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21화 (221/1,214)
  • 221화. 옛 친구?

    잠시 후에 눈을 뜬 심협은 사람들을 불렀다.

    “이럴 때가 아니오. 우선 심련 일행을 찾아 곧장 떠날 거요.”

    “예.”

    백벽 등은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발각되기 전에 서둘러 떠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상공에서 갑자기 용의 포효가 들려오더니, 거대한 금빛 형체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에게서 멀지 않은 모래사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보니, 몸이 구렁이처럼 길고 머리에는 사슴처럼 뿔이 있으며, 비늘갑옷은 물고기와 같고, 발은 봉황 같으며, 발바닥은 호랑이 같이 생긴 무엇이 있었다. 놀랍게도 길이가 무려 백 장에 달하는, 발이 다섯 개 달린 금룡이었다.

    그러나 금룡의 몸에는 깊게 파인 끔찍한 상처가 줄줄이 나 있었고, 그 위의 비늘이 벗겨진 채 옅은 금빛의 피를 흘렸다. 언뜻 보기에도 큰 부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동시에 구름 속에서 거대한 검은 머리 세 개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 외형은 진짜 용 같았지만, 머리의 뿔은 매우 짧았고, 눈썹 쪽에는 얼굴 근육이 툭 불거져 있는 것이 진짜 용보다는 덜 위엄 있고 더 흉악해 보였다.

    “삼수교(三首蛟)!”

    백벽이 놀라서 외쳤다.

    심협도 당연히 알아보았다. 교룡은 수족 중에서도 용에 가장 가까운 종족이었다. 과거에도 교룡이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왔지만, 그들은 줄곧 용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성품이 음탕하고 살육을 즐기는 이단이라고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런 연유로 둘 사이는 철천지원수였다.

    보통은 용족이 천하 수족의 정통으로서 대부분 교룡 등을 자연히 제압할 수 있었으나, 온몸에 마기를 띤 눈앞의 이 삼수교는 수련 경지와 전투력이 금룡보다 위에 있는 게 분명했다.

    “크아아아!”

    삼수교가 성난 포효를 내질렀다. 그 소리는 천둥처럼 천지를 뒤흔들며 온 전장을 순간 고요하게 만들었다.

    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삼수교는 자신이 용을 도륙하는 장면을 모두가 두 눈으로 직접 보게 할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암초 뒤에 몸을 숨긴 심협 일행도 발견했으나,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오청(鰲靑), 용궁은 파괴하더라도 용족을 굴복시킬 생각은 마라! 그래봐야 너희도 죽고 우리도 죽는 격이니까.”

    금룡은 힘겹게 하늘로 솟구쳐 허공에서 빙빙 맴돌며 외쳤다.

    말을 마친 그는 돌연 입을 벌리고 주먹만 한 푸른 구슬을 뱉어냈다. 구슬은 그의 입에서 날아 나오며 눈부신 푸른 빛을 발했다.

    빛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푸른 빛이 끊임없이 솟구쳤고, 푸른 구슬은 순식간에 열 배나 커졌다. 그러자 그 위에 불규칙한 푸른 빛이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가닥가닥 용솟음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깊은 바다는 잠잠하지 않고, 거친 바다는 세차게 흐르나니(深海無定, 荒海洪流)!”

    금룡의 입에서 커다란 소리가 터져 나와 온 동해만에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멀리 동해 깊은 곳, 바다 밑바닥이 거세게 진동하더니, 거대한 힘이 바닷속에서 뿜어져 나와 우레처럼 수면에서 폭발했다.

    심하게 출렁이던 해수면이 갑자기 고요해지면서 모든 바닷물이 빠르게 물러가기 시작했고, 호흡 몇 번 할 시간 만에 수십 리나 빠져나가면서 드넓은 갯벌이 드러났다.

    하지만 다음 순간, 천 장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하늘을 뒤덮고 해를 가리며 깊은 바다에서부터 몰려왔다. 그리고는 간간이 울리는 굉음 속에 하늘과 땅을 뒤덮으려는 듯 모든 것을 파괴할 힘으로 동해만을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그 자리에 있던 용궁의 수족이나 여러 종족의 요물들 모두 멍해져 아예 피하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죽음만을 기다렸다.

