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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25화 (225/1,214)

225화. 수확

다시 시야가 환해졌을 때, 심협은 뜻밖에도 금빛 공간의 돌 받침대 위에 나타나 있었다. 저 앞에서는 손에 쌍도를 든 은갑 천병이 두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새하얀 도광 두 줄기가 날아왔다.

‘방금 전 내 허리를 잘라버린 그자잖아!’

급히 몸을 날려 피한 심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깜빡했군. 난 꿈속에 있으니 죽어도 다시 살 수 있잖아!’

은갑 천병의 손에 들린 쌍도가 춤을 추자, 새하얀 도광이 마치 성난 파도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빠르게 날아왔다. 빈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심협은 이전에 이 성난 파도 같은 도광에 제압당해 줄곧 반격의 기회를 찾지 못하다가 결국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은 환생한 상태이므로, 아까의 싸움 경험 덕에 훨씬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었다.

뒤로 몇 차례 피한 심협은 은갑 천병의 연이은 도광 속 빈틈을 확실히 보고는 세차게 몸을 날렸다. 그러자 몸이 종잇장처럼 얇아져 두 줄기 도광 사이의 조그만 빈틈을 뚫고 지나갔다.

그는 황정경에 담긴 육신의 변화 능력을 응용했지만, 여전히 도광의 공격을 완전히 피하지 못했는지 가슴께에서 타는 듯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심협은 아랑곳 않고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은갑 천장조차 일순 당황한 듯 쌍도를 모아 가로로 휘둘렀다.

촤악!

길이가 10여 장에 높이는 4장에 이르는 새하얀 도광이 세찬 물결처럼 심협을 향해 날아오며 모든 진로를 봉쇄했다.

심협은 두 주먹을 꽉 쥐고 팔뚝 주변에 금빛을 모아 마치 실재하는 듯한 두 개의 코끼리 다리 허상을 만들어낸 뒤, 크게 휘둘렀다.

쾅!

천둥번개가 치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동시에 새하얀 도광은 산산이 부서졌으나, 심협의 손에 있던 코끼리 다리 허상도 부서져 나갔다. 그의 주먹과 팔뚝에는 핏자국들이 생겨나 피가 낭자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상처를 개의치 않고 돌진했고, 순식간에 은갑 천병과의 거리를 서너 장으로 줄였다. 그리고 두 주먹을 풀어 짐승의 발처럼 구부리더니 허공을 휙 움켜쥐었다.

그러자 폭이 1장에 이르는 금빛 용의 발 허상 두 개가 떠올랐다. 한쪽 발은 은갑 천병의 장도 2자루를 번개처럼 잡아채 단단히 고정시켰고, 다른 한쪽은 은갑 천병의 가슴팍을 틀어잡았다.

천병은 쌍도를 크게 떨쳤다.

챙! 챙!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하얗고 서슬 퍼런 두 줄기 도광이 뒤엉키면서 금빛 용의 발을 잘라냈다.

그러나 이 금빛 용의 발은 심협이 모든 법력을 동원해 응결해낸 것으로, 위력이 대단했기에 비록 하나는 베어졌지만 다른 하나는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다.

곧 금빛 그림자가 번쩍이며 남은 용의 발이 천병의 몸을 사납게 그러쥐었다.

쫘악!

채찍 소리 같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천병의 갑옷이 찢어졌는데, 그 가슴에는 뼈가 드러날 만큼 깊은 상처가 세 군데나 생겨 있었다. 천병은 뒤로 훌쩍 나가떨어졌다.

그 순간, 심협의 발에서 달그림자의 빛이 스쳤다. 그러자 그의 몸이 번쩍하고 사라졌다가 은갑 천병의 등 뒤에 나타나, 독룡처럼 두 주먹을 등줄기에 내리꽂았다.

은갑 천병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으나, 그 와중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세찬 은빛을 내뿜으며 몸을 한 바퀴 돌려 쌍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심협의 발에서 또다시 달그림자가 스쳤고, 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가 은갑 천병의 앞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두 주먹을 짐승의 발처럼 구부리고는 계속해서 앞으로 뻗어 허공을 잡아챘다.

그의 두 손가락 끝에서 금빛이 터져 나와 검기 같은 형상으로 뭉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은갑 천병의 몸은 허공에 떠 있었던 데다가, 심협의 두 주먹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기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어깨를 덥석 붙잡히고 말았다.

그의 두 어깨는 뎅겅 베어져 몸에서 분리되어 날아갔고, 몸뚱이도 땅에 곤두박질쳤다.

