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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28화 (228/1,214)
  • 228화. 꿈에서 깰 때

    한나절쯤 뒤, 천지영기가 만들어낸 소용돌이는 맑은 소리를 내며 흩어져 사라졌다. 이어서 대전 계단 위, 심협의 몸에서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쳤던 금빛도 서서히 사그라졌다.

    심협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작게 숨을 내뱉자 용과 호랑이의 포효가 튀어나왔다.

    그는 겉보기에는 전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두 눈에는 밝은 빛이 어른거렸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엄청난 기세가 담겨 있는 것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지금 그의 체내에서는 실로 천지가 개벽하는 격변이 일어났으니, 단전 안의 법력이 거의 열 배는 폭증했고, 원래 액체 상태였던 법력이 응련되어 거의 반쯤 응고된 아교(阿膠) 상태를 이루었다.

    스무 줄기 법맥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그 위에 올챙이 같은 금빛 무늬가 점점이 떠올랐다. 그 안에 흐르는 법력도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본래도 단전보다 서너 배는 법력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그의 법맥들은 이제 단전의 열 배는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이는 곧 지금 그의 체내 법력은 보통의 대승기 중기를 훌쩍 뛰어넘어 대승기 후기에 비할 수 있을 정도라는 뜻이었다.

    ‘이것이 바로 도체(道體)의 무서운 점이구나! 법맥이 숱하게 많으니 법력이 같은 단계 수사보다 월등히 높아. 그러니 법기나 법보를 쓸 필요도 없이 법력만으로도 어지간한 상대는 눌러 죽일 수 있는 거야!’

    심협이 속으로 감탄했다.

    게다가 법력뿐만 아니라 육신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가 가볍게 주먹을 쥐자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두 차례 울렸다. 그 뒤 그는 금빛 대전 한구석 허공을 향해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대전 벽에 금세 금빛 금제가 한 층 떠올랐지만, 이내 움푹 들어가 버렸다.

    그때였다.

    쐐액!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불티가 사방으로 튀면서 무슨 재료를 제련하여 만들었는지 모를 대전 벽 위의 다섯 군데에 갑자기 긁힌 자국이 깊게 파였다.

    심협은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바닥을 칼날처럼 만들어 대전 밖의 하얀 빛 덮개를 향해 베듯이 휘둘렀다.

    쿠르릉!

    굉음과 함께 하얀 빛 덮개가 아래로 조금 내려앉으면서 심하게 떨렸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본래의 상태를 회복했다.

    이 일격은 오홍이 퍼부었던 공격의 위력에는 다소 못 미쳤지만, 그리 큰 차이는 아니었다.

    심협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육신은 예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해져, 몸을 단련하는 데에 전념하는 수사들이나 육신의 힘으로 정평이 난 요물들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심협은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는 속으로 조용히 황정경을 운공했다. 그러자 몸 표면에서 금빛이 활짝 피어오르며 각각 네 마리의 금룡과 금 코끼리 허상이 떠올랐다가 곧장 체내로 녹아들었다.

    그 순간, 심협의 몸에 변화가 생겨 두 팔이 순식간에 길어지더니, 그 위에 금빛 비늘 조각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또한 손바닥이 몇 배나 커지더니 열 손가락이 길쭉하게 늘어나 구부러졌고, 손끝에는 날카롭고 뾰족한 발톱들이 자라났다.

    심협의 두 팔은 놀랍게도 용의 팔뚝 같은 모습이 된 채 차가운 금빛을 번뜩였고, 두 다리는 굵직하고 튼튼한 코끼리 다리로 변해 있었다.

    삽시간에 심협은 반은 용이고 반은 코끼리가 되었다. 법력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그 육신의 기운은 몇 배나 폭증했다.

    그는 자신의 두 손을 들여다보고는, 손을 들어 대전의 벽을 다시 사납게 할퀴었다.

    벽에는 또다시 금빛 광채가 떠올랐으나 가볍게 찢겨나갔고, 뒤이어 벽은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심협은 씩 미소를 지으며 오른발을 가볍게 내디뎠다.

