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38화 (238/1,214)
  • 238화. 용의 피

    심협은 오홍의 설명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턱을 문지르며 그 자리에서 한 바퀴 서성이더니 문득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이놈을 나눌까요? 그대와 나 각각 절반씩 갖는 건 어떻겠소?”

    오홍은 심협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눈에는 의아한 기색도 언뜻 스쳤다.

    용수루 안에 있던 벽안금섬도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꾹꾹거리며 턱을 커다랗게 부풀리는 것이 꼭 자기는 반대한다는 뜻 같았다.

    “심형, 그대가 벽안금섬을 찾은 것도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요?”

    오홍이 무언가 떠오른 듯 재빨리 되물었다.

    “맞소. 바로 나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함이오.”

    심협이 한숨을 내쉬자, 오홍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형은…… 딱히 병이 있는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소만?”

    “내 좀 특별한 이유로 몸속의 생기를 허비하여 지금은 수명이 이미 3년도 채 남지 않았소. 최대한 빨리 수련 경지를 돌파하여 응혼기에 진입해야만 나 자신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상태요.”

    “아…… 심형은 이 벽안금섬으로 법력을 증진시키고 수련 경지를 끌어올리려는 것이었구려. 내가 그대에게 곤란한 일을 강요했으니, 정말 미안하오.”

    심협의 대답에 오홍은 미안해진 듯 포권을 했다.

    “그거야 괜찮은데, 일단 말 좀 해보시오. 아까 내가 말한 방법이 가능하겠소?”

    오홍이 심협의 물음에 답을 하기도 전에 용수루 안에서 또다시 두꺼비 울음소리가 두어 번 들려왔다. 정말로 심협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내가 구하려는 사람은 몸에 기이한 한독(寒毒)이 들어 발작을 할때마다 온몸에 서리가 맺히고, 매일같이 극심한 추위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소. 이 벽안금섬은 월궁옥섬의 핏줄을 띠고 있는지라 자연히 한독을 두려워하지 않소. 그러니 그것으로 매일 그녀 체내의 한독을 빨아내줘야만 한 가닥 삶의 기회를 가지게 되오. 그렇기에 금섬을 토막 내는 것은 절대 불가하오.”

    오홍이 안타깝다는 듯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심협도 잠시 말문이 막힌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때, 오홍이 무언가가 생각난 듯 간곡한 눈빛으로 심협을 바라보았다.

    “심형. 내게 효능이 벽안금섬에게 뒤지지 않고, 심지어 그것보다 더 훌륭한 물건이 있다고 한다면, 그대는 벽안금섬과 맞바꾸겠소?”

    “어떤 물건을 말하는 것이오?”

    심협도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오홍은 좌우를 살펴 용궁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도 심협에게 바짝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용혈(龍血.)”

    “용의 피? 그대의 정혈(精血) 말이오?”

    심협은 그 말에 멍해졌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용은 선령지물(仙靈之物)로 신분과 지위가 높고, 그들의 정혈인 용혈은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흔히 용혈 한 방울 때문에 인간과 요괴 두 종족이 서로 빼앗으려 싸움을 일으키곤 했으니, 동해 용족의 용혈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벽안금섬도 천지의 영물인지라 먹고 나면 경지를 대폭 증가시킬 수는 있으나, 그는 평소 월백을 주식으로 삼소. 그러니 몸에 이미 한기가 오래 쌓여 한독이 생긴 상태에서 섣불리 먹는다면, 잠재된 위험이 실로 클 것이오. 그에 비해 용혈은 그런 문제가 없지요.”

    오홍은 대답 대신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억지로 정혈을 짜내면 그대의 원기가 크게 소모되잖소?”

    심협이 조금 주저하며 물었다.

    “괜찮소. 돌아가서 좀 쉬면 회복될 것이오. 심형, 나의 용혈은 순도가 높소. 법력을 급증시키는 데 있어서는 금섬을 삼키는 게 더 빠를지 모르나, 내 피 또한 사람의 수명을 적어도 10년쯤은 곧바로 연장시킬 수 있을 거요. 게다가 그대는 물 계통의 술법을 수련하고 있으니, 몸속에 용의 피를 품고 있으면 물의 힘에 대한 장악력도 높일 수 있소. 또한 그대의 체질도 변화시킬 수 있으니 물의 법술을 수행하기가 더욱 순조로울 것이오.”

