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16화 (216/1,214)
  • 216화. 지하에 흐르는 강

    “백벽에게 듣자 하니 내가 떠난 뒤에 또 대요 한 마리가 흔적을 더듬어 찾아왔다지요?”

    백소운은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독 두꺼비 떼였소. 보아하니 배후에서 대요 하나가 조종하는 것 같더군. 내가 신행갑마부로 놈들을 유인해 몇 바퀴 빙빙 돌다가 둔술을 써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소.”

    심협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답했다.

    “앞에 협곡이 나타났으니 머지않아 곧 진해관에 이를 것이오. 심 대형은 사람들과 함께 잠시 골짜기에서 기다리시오. 내 먼저 가서 둘러보고 오리다.”

    걸음을 멈춘 백소운이 한 손을 들어 올려 여기서 쉬어 간다는 신호를 해보였다.

    “그대의 부상이…….”

    심협이 약간 망설여지는 듯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는 지난 검문관에서의 일전 이후로 백소운이 부상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이제 큰 문제는 없으니 마음 놓으시오. 그저 그쪽이 함락되었는지 살피러 가는 것뿐이니 너무 가까이 가진 않을 것이오.”

    백소운은 심협을 돌아보며 그렇게 말하고는 은종번을 건넸다.

    심협은 일찍이 그 보물의 사용법을 익혀둔 터라 받아 들자마자 이어서 효력을 이어갔다.

    백소운이 떠난 뒤, 심협은 우주의 어느 성안에서 겨우 찾아낸 수맥 풍수도감을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우주는 동해만에 가까워 지표면에 수계(*水系:지표의 물이 점차 모여서 같은 물줄기를 이루는 계통)가 발달하여, 청류강(淸流江) 한 줄기만 해도 수계 세 줄기로 나뉘었다. 또한 이 수계는 우주 전체를 흘러 끝에는 서로 다른 세 지역에서 동해로 흘러들어갔다.

    지표면의 수계 말고도 우주의 지하에는 많은 지하천이 있었다. 그중 일부는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진해관을 세로로 관통해, 한 곳만 찾아낼 수 있다면 그 물살을 따라 땅 아래로 진해관을 통과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 만약 진해관이 이미 함락됐다면 지하천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 요 며칠 동안 심협은 이미 이 도감을 여러 번 펼쳐보았다. 그러나 그 위에 기록된 것은 우주 경내의 지상 수맥 분포들 뿐, 예나 지금이나 지하천 분포의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심협은 하는 수 없이 고금의 수로 변화를 통해 지하천의 상황을 추측해볼 수밖에 없었다.

    “이 협곡도 원래는 강줄기의 지류였구나. 어쩐지 양쪽 암벽에 흐르는 물에 침식된 흔적이 있는 것 같더니만…….”

    심협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는 그가 지하천을 찾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그저 신기하게 여기기만 했을 뿐, 그다지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

    한데 그때, 그가 들고 있던 은종번이 갑자기 미미하게 떨리더니 곧 금빛 잔물결 한 겹이 일렁였다.

    심협은 급히 풍수도감을 챙기고는 고개를 들어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골짜기 위 하늘 끄트머리가 조금 희뿌옇긴 했지만,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심협은 눈이 시큰거릴 때까지 한참이나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한 줄기 그림자가 그 위를 번쩍 스쳐 지나갔다. 이는 거의 찰나에 불과했지만, 심협은 그 그림자가 자신들을 쫓았던 금빛 매 요괴임을 알 수 있었다.

    “정말이지 끈질긴 놈들이로군. 소운이 그를 만나지 않길 바랄 뿐…….”

    심협은 심히 걱정이 돼 표정이 굳어 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울부짖는 바람소리가 잇달아 울렸다.

    심협이 재빨리 고개를 들자 온몸이 금빛 깃털로 뒤덮인 거대한 금빛 매가 눈에 들어왔다. 금빛 매는 두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협곡 위에 뜬 채 한 쌍의 어두운 눈동자로 사람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교활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마침내 네놈들을 찾아냈구나!”

    준지가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서 뒤로 물러나시오!”

    심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뒤에 있던 사람들이 두려움에 휩싸인 채 협곡의 반대편으로 미친 듯 내달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거대한 금색 빛기둥이 하늘에서 내려와 협곡 꼭대기에 떨어졌다.

    쿠르릉!

