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33화 (233/1,214)
  • 233화. 알 수 없는 위험

    “그놈 정말 빠르군. 한참을 뒤쫓았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

    봉산은 좀처럼 심협의 종적이 보이지 않자 초조한 듯 투덜거렸다.

    “아마도 무슨 신통력 같은 걸 동원해 대력산을 벗어났을 거요.”

    검은 천으로 가려진 여형의 표정은 볼 수 없었으나, 말투에는 감정이 거의 묻어나지 않았다.

    “이대로 그놈을 놓치면 동 어르신이 분명 우리를 가만두지 않으실 텐데…….”

    봉산이 걱정스레 혼잣말을 하자 여형이 말을 받았다.

    “동 선배님이 너무 예민하신 것 같지 않소? 도망친 놈은 우리 정체를 모르니 제아무리 동해 용궁을 찾아간다 해도 우릴 찾아낼 수는 없소. 게다가 그 조그만 용은 혼자인 걸 보면 용궁에서 온 게 아닐 수도 있지. 그저 어느 개천이나 우물 바닥 수부(*水府: 물의 신이 사는 궁전)의 용자나 용손에 불과할지도…….”

    그 말에 봉산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치는 그럴듯하나 동 어르신 성격으로 봐서는 그놈을 잡아가는 게 우리에게 좋을 거요.”

    봉산의 말에 여형은 귀찮아 죽겠다는 듯 투덜거렸다.

    “그것도 그놈을 따라잡을 수 있을 때나…….”

    그러나 그녀는 말을 채 맺기도 전에 의아한 얼굴로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수십 장 앞에 심협이 마치 그들을 기다린 것처럼 가부좌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봉산은 그 광경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곧장 돌진하려 했다. 그러나 이내 뭔가를 깨닫고는 바로 멈춰 서며 한 손을 뻗어 여형 앞을 막았다.

    “여 도우, 조심하시오. 속임수가 있소.”

    그러나 여형은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

    “겨우 벽곡 초기 수사인데 그리 두려워 할 가치가 있소? 정말이지 우습구려.”

    그러더니 봉산의 팔을 쳐내고는 심협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봉산은 그녀의 비웃음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성을 내냈다.

    “쳇! 내가 저깟 놈을 무서워하는 줄 아시오?”

    말을 마친 그가 한 손으로 결인하니, 온몸에서 암황색 빛이 피어오르면서 발밑에 흙먼지가 일었고, 몸이 번쩍하더니 어느새 여형 앞까지 이르러 있었다.

    한편, 심협은 돌진해오는 두 사람을 보고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벽곡 중기 이상의 수사들인데, 왜 이리 경솔하게 달려드는 거지?’

    하지만 그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땅이 진동했다. 봉산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놀라운 힘이 담긴 것처럼 숲 전체가 진동한 것이다.

    ‘이제 보니 살펴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저 힘으로 공격과 탐색을 겸해 선수를 치겠다는 것이로군! 저자는 겉보기에도 그리 무모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흙 속성 법술의 수련경지도 꽤 높은 것 같은데……?’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봉산은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눈으로는 앞쪽 숲 바닥과 나무들을 살피며 함정의 흔적을 찾아내려 했다. 지금까지는 저 앞의 땅바닥이 자신의 엄청난 힘에 위아래로 들썩이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심협에게 다가갈수록 그는 왠지 불길해졌다. 저 애송이는 너무도 평온해 보이지 않는가.

    ‘분명 뭔가 잘못됐어!’

    봉산은 앞에 뭔가 알 수 없는 위험이 있다고 확신했으나, 여형이 바짝 따라붙은 마당에 절대로 두려운 기색을 내비칠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그녀에게 눈독을 들인 지 오래였으니 겨우 벽곡 초기 수사 하나 때문에 우습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후토금신(後土金身)!”

    심협과의 거리가 예닐곱 걸음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봉산은 법결을 맺으며 외쳤다. 그러자 바닥에서 누런 황토색 기운이 솟아오르면서 연무처럼 그의 온몸을 뒤덮었고, 그 위로 흙먼지와 자갈들이 응고되면서 암황색 돌 갑옷이 되었다.

