍이 준 용혈의 효력이 강하고, 마침 제가 수련하는 물의 공법과 잘 맞은 것뿐입니다. 제 수련 경지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물을 다루는 힘도 강화시켜주었지요. 앞으로 물의 공법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심협도 아주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지요. 한데 용혈까지 줄 정도라니, 두 분 사이가 생각보다 돈독한 모양이군요?”
사우흔이 진심으로 찬탄하며 말했다.
심협은 씩 웃었을 뿐, 별다른 해명은 하지 않았다.
사실 그에게 가장 큰 수확은 용혈이 심신에 스며들면서 생기가 적잖이 회복되어, 수명이 적어도 10년 이상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약들을 찾으러 다닐 시간과 경지를 돌파할 가능성 모두 확연히 높아졌다. 둘 중 하나만 성공해도 수명이 크게 늘어나리라.
하지만 언제 다시 그를 꿈속으로 끌어당길지 모르는 옥침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틈은 없었다. 일단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 한 번만이라도 죽임을 당했다가는 10년이라는 수명도 한순간에 흘러가버릴지 모른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수련을 해야 하고, 최대한 빨리 달주로 가서 다음 목표인 천년영유를 찾아야 했다.
‘그러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좀 있지.’
사우흔에게 한 마디 기별을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앉은 심협이 손을 대강 휘두르자 길이 1척의 금도와 산봉우리 모양의 도장이 떠올랐다. 이제는 임랑환을 사용하는 데에도 꽤나 익숙해진 상태였다.
심협의 시선은 먼저 오악진형인에 닿았다. 전에 동관은 이 도장 하나만으로 오홍과 사우흔까지 세 사람을 제압했다. 분명 등급이 꽤나 높은 법기일 터였다.
그는 앞서 몇 차례 전투에서 법기라고 할 수도 없는 귀소환에만 의지하기 힘들어 차라리 부적의 위력에 더 자주 의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높은 등급의 부적은 소모가 너무 크다. 손에 맞는 법기를 쓰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이 두 법기를 제련한 뒤에 달주로 가는 편이 더 안전하겠지.”
심협이 낮게 중얼거렸다.
말을 마친 그는 두 가지 법기를 모두 꺼낸 뒤 잠깐 망설이더니, 오악진형인을 먼저 내려놓고 금도를 몸 앞에 받쳐 들었다.
“너부터 시작하자.”
심협의 가볍게 웃으며 속으로 구구통보결을 외웠다. 그가 두 눈을 집중하고 입을 벌려 법력을 한 덩이 뿜어내자, 이 법력은 금도에 녹아들어갔다. 동시에 그가 두 손으로 법결을 맺자 푸른 빛이 손끝에서 줄줄이 쏘아져 나와 금도 위로 떨어졌다. 그러자 금도의 표면에서 금빛이 번쩍이더니, 도의 몸체가 순식간에 3척 장도(長刀)로 변했다. 그 위에는 금빛 무늬 허상이 한 층 떠올라 휘황하게 빛났다.
금빛 무늬 허상 위에는 이내 세 겹의 고리 모양 진문이 나타나 칼자루와 몸통 그리고 칼끝을 각각 뒤덮었다.
“3층 금제…… 하품 법기로군.”
심협은 실망을 금치 못했으나, 그래도 이내 마음이 풀렸다.
‘어쨌든 반(半)법기인 귀소환보다는 훨씬 낫잖아?’
그렇게 생각한 심협은 법력을 이끌어 1층 금제에 침투했다.
잠시 뒤, 칼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허공에 떠 있던 몸체가 미미하게 떨렸다. 이어서 칼자루 쪽의 금제가 부서지면서 무수한 금빛 광점(光點)으로 변해 칼의 몸체로 녹아들었다. 그 순간, 칼의 몸체는 밝은 빛을 발했고, 칼끝에는 새하얗고 섬뜩한 빛이 한 줄기 스쳐 지났다.
심협은 속으로 기뻐하며 즉시 구구통보결을 계속 운공하여 그 뒤의 금제들도 풀었다.
대략 한 시진쯤 지났을 때, 금도 위의 3층 금제는 완전히 풀렸다.
심협은 손에 장도를 쥔 채 창가로 다가가 창밖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금빛 도광 한 줄기가 뻗어 나가 허공에 오래도록 흩어지지 않는 잔물결을 일으켰고, 멀리 하늘에 닿을 듯 솟은 나무들까지 그 영향을 받아 그치지 않고 흔들렸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흡족해하며 잠시 살펴본 뒤, 금도를 거둬들였다.