    격렬한 소리와 함께 금색 빛기둥이 떨어진 곳의 벽이 무너지면서 산사태라도 난 것처럼 거대한 돌무더기와 흙이 뒤섞인 채 흙먼지를 일으키며 쏟아졌다. 이로 인해 협곡의 출구는 완전히 봉쇄됐고, 뒤이어 맞은편 출구도 파묻혔다. 협곡 전체가 마치 천연 무덤이 된 것처럼 그들 모두를 묻어버리려는 듯했다.

    심협은 큰 소리로 사람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뒤에 남아 후방을 엄호했다.

    이어서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두 손을 몸 앞에 결인했다. 그리고는 무명공법을 극한까지 운공하여 사방의 수증기를 느끼며 강물을 가까이 끌어와 산사태를 막으려 했다.

    그런데 막 무명공법을 시전한 순간, 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숙여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놀랍고도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후, 진동이 점점 심해지더니 땅바닥이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푹 꺼지면서 시커먼 구멍이 드러났다.

    쏴아아!

    물살이 솟구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점점 거세지면서 차츰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일어나라!”

    심협은 두 손으로 인을 맺고 크게 외쳤다.

    그러자 방금 생겨난 구멍 속에서 엄청나게 굵은 물줄기가 마치 동굴에서 뛰쳐나오는 교룡처럼 솟구쳐 올라왔다. 이어서 어수지술(御水之術)의 통제를 받아 거대한 물살이 되어 굴러 떨어지는 바위들을 향해 세차게 몰려갔다.

    예전에 물길이었던 협곡 아래쪽에 놀랍게도 지하천이 있었던 것이다!

    자고로 ‘병사가 오면 장군으로 막고, 물이 들이닥치면 흙으로 막는다(兵來將擋, 水來土掩)’고 했지만, 실제로 물과 흙에는 강약 구분이 없고 서로가 서로를 억제할 뿐이었다.

    심협이 두 손을 휘둘러 앞으로 떠밀자 세찬 물결이 땅굴에서 끊임없이 솟아나와 무너져 내리는 바위들을 막아냈고, 심지어 거꾸로 솟구치기까지 했다.

    그는 협곡이 무너지는 기세가 느려지는 것을 보고는 물결을 통제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협곡 안에서는 비명소리가 이어졌지만, 이미 너무도 많은 시련을 겪은 만큼 남아 있는 사람들은 심옥과 백벽 등 수사들의 지휘 아래 이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한편, 준지는 협곡 위 하늘을 빙빙 맴돌았다. 이번에 그가 추격해 온 가장 주된 목적은 바로 백소운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운을 찾아내지 못하자 눈빛에 의혹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곧장 협곡으로 날아들지 않은 것도 그 대승기 인간이 일부러 몸을 숨기고 함정을 파둔 것은 아닐까 하는 일말의 두려움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흥! 네놈이 나오지 않으리란 걸 믿을 성싶으냐!”

    준지는 눈을 금빛으로 번쩍이며 돌연 입을 쩍 벌려 금색 빛줄기를 뿜어냈다. 이 빛줄기는 협곡 중간에 떨어져 내렸다.

    콰르릉!

    협곡에서는 방금 뒤로 물러났던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먼지구름이 일며 또다시 암벽이 터져나가면서 무수한 돌무더기가 떨어져 내렸다.

    심옥을 비롯한 사람들은 재빨리 법술을 시전하여 굴러 내려오는 돌덩이들을 막아냈다. 하지만 고작 스무 명 남짓한 이들이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 평범한 백성들까지 지키기는 벅차 보였다.

    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흙먼지와 돌덩이에 파묻히기 직전!

    콸콸콸!

    짙푸른 물결이 세차게 밀려오더니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더니 마치 푸른 물로 이루어진 교각처럼 사람들의 머리 위를 막아주었다.

    쏴아아!

    수많은 흙먼지와 부서진 돌조각들이 물 다리와 충돌했고, 이내 물살에 휩싸여 그대로 하늘 높이 떠 있었다.

    물 다리 아래에서 나타난 심협은 두 손을 높이 들고 몸을 살짝 구부려 하늘을 떠받친 자세로 무너져 내려오는 암석조각들을 모두 막아냈다. 사람들의 눈에 그의 온몸이 푸른 빛으로 뒤덮인 모습은 마치 신과 같이 비범해 보였다.

    “어서 모두를 데리고…….”

    심협이 다급히 외쳤으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머리 위에서 갑자기 한 줄기가 금빛이 번득였다.

    콰쾅!

    금색 빛줄기는 심협이 겨우겨우 떠받치고 있던 물 다리를 내리쳤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그러자 엄청난 위력이 터져 나와 물 다리 안에 갇혀 있던 바윗덩이를 아예 가루로 만들어버렸고, 강력한 충격파가 물 다리 전체를 박살냈다.