    쿠르릉!

    커다란 소리에 이어 발아래 계단이 갈라지더니 작은 돌 더미로 무너졌다.

    ‘황정경을 더 깊이 수련할수록 육신의 변화 능력이 강해지니, 72구절을 완벽하게 수련한다면 정말 진짜 용이나 거대한 코끼리로 변할 수 있을지도 몰라!’

    심협은 그렇게 생각하며 결인해 몸 표면의 금빛을 흩어버리고는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갔다.

    그때, 계단과 벽에서 각각 눈부신 금빛이 떠올라 몇 번 반짝이다가 바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러자 심협이 할퀴어 무너진 벽과 부서진 계단이 놀랍게도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심협을 이를 보고 낯빛이 살짝 굳었지만, 앞서 방촌산의 사월칠성동(斜月七星洞)에서도 비슷한 금제를 본 적이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는 가부좌를 튼 채 다시 손바닥을 뒤집어 육진편을 꺼내 구구통보결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이에 여러 갈래의 금빛이 그의 손에서 떠올라 육진편으로 끊임없이 스며들었다.

    그가 예상한대로 경지가 상승함에 따라 육진편에 걸린 더 깊은 단계의 금제도 더욱 분명하고 또렷하게 감응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하루 낮과 밤이 지났다. 그 사이 육진편 표면에는 검은 빛이 반짝이며 무려 서른세 개나 되는 검은 금제의 빛무늬가 휘감고 있었다.

    “하품(下品) 법보의 금제는 32도가 한계라고 백소운이 그랬지. 육진편에는 33도 금제가 걸려 있으니, 중품 법보인 셈이군.”

    심협은 생각에 잠긴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한 손으로 육진편을 쥐고 법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채찍의 검은 빛이 갑자기 크게 밝아졌고, 바다처럼 크고 무거운 영압이 폭발하면서 한 줄기 폭풍을 일으켜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심협은 내심 기뻐하며 급히 법력을 거둬들였다.

    중품 법보인 육진편의 위력은 상당했지만, 법력 소모 역시 컸기에 잠깐 효력을 발휘시킨 것만으로도 체내 법력이 절반은 소모됐다.

    “이제 남은 천병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심협은 기쁨에 겨워 육진편을 체내로 거둬들이고는 가부좌를 튼 채 숨을 골랐다. 그렇게 법력을 회복한 그는 곧장 다시 대전으로 발을 디뎠고, 곧이어 익숙한 금빛이 스쳐 지나면서 시련의 공간으로 끌려 들어갔다.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추와 방패를 양손에 든 은갑의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에게서는 대승 초기의 영압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심협을 보자마자 커다란 방패를 몸 앞에 세우고는 은빛 환영으로 변해 곧장 돌진해왔다.

    심협은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 올려 휘둘렀다.

    꽝!

    굉음과 함께 은갑 사내의 환영이 우뚝 멈춰 섰다. 어느새 금빛 용의 발이 은빛 방패를 움켜잡고 있었다. 방패는 잔뜩 찌그러져 움푹 꺼진 상태였다.

    방패를 그 지경으로 만들고도 심협의 손은 전혀 방해를 받지 않은 듯했고, 다른 손을 휘두르자 검은 채찍 그림자가 휘감겨 나왔다.

    마치 검은 태양을 이루듯 채찍에서 검은 빛이 세차게 피어오르며 은갑 사내의 머리를 후려쳤다.

    퍼펑!

    다음 순간, 폭발음과 함께 은갑 사내의 머리를 비롯한 상반신은 수박처럼 터져나갔고, 뒤이어 온몸이 허무로 변하여 사라졌다. 이어 그 안에서 하얀 빛 덩어리 하나가 날아와 심협의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곧이어 심협은 눈앞이 아득하게 흐려지더니 다시 금빛 대전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천병을 상대하는 데는 고작 몇 번 호흡할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심협은 금빛 단약을 먹고는 곧장 다음 시련을 시작했다.