그는 방 안에서 한 차례 몸을 푼 뒤, 다시 가부좌를 틀고 오악진형인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구구통보결을 운공하면서 법결을 맺자, 곧 푸른 빛줄기가 뿜어져 나와 도장을 때렸다. 그러자 산봉우리 같은 모양의 도장은 허공에 떠오르더니 표면에서 노란 빛을 내뿜었다.
이윽고 우웅 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오악진형인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그 위에 새겨진 네 개의 문양이 차례로 빛나면서 인장의 사방을 향해 작은 산봉우리 허상 네 개가 투사됐다. 모든 산봉우리 정상은 무늬가 반복되는 진문 두 갈래로 덮여 있었다.
“하나, 둘, 셋…… 일곱, 여덟. 8도 금제? 상품 법기로구나!”
심협은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느닷없이 인장 아래쪽의 인문에 ‘진악(鎭岳)’이라는 두 글자가 홀연히 빛났고, 그 위로 한 줄기 붉은 빛이 피어나더니 위쪽으로 흘러, 위에 조각된 산봉우리로 곧장 돌진해 올라갔다.
산봉우리 모여든 붉은 빛이 한 바퀴 또 한 바퀴 돌면서 붉은 진문이 응결되어갔다. 그 수량은 무려 5층이나 되었다.
“13층 진문…… 13층 금제…… 이게 극품 법기였다니!”
심협도 거의 넋이 나가버렸다.
그는 동관이 오악진형인을 통해 고작 산봉우리 허상만 불러내는 것만으로도 왜 그토록 애를 먹는 것처럼 보이는지 의아했다. 이제 보니, 그는 인장 전체를 제련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다섯 번째 산봉우리를 불러냈을 것이고, 자신들은 저항조차 할 수 없었으리라.
“보배를 얻었구나!”
심협은 미칠 듯 기뻤다.
산봉우리 위의 붉은 금제 진문은 강력해 보였지만, 심협은 구구통보결 앞에서 그런 금제들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믿었다.
그는 기쁨을 억누르고 정신을 집중하여 이 보물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 * *
눈 깜짝할 사이 7일이 흘렀다.
심협과 사우흔은 천갱 객잔을 떠나 즉시 진해관으로 출발하여 곧장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으로 향했다.
“심 도우, 저 가보고 싶은 곳이 한 군데 있는데, 심 도우께서도 가보실래요?”
한나절쯤 지났을 때, 사우흔이 갑자기 물었다.
“오, 거기가 어디요?”
“완구성(宛丘城)에 한 번 다녀오려 합니다. 바로 이 근처예요.”
사우흔의 대답에 심협은 의아했다.
“완구성? 거길 가서 무엇 하시려고요?”
그는 지도에서 그 지명을 본 적은 있지만, 그 외에 아는 것은 없었다.
“완구성은 크지 않으나, 동해만과 멀지 않아 탐험하러 오는 수사들이 꽤 있어요. 우주의 벽수문(碧水門)이 바로 그 근처예요. 성안에는 벽수문에서 세운 방시(*坊市: 저잣거리)가 있는데, 다양한 영재가 갖춰져 있어 건업성 못지않답니다.”
사우흔이 설명했다.
“멀지 않은 곳에 그리 좋은 곳이 있다니, 당연히 나도 가보고 싶소.”
심협은 실제로 마음이 동했다.
그는 장풍곡에서의 대전과 이번 전투를 통해 고급 부적의 위력을 절감했고, 마침 선옥도 넉넉하니 재료를 잔뜩 구해 부적을 몇 장 더 만들고자 했다.
두 사람은 방향을 틀어 동북쪽으로 향했고, 한나절쯤 지났을 때는 호수 가까이 있는 어느 작은 성에 이르렀다.
사우흔이 앞서 말했던 대로 완구성은 그리 넓지 않아 춘화현성과 비슷할 정도였지만, 동해에 가깝다 보니 토지는 비옥하지 못했다. 덩달아 성안 주민들의 살림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성 밖에는 폭이 수십 리에 달하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물은 청록색이었다. 그 호수 곳곳에서 조개를 길러 생계를 꾸리는 듯했다.
“이 커다란 호수는 벽파호(碧波湖)입니다. 호수 안에는 벽수방(碧水蚌)이라는 조개가 자라고 있는데, 특별한 벽수진주를 생산해내지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뛰어난 물 속성 영재이기도 해요. 마침 벽수문에서 수련하는 공법에는 이 진주가 필요하니, 방민(*蚌民: 조개를 양식해 생계를 꾸리는 어민)들이 생계를 꾸리기에도 안성맞춤이라 합니다.”
사우흔의 설명에 심협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시간이 나면 벽수진주를 좀 사서 아우와 누이 그리고 둘째어머니께 선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