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12화 (212/1,214)
  • 212화. 진언송법(眞言頌法)

    심협의 시선은 푸른 회오리바람을 따라 움직였고, 이내 경이로운 광경을 보게 됐다.

    맑은 회오리바람이 휩쓴 곳에서는 공기 중에 있던 담홍색 연무가 곧 걷혔고, 허공이 붉은색으로 뒤덮인 듯한 느낌도 사라졌다. 어느덧 풍경은 검문관으로 바뀐 후였다.

    그가 멀리 눈길을 옮겨 푸른 회오리바람 바깥쪽을 보니, 그곳의 허공은 여전히 온통 시뻘건 핏빛이었고, 아까 보았던 시체산과 피바다 또한 그대로였다.

    “청풍파장부(淸風破障符)의 효력은 주변 몇 장의 장애물만 없앨 수 있는 모양이군. 책에서 본 것과는 다른데……. 아니면 이 환상이 너무 강력한 탓인가?”

    심협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지만, 깊게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기에 다시 품에서 똑같은 부적들을 꺼냈다. 이어서 몸을 돌려가며 사방으로 손바닥을 휘두르자 청풍파장부가 연이어 이리저리 날아갔다.

    총 8장의 부적이 사방으로 날아가자 허공에서는 연달아 빛이 번쩍였고, 푸른 회오리바람이 줄줄이 날아가 반경 수십 장을 뒤덮었던 붉은 그늘을 몰아냈다.

    이윽고 심협은 모든 건업성 백성들과 수사(修士)들이 전부 그 자리에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악몽에 빠진 것처럼 저마다 눈에는 엷은 붉은 빛이 떠올라 있었고, 몸은 그 자리에서 한들한들 흔들렸다.

    건시귀로 변한 검문관 백성들도 그저 사방을 둘러싼 채 꼼짝도 않고 서 있을 뿐이었다.

    건업성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두려움이 역력했다. 모두 심협처럼 시체산과 피바다 같은 말세의 풍경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들의 몸에서 보일 듯 말 듯한 검은 광흔(光痕) 한 가닥이 희미하게 빛나는 붉은 혈기와 함께 흩어져 나오더니, 폭주하는 기세로 하늘의 어느 한 곳을 향해 몰려갔다.

    심협이 고개 들어 보니, 그 기운들은 모두 하늘에 떠 있는 요풍에게로 몰려가고 있었다.

    한편, 요풍은 여전히 백소운과 싸우는 중이었다. 그의 두봉은 이미 핏빛으로 물들었고, 온몸의 기운은 아까보다 훨씬 강력해진 상태였다.

    심협은 이내 어찌된 상황인지 추측해낼 수 있었다.

    그는 예전에 방촌산의 장서대전(藏書大殿)에서 사수(邪修)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에는 공포감이나 원한, 분노 같은 나쁜 감정에 담겨 있는 힘을 흡수하여 자신의 수련 경지를 증강시키는 사공(邪功)의 수련 방법이 언급되어 있었다.

    이를 수행하는 사람은 늘 살육의 원한과 공포를 불러일으켜 자신이 필요한 힘을 얻었다. 요풍이 이렇게 애를 써가며 건업성 백성들을 함정에 빠뜨리고도 서둘러 죽이지 않는 까닭은, 바로 그들의 공포와 기혈의 힘을 흡수하여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만약 그를 계속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건업성 백성들 또한 검문관 백성들처럼 건시(乾尸)가 되고 말 터였다. 또한, 요풍이 힘을 더 많이 회복할수록 백소운이 그의 공세를 막아내기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딱히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한 심협은 우선 급한 대로 한 사람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 깨우려 했다. 그러나 상대의 두 눈에 덮인 붉은 빛은 사라지지 않았고, 깨어날 기미조차 없었다.

    심협은 멀지 않은 곳에 녹옹이 있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다가가 아까처럼 두 손으로 어깨를 꽉 붙들고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나 녹옹도 아까 그 사람과 마찬가지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잠시 주저하던 심협은 손목을 휙 돌려 소뢰부(小雷符)를 한 장 꺼내 들고는 녹옹의 팔뚝에 붙였다.

    “평범한 백성들은 못 견딜 테니 당신으로 실험해볼 수밖에 없소. 미안하오.”

    그는 낮게 중얼거리고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부적의 효력을 발휘시켰다.

    콰르릉!

    요란한 우렛소리와 함께 한 줄기 번개가 내려와 녹옹의 몸에 내리꽂혔다.

    “끄아악!”

    녹옹은 떠나가라 비명을 내지르더니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더니 이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사위를 둘러보았다.

    “어찌 된 일이오?”

    그가 심협을 멍하니 바라보며 망연하게 물었다.

