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26화 (226/1,214)
  • 226화. 법보를 제련(祭煉)하다

    백소운은 당시 사문(師門)의 비호에 의지하여 정신을 집중시키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원기를 다스리는 여러 금제들을 설치하고, 또 파경을 돕는 영험한 묘약까지 먹고서야 겨우 이 난관을 넘겼다고 했다.

    그러나 심협은 지금 금탑에 홀로 있으니 그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인 만큼 대승기를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중에 생각하자.”

    심협은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내고는 다음 시련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그는 열다섯 명의 천병을 무찔렀다. 금갑천장의 말대로라면 아직 스물한 명의 천병을 더 이겨야 시험에 통과할 수 있는 셈이다. 더욱이 앞으로 상대해야 할 천병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도 알 수 없었다. 최악의 상황은 부활을 반복해도 끝내 이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심협은 잠시 숨을 고른 후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곧 금빛 두 줄기가 금갑천장의 두 눈에서 쏘아져 나와 그를 시련의 공간 속으로 데리고 갔다.

    이번에 나타난 천병은 봉두난발에 체격이 유달리 우람한 남자로, 아무 무기도 들지 않은 맨손이었다.

    심협의 표정이 굳었다. 상대에게서는 어떤 강한 기운도 풍기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방심은 금물이었다.

    은갑의 거한(巨漢)이 갑자기 고개를 들자, 몸이 약간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사나운 범처럼 달려들었다. 은갑 너머로 드러난 피부의 모공들에서 자잘한 별 그림이 떠오르면서 몸이 갑자기 크게 불어났는데, 두 주먹이 공양 그릇만 해졌고, 그 주먹이 허공에 일격을 가했다.

    쉭!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권풍(拳風)이 지나간 곳은 허공이 찢겨 나간 것처럼 하얀 흔적이 남았다.

    그와 동시에 천지를 내려앉게 할 것만 같은 강력한 영압(靈壓)이 금빛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에 공간 전체가 미친 듯이 떨려왔다.

    ‘대승기 경지!’

    심협은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어 재빨리 피하려 했으나, 금빛 공간 전체가 사내의 주먹질 한 번에 짓눌린 듯했다. 주위 공간이 마치 끝없는 진흙탕으로 변한 것처럼, 심협은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전력을 다해 주먹을 휘두르며 맞설 수밖에 없었다.

    우드득!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심협은 두 어깨가 부러졌고, 피를 토하며 튕겨져 나가 돌 받침에 처박혔다. 전신에 감당하기 힘든 통증이 느껴졌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보려 했으나, 위쪽에 은빛 그림자가 번쩍 스치더니 난데없이 은갑 거한이 나타나 두 주먹을 내리쳤다.

    두 개의 권영(拳影)이 쏜살같이 내려와 순식간에 집채만 한 두 개의 은빛 주먹으로 변해 심협의 몸을 때렸다.

    퍽!

    “크헉!”

    심협의 몸은 아무런 저항 없이 뭉개져 알아볼 수 없이 피투성이가 되었고, 그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빠져 들었다.

    * * *

    금탑 바깥의 계단 위.

    “대승기 천병이 이토록 강력하다니! 그 은갑의 장사가 수련한 공법도 황정경 못지않은 법체쌍수(法體雙修)의 최정상 공법인 것 같았어.”

    되살아난 심협은 좀 전의 싸움을 떠올리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지금 그의 경지는 출규기 정점에 이르렀으니 대승기 천병이 상대로 나타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일초반식(一招半式)도 버텨내지 못하고 끝장날 정도로 상대가 강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가 예상을 했건 못 했건 시련은 계속될 터였다.

    “대책을 잘 세워봐야겠어.”

    심협은 몸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어서 그는 한참이나 생각을 정리한 뒤에야 몸을 일으켜 다시 대전 안으로 들어섰고, 이내 시련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은빛이 번쩍이고 은갑 거한의 형체가 떠올라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가 한 걸음 내딛기도 전에 심협의 몸에서 녹색 그림자가 빛나며 사람이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더니, 다음 순간 은갑 거한 뒤에 나타났다.

