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또다시 포위당하다
‘노조님, 이제 저희는 어찌합니까?’
백벽은 대승기 요괴 두 마리가 이렇게 많은 요족 부하들을 이끌고 공격해온 것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당황했다.
그때,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사람들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걱정할 것 없네.’
심협이 소리를 듣고 즉시 물었다.
‘소귀, 지하천 물길을 찾았는가?’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니 조금만 더 버티시게. 후손들의 보고가 들어오면 내 수둔술(水遁術)로 그대들을 데리고 지하천 물길로 함께 들어갈 테니.’
소귀가 다시 신식으로 목소리를 전하자, 사람들은 한층 마음이 놓였다.
바로 그때, 머리 위쪽에서 갑자기 폭발음이 들리더니 금색 빛기둥이 느닷없이 하늘에서 내려와 섬 한가운데 있는 용수로 떨어졌다.
섬의 동서남북 곳곳에서는 즉시 불어(佛語)를 외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흐릿한 금빛이 섬 곳곳에서 빛나더니 금빛 장막이 되어 작은 섬 전체를 감쌌다.
쾅!
금색 빛기둥이 갑자기 폭발하며 강한 금빛 물결을 일으켜 사방으로 넘실거렸다. 빛 물결 파동이 지나간 곳에서는 파도가 몇 장이나 치솟아 사방의 섬 기슭을 향해 내달렸다.
물보라가 폭발한 곳에서는 물안개가 사방으로 자욱하게 일었지만, 금색 빛의 장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금빛 장막의 비호 아래 모두가 조금의 불편함도 없어, 이 법진의 뛰어남을 알 수 있었다.
다섯 사람이 계속해서 주문을 읊어대자 다섯 개의 법보가 금빛을 번쩍였고, 희미한 불문의 향불 냄새가 너울너울 퍼졌다. 그러자 사방 천지에도 마치 나지막한 불어가 간간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뒤이어 섬을 뒤덮었던 금빛이 미친 듯이 솟구쳐 순식간에 높이가 100여 장에 이르는 금빛 불영(佛影)이 떠올랐다.
금빛 불영은 반가부좌를 한 채, 한 손에 금강복마검(金剛伏魔劍)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무외인(無畏印)을 짓고 있었다. 그 보상(*寶相: 부처의 존엄한 모습)이 장엄하고 기개가 웅혼한 것이, 바로 부동명왕의 법상(法像: 불상의 다른 말)이 분명했다.
수많은 요괴들이 두려움에 떠는 와중에 허공에 있던 금빛 매는 두 날개를 활짝 펼쳐 곧장 구름 속으로 돌진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높은 하늘 구름층 깊은 곳에서 적금색 빛이 번쩍이더니 구름이 타오르는 것처럼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금빛 매의 그림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매는 온몸은 붉은 화염에 감싸인 채 날카로운 부리를 창으로 삼아 곧장 아래쪽 섬을 향해 내리 찔렀다.
거센 압박감이 하늘에서부터 끊임없이 전해져 왔고, 허공에서는 연이어 굉음이 울렸다. 섬 위에 있던 사람들은 타오르는 듯한 작열감이 하늘 높은 곳에서부터 점점 가까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며 다들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섬 한가운데 있던 백소운은 오히려 침착하게 불상과 똑같이 무외인을 맺은 뒤, 손바닥을 뒤집어 높이 하늘을 향해 곧장 올려쳤다. 부동명왕 불상은 그의 그림자라도 되는 듯 같은 동작을 취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범음(梵音) 가운데 금빛 매 요괴의 날카로운 부리와 부동명왕의 거대한 손바닥이 거세게 맞부딪치며 하늘을 뒤흔들었다.
꽈르릉!
삽시간에 천지가 진동하고 호수가 용솟음쳤다.
거대한 물결이 수십 장이나 치솟아 섬을 중심으로 산을 허물고 바다를 뒤엎을 기세로 밀어닥쳤다. 호숫가 기슭의 돌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요괴 무리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호수 중앙의 섬에서는 몇 년이나 자랐는지 모를 용수의 윗동이 터져나가면서, 그 아래에 숨어 있던 수많은 백성들이 연이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그대로 의식을 잃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심협을 비롯해 오극을 지키던 사람들도 견디기 힘들었는데, 하나같이 몸 안의 기혈이 울렁거리고 법력의 흐름까지도 산만해졌다.
그 무렵, 높은 하늘에서도 한 줄기 힘이 공중으로 뚫고 들어가 금빛 매 요괴를 튕겨냈다. 매 요괴는 구름층까지 뚫고 커다란 구멍을 만들며 날아가버렸다.
“준지 도우께서 통 크게 길을 터주었으니 나 거력신원이 저들의 머리를 거두겠소. 하하!”
호숫가에서 굵고 거친 외침이 들려왔다.
