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31화 (231/1,214)
  • 231화. 제비집 채집꾼

    “여어, 진 주인장. 가게에 새 손님이 오셨구먼그래?”

    우두머리인 짧은 수염 노인이 심협과 오홍을 쓱 보고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말투로 보아 객잔의 땅딸막한 주인장과 아주 잘 아는 사이인 듯했다.

    “노(盧), 노형, 그대들이 오고난 뒤 가져다준 인기 아니겠소. 그렇지 않고서야 예년 이맘때면 제비집 채집꾼인 그대들 말고 어느 누가 이 두메산골에 오려 하겠소?”

    땅딸막한 주인장이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제비집 채집꾼?’

    제비집 채집꾼이라면 제비집을 채집해 파는 사람들로, 낯설지 않은 직업이었다. 심가 약방도 그들과 자주 왕래했으니까.

    “하하, 여전히 그대로구먼. 술 몇 주전자 데워주고, 음식도 좀 방으로 보내주시게. 이 방은 사방에 바람이 새서 뼛속까지 다 으슬으슬 춥단 말이지.”

    짧은 수염 노인이 한마디 덧붙이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위층으로 향했다. 그러자 나머지 세 사람도 그를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제일 뒤에 가던 복면 여인은 계단을 올라갈 때 창가를 슥 보았다. 심협을 본 것인지 오홍을 본 것인지 창밖을 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저 노형이 그리 말씀하시니, 정말 좀 추운 것 같소. 진 주인장, 이 술 좀 데워주시오.”

    심협이 두봉(*斗篷: 피풍. 소매 없는 외투)을 두르며 주인장에게 소리쳤다.

    “예, 알겠습니다.”

    점소이는 벌써 주방에 도우러 간 후라, 주인장이 직접 달려왔다.

    심협은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짐짓 무심하게 물었다.

    “한데 2, 3월은 장마철이라 곤충들이 왕성하게 번식하니 제비 먹이가 충분하고 침 분비가 왕성하여 제비집 품질도 가장 좋을 때인 걸로 알고 있소. 그러니 제비집을 채집하기에는 그때가 가장 좋은 시기인데, 어찌 4월 말이 다 되도록 저 사람들은 떠나지 않은 것이오?”

    “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평범한 금사연(金絲燕)이지요. 우리 대력산 천갱 절벽 위에는 우연(雨燕)이라는 특별한 제비 떼가 살고 있습니다. 그네들이 침을 분비해 둥지를 짓는 시기는 금사연보다 한 달 늦어서 지금이야 말로 적기입죠.”

    진 주인장은 그의 말을 듣고 웃으면서 설명해주었다.

    “그랬구려. 내가 보고들은 것이 없어서…….”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우연의 제비집은 금사연보다 품질이 떨어져서 별로 유명하지 않으니 손님께서 모르시는 게지요. 말하자면 매년 이맘때에 그네들만 와서 채집한답니다.”

    주인장은 웃으며 그렇게 설명하고는 부랴부랴 음식을 장만하러 갔다.

    심협은 다시 오홍과 한담을 나누며 때때로 창밖 풍경을 구경했다.

    * * *

    어느 객실. 네 명의 제비집 채집꾼이 탁자에 둘러앉았다.

    “아래층 두 청년 말이네.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둘 다 수행 중인 사람이더군. 그들도 벽안금섬을 찾으러 온 것 같았어.”

    짧은 수염의 노인이 웃음기가 전혀 없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히 우리와 겨루려 든다면 죽음뿐이지요.”

    얼굴이 창백한 두 젊은 사내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흥! 죽이는 거야 쉽지. 한데 그자들 뒷배가 있으면 더 귀찮아질 수도 있는 걸 몰라?”

    여전히 얼굴을 가린 여인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여형(餘馨) 도우의 말이 맞네. 지금은 상황이 분명치 않으니 경거망동해서는 안 돼.”

    짧은 수염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형이라 불린 복면 여인이 아미(*蛾眉:가늘고 길게 굽은 아름다운 눈썹)를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동관(童貫) 선배님, 그건 그렇고, 이번엔 정말 벽안금섬을 찾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이곳을 찾기 시작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네. 그 금두꺼비는 장마 끝의 세찬 천둥에 놀라야만 모습을 드러내는데, 지금껏 번번이 좋은 기회를 놓쳤지. 허나 이번에는 우리가 함정을 파서 유인하면 빠져나가지 못할 걸세.”