    갑주가 몸에 붙자 깡말랐던 봉산의 몸은 우람해졌다. 그가 그런 상태로 한 발 내딛으니 땅의 진동은 더욱 거세어져 심협도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봉산은 심협이 일어서는 모습에 속으로 내심 안도하고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쾅!

    봉산이 또 한 걸음 내딛자 발아래 땅바닥이 쩍 갈라지면서 둘레가 대여섯 척에 이르는 함정이 나타났다. 이에 그는 순간 중심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물이 튀는 소리와 함께 지하에서 물결이 불쑥 솟아오르면서 물로 만들어진, 높이 1장의 푸른 우리가 떠올랐다. 그 안에는 수십 개의 팔뚝만 한 물줄기에 온몸이 휘감긴 봉산이 있었는데, 머리는 커다란 푸른 물거품에 감싸여 있었고, 물줄기에는 노란 부적지가 족히 백 장은 숨겨져 있었다.

    이 부적은 모두 소뢰부(小雷符)였으나, 머리를 감싼 물거품에 붙어 있는 것만큼은 위력이 훨씬 강력한 낙뢰부(落雷符)였다.

    봉산은 물기둥 온몸에서 노란 빛을 발하는 우리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그때, 경고의 뜻이 분명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뇌부에 터져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봉산은 순간 온몸을 바짝 굳히며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심협은 그와 거리를 살짝 벌리고는 몇 장 앞에 멈춰 선 복면의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서 너희 우두머리에게 전해라. 그 금룡을 놓아주면 저자를 너희에게 돌려주겠다.”

    하지만 여형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동료의 생사조차 신경 쓰지 않는 것이냐?”

    여형은 심협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불쑥 되물었다.

    “그 금룡이 그대의 동료인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아는 사이지.”

    심협은 잠깐 망설이더니 말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실제로는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난 셈이니, 오홍과의 관계가 어떤지 분명히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죽일 테면 죽여라.”

    그때, 여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뭐라고?”

    심협은 여형의 말에 표정이 살짝 변해 되물었다.

    물론 봉산도 그 말을 들었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대로 들었다. 내 너에게 저자를 죽이라고 했느니라. 어쨌거나 동 어르신께서는 저자가 죽든 살든 개의치 않으실 것이고, 더욱이 진룡과 맞바꾸지는 않으실 테니 말이다.”

    여형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심협은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면서도 여전히 봉산에게 손대지 않았다. 사실 상대가 교환에 응하지 않을 것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다만 지금은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왜? 못 믿겠는가?”

    여형은 차갑게 웃고는 봉산의 안위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에서  불빛을 뿜어내면서 일련의 잔상을 드리운 채 돌진해왔다.

    심협은 곧장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한 손을 결인하여 푸른 물 우리의 모든 부적을 발동시켰다.

    콰르릉!

    사나운 우렛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작은 번개 백여 줄기가 동시에 뿜어져 나와 중앙의 굵직한 번개에 꽂혔다. 그러자 새하얗고 밝은 빛이 번쩍이면서 드넓은 밤하늘을 더없이 환하게 비추었다.

    폭발하는 번갯불 속에서는 수많은 불티와 부서진 돌들이 폭우에 흩날리는 배꽃처럼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잠시 후, 연기와 흙먼지가 흩어졌다.

    지면의 함정은 폭발로 인해 세 배는 더 커졌고, 그 안에는 흙탕물이 혼탁하여 이미 봉산의 시체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심협은 눈빛을 살짝 굳히고 맞은편의 여인을 살폈다. 허나 상대의 눈빛이 여전히 평온한 것을 보자 저도 모르게 약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동료의 죽음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으니 그녀가 얼마나 냉정한지 알 수 있었다.

    “이젠 네 차례다. 보아하니 다른 이들도 네 생사는 아랑곳 않을 듯하구나!”

    심협은 그렇게 외치고는 소매에서 귀소환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발아래에서 갑자기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곧 달그림자처럼 부서졌다. 그리고는 줄줄이 잔상을 남기면서 돌진하여 눈 깜짝할 사이 여형 앞에 이르렀다.