    오홍은 심협이 망설이는 듯하자 얼른 설득에 나섰다.

    심협은 그가 마치 물건을 팔 듯 자기 정혈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문득 의아한 점이 있었다.

    “오형, 그대가 구하려는 이는 분명 그대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겠지요?”

    오홍은 그 말에 잠깐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심협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 말대로 맞바꾸겠소.”

    “고맙소. 정말 고맙소, 심형. 하하하!”

    오홍은 크게 기뻐하며 연거푸 감사의 인사를 했다.

    심협은 손사래를 치며 허리춤의 용수루를 끌러 그대로 오홍에게 건넸다.

    “심형 잠깐 기다리시오.”

    오홍은 곧바로 용수루를 받는 대신 조심스레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용궁의 병사들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에야 저물반지에서 하얀 도자기병 하나를 꺼내 자신의 오른손 검지 위에 갖다 댔다. 이어서 그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뭔가를 몇 번 중얼거리자, 그의 명치 쪽에서 금빛이 번득이더니, 어깨와 팔뚝을 타고 흘러 그대로 오른손 검지 끝에 이르렀다.

    그의 손끝에서 빛이 한 번 반짝이자, 금빛 광택을 띤 피 한 방울이 맺혀 톡하고 병 안으로 떨어졌다. 같은 일이 열 번 반복된 후에야 오홍은 창백한 얼굴로 손을 거두었다.

    “심형, 더 주었다간 내 근본을 다치게 되는지라 어쩔 수가 없구려. 우리 부왕께 들키게 되면 난 모든 뒷감당을 해야만 하오. 그러니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것은 혼자서만 쓰도록 하시오.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서도 아니 되오.”

    “정말 감사하오.”

    이번에는 반대로 심협이 포권으로 감사를 표했다.

    벽안금섬과 용혈을 맞바꾼 두 사람은 한결 홀가분해졌다.

    “심형, 이왕 어렵게 연을 맺기도 했고 동해도 멀지 않으니, 사 도우와 함께 용궁에 방문하여 내가 주인의 도리를 다하게 해주지 않겠소?”

    “초대에 감사하오. 허나 난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어 최대한 빨리 장안 쪽으로 길을 재촉해야만 하는 터라…….”

    오홍의 초청에 심협이 완곡하게 거절했다.

    “어허, 귀한 손님을 모시고 돌아가면 부왕께서도 조금은 봐주시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게 되면 적어도 한동안 나를 벌하시진 않을 테니 말이오. 허나 보아하니 달아날 길이 없을 것 같구려. 하아…….”

    오홍이 비통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마치 꾸중을 들을까 겁을 집어먹은 아이 같아 심협은 웃음이 나왔지만, 이게 다 오홍의 농담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잠시 더 몸을 추스른 뒤, 오홍은 사우흔에게도 후하게 답례를 한 후에 용궁 사람들과 함께 떠났다.

    “역시 동해 용궁답게 씀씀이가 크군요.”

    사우흔은 선옥으로 가득 찬, 묵직한 자루의 무게를 가늠하며 진심으로 말했다.

    “사 도우, 저야 중한 일이 있어 급히 장안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오형의 초청을 거절했다지만, 도우는 어째서 거절한 겁니까?”

    심협이 웃으며 물었다.

    “장안에 가시려고요?”

    사우흔은 대답 대신 의아한 듯 되물다.

    “그렇소만? 혹시…… 그대도 장안에 갈 참이었소?”

    “그래요, 저도 일이 있어 장안 쪽으로 가야 해요. 같이 가면 되겠군요.”

    사우흔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지요. 한데 그전에…… 저는 먼저 적당한 곳에서 잠시 폐관하고 수양을 좀 해야 하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 잠시 기다려주실 수 있겠소?”

    심협이 사우흔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도 때마침 몸을 한 번 가다듬어야 하니, 안 될 것 없지요.”

    사우흔이 흔쾌히 답했다.

    결정을 내린 두 사람은 함께 천갱 객잔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온 바닥에 가득한 핏자국과 진 주인장을 포함한 세 사람의 머리 없는 시신을 보게 되었다.