    이 금빛 공간 안에는 을목(乙木)의 기운이 희박했지만, 심협은 어떻게든 이동할 수 있었다.

    심협이 몸을 드러내자마자 두 주먹이 강한 금빛을 내뿜었고, 용과 네 마리 코끼리의 허상이 떠올라 그 위를 휘감았다. 그리고 뼈가 어긋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팔이 갑자기 곱절로 커지더니, 은갑 거한의 급소를 향해 번개처럼 꽂혔다.

    은갑 거한은 몸을 돌리지도 않고 몸 표면의 모공에 다시 수많은 별 도안을 떠올렸다. 도안에서는 무수한 은빛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거한의 주변에 거북이 등딱지처럼 응결되면서 은색 보호막을 만들었다.

    콰쾅!

    심협의 주먹이 보호막에 꽂히면서 굉음이 울렸다.

    그러나 은빛 보호 덮개는 그저 몇 번 번뜩였을 뿐, 산도 족히 부수고 강도 끊어 버릴 만한 두 주먹을 거뜬히 견뎌냈다.

    심협은 경악하여 재빨리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눈가에 잔상이 어른거렸다. 은갑의 거한이 여러 줄기 잔상을 드리우면서 한쪽 팔꿈치로 그의 어깨를 내리친 것이다.

    하늘도 무너뜨릴 법한 힘이 덮쳐와 심협의 온 어깨는 산산조각이 났고, 체내에서도 무언가 깨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마구 울리면서 골격 대부분이 부서졌다. 심협은 그대로 다시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끝이 아니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거대한 은빛 주먹들이 하늘에서 날아와 그의 시야를 뒤덮은 것이다.

    * * *

    심협은 다시 대전 밖 계단 위에서 눈을 떴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계단 위에 한나절이나 앉아 있다가 다시 대전으로 들어갔으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죽임을 당했다.

    심협은 은갑 거한에게 열 번을 연이어 도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수단인 황정경, 사월보, 삼성멸마 등등 모든 신통력을 꺼내 썼지만, 조금의 가망도 보이지 않았다. 탑 바깥의 금제 때문인지 통령역요 술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설마 정말 여기까지인가? 난 평생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하나?”

    심협은 우울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내뱉더니, 이내 이를 악물었다.

    “아니! 절대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어!”

    그의 눈빛은 이내 굳건해졌고, 다시 은갑 거한을 이길 방법을 고심했다.

    그와 은갑 거한의 가장 큰 차이는 수련 경지였다. 그는 대승기까지 딱 한 걸음 남았지만, 이 한 걸음이 크고 험한 강줄기에 가로막힌 것과 같은 정도였다. 대승기를 돌파한다면 언젠가 은갑의 거한을 꺾을 수도 있겠지만, 어떠한 외적인 도움도 없이 대승기를 돌파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순간, 심협의 두 눈이 번득였다.

    “맞다! 내가 왜 육진편을 잊고 있었지? 지금 돌파를 시도하는 건 자신이 없으니, 육진편을 제련(祭煉)하는 편이 낫겠어! 그 법보만 있으면 내 실력도 많이 늘 거야!”

    심협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손을 뒤집어 육진편을 꺼냈다.

    “그나저나…… 시련공간에는 내 육신을 제외한 옷과 칠성필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는데, 육진편은 어떨까?”

    그런 문제가 떠올랐지만, 일단은 육진편을 제련한 후에 시험해보기로 했다.

    대략적인 계획을 세운 심협은 가부좌를 틀고 육진편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구구통보결(九九通寶訣)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그의 두 손에서 여러 줄기의 법결이 쏘아져 나와 육진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육진편에서는 순간 검은 빛이 가닥가닥 떠오르면서 점점 더 밝아졌다.

    사흘 밤낮으로 제련을 계속하자, 육진편 위에 열여섯 줄기의 검은 빛 무늬가 떠올랐다. 육진편을 휘감은 검은 빛은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짙어진 상태였고, 채찍 몸체에 깊고 검은 빛 덩어리를 이루며 이따금 번쩍거렸다. 그때마다 근처의 공기까지도 물결 같은 무늬를 일으키며 몹시 떨렸다.