거력신원은 두 발로 세차게 땅을 딛고 솟구치더니 허공에서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100장에 이르는 크기로 변했는데, 심지어 손에 든 개산부도 똑같이 열 곱절은 불어나면서 붉은 핏빛이 번뜩이기까지 했다.
부동명왕과 준지의 정면충돌 여파가 아직 흩어지지 않은 틈을 타서 거력신원은 다시 한 번 도끼를 휘둘렀다. 그 위에 올라앉아있던 커다란 귀의 청산요는 진즉 뛰어내린 터였다. 녀석은 호숫가에 서서 폴짝폴짝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면서, 계속해서 깩깩거렸다.
커다란 핏빛 도끼가 빙빙 돌면서 세찬 울부짖음과 함께 허공에 둥근 곡선을 그으며 금빛 불영을 쪼개 버리려 했다.
한편, 법진에서는 사람들이 아직 기혈이 진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곧장 주문을 읊조려 온힘을 다해 법보의 효력을 발휘시켰다. 그러자 빛이 조금 어두워진 듯했던 부동명왕의 법상에서 갑자기 금빛이 다시 폭발하더니, 손에 쥐고 있던 금강복마검을 휘둘렀다. 겹겹의 금빛 잔물결이 끊이지 않는 파도처럼 커다란 도끼를 향해 몰려갔다.
우르릉! 꽈광!
하늘에서 우레 같은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겹겹의 금빛 물결은 커다란 핏빛 도끼와 맞부딪혔고, 마치 성난 파도가 해안을 때리듯이 산산이 부서졌다.
개산부와 충돌한 순간, 실물이 아니라 그저 법상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 금강복마검은 펑 하는 굉음와 함께 부러지고 말았다. 다음 순간, 거대한 핏빛 도끼는 부동명왕 법상의 어깨에 묵직하게 내리꽂혔다.
꽝!
온 섬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부동명왕 법상의 어깨에는 도끼날이 박혔고, 법진 안에 있던 백소운의 어깨에서도 거의 동시에 피처럼 붉은 빛이 솟아나며 뼈가 보일 정도로 깊고 무시무시한 상처가 생겨났다. 이 커다란 법진의 핵심은 다름 아닌 그의 육신이었던 것이다.
백소운의 어깨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뼈를 깎아내는 듯한 소리는 듣기만 해도 괴로울 지경이었지만, 그 자신은 오히려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손으로 허공을 그러쥐었다. 그러자 부동명왕 법상의 손에서 금색 빛이 솟아나와 새로운 금강복마검이 생겨났다. 그리고는 그가 손을 크게 휘두르자 거력신원의 몸을 단숨에 베려했다.
거력신원은 화들짝 놀라 즉시 거대한 도끼를 거두고 피하려 했다. 그러나 부동명왕 법상의 어깨에는 금빛 소용돌이가 자리를 잡고 있어 거력신원의 도끼를 붙잡았다.
이에 거력신원은 도끼를 포기하고 도망치려 했으나, 이미 한 발 늦은 듯했다.
그때,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심협과 사람들이 있는 작은 섬이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섬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한쪽으로 뒤집히려 한 것이다.
부동명왕 대진의 오극이 모두 흐트러졌고, 돌 받침대도 망가졌다. 응결되어 있던 흐릿한 법상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그가 휘두른 검 또한 무수한 조각으로 터지고 갈라져 흩어져 버렸다.
섬 위의 사람들은 전부 물속으로 굴러 떨어져, 이미 혼절해 있던 평범한 백성들은 대부분 죽거나 다쳤다. 10여 명의 수사들만이 가까스로 도망쳐 나와 파도가 넘실대는 호수 위에 서 있었는데, 그들의 마음은 타고 남은 재처럼 절망스러웠다.
어깨의 상처를 한 손으로 덮은 백소운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의 곁으로 모여들어 물밑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먹빛 옷의 형체를 바라보았다. 그 형체는 당연히 소귀였다.
이미 원래의 기세를 회복한 거력신원은 친밀하게 소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산원 아우, 다음번에는 이런 장난은 치지 말게. 이 노형이 놀라 죽을 뻔했지 뭔가.”
“대형은 뭘 당황하고 그러시오? 모든 것이 내 손바닥 안에 있거늘.”
소귀는 얼굴에 엷은 웃음을 내비치며 편하게 말했다.
“소귀…… 아니, 산원……. 넌 이미 요마의 일원이 된 게로구나.”
심협은 속으로 울분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이미 수백 년 전 의형제를 맺었지. 하하하!”
소귀가 시원하게 인정했다.
“그렇다면 네놈은 처음부터 나를 속인 게로구나. 우리 위치도 네놈이 알려준 것이더냐?”
심협이 주먹을 꽉 쥐며 물었다.
“애를 좀 먹어야겠거니 생각했는데, 이리 쉽게 네 믿음을 얻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이지 감동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야. 하하하!”
소귀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소귀, 대체 이유가 무엇이냐?”
심협은 끝내 참지 못하고 의미 없는 질문을 던졌다.
