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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09화 (209/1,214)
  • 209화. 검문관을 구하라

    심협을 비롯한 사람들은 도착하자마자 늑대 요괴들이 개미 떼처럼 새카맣게 들러붙어 성을 공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천수만 마리의 늑대 사체가 성벽 아래에로 몇 장 높이까지 쌓여 있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게다가 그 위로는 더 많은 늑대 요괴들이 동족의 시체를 밟고 성벽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는 중이었다.

    한편, 성벽 위 상공에서는 핏빛 박쥐 떼 수만 마리가 온 하늘을 뒤덮은 채였다. 날개 치는 소리가 그야말로 천둥처럼 요란하게 울렸다.

    심협은 이 두 요물 모두 낯설지가 않았다. 특히 늑대 요괴는 이전에 그가 꿈에서 봉지성에 들어갔을 때 우몽과 어깨를 맞대고 싸우며 상대해본 적이 있다.

    그가 훑어보니 과연 기세가 대단한 늑대무리 속에 몸집이 거대한 검은 늑대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푸른 늑대들이 적잖이 보였다. 그러나 늑대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돌연변이는 보이지 않았다.

    높은 하늘의 핏빛 박쥐는 예전 장풍곡에서 만났던 흡혈박쥐와 비슷했지만, 몸집은 더 컸다. 머리는 멧돼지처럼 생겼고, 입가에는 구부러진 이빨이 아래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몸은 검붉은 핏빛으로 번쩍였으며, 두 날개를 펼치니 폭이 족히 1장은 되어 보였다.

    두 요괴 무리는 한쪽이 아래에서 위로 돌격하고 다른 한쪽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치니 호흡이 꽤나 잘 맞았다.

    성벽 꼭대기 위, 성 밖과 가까운 쪽에서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부적이나 부전(符箭)으로 끊임없이 협공하며, 위로 밀고 올라오는 늑대 요괴를 막았다. 하지만 그런 공격은 속도가 제한적이어서 점점 힘에 부쳐 보였다.

    하늘에서는 수시로 거대한 불덩이들이 계속해서 폭발했는데, 수사들이 술법을 발휘해 핏빛 박쥐들을 공격하는 것이 분명했다. 또한 칼날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박쥐 대군을 휘젓고 다녔다.

    “성이 아직 뚫리지 않았으니 우리도 가서 도웁시다.”

    백소운은 눈빛을 살짝 굳히며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앞쪽 전장에서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다.

    검문관 성벽 위에 있던 핏빛 박쥐 떼 사이에서 갑자기 피처럼 붉은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모든 박쥐들을 집어 삼켰다. 또한 모든 안개가 한곳으로 뭉쳐 거대한 핏빛 구름으로 변했다.

    붉은 구름 속에는 핏빛 박쥐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수많은 붉은 빛이 그 안에서 번득이는 것이 마치 그 안에서 천둥번개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삽시간에 붉은 구름 속에서 한 차례 시원스런 폭우가 쏟아져 내렸으나 검문관 성벽 위만 온통 뒤덮었을 뿐 다른 곳에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심협이 자세히 보니, 허공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놀랍게도 피처럼 붉었다. 혈우(血雨)였던 것이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성벽 위에서 처절한 울부짖음이 잇달아 들려왔고, 곧이어 일고여덟 줄기의 사람 형체가 정신이 나간 듯 성곽을 뛰쳐나와 두 손을 마구 휘젓다가 아래쪽 늑대 무리 속으로 떨어졌다. 주위의 늑대 요괴들은 즉시 몰려들어 그의 육신을 찢고 깨끗이 나누어 먹었다.

    “가자!”

    백소운이 힘차게 외치며 앞장서서 뛰어 올랐다. 그의 몸은 마치 화살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라 곧장 성벽 상공으로 향했다. 심협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심옥에게 당부한 뒤 바로 비행부를 손에 쥐고 날아올라 백소운의 뒤를 따랐다.

    나머지 사람들도 분분히 돌진하여 늑대 요괴 무리를 뚫고 들어갔다.

    한편, 녹옹은 뒤쪽에 처져 있다가, 멀어져가는 심협과 백소운을 시큰둥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느긋하게 성문쪽으로 향했다.

    심협은 백소운을 절반 정도 쫓아가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성벽 모퉁이에 푸른 도포를 입은 중년 남자가 나반(*羅盤: 풍수가가 사용하는 원판) 같은 물건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뒤에는 흐릿한 푸른 빛이 번쩍이며 나타나더니 푸른 늑대 한 마리가 어느새 성벽 위로 기어올랐다. 그 등에는 웃통을 벗은 늑대 머리 남자가 타고 있었는데, 그는 손에 골창(骨矛)을 움켜쥔 채 도포 차림의 남자를 단번에 꿰뚫으려 하고 있었다.

