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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01화 (201/1,214)
  • 201화. 대일명등(大日明燈)

    백소천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읊조리기 시작했다.

    “마귀는 금강저 앞에 무릎을 꿇어라, 사악한 무리가 물러나고 대일여래(*大日如來: 우주의 실상을 체현하는 근본 부처)께서 영들을 모아 천하를 평안케 하시리라(金剛伏魔, 群邪易, 大日聚靈, 乾坤方定)!”

    그러자 수은 같은 금색 빛이 그의 몸에서 미친 듯이 솟아났는데, 그 안에서 금강항마저의 허상이 어렴풋하게 나타나 검은 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뒤이어 허공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하늘의 작열하는 태양 빛이 연이어 번뜩였고, 한 줄기 화염 같은 금색 빛줄기가 날아와 금강항마저 안으로 녹아들었다.

    그 순간, 허상일 뿐이었던 항마저는 곧 응결되어 실체가 되었고, 열 배쯤 불어나 이제는 수십 장에 이르렀으며, 그 주위에서는 수많은 번갯불 같은 금빛이 맴돌았다. 항마저는 순식간에 검은 구름 위 하늘에 나타나 전광석화처럼 구름을 공격했다.

    그러자 검은 구름이 한 차례 소용돌이쳤고, 위쪽에서 다갈색의 커다란 요괴 그림자가 떠올랐다. 자세히 보니 갑옷을 두른 지네였다. 하반신은 지네의 몸뚱이였고, 상반신은 어찌어찌 사람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 또한 지네의 그것이었다. 두 눈구멍에서는 검은 화염이 번득였고, 두 손에는 커다란 검과 방패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지네 요괴의 아래쪽에 있는 검은 구름이 굼실굼실 방패 안으로 몰려 들어가자 방패 표면에는 잠시 검은 안개가 감돌면서 무수한 부적 문양이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꿈틀거리며 금강저에 맞섰다.

    꽈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검은 방패가 쪼개지며 수많은 검은 기운으로 변해 사방으로 흩날렸다.

    금강저는 방패를 부수고도 거침없이 지네 요괴를 공격해갔다.

    “키야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지네 요괴의 왼쪽 팔뚝과 몸 반쪽이 그대로 부서지며 다진 고기처럼 변해 날아갔고, 시뻘건 내장이 그대로 드러났다.

    백소천은 평온한 얼굴로 한 손을 들어 올리고는 허공에 대고 지네 요괴를 향해 손가락 하나를 휙 그었다. 그러자 하늘에 금빛이 번쩍이더니 난데없이 금실이 나타나 단번에 지네 요괴를 베려고 했다. 그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서 지네 요괴는 아예 아무런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깃털이 가득한 데다가 검고 날카로운 손톱이 자란 손바닥이 어디선가 나타나 단번에 지네 요괴의 몸을 낚아채 뒤로 휙 잡아당겼다. 덕분에 지네 요괴는 아주 아슬아슬하게 금실의 참격(斬擊)을 피할 수 있었다.

    다음 순간, 검은 손바닥이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뾰족한 손톱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 금실과 부딪쳤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는 거센 폭풍이 몰아쳤고, 지네 요괴는 그 충격에 휩쓸려 날아갔는데, 상처들에서는 다시금 붉은 피가 솟아났다.

    그와 동시에 장대한 인간의 몸에 매의 머리를 한 요물이 지네 요괴 곁에 나타났다. 바로 검은 손바닥의 주인이었다.

    백소천은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으나, 갑자기 표정이 변하더니 결인한 손으로 금빛 광막을 가리켰다. 그러자 금빛 광막이 공중에서 왼쪽으로 수십 장을 이동하며 세찬 금빛을 발했다.

    카가각!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금빛 광막이 맹렬하게 떨렸는데, 보이지 않는 공격이 있었는지 그 위로 움푹 파인 곳이 두 군데 엿보였다.

    광막은 격렬하게 몇 번 흔들리더니 더는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와르르 부서져 다시 금빛 목어로 변해 빙글빙글 회전하며 거꾸로 날아 돌아왔다. 빛이 한층 어두워진 걸 보니 꽤나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게 틀림없었다.

    이에 백소천은 표정이 조금 굳은 채 옷소매를 다시 한번 휘둘렀다. 그러자 금요(*金鐃: ‘바라’라고도 불리는, 불교 법회에서 쓰이는 악기. 고대 중국에서는 군악기로도 쓰였음)가 튀어나와 빠른 속도로 그의 몸을 맴돌며 춤추듯이 날았다.

    “오호홋! 백도우는 과연 화생사 문하의 고수요. 천호(千狐)인 나의 기운은 형체와 종적이 없음에도 그대의 영각(*靈覺: 사물의 변화에 대한 신령의 느낌이나 감각 등을 이르는 말)은 피할 수가 없구려.”

