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22화 (222/1,214)

222화. 금탑

한편, 심협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오홍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심 형, 걱정할 것 없소. 우리가 아직 살아 있는 이상, 그대와 그대의 벗들, 그리고 내 수병(水兵)들도 분명 무사할 거요. 우리가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치면 반드시 무사히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거요.”

오홍은 심협의 근심을 알아채고는 위로했다.

“그야 물론이지요!”

심협도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 얘기는 잠시 미뤄두고, 우선 이 금탑을 좀 살펴봅시다. 이런 곳에 이런 탑이 있다는 건 무척 이상한데, 어쩌면 탈출할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소.”

오홍이 눈앞에 금탑을 보며 제안했고, 안 그래도 이 탑을 살펴볼 생각이었던 심협이 반대할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은 몸을 솟구쳐 탑 아래쪽 금빛 연화대에 올라가 금탑 입구 앞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입구의 대문은 뜻밖에도 활짝 열려 있었고, 안쪽은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본 후, 주위의 동정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레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입구에서 1장 정도 거리에 이르렀을 때, 앞에서 갑자기 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난데없이 하얀 빛 덮개가 나타나 입구를 뒤덮었다.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빛 덮개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 위에는 무수한 불꽃같은 하얀 빛이 감돌았고, 작게 탁탁 튀는 소리가 울렸다. 한눈에 보아도 상당한 금제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그 빛이 반짝이면서 거대한 영력 파동을 내뿜고 있었는데, 지금 심협의 경지를 훨씬 능가했다.

“과연, 이 금탑은 그리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심 형, 조금 뒤로 물러나시오.”

심협은 뜻밖의 상황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오홍은 헤헤 웃으며 조금도 움츠러든 기색 없이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번갯불이 번쩍이더니 이화금창이 생겨났다.

“오 형, 아까 꽤 큰 상처를 입은 것 같던데, 섣불리 나섰다가 부상이 더 커지는 것 아니오?”

심협이 걱정스레 물었다. 오홍은 출신이 고귀하고 경지 또한 높았지만, 그 성격이 매우 온화하고, 심지어 천진난만한 느낌까지 있었기에, 심협은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어느새 큰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 아까 입은 상처는 전혀 깊지 않소. 그리고 우리 용궁에는 상처를 치유하는 비술이 있어 이미 괜찮아졌지요. 심 형은 마음 푹 놓으시오.”

오홍이 고개를 저으며 밝게 웃었기에 심협은 안심하고 뒤로 멀찍이 피했다.

오홍이 두 손으로 창을 잡자 그 위로 금빛 번개가 갑자기 일더니 우렛소리가 울렸다. 심협은 10여 장 밖으로 물러나 있었지만, 귀가 먹먹해져 혼비백산해 황급히 더 물러났다.

“용전어야(龍戰於野)!”

오홍은 창을 한 번 빙글 돌리면서 몸을 반쯤 숙이고는 단숨에 내찔렀다. 이 일격은 어떠한 기교도 없이 단지 빠르고 날카로웠는데, 현재 심협의 경지로는 서늘한 금빛 한 줄기가 스치자마자 빛 덮게 위에 창이 꽂히는 것만이 겨우 보일 뿐이었다.

오홍의 몸 주변에서도 금빛이 응결되며 오조금룡의 허상을 이루었는데, 그 꼭대기가 바로 창의 끄트머리였다.

퍼펑!

커다란 굉음이 울리면서 무수한 금빛 번개 줄기가 창에서 터져 나와 일순간 하얀 빛 덮개를 안으로 파묻으면서 그 너머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신식을 발산해 그 안의 상황을 살폈는데, 이내 기쁜 듯 씩 웃었다. 무수히 많은 금빛 번개 줄기 안에서 금창의 끝이 이미 하얀 빛 덮개 안으로 뚫고 들어갔던 것이다.

오홍도 기쁜 듯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그의 몸에는 금빛이 더욱 짙어졌고, 몸 주위로 금룡의 허상도 몸부림치며 힘껏 앞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하얀 빛 덮개 위에서 갑자기 하얀 빛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더니 새하얗게 작열하는, 허벅지만큼이나 굵은 번개가 날아와 금창을 내리 찍었다.

꽈릉!