    심협은 망설임 없이 곧장 피수결(避水訣)을 맺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 푸른 빛이 감돌더니 혈우 속으로 갑자기 파고들었다.

    빗방울이 몸을 적시자 곧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썩어 들어가는 냄새가 훅 풍겼다. 하지만 피수결 광막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기에 심협은 일단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급히 날아가 곧장 성벽 모퉁이로 떨어지며 손에서 물화살을 발사했다. 물화살은 끝에 낙뢰부(落雷符) 한 장을 단 채 늑대 머리 남자의 등 복판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늑대 머리 남자는 화들짝 놀라 도포 차림 남자의 몸을 찌르려던 창을 휙 돌려 물화살을 쳐내려 했다.

    콰르릉!

    골창과 물화살이 충돌한 순간, 갑자기 팔뚝만 한 굵기의 새하얀 번갯불이 뿜어져 나와 골창 끄트머리에서 터졌다. 그와 동시에 늑대 머리 남자의 뾰족한 창끝에서도 반구 모양 광막이 생겨났다.

    하얀 번갯불은 그 위에 떨어져 치지직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거세게 충돌했지만, 결국 광막을 뚫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번갯불이 흩어진 순간, 심협은 이미 성벽으로 내려와서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늑대 머리 남자의 두 눈이 시뻘겋게 번득였다. 그는 입가에 한 줄기 냉소를 띤 채 창끝을 들어 올려 심협의 가슴팍을 향해 곧장 찔러 들어갔다.

    심협은 이미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고 있던 차라 몸을 휙 비틀어 가볍게 피하고는 몸을 창에 바짝 붙인 채 쭉 미끄러지며 주먹을 세게 내리쳤다.

    하지만 늑대 머리 남자는 이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주먹을 들어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꽝!

    두 사람의 주먹이 충돌하자 성벽에 엄청난 진동이 일면서 갑자기 형체 없는 폭풍이 사방으로 퍼졌다.

    “키에엑!”

    구슬픈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늑대 머리 남자를 태운 푸른 늑대가 두 주먹이 맞부딪히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사지가 모두 부러져 땅에 엎드러진 것이다. 녀석은 등뼈까지도 박살이 나 즉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늑대 머리 남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내려선 뒤, 즉시 골창을 번쩍 들어 올려 심협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심협은 한쪽 팔을 세워 이 공격을 막아냈고, 그가 가늠하기에 상대는 기껏해야 응혼 중기에 불과하다는 것과, 그럼에도 몸과 혼이 강해 자신의 공격에 완강히 저항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적임을 알자 마음이 놓여 늑대 요괴 뒤에 있는 도포 차림 남자를 바라보았으나, 이내 답답함을 금치 못했다. 그놈은 때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그들을 등진 채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늑대 머리 남자가 갑자기 크게 포효했다. 그러자 시뻘건 눈에서 검붉은 두 줄기 안개가 쏘아져 나와 그가 손에 든 골창을 따라 감겨들었다.

    “마기!”

    심협은 그 검붉은 안개의 기운이 전혀 낯설지 않아 금방 알아보았다.

    곧이어 늑대 머리 남자는 온몸의 기세가 돌변하여 몸의 기운이 출규기에 육박하더니, 손에 든 골창으로 심협을 더욱 압박해 몇 장이나 몰아갔다.

    심협이 아직 제대로 서기도 전에 늑대 머리 남자가 빠른 속도로 달려와 골창을 곧추세우더니 명치를 향해 세차게 내찔렀다.

    이에 심협은 급한 대로 두 팔을 세워 앞을 가로막을 수밖에 없었다. 거센 마기가 휘감긴 골창은 핏빛 구름에서 흩뿌리는 비의 장막을 뚫고 심협의 팔뚝에 박혔다.

    쩍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심협의 몸을 덮었던 피수결 광막이 쪼개지며 점점이 푸른 빛으로 부서져 사라졌다.

    심협은 팔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꼈지만, 재빨리 앞으로 미끄러지며 양팔 사이에 골창을 끼고는 몸을 휙 비틀었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황정경을 운공하여 혼신의 힘으로 한 바퀴 회전해 창을 반대 방향으로 꺾었다.

    골창의 뾰족한 끄트머리는 허공에 둥근 곡선을 그리며 180도 뒤틀렸지만 끝내 부러지지 않았다.