    지네 요괴 곁의 허공이 잇달아 반짝이더니 또 다른 두 개의 형체가 갑자기 모습을 나타냈다. 하나는 분홍색 치마를 입은 젊은 여인이었는데, 뒤로 분홍색 여우 꼬리 여섯 개가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장난스레 웃으며 요염한 눈초리로 실오라기 같은 눈웃음을 짓고 있어 보는 이들을 절로 빠져들게 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녹색 옷을 입은 노인이었는데, 키가 크고 말랐으며, 피부는 검푸른 데다 바싹 마른 것이 꼭 나무껍질 같았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게도 머리숱은 유난히 많아서 아주 기괴해 보였다.

    이 세 요물의 기운은 하나하나 모두 지네 요괴를 넘어서는 것이, 놀랍게도 모두 반선인 존재들이었다!

    “고직공(孤直公), 나를 좀 도와주시게!”

    지네는 녹색 옷의 노인이 나타나자 긴장했던 표정을 풀고는 다급히 울부짖으며 도움을 청했다.

    녹색 옷의 노인이 결인한 손을 슥 하고 휘두르자 녹색 빛이 지네 요괴의 몸에 떨어졌다. 그러자 커다란 상처에서 나오던 피가 순식간에 뚝 그쳤다.

    노인은 뒤이어 녹색 단약 하나를 꺼내 지네에게 먹인 뒤, 자신의 손가락을 붙잡고 나뭇가지를 꺾는 것처럼 힘껏 분질렀다.

    뚜둑!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가락 하나가 뚝 부러졌지만, 상처에서 흘러나온 것은 피가 아니라 녹색 액체였다. 그 액체는 매우 짙은 생기를 뿜어냈는데,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심히 뒤흔들렸다.

    노인이 손을 가볍게 내젓자 녹색 액체는 지네의 상처 위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이에 따라 지네의 상처 부위에서는 무수한 핏줄들이 튀어나와 서로 엉키며 금세 새로운 육체를 이루었다.

    호흡 몇 번 할 사이에 녹색 빛이 번쩍이더니, 지네의 몸은 원래 모습을 회복했지만 기운이 크게 저하된 것을 보니, 원기가 크게 상한 것 같았다.

    “고맙네.”

    지네는 녹색 옷의 노인에게 감사를 표한 뒤 백소천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뼈에 사무친 듯한 원한이 어려 있었다.

    “허허, 과연 백 대사께서는 실로 신통하시오. 정말 대단해! 이 금강항마저가 대일여래의 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니, 석등방장(釋燈方丈)이 나선다해도 이리는 못 할 거요. 허나 이제 우리가 손을 잡았는데 귀하는 아직도 승산이 있다고 보시오?”

    지네 요괴는 연신 냉소하며 백소천을 놀리듯 말했다. 다른 세 요괴도 동시에 앞으로 다가섰다.

    한편, 성 밖 강물에 있던 심협은 심히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는 지금 수련 경지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완전히 회복된다 해도 출규 중기에 지나지 않아 반선의 경지에 오른 이 능력자들에게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니 애가 타는데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백소천은 네 마리 요괴를 쓱 훑어보더니 갑자기 뒤로 물러서며 두 손을 합장했다. 그러자 그를 감쌌던 금빛 광진이 그의 몸 아래에서 줄어들어 금빛 연화대로 변해 빠르게 회전했다.

    또한, 수많은 범창(梵唱)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마치 수많은 신불(神佛)이 주위에서 불경을 외우는 것만 같았다.

    그의 뒤에서 금빛이 번쩍이자 길이가 1장에 이르는, 거대한 등잔 심지 모양의 부적 무늬가 떠올라 아래의 금빛 연화대와 서로를 멀리서 눈부시게 비추었다.

    “심등임조(心燈臨照)! 어서 저자를 막아!”

    분홍빛 치마를 입은 젊은 여인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옥처럼 고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보송보송한 분홍빛 깃털 부채가 손에 나타났다. 이어서 여인이 그 부채를 하늘에 대고 한 번 부치자 난데없이 분홍색 폭풍이 나타나 천둥소리를 내며 백소천에게 휘몰아쳤다.

    폭풍 안에는 자욱한 분홍빛 안개가 그득했고, 독특한 향기가 풍겼다. 근처의 수사(修士)들과 요물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피했지만, 그러지 못한 요물과 두어 명의 수사는 폭풍의 영향을 받아 이내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또한, 녹색 옷의 노인이 허공을 한 손으로 내리치자, 백소천의 머리 위에서 녹색 빛이 번득였다. 이어서 비취색의 작은 산만 한 손바닥이 갑자기 나타나 맹렬히 날아오며 무시무시한 힘을 퍼부었다.