    “자세히 이야기할 틈이 없소. 다들 요풍의 환술에 빠졌으니 우선 다른 사람들을 깨운 뒤에 다시 얘기 합시다.”

    심협은 황급히 말하고 또 다른 수선자(修仙者)를 향해 몸을 날렸다.

    녹옹은 주변을 둘러보고 또 고개를 들어 위에서 교전 중인 두 형체를 올려다보았다. 방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여전히 잘 몰랐지만,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닫고는 사람들을 헤치며 곧장 성문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심협의 눈에는 노여움이 스쳤지만, 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먼저 다른 사람들을 깨우러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심협을 본 요풍이 조금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

    “응? 환상에서 스스로 헤어나다니?”

    그때, 은색 빛줄기가 번득이면서 백소운의 석장이 다시 날아왔다.

    요풍이 팔을 세워 막자, 옷자락이 핏빛 안개를 감싼 채 석장을 그대로 막아냈다. 그 위의 핏빛 기운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석장 몸체에 새겨진 대비주로 가닥가닥 스며들어 이미 석장을 반쯤 붉게 물들인 상태였다.

    이를 본 백소운은 어쩔 수 없이 석장을 거둬들였다.

    “이미 공포감은 거의 다 빨아들였으니, 이제 식사를 할 때로구나. 크하하!”

    요풍은 사악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요풍을 감싼 핏빛 두봉이 저절로 부풀어 오르더니 박쥐의 두 날개처럼 펼쳐졌다. 그 안에 드러난 몸에서는 갑자기 거대한 핏빛 소용돌이가 일어나 거대한 흡인력을 발휘했다.

    이에 아직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힘에 목을 졸린 것처럼 우는 듯 분명치 않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뒤이어 사람들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입에서 시뻘건 빛이 여러 줄기 흘러나와 허공에 모여 긴 핏빛 강을 이루더니, 요풍 앞의 소용돌이로 몰려 들어갔다.

    자세히 보니 그중에는 혈기 없는 소년소녀도 여럿 있었는데, 이들은 불그스레했던 안색이 순간 창백해지더니 곧 노랗게 변했고, 피부가 순식간에 탄력을 잃고 늘어졌다.

    심협은 심장이 바싹 졸아들어 곧장 행렬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심가와 백가 사람들부터 구할 생각이었다.

    상황이 워낙 긴박했던지라 심협은 어쩔 수 없이 소뢰부 수십 장을 연달아 던져 심옥과 백벽을 비롯한 10여 명의 수사들을 깨웠다.

    “어서 가서 사람들을 구하고 법력으로 그들을 보호하시오!”

    소용이 있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급해진 심협은 크게 외쳤다.

    심옥 등은 정신을 차린 뒤로도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상황이 긴박함을 알아채고는 다들 법력을 발휘해 각자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들은 녹옹이 홀로 성문으로 달려가 손도끼로 무거운 성문을 쉬지 않고 내리치는 것을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성문 또한 마치 법진의 도움을 받은 듯 검붉은 빛으로 덮여 있어 굳건히 버텨냈다.

    한편, 다른 한쪽 하늘에서는 새빨간 빛이 막 소용돌이 속으로 모여들어갔다. 그러자 요풍의 몸에서 내뿜는 빛은 더욱 밝아졌고, 몸에 나타났던 여러 균열들은 금세 핏빛으로 메워져 차츰 아물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보고 표정이 더욱 어두워진 백소운은 한 손으로 결인을 맺더니 석장을 세게 내리쳤다.

    쩔그렁!

    석장에서는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그 위에 새겨진 대비주(大悲呪)가 갑자기 빛을 냈고, 석장 끝부분에 박힌 정명주(淨明珠)에서 부드러운 하얀 빛이 피어올라 석장의 몸체를 따라 퍼져 나갔다. 그러자 석장 몸체의 핏빛에 물든 부분은 순간 하얀 빛에 밀려나 깨끗이 정화되었다.

    백소운의 눈에 일말의 망설임이 스쳐갔으나, 빠르게 기혈의 힘을 빨리고 있는 백가 사람들을 보자 그의 눈빛은 다시금 굳건해졌다.

    그가 한 손으로 결인한 후 손바닥을 앞으로 세차게 휘두르자, 줄곧 그의 곁에 떠 있던 불가 진언이 새겨진 염주 여섯 알이 갑자기 빛을 발하며 요풍을 향해 돌진했다.

    “진언으로 불법(佛法)을 찬송하여, 불광으로 마귀를 제압하리라. 옴, 마, 니, 밧, 메, 흠(眞言頌法, 佛光鎭魔, 唵,麽,抳,鉢,訥,銘,吽)!”

