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27화 (227/1,214)
  • 227화. 시도

    심협이 체내의 법력을 육진편으로 주입하자, 쿵 하는 거대한 소리가 들려오면서 그 위에 갑자기 꺼질 듯 가물거리는 검은 빛무리가 나타났다. 빛무리는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소름끼칠 정도의 영압을 뿜어내면서 은갑 거한을 공격했다.

    쩌적!

    부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귀갑 보호막이 살얼음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은갑 장사는 몸을 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했는지, 두 손을 등 뒤로 휘둘러 두 줄기 은빛 손바닥 그림자로 심협을 후려치려 했다.

    하지만 육진편이 뿜어내는 검은 빛무리가 확 불어나더니, 두 줄기 손바닥 그림자를 집어삼키고도 전혀 위력이 줄어들지 않은 채 거한의 등을 내리쳤다.

    파지직!

    육진편의 일격에 거한의 은갑은 산산조각이 났고, 육신도 그대로 두 동강 나 양옆으로 날아갔다.

    심협은 이 광경에 입이 떡 벌어져 그 자세 그대로 경직되어버렸다.

    대승기 존재를 손쉽게 처치하다니! 처음으로 펼쳐본 이 육진편이라는 법보의 위력은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심협은 맥이 탁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육진편의 위력이 대단한 만큼 법력 소모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많아, 방금 그 일격에 그가 가진 법력이 완전히 소진된 것이다.

    그 사이, 두 동강 난 은갑 거한의 몸은 빠르게 투명해져 사라졌고, 하얀 빛이 그 상반신에서 날아와 심협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그리고 심협은 이내 금빛 대전으로 되돌아왔다.

    은갑 거한의 신혼(神魂)의 힘은 그야말로 강력해서, 심협의 식해(識海) 속 작은 사람 형상의 신혼이 갑자기 곱절 이상 불어났고, 심지어 반투명했던 형체도 훨씬 환하고 실체에 가까워졌다.

    심협은 이를 악물고 신혼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견뎌냈다. 고통스럽긴 해도, 신혼의 변화에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내 신혼의 힘이 이미 출규기의 완벽한 경지에 이른 거야! 그러니 이제 언제든 신혼의 불을 지펴 대승기 돌파를 시도해볼 수 있어.’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그는 갑자기 한 손을 휙 들어 올려 정면에서 날아오던 금빛 단약덩어리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새 대전 밖으로 나와 가부좌를 튼 채 고민에 잠겼다.

    지금 그는 신혼의 힘이나 수련 경지 모두 정점에 도달해 있었고, 몸 안에 축적된 원기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손에 쥔 금빛 단약을 먹는다면 십중팔구 체내 법력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대승기를 돌파하기 시작할 터였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돌파하려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까 걱정이었다.

    “바보 같기는……. 지금 나는 꿈속에 있잖아. 그러니 돌파에 실패해 죽는다 해도 되살아날 수 있어! 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쌓으면서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성공할 수도 있지.”

    그의 얼굴에 드리웠던 망설임은 구름 걷히듯 사라졌으며, 오히려 눈에는 흥분한 기색까지 나타났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곧장 가부좌를 틀고 제대로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뒤집어 금빛 단약을 꺼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꿀꺽 삼킨 뒤, 운공하며 정제했다.

    단약은 무수한 열류로 변해 온몸으로 내달리며 그의 체내 법력에 녹아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체내의 법력은 다시 통제를 받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몸에서는 환한 금빛이 피어올라 온몸을 휘감으며 쉬지 않고 회전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금빛은 더욱 밝아져 대전 바깥을 온통 물들였고, 심지어 대전 안까지도 비쳐들었다.

    심협의 몸은 금빛 속에서 보일 듯 말 듯했다.

    그가 편하게 내려놓았던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재빨리 차례로 법결을 맺자, 몸의 금빛도 따라서 일렁였다.

    잠시 뒤, 훅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그의 미간에서 갑자기 눈부신 빛이 영롱하게 빛났다. 주위의 금빛도 불꽃처럼 번쩍였다.

    ‘이것은 신혼의 불!’

    심협은 결인한 두 손을 멈추지 않고 연이어 법인(法印)을 맺었다.

    잠시 뒤, 그의 단전 안에도 맑고 투명한 금빛 불꽃이 번득이며 몸 밖으로 배어나왔다.

    이것은 원기의 불이자, 법력의 불꽃이 틀림없다!