    “큰일이다! 어서 나를 잡으시오!”

    심협이 대경실색해 외치자 심옥 등은 곧장 그의 팔뚝을 움켜쥐고 눈을 꽉 감았다.

    심협은 죽을힘을 다해 다시 을목선둔을 시도하여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득한 옛날 거대한 짐승의 나지막한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그와 일행을 깨웠다.

    이들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성 한 채와 맞먹을 만큼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단번에 천 장 높이의 물결을 뚫고 나와 시뻘겋고 커다란 입을 쩍 벌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속에서는 거센 흡입력이 전해져 왔다.

    심협이 보니 그의 온몸에는 마무(魔霧)가 휘감겨 있었고, 전체를 눈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커다란 머리는 고서에 나오는 곤붕(*鯤鵬: 중국 전설 속에 나오는 큰 물고기와 큰 새)과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을목선둔이 뚝 끊겼다.

    심협은 어마어마한 힘이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고, 그와 심옥을 비롯한 사람들은 이 흡입력에 하늘로 떠올라 시뻘겋고 거대한 아가리로 빨려 들어갔다.

    심협은 있는 힘껏 몸부림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혼란스러워, 마치 온 동해만 안의 모든 생명체가 이 놀라운 흡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심협은 마치 부평초처럼 이 광풍과 거친 파도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와중에 두 눈꺼풀이 차츰 무거워졌고, 이내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은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 주위를 둘러보고는 낯빛이 변했다.

    그는 지금 홀로 잿빛 세상 속에 와 있었다. 심옥과 백벽 등도 온데간데없었다.

    하늘은 컴컴한 것이 매우 침울했고, 주변 땅바닥은 온통 폐허라 곳곳마다 깨진 벽돌이며 기와조각들이 널려 있었고, 이미 썩어버린 곳도 매우 많았다.

    “여긴 어디지? 설마…… 곤붕의 뱃속인가?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지?”

    심협은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손을 품에 넣어보았다. 칠성필은 그대로였다.

    그는 곧장 손을 뒤집어 비행부를 꺼내 허공에 떠올라 주위를 살폈다.

    이 폐허는 매우 넓어 시선으로는 가장자리를 볼 수조차 없었고, 다른 사람의 기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 순간, 하늘을 날던 그의 몸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하더니 몸의 법력이 바닥났고, 심협은 서둘러 땅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제야 자신의 몸을 살핀 그는 비록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법력의 소모가 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에 위험한 기운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가부좌를 틀고 법력을 회복하려 했다.

    이 잿빛 공간은 황량해 보이긴 했지만 주변에 짙은 영기가 가득해 전신의 20개 법맥으로 천지영기를 흡수하자 순식간에 법력의 6할가량이 회복됐다.

    우선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는 수준으로 회복되자 그는 몸을 일으켜 한 방향을 택해 정찰을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 도대체 어디에 와 있는지, 심옥과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그러나 이 폐허는 놀라울 정도로 넓어서, 반 시진 이상 정찰하고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다시 비행부를 이용해 하늘로 날아오르던 그의 시선이 갑자기 어느 곳으로 향했다. 저 멀리로 어렴풋한 금빛이 보였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비행부를 거둬들이고는 그쪽으로 향했고, 곧 금빛의 발원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금빛으로 번쩍이는 보탑(寶塔)이 하나 우뚝 서 있었다. 탑의 아랫부분은 금빛 연화대였고, 위로는 9층 보탑이었으며, 탑 꼭대기는 구름 속으로 높이 솟아 만 갈래의 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눈앞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보탑을 보며 심협은 잠시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렇게 경이로운 광경을 보며 한참을 멍하니 있던 그는 잠시 후에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때, 맑고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 누구요?”

    심협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몸에 금빛 갑옷을 입은 청년이 금빛 보탑 다른 한편에서 걸어 나왔다. 바로 아까 그 삼수교와 대전을 치르던 오조금룡(五爪金龍)이었다.

    “제 성은 심가입니다. 우연히 이곳에 왔지요. 도우의 존함은 어찌 되십니까?”