    심협은 두 손으로 수레바퀴 같은 인을 맺었다. 그러자 법결이 육진편 위에 빗방울처럼 떨어져 내렸다.

    육진편의 금제는 그가 이미 16도까지 제련하여 중요한 순간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온힘을 다해 구구통보결을 운공하면서 체내의 법력을 전부 육진편 안으로 쏟아부어 한 번, 또 한 번 충격을 가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의 몸 안에 있던 법력이 거의 바닥나 버틸 수 없을 때쯤,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육진편 안의 다음 금제가 드디어 무너진 것이다. 동시에 육진편이 뿜어내던 검은 빛은 갑자기 몇 배나 밝아지더니 윙윙 떨리는 소리를 내면서 그의 품에서 날아올라 주위를 맴돌며 날아다녔다.

    눈을 뜬 심협의 낯빛은 오랜 제련으로 인해 조금 창백해졌지만, 눈에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손을 들어 휘두르자 주위를 맴돌던 육진편이 곧장 날아왔고, 꽉 움켜쥔 순간 열일곱 줄기의 검은 빛 자국이 그 위에서 가볍게 일렁였다.

    “육진편은 역시 법보였어!”

    심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상품 법기의 금제는 최대 9도였다. 반월환이 바로 그랬다. 9도 금제를 넘어서는 법기는 극품 법기에 속한다. 그러나 극품 법기도 금제는 최대 16도까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를 넘어가면 법보로 분류된다.

    한편, 심협은 이것이 육진편의 한계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 채찍의 깊은 곳에는 아직 금제가 존재했다. 다만 현재 그의 경지로는 아직 완전히 꿰뚫어볼 수 없었다.

    심협은 손바닥을 휙 뒤집어 육진편을 칠성필 공간에 챙겨 넣고는 일단 소모된 법력부터 회복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육진편이 돌연 크게 번득이더니 한 줄기 검은 빛으로 변해 심협의 체내로 사라져버렸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화들짝 놀란 심협은 황급히 정신을 집중하고 체내를 살폈다. 이내 사라진 육진편이 수십 배로 줄어들어 단전 안에 가만히 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법보의 통령은 법기와 달라 몸 안에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이었군!”

    심협은 희색을 드러내며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육진편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육진편을 체내로 거두어들이고는 눈을 감은 채 공법을 운공했다.

    반 시진 뒤, 그는 체내의 법력이 완전히 회복되자 마음을 다잡고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금갑천장이 눈을 번쩍 뜨자 두 줄기 금빛이 그의 몸을 감쌌다.

    심협은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고, 뒤이어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금빛 공간의 돌 받침대 위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곧장 신식으로 체내를 살펴보았다.

    “있다!”

    육진편이 단전 안에 고요히 떠 있음을 확인한 그는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손을 들어 육진편을 소환하려다가 뭔가 생각난 듯 우뚝 멈추었다.

    그때, 저 앞에서 은빛이 번쩍였고, 은갑의 장사가 돌 받침 위에 나타나더니 두말없이 달려들며 두 주먹을 번개처럼 휘둘렀다.

    하지만 심협은 몸 표면에 녹색 빛을 번득이며 우선 을목선둔을 써서 사라진 뒤, 느닷없이 은갑 거한의 뒤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왼손은 금빛을 환하게 뿜어냈는데, 그 안에는 용과 코끼리의 허영이 어른거렸다.

    그 주먹이 은갑 거한의 등 뒤를 향해 내리 꽂혔다.

    ‘지금까지로 미루어보아 이 천병은 은빛 귀갑(龜甲) 보호막으로 막아낼 터!’

    심협은 그렇게 예상했고, 과연 은갑 거한의 전신 모공에서 무수한 은빛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귀갑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그 순간, 심협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막 내뻗던 왼손을 우뚝 멈췄다. 동시에 오른손에 검은 그림자가 스치며 육진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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