    사람의 신혼은 머릿속에 모이고 법력은 단전에 모이기에, 이 두 곳에 생명의 불을 일으키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것은 정력의 불, 즉 육체의 근본인 정기(精氣)의 불꽃이었다.

    육신의 정기는 온몸에 퍼져 있어 이를 정력의 불로 응련하는 것만 해도 더없이 힘겨운데, 그것을 다시 응집시키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심협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계속 공법을 운공했다. 그러자 네 마리의 용과 코끼리 허상이 번갈아 떠올랐다가 천천히 그의 몸속에 녹아들었다. 몸 곳곳의 모공이 부풀어 오르면서 누에콩처럼 불룩불룩 솟아올라 소름 끼쳐 보이기도 했으나, 이내 점점이 하얀 빛들이 솟아오르며 가볍게 요동쳤다.

    심협은 차분하게 계속 두 손을 결인해 법술을 시전했다.

    하얀 빛들은 천천히 그의 가슴 쪽으로 모여들었고, 꼬박 한나절이 지나서야 완전히 모여 하얀 불꽃으로 응결되었다.

    심협은 약간 마음을 놓았고, 내심 황정경을 전수해준 도인에게 감사했다. 황정경은 법체쌍수의 심오한 공법인 동시에 육신의 힘과 법력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었기에 이렇듯 가뿐히 육신의 불꽃을 피워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체쌍수 공법인 덕에 육신의 불꽃과 법력의 불꽃이 선천적으로 잘 맞아서 삼원의 힘이 하나로 합쳐질 때 보통 공법을 수련하는 사람보다 더 쉬웠다. 이것이 바로 법체쌍수 공법이 보기 드물게 귀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육신의 불꽃을 응련해낸 심협은 망설임 없이 두 손으로 몸 앞에서 결인했다. 그러자 그의 미간과 아랫배의 두 불꽃이 천천히 가슴까지 이동해 곧 하얀 정력의 불꽃과 함께 모였다.

    하지만 이는 대승기로 올라가는 시작 단계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삼원의 불꽃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만 순조롭게 대승기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심협의 가슴 앞에 모인 삼원의 불은 융합되기는커녕 서로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가 강한 정력(*定力: 잡념을 없애고 한곳에 마음을 집중하는 힘)으로 억누르지 않았더라면 진즉 폭발했을 터였다.

    심협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온힘을 다해 황정경을 운공했다.

    콰쾅!

    짧지만 강렬한 소리와 함께 그의 온몸을 감싼 금빛이 다시 한 번 밝아지면서 거대한 금빛 덩어리를 이루어 전신을 빛으로 뒤덮었다.

    이에 대전 안팎의 천지영기가 갑자기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크고 작은 영기 소용돌이가 생겨나며 모든 영력이 심협에게로 모여들었다.

    눈 깜짝할 새에 반 시진이 넘게 지나갔을 무렵, 금색 빛 덩어리가 갑자기 심하게 요동치며 날카롭게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냈다. 뒤이어 금색 빛 덩어리가 용솟음치더니 서로 다른 세 갈래 불길이 안에서 폭발하면서 굉음이 울렸다. 동시에 금색 빛 덩어리도 완전히 터져나갔다.

    이 폭발에 심협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시커멓게 타버렸고, 그의 온몸은 위아래로 맹렬한 금빛 불길에 싸여 활활 타오르다가 곧 재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방관자처럼 이 모든 것을 고요히 지켜볼 뿐이었다.

    심협의 온몸은 이내 완전히 잿더미로 변했고, 의식도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시야는 다시 환해졌다. 온몸에서는 금빛이 반짝였고, 주위로는 거대한 빛 덩어리가 만들어져 세 개의 불꽃이 천천히 모여들면서 삼원의 불꽃이 융합되기 전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돌파 처음 단계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앞의 순서도 또다시 해볼 수 있을 테니까.”

    아쉽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부활 시점은 통제할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법을 운공해 삼원의 불을 융합시키며 대승기에 충격을 가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시도 역시 실패로 끝났고, 육신은 다시 재로 변해 날아갔다.

    “대승기로 올라가기란 과연 쉽지 않구나. 현재 이 몸의 자질은 가히 천부적이라 할 수 있는데도 이렇게 애를 먹다니…….”

    심협은 혀를 찼지만, 낙담하지 않고 곧장 세 번째 충격을 가했다.

    이렇게 그는 꼬박 열여덟 번을 연속으로 실패한 끝에야 비로소 삼원의 불을 하나로 합치는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다.