금창 위의 금빛 번개 줄기는 가볍게 갈려나갔고, 뒤이어 거대한 굉음이 울리며 금창도 튕겨 나갔다. 오홍은 두 손아귀가 터져나가며 금빛 선혈이 튀었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말과 달리 부상의 영향이 약간 남아 있었는지 금색 피를 왈칵 토해냈다.

“오 형, 괜찮소?”

심협이 곧장 다가가 오홍을 부축했다. 그 와중에 오홍이 흘린 금빛 피 몇 방울이 묻었으나, 피비린내 같은 것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간간이 맑은 향기가 느껴져 상쾌한 기분까지 들었다.

‘용의 피가 엄청난 보양 효능을 지닌 영물(靈物)이라더니, 소문이 사실인가 보군.’

심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 피를 긁어모으고 싶었으나, 오홍 앞에서 그러는 것은 염치없는 행동이라 참았다.

“이 금제가 이토록 대단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소. 내가 깰 수 없으니 이제 심 형 에게 달려 있소.”

오홍이 몸을 가누고 서서 쓰게 웃었다.

“나보다 훨씬 강력한 오 형조차 깨지 못한 금제를 내가 어찌…….”

심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조하는데,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체내의 법력이 스스로 움직이며 눈부신 금빛이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는 손발이 완전히 통제를 벗어난 것이 느껴졌다. 뜻밖에도 그는 하얀 빛 덮개를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고, 몇 걸음 만에 빛 덮개 앞에 다가가 손을 들어 그 위를 눌렀다.

우웅!

기이한 소리와 함께 하얀 빛 덮개가 다시 한번 눈부신 하얀 빛을 폭발시켰고, 순식간에 심협의 몸을 집어 삼켰다. 그리고 하얀 빛이 사라졌을 때, 심협의 형체는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오홍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멍하니 서 있었다.

* * *

심협은 눈앞이 아득하게 어두워지는 걸 느꼈다가 곧 어느 금빛 계단 위에 나타났다.

그는 육신과 법력의 통제권이 되돌아오자마자 재빨리 몸의 금빛을 거두고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단숨에 안색이 돌변했다.

지금 그는 다름 아닌 9층 금탑 꼭대기 층의 탑문 밖 계단에 있었다.

금탑 주위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아래쪽의 오홍도 또렷하게 보였다.

다만 오홍은 그를 보지 못한 듯 여전히 입구 앞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서성이다가, 때로 걸음을 멈추고 깊이 생각에 잠겼다.

심협은 큰 소리로 그를 몇 번 불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에 그는 탑 변두리로 가보려 했으나 두어 걸음 떼자마자 고리 형태의 하얀 빛 덮개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이 덮개는 탑 입구에서 본 빛 덮개와 똑같아서 그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는 황정경을 운공했다. 그렇게 몸에서 눈부신 금빛을 내뿜고 번쩍번쩍 빛나게 해서 오홍의 주의를 끌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무슨 짓을 해도 저 아래 오홍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지도 않았다.

‘이곳의 금제가 안쪽 상황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는 게로군.’

그렇게 생각한 심협은 더는 쓸데없이 애쓰지 않기로 했다.

하얀 빛 덮개는 금탑 9층 전체를 뒤덮고 있어서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던 그는 반대로 계단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9층 금탑대문은 굳게 닫혀 있어 안쪽 상황을 볼 수 없었다.

잠깐 망설이던 심협은 손을 들어 가볍게 문을 밀어보았다. 그러자 예상과는 달리 탑문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금빛 찬란한 대전이었다. 폭은 족히 30장은 되어 보였다. 그 가장 깊숙한 곳에는 백옥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커다란 금빛 갑옷을 입은 천장(*天將: 중국의 장수를 높여 이르는 말) 하나가 그 위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이 천장은 금갑을 입고 머리에는 금시오보관(金翅烏寶冠)을 썼으며, 검은 수염을 가슴께에 늘어뜨리고 있어 매우 위엄이 넘쳐 보였다. 왼손에는 고풍스러운 모양의 커다란 검은 철편(*鐵鞭: 도리깨처럼 생긴 고대 병장기의 하나로, 쇠로 만들어졌음)을, 오른손에는 작은 금탑을 받쳐 들고 있었다.