    “크윽!”

    심협은 이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위압에 두 팔이 부러지는 듯했고, 온몸이 크게 떨렸다. 만약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방향을 바꾸어 황정경을 운공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어 두 팔이 부서질까 우려됐다.

    심협의 전신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가 울렸고, 입과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와 구불구불하게 얼굴을 뒤덮었다.

    출규기와 대승기는 천양지차라 고작 일고여덟 번 호흡할 정도가 지났을 때, 심협은 결국 두 팔이 풀리면서 힘없이 축 늘어졌다.

    다음 순간, 이 거대한 힘이 협곡 안에서 폭발하며 한바탕 격렬한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쿠르릉! 콰쾅! 펑!

    산벽이 연달아 터지며 갈라졌고, 이어서 휘몰아친 흙먼지가 협곡 전체를 뒤덮었다. 흙먼지가 흩어지고 나자, 온 협곡이 거의 평평하게 완전히 메워져 있었다.

    준지는 두 날개를 거둬들이고 내려왔다. 그의 몸은 빛을 번쩍이더니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자기 무덤을 고를 줄 아는 인간들이로군. 크흐흐.”

    그는 협곡 변두리에 서서 조소했다. 그러나 이내 신식으로 아래쪽을 훑던 그의 표정이 갑자기 돌변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지?”

    부서진 돌 더미에 파묻힌 협곡의 하늘에는 아직도 먼지와 연기가 일렁이는 반면, 그 지하 깊은 곳 칠흑 같은 동굴 안에서 갑자기 어슴푸레한 푸른 빛 한 줄기가 반짝인 것이다.

    “심옥, 백벽. 어서 살펴보시오. 사상자가 있소?”

    푸른 빛이 번득인 곳에서 심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두 사람의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어둠속에서 울렸다.

    뒤이어 또 다시 빛 몇 줄기가 각각 다른 모퉁이를 밝히며 주변을 비추어 흐릿한 윤곽을 만들어냈다.

    심협은 시큰시큰 쑤시는 두 팔을 움직여 보았다. 어깨 관절이 퉁퉁 부어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법력 운공조차 원활하지 못했다.

    그는 주위를 훑어보고서야 지금 자신들이 어느 지하 갯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서는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지하천이 흐르는 소리인 듯했다.

    “다행히 이 강줄기가 물길을 바꾸지 않고 지하로 흘러들어 지하천으로 변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번에는 정말 모두 저 협곡에 뼈를 묻을 뻔했구나.”

    심협은 뒤늦게 두려움이 몰려와 탄식했다.

    “선배님, 불행히도 세 사람이 낙석에 맞아 사망했고, 열 명이 부상을 당했으나 상태가 심각하진 않습니다. 그밖에 여섯 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수사들은 모두 무사하고요.”

    심옥이 심협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좋소. 그럼 이제…….”

    심협이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데 갑자기 머리 위가 쿵 하고 울렸다. 이어서 커다란 돌덩이와 먼지가 잇따라 사람들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가뜩이나 혼비백산해 있던 백성들은 곧 아수라장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즉시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나를 따라 즉시 강물로 들어가시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앞으로 튀어나가 앞장서서 지하천으로 들어갔다. 사방으로 달아나던 백성들도 이 모습을 보고는 곧 뒤따라 지하천을 향해 달렸다.

    지하천의 물은 어둡고 차가워서, 물에 들어간 사람들은 흠칫 놀라 무의식적으로 다시 기슭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뒤쪽 갯벌 위에서 다시 한번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금색 빛기둥 하나가 곧장 땅굴 천장을 꿰뚫고 내려왔다.

    그 금빛 속에는 놀랍게도 금빛 사람 형체 하나가 서 있었다. 바로 준지였다.

    심협은 속으로 몰래 한숨을 내쉬고는 한 손을 몸 앞에서 가볍게 한 번 그었다. 이어서 무명공법을 다시 전력으로 운공하여 어수지술을 펼쳤다.

    그의 몸 아래로 평온히 흐르던 지하수 물줄기가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수십 개의 물보라가 동시에 솟아올라 수십 마리 물 구렁이처럼 백성들을 태운 채 하류를 향해 쏜살같이 헤엄쳐갔다.

    심협은 가장 뒤에서 발아래 용솟음치는 물결 하나를 딛고 선 채, 사람들을 호송하며 도망쳤다.

    “이 버러지들아, 도망칠 생각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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