    매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요괴도 두 손을 펼쳤다. 그러자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두 손이 길이가 몇 장에 이르는, 넓고 큰 날개로 변했다. 요괴는 세차게 날갯짓을 해댔고,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백여 장 길이의 검은 바람이 두 마리 검은 교룡(蛟龍)처럼 백소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네 역시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입을 벌리고 칠흑 같은 요화(妖火)를 내뱉었다. 요화는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수십 장 높이의 파도 같은 불길이 되어 포효하면서 몰려갔다.

    네 요괴의 공격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거의 동시에 날아들었지만, 백소천과 불과 몇 장 거리까지 다가온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우뚝 멈추었다.

    백소천 아래의 연화대는 윙윙거리며 회전했고, 반경 십여 장의 허공에는 반투명한 금빛 연판(蓮瓣)이 떠올라 금빛 보호벽을 이루며 네 요괴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백소천 역시 견디기 힘들었는지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고, 입가에는 핏줄기가 흘러나왔으며, 낯빛 역시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셔 체내의 요동치는 법력을 가까스로 억누르고는 결인한 손을 휘둘렀다.

    백소천의 뒤에 있던 등심부문(燈芯符紋)이 빠르게 번쩍였다. 이어서 10여 덩이의 금빛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화염 중심부마다 있는 작은 등심부문이 네 요괴의 공격에 맞았다.

    분홍빛 폭풍이든 비취색 거대한 손바닥이든, 또는 검은 요풍과 요화든 그 금빛 화염에 닿기가 무섭게 타들어갔다. 그러고도 기세가 사그라지지 않은 금빛 화염 덩어리들은 유성처럼 네 요괴를 향해 날아갔다.

    “어서 피해!”

    젊은 여인이 급변한 얼굴로 황급히 외치고는 뒤로 몸을 날리면서 손에 든 부채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분홍빛 폭풍이 다시 한번 휘몰아치며 자신에게 날아오던 3개의 금빛 화염 덩어리를 공격했다.

    녹색 옷의 노인은 몸이 녹색 빛으로 번쩍였고, 순식간에 노인과 똑같은 형상 10여 개가 나타나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진짜와 가짜를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다.

    지네 요괴도 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중상을 입은 상태라 빠르지 못했다. 그러나 검은 매 요괴가 몸에서 검은 빛을 번쩍이더니 별안간 집채만 한 검은 매로 변해, 양발로 지네를 움켜쥐고 뒤를 향해 거꾸로 날아갔다. 다른 두 요괴와 비교해도 그리 밀리지 않는 속도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네 요괴를 향해 공격해오던 금빛 화염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니 분홍치마의 여인과 녹색 옷의 노인을 버려둔 채 지네와 검은 매 요괴를 향해 날아들었다. 속도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눈 깜짝할 새에 두 요괴를 따라잡았다.

    검은 매 요괴는 깜짝 놀란 듯 몸 표면에 검은 빛을 번쩍였다. 그러자 마치 실체가 있는 것만 같은 시커먼 회오리바람이 떠오르더니 그 안에서 문짝만 한 검은 풍인(風刃)이 수없이 나타나 금빛 화염들을 갈랐다.

    지네도 애써 요력을 발동해 입을 벌리고 또다시 검은 화염을 내뿜었다. 아까와 달리 이번 검은 화염은 무시무시한 열기를 내뿜는 화벽(火壁)을 이루었는데, 근처의 공기가 매섭게 뒤틀린 탓에 마치 불이 붙을 것만 같았다.

    거의 동시에 금빛 화염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납게 내리쳤다.

    콰콰쾅! 퍼펑!

    굉음이 연이어 울렸지만, 금빛 화염들은 회오리바람과 화벽을 뚫지 못한 채 폭발하며 두 요괴의 주변에 금빛 불바다를 만들었다.

    “대일여래시여, 광활하게 비추시며 눈부신 빛을 발하소서(大日曠照, 煌煌光明)!”

    연화대 위에서는 백소천이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며 몸을 뒤로 젖힌 채 두 팔로는 무언가를 껴안은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갑자기 그 뒤쪽의 심지 무늬에서 만 갈래의 금빛 빛줄기가 피어오르며 마치 활활 타오르는 태양이 세상에 떨어지는 것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뜨겁고 순수한 굵고 하얀 빛줄기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금빛 불바다에 떨어졌다. 이 빛줄기는 순식간에 지네와 검은 매 요괴는 물론 그들 주위의 회오리바람과 화벽까지 모조리 뒤덮어버렸다.

    “화생사의 진파(鎭派) 필살기 중 하나인 대일명등(大日明燈)! 그럴 리 없어! 그 신통력은 진선(眞仙)의 경지에 올라야만 쓸 수 있을 텐데…….”

    분홍치마를 입은 젊은 여인의 낯빛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그녀 옆에 불쑥 나타난 녹색 옷의 노인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검은 돌풍과 작열하던 화벽은 새하얀 빛기둥에 감싸여 뙤약볕 아래의 눈처럼 순식간에 증발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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