    진 주인장을 포함한 세 사람의 머리는 앞서 봉수가 가져갔는데, 싸움판에 휩쓸려 도저히 찾을 수 없게 됐다.

    심협은 곧 객잔 앞마당에 묏자리를 만들어 그들을 함께 안장했다.

    * * *

    그날 밤, 심협은 손목의 임랑환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러자 고리의 몸체에서 푸른 빛이 반짝이더니 여러 가지 물건이 차례로 탁자 위에 나타났다. 그중에는 귀소환과 금도, 오악진형인, 용혈이 담긴 병, 직사각형의 목합과 그가 원래 지니고 있던 석합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심협은 등급이 낮긴 해도 석합 역시 저물법기일 거라 여겨 임랑환 안에 넣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아직 물건을 넣고 꺼내는 데 익숙하지 않아 그만 실수로 석합까지 넣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 실수를 깨달은 순간, 그는 두 보물 모두 망가질 거라 생각해 깜짝 놀랐지만, 뜻밖에도 석합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왜 그런지 궁금하긴 했지만, 혼자 생각해봐야 답은 나오지 않을 게 뻔했기에 그는 석합을 내려놓고 오홍이 선물한 목합을 열어보았다.

    목합에서는 은근한 빛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 안쪽을 슬쩍 본 심협은 깜짝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안에 선옥이 들어 있음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많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200개……. 용궁 태자라도 손이 너무 큰 거 아닌가?”

    심협은 경탄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예전에 건업성에서 천신만고 끝에 모은 선옥이 80개였다. 그나마도 우연히 얻은 황천죽 덕에 가능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귀시를 찾아가는 것도 그리 순탄치 않았을 것이고, 이후 돌파 성공은 더더욱 힘겨웠을 것이다.

    그는 본래 20여 개의 선옥을 가지고 있었으나, 고급 부적지 등을 사기에는 부족했다. 그런데 단번에 선옥 200개를 얻었으니 이 뜻밖의 횡재에 몹시도 기뻤다. 앞으로 부적을 그리든 수련용 단약을 사든 큰 보탬이 될 터였다.

    본래 목적이야 어쨌건, 오홍을 구하러 되돌아온 결정은 참으로 잘한 일이었다.

    흥분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던 그는 선옥을 몇 번이나 거듭 센 후에야 손을 휙 휘둘러 용혈이 든 하얀 도자기병만 남기고 모두 거두어들였다.

    “수명 연장은…… 너만 믿는다.”

    심협은 진중하게 내뱉고는 눈을 감은 후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어서 손가락으로 도자기병을 가리키며 위로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병 주둥이에서 적금색 빛줄기가 반짝이더니, 용혈 한 방울이 어수지술에 이끌려 심협의 입가로 날아왔다.

    잠시 머뭇거리던 심협이 결심을 내리고 살짝 입을 벌리자, 용혈이 쏙 빨려들어와 뱃속으로 들어갔다.

    용혈이 목구멍을 지나자 심협은 뒤통수가 확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뒤이어 뜨거운 열기가 가슴과 배의 백맥(百脈)을 따라 쉬지 않고 흘러내려 단전으로 모여들었다. 그의 경락은 진한 영액(靈液)에 담근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순식간에 싱싱한 생기가 주입된 것처럼 몸이 아주 상쾌해졌다.

    그러나 용혈의 정수가 모여들자, 고요하던 단전의 법력에 갑자기 수룡(水龍) 한 마리가 휘젓고 다니는 것처럼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심협은 단전에 한 차례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벽곡기에 진입한 뒤 액화된 법력도 동시에 끓어오르는 듯 단전 밖으로 솟구쳐 나오더니 바다를 나온 교룡처럼 임맥과 대맥으로 돌진했다.

    덜컥 겁이 난 심협은 황급히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법력을 조종했다. 법력은 임맥으로 치솟아, 단전을 나와서 기해(*氣海: 배꼽 아래 한 치쯤 되는 곳)로 들어간 뒤, 곧장 위로 솟구쳐 단중(*膻中: 가슴 가운데 횡격막 부분)을 지나더니 옥당(玉堂)혈로 나왔다. 그러고도 멈추지 않고 얼굴로 올라가 백회(*百會: 정수리에 있는 혈자리)혈까지 이르렀다.

    백회혈에 들어간 법력은 여력이 부족한 듯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같은 혈자리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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