심협은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눈 깜짝 할 사이 은갑 천병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오른발에서 세찬 금빛을 발하여 다시 코끼리 발의 허상을 만들어내 그대로 천병의 가슴팍을 짓밟았다.

콰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은갑이 갈라지고 천병의 가슴뼈가 모조리 부서지면서 움푹 파여 들어갔다. 천병은 두어 번 몸부림을 치더니 완전히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몸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뒤이어 하얀 빛 덩이가 그의 몸에서 날아와 심협의 체내로 들어왔다.

심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비틀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나고서야 몸을 가누고 섰다.

그의 마지막 공격 몇 번은 겉보기와 달리 모든 정신과 힘을 끌어모은 것이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번에도 목숨을 잃는 건 자신이었을 터였다.

그때, 주위의 풍경이 변하더니 심협은 다시 금빛 대전 안으로 되돌아왔다.

은갑 천병의 남은 신혼의 힘을 흡수하자, 금탑은 또다시 단약 한 알을 뱉어냈다.

심협은 단약을 덥석 받아 들었으나, 곧장 삼키지 않고 몸을 일으켜 대전 바깥으로 날아가 한쪽 구석에 앉았다.

그는 앞의 전투들을 겪으면서 금갑천장이 금빛 공간으로 자신을 들여보내는 규칙을 파악했다. 매번 천병의 남은 신혼을 흡수하고 금빛 단약을 완전히 정제하면 다시 금빛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대전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금갑천장은 그를 시련의 공간에 억지로 끌어다 넣을 수 없으니, 밖에서 얼마든지 머물 수 있었다.

심협이 고개를 들어 금빛 단약을 먹은 후 법력을 운공하여 정제하자, 수련 경지가 또 많이 올랐다. 그러나 두 팔의 상처는 꽤나 심각해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곳도 있었다. 금빛 단약에 상처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기는 하나, 이 정도로 큰 상처까지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었다.

심협은 두 팔의 상처를 살피면서 계속 황정경을 운공했다. 그러자 곧 부드러운 금빛이 배어나와 그의 몸을 휘감으며 금빛 사의(紗衣)를 이루었다.

반 시진 뒤, 심협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거의 동시에 금빛 사의가 사라졌고, 두 팔의 상처는 이미 완전히 아문 후였다.

그는 곧장 대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죽더라도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목숨을 걸고 계속 싸워나갈 자신이 생겼다. 어쨌거나 얻기 힘든 경험이었고, 수확도 풍성했으니까.

심협이 한쪽 발을 대전 안에 내딛자마자 금갑천장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두 줄기 금빛이 날아와 그를 금빛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이번에는 십여 장 앞에서 은빛이 넘실거리며 은빛 갑옷을 입은 여자 병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등에는 그녀의 키와 거의 비슷한 길이의 거대한 은빛 활을 메고 있었다.

몹시도 날카로운 기운이 여병(女兵)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는데, 예기가 하늘을 찌를 듯 서슬 퍼런 검과 같았다. 당연히 조금 전의 쌍도 전사보다도 강했다.

심협은 두말없이 사월보를 펼쳐 여러 개의 잔상을 만들어내며 옆으로 가로질렀다. 우선 상대의 수법을 알아본 후 빈틈을 찾아 다시 반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의 몸이 움직이기가 무섭게 맞은편에 있던 은갑 여병의 두 손이 흐릿하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뒤이어 심협은 눈앞에 은빛이 스쳐 지나는 것을 느꼈고, 거의 동시에 허공에서 은빛 화살 한 줄기가 나타났다. 화살은 그의 심장을 꿰뚫으려 했다. 그의 속도와 사월보의 기이한 신법도 이 은빛 화살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심협은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길이 1장의 검기 같은 금빛이 튀어나와 화살을 베었다.

펑!

폭발음과 함께 은빛 화살은 동강나더니 점점이 은빛으로 변하여 흩어졌다.

하지만 엄청난 반동으로 인해 심협도 한 걸음 밀려났고, 기이한 신법 또한 순식간에 흐트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미처 중심을 제대로 잡기도 전에 눈앞에 은빛이 어지러이 번쩍이더니 또다시 일고여덟 개의 은빛 화살이 날아들었다.

심협은 낯빛이 딱딱하게 굳은 채 이번에는 반대 손으로 세찬 금빛을 발하며 검광을 뿜어냈다. 그러자 곧 그의 팔과 두 줄기 검광이 사라졌고, 주위에 무수한 금빛 검영(劍影)이 나타나 보호막을 형성했다.