    “차핫!”

    그 상황에서도 늑대 머리 남자는 오히려 크게 고함을 지르며 팔을 흔들어 꺾인 창끝을 다시 튕겨냈다.

    이 엄청난 힘에 심협은 그대로 수십 장을 가로질러 날아가 다른 쪽 부벽(扶壁: 성벽이나 담벼락에 밖으로 돌출된 버팀벽)에 부딪혔다.

    쿵!

    한 손으로 뒤쪽 부벽을 짚었지만, 몸에 타는 듯한 통증이 전해져왔다. 그는 고개를 숙여 한 번 훑어본 뒤에야 피수결(避水訣) 방어막이 사라지면서 핏빛 빗방울이 피부에 떨어졌고, 끓는 기름을 몸에 뿌린 것 같은 상태가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한편, 주위에서도 끊임없이 처참한 비명이 들려왔고, 또 어떤 이들은 이 혈우를 견디지 못하고 성벽을 뛰쳐나갔다.

    심협이 더 살펴볼 틈도 없이 늑대 머리 남자가 다시 돌진해왔다. 그의 온몸은 이미 마기에 휘감겨 몸 전체가 갑자기 몇 곱절 불어났고, 높은 곳에서 심협을 내려다보는 눈에는 짙은 살의가 가득했다.

    심협은 이 늑대 머리 남자를 가벼이 여겼다가는 그 마기에 감염될 뿐임을 알아채고는 즉시 두 손을 결인하여 삼성멸마의 신통력을 발휘하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머리 위에서 갑자기 뎅 하며 우렁찬 종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순간, 마치 불경을 외는 것 같은 읊조림이 붉은 구름 속에서 전해져왔고, 겹겹이 금빛 불광이 끊임없이 구름 속에서 물결쳤다. 그러자 높은 하늘에 자리를 잡고 있던 핏빛 구름에 무수한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햇빛이 비치듯 상서롭고 평온한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와 봄비처럼 혈우를 순식간에 깨끗이 씻어냈다.

    성벽 위에는 혈우에 물든 이가 백여 명이나 있었는데, 갑자기 빛에 감싸이자 곧 온몸 위아래로 가닥가닥 실오라기 같은 핏빛 기운이 뽑혀 나왔다. 다만 이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탓에 그들은 참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바닥을 뒹굴었다.

    심협이 고개를 들어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니, 핏빛 박쥐 떼가 모여서 만들어진 붉은 구름은 이미 빠르게 흩어졌고, 수많은 핏빛 박쥐들이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심협은 속으로 기뻐하며 시선을 늑대 머리 남자에게로 돌렸다.

    상대방도 계속 싸워야 할지 망설이는 듯 그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줄곧 그들을 등지고 있던 도포 차림 남자가 마침내 어떤 사명을 완성하기라도 한 양 몸을 바로 세우며 ‘됐다!’ 하고 크게 외치고는 껄껄 웃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검문관 성벽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성벽 꼭대기의 모퉁이를 기점으로 성벽 중간 부분의 성루, 중간의 감시탑을 비롯해 다른 쪽 각루(*角樓: 성벽 위의 모서리에 지은,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누각)에서 푸른 광채가 연이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치 커다란 법진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우르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몇몇 곳의 푸른 광채가 갑자기 확 불어나 일곱 개의 빛기둥이 되어 하늘로 곧장 솟구쳤다. 주변의 희미한 빛무리들이 응결되어 만들어진 비검이 느닷없이 튀어나와 성 아래쪽을 포위 공격하는 늑대 요괴들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날아갔다.

    한순간 온 성벽에서 검광이 일렁였고, 곳곳에서 피가 튀었으며, 늑대 요괴의 울부짖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성벽 위에서는 늑대 머리 남자의 두 눈에 흐르던 검붉은 마기가 점차 사그라들었고, 눈빛의 광기도 점차 사라졌다. 그는 손에 든 골창을 휘둘러 자신에게 수없이 날아오는 광검을 쳐내고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으로 심협을 힐끗 본 뒤 몸을 날려 성을 빠져나갔다.

    그가 땅에 내려서기도 전에, 검고 커다란 늑대 한 마리가 나는 듯 달려와서 허공으로 뛰어올라 그를 받아서는 그대로 달아났다.

    늑대 머리 남자가 물러나자 성벽에 들러붙어 죽음도 불사하고 돌격하던 늑대 무리도 갑자기 명령을 받은 것처럼 썰물 빠지듯 멀리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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