    심협은 당황했으나, 재빨리 표정을 가다듬고 공수했다.

    “그…… 헛! 심 형?”

    금갑을 입은 청년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표정이 갑자기 굳더니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심협은 이 말에 잠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잠시 자신의 기억력을 의심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저 사람을 만나본 적도, 심지어 동해 용족을 본 적도 없었다.

    “심 형, 설마 나를 잊은 것이오? 나 오홍(敖弘)이오.”

    금갑의 청년은 심협의 표정을 보고 말을 이었으나, 오히려 심협은 그 이름을 듣고 상대방을 만난 적이 없음을 더욱 확신했다.

    ‘아마도 현실과 지금 이곳의 천 년 사이에 알게 된 사람일 테지.’

    어쨌든 오홍의 반응을 보아하니 두 사람은 관계가 사이가 퍽 좋은 친구였던 것 같았다.

    “오 형이었구려. 내가 몇 년 전 신혼(神魂)에 큰 부상을 입어 기억이 많이 손상됐소. 무례를 용서해주시오.”

    심협은 그리 대답하고는 활짝 웃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난 심 형이 어찌 나를 잊었나 생각했지 뭐요! 한데 심 형은 왜 여기 있는 거요?”

    오홍은 심협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듯 해맑게 웃었다.

    “나는 도우 몇 명과 요마에게 쫓겨 동해만까지 줄곧 도망치다가 거대한 곤붕 한 마리에게 집어삼켜졌소. 깨어나 보니 이곳에 와 있더군.”

    심협이 사실대로 말했다.

    “아! 생각났다! 아까 바깥 해변에 인간족 몇 명이 서 있는 것 같았는데, 심 형도 그중에 있었구려. 그 곤붕 요괴는 나 때문에 온 것인데, 심 형과 벗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줄이야……. 용서하시오.”

    오홍은 포권하며 사과했다.

    “그저 내 운수가 나빴던 것뿐이지 오 형이 무슨 잘못이 있겠소? 마음에 두지 마시오.”

    심협은 눈앞의 사내가 갈수록 마음에 들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이 일은 내가 저지른 일이니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대와 그대의 벗들을 이곳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겠소. 그러니 심 형은 안심하시오.”

    오홍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을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아 보이니 힘을 합칩시다. 한데 오 형, 아까 밖에서 보니 그대와 그 삼수교가 대전을 치르면서 동해용궁 이야기를 꺼내던데, 그곳에도 무슨 분쟁이 있는 거요?”

    심협은 다시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요마가 세상을 어지럽히니 어디도 깨끗한 곳이 없지요. 동해용궁도 요마에게 빼앗겨 내 목숨을 걸고 겨우 탈출했는데, 여전히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줄은 몰랐소.”

    오홍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심협은 그 말에 속으로 깜짝 놀랐다.

    ‘사해용궁에서는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내리는 은혜를 주관하여, 비록 인간 세상에 있지만 엄연한 신선이다. 한데 그 요마들이 감히 사해용궁을 점령했다니, 그 정도로 막강하단 말인가?’

    “설마 우리를 집어삼킨 그 곤붕도 요마의 일원은 아니겠지요?”

    심협이 생각 끝에 물었다.

    “그 곤붕은 요사(妖師) 곤붕노조의 후손으로, 신통력이 막대하여 천하를 집어삼키는 건 작은 일에 불과하오. 마화(魔化)한 이후로는 신통력이 더욱 치솟았지. 그 요괴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우리 동해용궁이 어찌 그 요마들 손에 패했겠소!”

    오홍이 울분에 차 이를 갈았다.

    “설마…… 이곳이 곤붕의 뱃속은 아니겠지?”

    잠깐 망설이던 심협은 당장 가장 관심 있는 문제를 물었다.

    “아마도 맞는 것 같소. 나도 그 곤봉이란 요괴에 대해 잘 알지는 못 하오만, 그놈이 우릴 꿀꺽했으니 분명 그 뱃속이겠지요. 다만, 그 요괴의 뱃속에 또 다른 하늘과 땅이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소.”

    오홍이 주위를 둘러보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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