“산원노조라 불러라! 자고로 인간과 요족은 길이 달라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 그때 네가 나와 인연을 맺었던 것은 본디 네놈이 날 억지로 구속한 것이었지. 네놈이 마음대로 부려먹고 노역을 시키고는 또 마음대로 버렸으니, 이제 내가 널 죽이는 것도 도리에 맞지 않겠으냐?”
소귀가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
그 사이 멀리 하늘에서 금빛이 한 줄기 떨어져 내렸다. 준지가 다시 돌아와 거력 신원 옆에 내려앉은 것이다.
대승기 요괴 두 마리와 출규기 요괴 한 마리, 그밖에 크고 작은 요괴 수백 마리에게 포위된 심협과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져 버렸다.
“됐다. 지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내 친히 너를 저승으로 보내주마.”
산원이 차디차게 웃더니 말을 마치자마자 한 손을 허공에 흔들었다. 그러자 검푸른 빛깔의 거대한 추가 나타났다. 그 위에는 거북이 등껍질 무늬가 가득하여 한눈에 봐도 견고함이 뛰어난 보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몸을 훌쩍 날리자 발아래에 겹겹이 물결이 솟아올라 그의 몸을 10여 장 높이까지 떠받쳤다. 뒤이어 손에 든 검푸른 추에서 어렴풋한 녹색 빛이 번쩍이더니 심협과 사람들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바로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호수 위에서 갑자기 불어를 읊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금빛 장막이 순간 심협과 사람들 몸 주위에서 빛을 내며 그들 모두를 뒤덮은 것이다.
부동명왕의 주문 소리를 듣고 몸을 홱 돌린 심협은 매우 놀라운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백소운이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있었고, 몸 앞에는 석장이 가로놓여 있었으며, 그 위로 밝은 빛이 번쩍였다.
한편, 금빛 장막의 동서남북 네 정방향에는 모호한 네 줄기의 그림자가 가부좌를 튼 채, 몸 앞에 똑같이 산호염주와 낡은 불경 등을 놓고는 다시 부동명왕진을 펼치고 있었다.
그때, 머리 위에서 난데없이 쿵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금빛 장막이 갑자기 흔들렸다. 엄청난 힘이 일시에 쏟아졌고, 호수에서는 거대한 물결이 하늘 높이 솟아났다.
하지만 금빛 장막이 보호하는 반경 10여 장은 무사 평온하여,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심협이 미처 무언가 묻기도 전에 식해(識海)에 백소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 대형, 상황이 긴박하니 간단히 말하겠소. 내가 강신비술(降神秘術)로 가공의 신기 네 분을 모셔와 부동명왕진을 펼치게 하였소.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으니 형님은 서둘러 둔술(遁術)로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시오.’
‘나의 을목선둔은 아직 능숙하지가 않아 낯선 곳에서는 잠시 방향을 정확히 통제할 수 없소. 다만…….’
백소운은 심협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소. 일단 부동명왕진이 무너지면 이 사람들이 살아남을 마지막 희망은 사라지게 되오. 몇 사람까지 데려갈 수 있겠소?’
‘진문(陣紋: 법진 문양)을 새겼더라면 모두 데려갈 수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직접 둔술을 쓸 수밖에 없으니 한 번에 세 명이 한계요. 이들을 전부 데리고 떠나려면 최소 여섯 번은 왕복해야 하는데, 둔술을 쓰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오.’
심협이 황급히 답했다.
‘시간은 신경 쓰지 마시오. 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동안 저들을 막겠소.’
백소운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에 심협도 더는 망설이지 않고, 즉시 한 손으로 가슴 앞에 인을 맺으며 입으로 나지막하게 구결을 읊기 시작했다.
“아직도 발악을 할 셈이냐? 정말 질긴 녀석들이로구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산원이 냉소했다.
“이번 대진은 앞서보다 견고한 것 같으니 내가 다시 해보지.”
준지가 가볍게 웃고는 몸을 펴고 하늘로 돌진해 다시 100장 길이의 금빛 매로 변했다.
쟁쟁한 울음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구름 사이에서 갑자기 떨어져 내렸다. 뾰족한 부리 위로 금빛이 몰려들더니 날카로운 기세로 금빛 장막에 충돌했다.
쾅!
거대한 진동이 사방으로 울렸다!
금빛 장막 위에는 세찬 물결이 한 겹 일렁였고, 장막이 뒤덮은 수면까지 무겁게 아래로 내려앉았다.
정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백소운의 몸도 거세게 흔들렸고, 앞으로 휙 고꾸라지며 피를 뿜어냈다. 사방을 지키던 신명의 허상들 역시 마찬가지로 나동그라졌다. 대진이 가로막은 일부분을 제외한 모든 충격을 백소운 혼자 견뎌낸 것이 분명했다.
심협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백소운의 짐을 대신 나눠질 수는 없었기에 온 힘을 다해 을목선둔을 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