이는 쌍검천병의 방어 검술로, 그의 전투 경험과 검법을 흡수하면서 심협 또한 이 초식에 정통하게 된 것이다.

채챙!

촘촘한 쇠붙이끼리 맞부딪히는 굉음이 울렸고, 은빛 화살들은 모두 튕겨나가 부서졌다. 그러나 심협 역시 몇 걸음이나 물러났고, 온몸을 덜덜 떨었다. 심지어 아직 밀려나고 있는 와중에 다시 은빛이 연이어 번쩍이더니 이번에는 근 서른 개의 은빛 화살이 날아들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몰렸는데도 상대방이 화살을 어떻게 쏘는지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심협은 답답했고,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결국 몇 합을 더 버티다가 끝내 수십 개의 화살에 몸을 꿰뚫려 눈을 감았다.

물론 그는 곧 다시 부활했고, 은갑 여병과 두 번째 싸움을 시작했다.

‘저 여병은 너무도 막강하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약점을 파악해야 해!’

그러나 첫 번째보다 조금 더 오래 버텼을 뿐, 결국 이번에도 상대의 허점을 찾아내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심협과 여병의 세 번째 싸움이 시작됐다.

이번에 그는 전술을 바꾸어 그녀와 근거리 교전을 시도하려 했다

‘저 거대한 활은 강력한 법기이거나 법보일 수도 있어. 화살을 무한히 날릴 수 있는 게 분명하고, 화살의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거리가 벌어지면 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

사월보와 을목선둔(乙木仙遁)이 있으니 상대에게 다가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은갑 여병은 근접전에도 결코 약하지 않아, 심협은 또 한 번 죽음을 맞게 됐고, 네 번째 교전에서야 마침내 기회를 잡게 됐다.

그는 가까스로 상대를 꺾었으나, 그 과정에서 또다시 중상을 입고야 말았다.

심협은 대전으로 돌아와 은갑 여병의 신혼과 금빛 단약을 각각 정제한 뒤, 곧 금빛 공간으로 다시 돌아가 싸움을 반복했다.

역시 은갑 천병들의 실력은 갈수록 강해져, 단번에 이기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였다. 다행히도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능력 덕분에, 그는 몇 번이고 맞붙으면서 상대의 빈틈을 찾아 역공하는 식으로 겨우겨우 이겨나갔다. 그러나 이제 거의 열 번을 되살아나야만 가까스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정도로 힘겨워졌다.

적들이 강해질수록 힘겹긴 했지만, 대신 심협 또한 수련 경지는 물론 대전 경험까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고, 천병들에게서 다양한 무예들도 익히게 됐다.

지금, 온몸이 피로 흥건한 심협은 금빛 대전 밖 계단에서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단약을 정제하고 있었다.

한참 뒤, 대전 밖의 영기가 갑자기 혼란스러워지더니, 차츰 심협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기이한 소리를 냈고, 곧 거대한 영기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그러자 대전의 짙은 천지영기가 흡수되면서 끊임없이 심협의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협의 몸 표면에 불꽃 같은 금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금빛 속에서는 금빛 용과 거대한 코끼리의 그림자가 각각 네 마리씩 나타나 그의 몸을 에워싼 채 세차게 포효하며 허공을 진동시켰다.

한참 후, 심협의 몸 주위에 있던 영기 소용돌이는 갑자기 완전히 흩어졌다.

이어서 눈을 뜬 심협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가득했다. 연달아 고전을 거듭하며 수많은 금빛 단약을 정제한 끝에, 그의 수련 경지는 마침내 출규 후기의 정점에 이르러 대승기 돌파를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대승기 뒤에는 선겁(仙劫)을 겪을 수 있고, 일단 성공하면 신선이 되어 생로병사의 질고를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대승기는 선계와 속세 사이의 다리라 할 만큼 의미가 남달랐다.

다만 이 다리에 오르기란 매우 어려웠고, 일전에 이 일에 대해 백소운과 한담을 나눈 적도 있었다.

사실 대승기로 올라가는 과정은 전혀 복잡하지 않다. 한마디로 요약해 신혼과 육신이 서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설명이 쉽다고 해서 직접 행하기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황정경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육신과 신혼이 서로 어우러지는 경지에 도달하려면 삼원(三元)의 힘, 즉 정(精), 기(氣), 신(神)을 완전히 파악한 뒤, 이를 밑바탕으로 생명의 불을 붙여 심신을 달궈야 한다. 만약 견뎌낼 수 있다면 육신과 신혼이 하나로 합쳐져 대승기로 올라가게 되고, 버텨내지 못하면 그대로 혼백이 산산이 흩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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