    그가 가볍게 읊조리자 명주들이 순식간에 요풍에게로 날아가 그 주위를 맴돌며 눈부신 빛을 발했다.

    곧 염주 위의 진언 하나하나가 발하는 선홍색 빛이 하늘가를 비추었고, 그 속에서 높이가 수십 장에 달하는 불상의 허상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각각 선정인(禪定印), 무외인(無畏印), 여원인(輿愿印), 설법인(說法印), 지권인(智拳印)과 항마인(降魔印)을 맺은 채 요풍을 향해 달려들었다.

    불가(佛家)의 각 수인(手印)마다 빛이 넘실거렸는데, 그 안에 담긴 법력의 파동은 뜨거웠고, 환했으며, 찬란한 위세를 띠었다. 이 위세는 허공에 겹겹의 파동을 만들어냈다.

    이를 본 요풍은 표정이 급변해 다급히 두 손을 모았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시뻘건 빛이 모여들더니 반투명의 거대한 핏빛 고치처럼 그를 감쌌다.

    쿠르릉! 콰쾅!

    여섯 불인(佛印)이 핏빛 고치에 부딪치면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렸다. 그 위에서는 순식간에 새빨간 광채가 붉은 물결처럼 끊임없이 솟아올라 여섯 수인을 향해 거꾸로 돌진했다.

    그럼에도 여섯 불상의 허상은 미동도 없었지만, 그들의 미간에 응결된 염주알들은 심하게 떨렸다. 허공에서 이미 석장을 거둬들이고 두 손을 동시에 결인한 백소운 또한 부들부들 떨렸다. 요풍을 제압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요풍이 혈광(血光)을 거둬들이도록 몰아붙이고, 그를 핏빛 고치 속에 억지로 제압한 덕에, 핏빛 환상에 빠져 있던 평범한 백성들은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여전히 공포에 질린 채 기혈이 허약해진 모습으로, 모두 넋이 나간 듯했다.

    “나를 구속했다고 해서 저들을 보호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마라! 저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크하하하!”

    요풍은 핏빛 고치에 얽매인 상태에서도 두려워하기는커녕 백소운을 비웃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건시귀로 변한 검문관 백성들이 무슨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갑자기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성벽 위에도 일곱 개의 빛기둥이 번쩍이며 흐릿한 검영(劍影)이 줄줄이 쏘아져 나와 건업성 백성들에게로 날아갔다.

    한순간 사방에서 핏빛이 일었고, 곳곳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피가 온 땅에 튀었고, 진동하는 피비린내에 자극을 받은 건시들은 더욱 흉포하게 달려들었다.

    다른 수사들이 정신을 차리도록 돕고 있던 심협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자 다시 성문 쪽으로 되돌아갔는데, 어이없게도 녹옹은 여전히 성문을 부수려 하고 있었다.

    “이 성벽은 법진이 지키고 있어 성벽의 검진과 공격, 방어로 일체를 이루고 있소. 그러니 법진의 중추를 파괴하지 않는 이상 헛수고일 뿐이오. 내가 법진을 파괴할 테니 그동안 여기서 백성들을 보호하면서 기다리시오.”

    “선배님 안심하고 가십시오.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시고요.”

    심협은 자신의 당부에 심옥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몸을 돌려 성벽 위로 향했다.

    그가 재차 주의를 준 까닭에 심가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으니, 다른 유민들에 비하면 큰 행운이었다. 자연히 그에 대한 심가 사람들의 신임과 존경은 더없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백벽 또한 위기 앞에서 심협의 침착하면서도 신속한 대응에 크게 탄복했다.

    반면, 녹옹만큼은 분노와 증오가 뒤섞인 눈으로 심협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 무렵, 심협은 발끝으로 땅을 딛고 몸을 솟구쳐 곧장 성벽 위로 솟구쳤다.

    그러나 그의 머리가 막 성벽 위로 나오는 순간,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황급히 머리를 옆으로 기울였지만, 하얀 검광이 목을 바짝 스치며 날아가는 바람에 옷이 어깨까지 쭉 찢어지고야 말았다.

    심협은 멈추지 않고 손으로 성벽 꼭대기를 붙잡고는 몸을 날려 성가퀴(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기 위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를 뛰어넘어 성벽 꼭대기의 마도(馬道) 위에 착지했다.

    재빨리 훑어보니, 성벽 위 일곱 군데에서 빛기둥이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안에서는 광검(光劍)이 응결되어 규칙적으로 허공을 맴돌고 곧 성을 향해 날아갔다.

    법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그것의 중심부가 저 일곱 군데 중 어디 있는지는 알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까 요풍이 성벽 한쪽 모퉁이에서 능청스레 검진을 복구하는 척 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즉시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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