    열아홉 번째 시도에서,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휘황찬란한 금빛 속에 삼원의 불은 심협의 가슴 앞에서 서로 하나로 얽히면서 둥근 불덩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더는 충돌하지 않고 서로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이내 왕성한 생기가 느껴졌다.

    “삼원합일(三元合一)……. 이런 거였구나. 이런 거였어!”

    그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결인한 두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삼원의 불덩이는 천천히 움직이며 하나로 융합되기 시작했고, 전혀 다른 세 가지 빛깔도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불덩어리가 갑자기 오그라들더니 서서히 그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그러자 심협의 식해(識海) 안에 있던 사람 형체의 신혼(神魂)이 갑자기 몇 번 부들부들 떨더니, 짧은 굉음과 함께 쪼개지며 10여 개의 반투명한 작은 공으로 변해 체내로 녹아들었다.

    뒤이어 청천벽력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고, 금탑 공간 속 천지영기가 모두 심협에게로 몰려들었다. 심지어 금탑 외부, 반경 백 리의 천지영기까지도 세차게 요동치면서 자극을 받아 일렁였다.

    각기 다른 색깔의 무수한 영기 빛 덩어리가 응결되어 나타나더니, 금빛 거탑을 향해 빠르게 모여들어 놀라운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한편, 금탑 입구를 서성이며 탑신 주위의 금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 애쓰던 용태자 오홍은 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놀라운 현상에 화들짝 놀랐다.

    “보아하니 누군가 대승기를 돌파하여 천지의 이상을 불러일으킨 모양이로군! 혹시…… 심 도우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그는 출규 중기에 불과해. 이 영기 소용돌이의 범위는 너무 커. 내가 대승기로 올라갈 당시에도 천지영기의 파동은 반경 50여 리 정도에 불과했는걸.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오홍의 눈에는 빛이 번득였다.

    * * *

    금탑 9층 계단 위.

    심협은 천지영기가 미친 듯이 주입되며 체내의 법력이 빠르게 상승하고, 머릿속 신혼 역시 차츰차츰 몸에 녹아들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기존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것들도 마치 손금 보듯이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현상의 이유는 분명했다. 그가 대승기 돌파를 눈앞에 뒀다는 뜻이다.

    “안 돼! 그냥 이렇게 대승기에 접어들 순 없어! 이번에 내가 삼원의 불을 융합한 것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 숙련도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심협은 기뻐하기는커녕 근심어린 표정으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대승기 난관에 가로막힌 다른 출규기 수사들이 이 말을 들었더라면 당장 비검을 뽑아들고 달려들었을지도 모를 말이었다. 갖은 자원을 쏟아 붓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대승기 난관에 막혀 죽을 고생을 하는 판에, 이 무슨 배부른 소리란 말인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심협은 이를 악물더니 몸속에서 서로 융합되고 있는 삼원의 불을 스스로 산산이 부숴버렸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금빛 화염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곧 그를 재로 만들어버렸다.

    심협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금세 다시 되살아나 다시 한번 삼원의 불꽃이 서로 융합되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돌아왔다.

    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여 요령을 되짚어보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심협은 또다시 부활하는 방식으로 수십 차례나 충격을 가했다. 이미 성공을 거둔 경험 덕인지, 이후로는 네댓 번 중 한 번은 삼원합일에 성공했고, 시간이 더 흐르자 세 번, 심지어 두 번에 한 번꼴로 성공했다.

    그리고 연달아 세 번을 순조롭게 삼원의 불꽃을 융합한 후에야 심협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시도를 멈추었다.

    “웬만큼 됐군.”

    그가 이토록 오랜 시간을 들여가며 고생한 이유는, 나중에 현실 세계에서 대승기에 진입할 때를 대비해서였다. 그곳에서의 자신은 자질이 부족한 편이니 이렇게라도 경험을 쌓아두면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어쨌든 이제 그는 더 이상 수련 경지를 억제하지 않고 대승기에 접어들었다. 그러자 금탑 안팎의 천지영기가 모여들어 그의 체내로 주입되었다. 법력은 빠르게 상승했고, 스무 가닥의 법맥에도 연달아 변화가 일어나면서 다시 확장됐다.

    모여든 천지영기는 그의 법력을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체내를 이리저리 흘러 다니면서 뼈와 근육, 경맥, 내장으로 녹아 들어갔다. 이어서 그의 전신 곳곳을 끊임없이 탈바꿈시켰고, 몸의 강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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