이 금갑천장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위압감은 오홍을 훨씬 넘어섰다. 심지어 대전 안의 공기도 스스로 움직여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는데, 빛줄기까지도 집어삼킨 듯 몹시 어두컴컴해 보였다.

심협은 금갑천장의 강력한 기운에 빨려들어, 대전 밖 대문 옆으로 몸을 날려 숨었고, 조심스레,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상대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금갑천장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대전 문이 열렸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심협의 존재를 발견하지도 못한 것 같았다.

심협은 의아해하며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다시 안쪽을 살폈다. 그리고 이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천장은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얼굴은 누렇게 말랐고, 그토록 엄청난 위압을 뽐내고 있긴 했으나 생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알고 보니 유해였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쉰 심협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금갑천장 앞에 이르러 위아래로 자세히 몇 번 훑어보았다. 곧 천장이 손에 든 금탑 위에 시선이 머물렀는데,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 금탑 역시 9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아래쪽은 금빛 연화대였다. 이 금탑을 축소시켜 놓은 듯했다. 그 위에는 액체 같은 금빛 광채가 일렁이는 것이, 실제로 영력 파동이 솟아나오는 것 같아, 심협이 이전에 보았던 그 어떤 보물보다 몇 배는 더 기운이 넘쳤다.

금갑천장의 왼손에 들린 검은 철편도 마찬가지였다. 위에 유달리 강한 영력 파동이 맴돌아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이 두 보물은…… 법보인가?”

심협의 눈이 번득였다.

그는 그저 책에서 약간의 기록들만 보았을 뿐, 지금껏 진정한 법보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9층 금탑과 검은 철편이 뿜어내는 기운과 위압감은 실로 놀라워 반월환을 훨씬 뛰어넘었으니, 분명 법보의 등급에 이르렀을 터였다.

생각해보면, 이 천장의 시체는 죽은 뒤에도 이렇게 강한 위압을 지녔으니, 그가 살아 있었을 때는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니 법보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으리라.

“선배님, 저는 선배님께서 어디의 천장이신지 모르오나, 선배님께서는 이미 숨을 거두셨으니 이 두 법보를 여기에 두는 것도 장식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이 후배가 쓰도록 빌려주시지요.”

그는 잠깐 망설였다가 금갑천장 앞에 다가가 예를 한 번 갖추고는 손을 뻗어 그 검은 철편을 잡고 힘껏 뽑았다.

뜻밖에도 그는 거뜬히 철편을 꺼낼 수 있었다.

심협은 기쁨을 주체하기 힘들었으나, 마음을 다잡고 검은 철편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 철편은 모양새가 예스럽고 소박했으며, 길이는 3척 3촌(*척과 치는 길이의 단위로, 1척은 약 30.3센티미터, 1촌은 약 3.03센티미터이다. 3척 3촌은 약 1미터)쯤 되었고, 마디가 13개 정도 있어 평범한 구절강편(九節鋼鞭)과는 전혀 달랐다. 철편에서는 태곳적 서늘한 기운이 물씬 풍겼고, 가운데 부분에는 고대 전서(*篆書: 한자 서체의 일종으로, 춘추전국시대부터 진나라 때까지 통용됨)체로 ‘육진(六陣)’이라는 두 글자가 조그맣게 새겨져 있었다.

“육진편(六陣鞭)이라……. 이름 또한 참으로 좋구나.”

심협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두어 번 휘둘러보았다.

이 철편은 이상하리만치 무거워 족히 천 근은 나갔지만, 황정경으로 작게나마 성과를 거두어 괴력을 지녔다 할 만한 그에게는 딱 좋았다.

그는 철편을 잠깐 만지작거리다가 몸 안의 법력을 운공하여 천천히 주입해 보았다. 하지만 육진편에서는 가냘픈 검은 빛만 얼핏 떠올랐을 뿐, 아무 반응도 없었다.

‘역시 금제가 걸려 있군. 구구통보결로 법보의 금제를 제련할 수 있을까? 듣자하니 법보는 영(靈)이 통해서 내부에도 주인의 표식이 새겨져 있고, 주인이 죽어도 표식은 사라지지 않아 다른 사람은 그 위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던데……. 이 육진편 안에도 표식이 남아 있을까?’

심협은 속으로 갖은 생각을 하며 육진편을 품에 안고 구구통보결을 운공해 안의 금제를 녹여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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