    동관이라는 노인이 짧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빛을 번득였다.

    “그럼 좋습니다. 이번 임무를 순조롭게 완수하기만 하면 저는 총단(總壇)에 들어가 성주(聖主)를 뵐 수 있는 것이지요?”

    여형이 조금 절박하게 물었다.

    “마음 놓게나. 벽안금선을 쟁취할 수만 있다면 자네의 공적은 성주님을 뵙기에 충분할 테니까.”

    동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형은 만족스러운 눈으로 인사를 남기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동 어르신, 저는 어쩐지 저 여씨 계집이 믿음직스럽지 않습니다.”

    두 젊은 남자가 또다시 동시에 입을 열어 말했다.

    “그녀는 우리 연신단(煉身壇)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분명 경계해야겠지. 허나 요 며칠 지내보니 그녀가 총단을 퍽 동경하고 있고, 일 처리가 깔끔하더군. 그러니 잘 이용하면 묘수가 될 게야.”

    동관이 느릿느릿 말했다.

    “그럼 다 이용한 뒤에는…… 해도 됩니까?”

    두 젊은 사내 중 한 사람이 처음으로 혼자 입을 열었다.

    “봉산(封山), 색(色)자 위엔 칼 도(刀)자가 있다. 너 그 개 같은 버릇 또 나오는 거냐?”

    다른 한 사람이 눈을 한 번 부라리자 봉산이라 불린 사내가 투덜거렸다.

    “봉수(封水), 너는 형의 이런 잔재미까지 참견을 하려 드는 것이냐?”

    “됐네! 모든 것은 일단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얘기 하지. 그때까지는 누구도 말썽을 일으켜서는 안 되네.”

    동관이 엄하게 호통을 치자, 두 형제는 곧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동관이 조용히 읊조렸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천둥이 치기만을 기다려야지.”

    밤이 되자, 심협은 홀로 객실 창가에 앉았다. 창가 앞 탁자 위에는 어슴푸레한 유등 하나가 밝혀져 있었고, 자줏빛 부적지 한 장과 푸른 부적지 세 장이 놓여 있었다.

    자줏빛 부적지 위에는 쇄갑부의 부문이, 청상지 위에는 낙뢰부(落雷符)가 그려져 있었다. 모두 이미 완성된 부적이었다. 모두 심협이 우주에 오는 길에 그린 것이었다.

    낙뢰부는 성공률이 높지 않더라도 청상지에 그리는 것이니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나 쇄갑부에는 진귀한 자운지가 들어가기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심협은 꿈속에서 부적을 그린 경험이 있고, 백지와 황지에 수천 번을 연습해 봤음에도 막상 가진 돈을 다 털어 사온 자운지를 몽땅 쓰고서야 마지막으로 겨우 한 장을 그리는 데에 성공했다.

    그는 먹구름으로 뒤덮인 창밖의 하늘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흐릿한 밝은 빛 한 덩이가 구름 속으로 숨는 것만 보일 뿐, 아래쪽 천갱은 온통 깜깜해서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유람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벽안금섬은 월궁옥섬의 혈통을 이은 후손으로, 날 때부터 망월수련(望月修鍊)을 통해 월백(*月魄: 달의 정기)을 흡수할 수 있다. 그래서 몸속에 순수한 달의 정수가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겁이 많고 조심스러운 탓에 일년 내내 땅속에 칩거하기 때문에 평범한 수사들은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매년 장마철에 달빛이 오랫동안 먹구름에 가려지면 벽안금섬도 월백을 흡수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이 기간에는 휴면기에 빠진다. 그러나 장마철이 지나고 한바탕 천둥이 크게 내리치면 벽안금섬도 다시 깨어나서 과감히 은신처를 떠나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내고 그간 소모한 월백을 마음껏 보충했다.

    이때가 바로 이 두꺼비를 붙잡기에 가장 좋은 시기로, 일단 놓치면 적어도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던 심협은 탁자 위의 부적들을 소매에 챙겨 넣고 유등을 불어서 끈 뒤, 침상으로 돌아가 가부좌를 튼 채 수련을 시작했다. 지금 그의 수행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 * *

    이튿날 새벽, 심협은 창문을 열어젖히고 비구름이 뒤덮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문득 한 손으로 창가의 탁자 위를 짚고는 몸을 민첩하게 뒤집으며 창밖으로 뛰쳐나와 날아 내려갔다.