    이후 한층 강해진 경지에 육진편의 위력까지 더해 점점 강해지는 천병들을 가뿐히 무찔렀고, 이에 따라 수련 경지나 전투 경험 모두 끊임없이 상승했다.

    * * *

    또다시 하루가 지났다.

    대전 밖에 가부좌를 튼 심협의 몸에서는 금빛이 일렁였고, 주위에는 네 마리 용과 코끼리의 빛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우우웅!

    공간이 일렁이는 데에도 소리가 있다면 이런 소리일까? 기이한 소리가 울리더니 심협의 몸에서 갑자기 금빛이 세차게 솟구쳐 몸 주위에 금룡과 금 코끼리의 허상이 하나씩 더 나타났다. 다만, 이번에 나타난 용과 코끼리는 이전의 것들에 비하면 더없이 흐릿했다.

    심협은 천천히 눈을 뜨고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방금 그의 수련 경지는 또 한 단계 상승하여 대승 후기에 다다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금세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몸을 일으켜 대전 안으로 향했다.

    그는 이미 스물여덟 명의 천병을 무찔렀다. 금갑천장이 말한 삼십육 천강병까지는 이제 여덟 명이 남은 것이다.

    천병들은 갈수록 강해졌지만, 심협은 현재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는 대전에 들어선 순간, 갑자기 몸이 극심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거꾸러졌다. 체내의 모든 힘이 한순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려 심지어 몸부림조차 칠 수 없었다.

    뒤이어 엄청난 통증과 무기력감이 전신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어찌된 일이지?’

    심협은 덜컥 두려워졌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고통과 무기력감은 오래되지 않았고, 심협은 눈앞이 돌연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며 모든 감각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 * *

    심협은 서서히 두 눈을 떴다. 정신이 몽롱하고 눈앞이 흐리멍텅했다.

    “내가…… 돌아온 건가?”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의아한 듯 혼잣말을 했다.

    다시 시선을 돌려 살펴보니, 멀지 않은 곳의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책걸상과 옅은 약향이 가득한 것을 보니, 분명 자기 집 침실이었다.

    “하지만 왜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번에 깨어난 것은 왠지 모르게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난날 꿈에서 깨어날 때는 항상 어떤 일들을 완수한 후였다. 산골 마을에서 귀신을 죽이거나 오래된 절에서 요괴를 멸했고, 장수촌에서는 사람을 구했다. 매번 같지는 않았어도 항상 어떤 일을 완수한 후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데 이번 보탑에서는 아직 금갑천장이 말한 삼십육 천강병을 무찌르지 못했는데 갑자기 의식을 잃고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마치 꿈을 반쯤 꾸다가 중간에 끊기고 잠에서 깨어난 느낌이었다.

    그는 침상에 누워 원인을 살폈지만, 전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음, 도무지 모르겠군. 차차 다시 생각해보자.”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붙들고 있기보다는 일어나서 수련이나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 팔을 들어 올리려 하니 마치 납덩이를 손에 든 것처럼 무거웠고, 전신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으며, 참기 힘든 피로감이 이어졌다.

    심협은 깜짝 놀라 전신의 통증에도 아랑곳 않고 억지로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눈앞이 온통 흐릿해지면서 방 안의 탁자와 의자가 비틀리기 시작했고, 눈앞의 휘장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나풀거리며 하늘이 빙빙 돌았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던 그는 현기증을 이기지 못해 무기력하게 뒤로 쓰러지며 뒤통수를 옥침에 세게 부딪혔다. 그러고도 한참을 그 상태로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머릿속도 곤죽이 된 것처럼 아예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익숙한 느낌이 그의 마음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의 체내에 끝없는 구멍이 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생명력을 미친 듯이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 강렬하기 이를 데 없는 통증은 그의 의식을 조금씩 찢어발기며 온몸을 뒤틀리게 만들었지만,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분명 한창 이른 아침인데도 하늘은 검은 장막을 친 듯 점점 어두워지며 심협을 에워쌌다.

    눈앞은 다시금 어둠에 잠겨들었고, 그는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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