    심협의 신법이 이렇게 맹렬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여형은 살짝 놀란 기색으로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시뻘건 불꽃들이 울부짖으면서 튀어나왔고, 심협은 일단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한데 발이 땅에 닿은 순간, 심협은 종아리가 무언가에 확 조여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숙여 보니 놀랍게도 크고 지저분한 손이 땅속에서 삐죽 튀어나와 갈퀴 같은 다섯 손가락으로 그의 발목을 꽉 붙잡고 있었다.

    심협이 미처 몸을 뺄 틈도 없이 거대한 힘이 아래쪽에서 전해져왔다. 그 커다란 손이 그를 땅속으로 휙 끌어당기면서 자신은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 흙을 뚫고 위로 솟아나왔다.

    너덜너덜한 옷을 걸친 그는 곳곳에 시커멓게 불탄 상처가 있었다. 특히 얼굴의 상처가 가장 처참해 왼쪽 귀부터 오른쪽 턱 아래까지는 완전히 찢겨진 것처럼 구멍이 나 있었다.

    그 사내는 바로 봉산이었다. 그는 놀랍게도 온몸의 황토색 갑옷으로 벼락에 맞섰고, 극심한 부상을 입긴 했지만 끝내 살아남아 토둔술(土遁術)로 땅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위기를 느낀 심협은 재빨리 손을 휘둘렀고, 그러자 물결이 밀려와 그의 온몸을 휘감으며 떠받쳐 올렸다.

    하지만 그의 두 다리가 땅에서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봉산이 돌진해와 그의 어깨를 세차게 내리쳤다.

    “큭!”

    심협은 거대한 돌덩이 같은 압력이 어깨에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법력이 움직이는 경로도 흐트러져 한순간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강력한 진동이 뒤따라 전해지며 그가 땅속에서 빨아올린 물을 그대로 흩어버렸다.

    봉산의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누런 빛이 쉬지 않고 일렁이더니, 지하에서 진흙이 솟구쳐 올라와 심협의 몸을 반쯤 감쌌다.

    그 순간, 봉산은 증오심이 가득 담긴 시선을 여형에게로 돌리더니 목구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로 포효했다.

    “저놈을 죽여라!”

    여형이 주저 없이 몸을 번쩍 날려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소매에서 붉은 비단이 쏜살같이 튀어 나왔는데, 그 위로는 불길이 치솟아 불 구렁이처럼 굽이치며 심협의 가슴팍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 순간, 심협은 두렵기보다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불 구렁이가 막 그의 가슴을 꿰뚫으려던 찰나,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새빨간 불꽃이 느닷없이 방향을 틀더니 봉산의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한 것이다!

    “크악!”

    봉산은 짧은 비명을 내지르더니 충격과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쓰러졌다.

    여형은 곧장 봉산에게 다가가더니 소매에서 붉은 단검 하나를 빼내 그의 목을 베었다.

    봉산의 죽음으로 그가 다루던 법술이 사라지자 심협의 몸을 휘감았던 진흙이 곧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심협은 다시 자유를 얻자 즉시 사월보를 써서 여형과 거리를 벌렸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그는 귀소환을 들어 올리며 경계했다.

    “심 도우, 나는 심 도우의 적이 아니오.”

    여형이 그렇게 말하며 검은 면사포를 벗었다. 그러나 심협은 그녀를 뜯어보다가 이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나를 아시오?”

    그녀는 두 눈이 기이할 정도로 맑다는 것만 빼면 무척 평범한 외모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처음 보는 얼굴이라는 점이었다.

    “심 도우, 다시 보시지요. 저를 못 알아보시겠습니까?”

    여형이 입꼬리를 당기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장심에서 붉은 빛을 번득이며 뺨을 문지르고 얼굴을 몇 번 만지작거렸다.

    잠시 뒤, 붉은 빛은 사그라들었고, 그녀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사우흔…… 어째서 그대가……?”

    심협은 다시 드러난 그녀의 얼굴에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보다 고맙다는 말이 먼저 아닌가요?”

    사우흔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투까지 바꿔 그를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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