    객실 창밖은 천갱 절벽에 바짝 붙어 있어 발 디딜 틈조차 없었기에 그의 몸은 그대로 천갱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10여 장쯤 떨어져 내려간 후에야 그는 한 손으로 툭 튀어나온 바위를 틀어잡고 절벽 위에 매달렸다. 그리고 몸을 비틀자 10여 장 너머에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고목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얼핏 보였다.

    심협은 석벽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두 다리로 있는 힘껏 절벽을 박차더니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아 고목 우듬지를 향했다.

    고목에 가까워진 그는 또다시 팔을 뻗어 나무의 가지들을 붙잡아 떨어지는 충격을 완화시켰다. 이어서 날렵하게 아래쪽 잔가지들을 향해 미끄러졌다.

    같은 일을 몇 번 반복한 후에야 무사히 땅에 내려설 수 있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소매에서 과산부를 꺼내 사방에 흔들어보았다. 그렇게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부적을 품에 챙겨 넣었다.

    이른 아침의 천갱은 무척 고요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벌레들의 울음소리와 숲을 뚫고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전부였다.

    유람기에 따르면, 금섬의 포획 지점은 천갱 한가운데의 초승달 모양 호숫가였다. 이에 그는 곧장 밀림을 헤치며 천갱 한가운데로 내달렸다.

    천갱 아래쪽은 위쪽보다 기온이 훨씬 낮았다. 심지어 나무의 잎과 가지, 바닥의 풀에는 얇고 하얀 서리가 한 겹 내려앉아 있을 정도였다.

    심협이 나뭇잎 하나를 따서 가볍게 문지르자 위에 맺힌 서리가 녹아내렸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나뭇잎을 내던지고는 두 손을 소매에 넣고 천천히 걸었다. 한가로이 여기저기 둘러보며 거니는 모습이 정말 풍광을 구경하러 온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곧 천갱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저 멀리 초승달 같이 생긴 호수가 보였다. 수면은 맑고 서늘하며 짙푸른 빛깔이라 하늘의 구름이 거꾸로 비쳤다.

    한편, 호숫가에는 낯익은 그림자가 하나 더 있었다. 그는 허리를 굽힌 채 호수에서 물을 한 움큼 떠서는 입가에 가져가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오형!”

    심협은 가볍게 외치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심형, 좋은 아침이오.”

    호숫가에 서 있던 오홍도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허리를 펴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다만 그의 눈길은 심협이 아닌 뒤쪽 더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심협은 이를 느꼈으나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척했다. 사실 그는 아까 나뭇잎을 땄을 때부터 이미 누군가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터였다.

    둘은 한담을 나누면서 천갱의 다른 한쪽을 향해 나란히 걸었다. 그들이 향하는 천갱의 절벽은 울퉁불퉁해 멀리서 보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처마처럼 보였고, 위에는 미끌미끌한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심협이 멀리 바라보니 절벽에 밧줄 세 가닥이 거꾸로 드리워져 있고, 그 위에 세 사람의 그림자가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은 허리춤에 각자 커다랗고 주둥이가 좁은 대바구니를 하나씩 동여맨 채, 절벽의 툭 튀어나온 바위 아래 매달려 있었다. 바로 어제 심협이 객잔 대당(大堂)에서 보았던 제비집 채집꾼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여인만은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은 절벽에서 오르락내리락 위아래로 자세와 위치를 조정하면서, 투명한 그릇처럼 생긴 제비집을 하나하나 능숙하게 떼어냈다.

    심협과 오홍은 절벽 아래 멈춰 서서 고개를 들고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짧은 수염의 노인이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숙여 절벽 아래 두 사람을 바라보고는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두 분 공자님들께서는 운치가 넘치십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 아래쪽에 경치를 감상하러 오시고 말이지요.”

    “여러분이 능숙하게 제비집 따는 모습을 보니 더욱 눈과 마음이 즐겁군요.”

    심협이 웃으며 답했다.

    이후 심협과 오홍은 가볍게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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