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95화 (195/1,214)
  • 195화. 신통력

    심화원은 소뢰부(小雷符)를 던진 뒤, 또다시 품에서 손바닥만 한 진홍색 검을 꺼내 누르스름한 부적을 그 위에 붙인 뒤 재빨리 던졌다.

    진홍색 검이 번득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길이가 2척에 이를 정도로 커졌고, 곧장 시귀의 머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시귀는 이를 보고 매섭게 울부짖으며 하나 남은 팔을 들더니 다섯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뻗어 진홍색 검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그 순간, 진홍색 검에서는 붉은 빛이 크게 솟았고,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글거리는 빛은 점점 더 강해졌다. 칼날과 시귀의 말라비틀어진 손이 한순간 팽팽히 맞섰다.

    심화원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심옥 무리가 지원해주러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하늘은 그의 편이 아니었던 걸까? 기다리던 심옥과 일행이 오기는커녕 한쪽 벽이 쿵 하고 갈라지면서 더 거대한 시귀 한 마리가 뛰어 들어왔다. 녀석은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심화원에게 달려들었다.

    심화원은 마차에 치인 것처럼 휙 하고 나가떨어져 부러진 기둥에 충돌하고는 뜰에 나뒹굴었다.

    “크으으…….”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이내 붉은 피를 토했다.

    한편, 뜰로 도망쳤던 심가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심전은 생사를 알 수 없고 가주는 공격을 받아 피를 토하지 않았던가. 어린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말들도 놀라 울부짖으면서 일순간 뜰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때, 시귀들은 심화원에게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았다. 하나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고, 다른 하나는 도망친 사람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심화원은 이를 악물고 손을 들어 휘둘렀다. 그러자 방 안 바닥에 떨어져 있던 부검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더니 붉은 광선을 그리며 곧장 튀어나왔다. 이 검은 그에게 달려드는 시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향해 뛰어든 시귀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갔다.

    검이 뒤통수에 꽂히기 직전, 시귀가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바짝 마른 손을 들어 올려 이마를 막았다.

    쩡!

    진홍색 부검이 녀석의 손바닥을 찌르면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를 냈지만, 뚫고 지나가지는 못했다.

    이 모습을 본 심화원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뒤이어 시귀가 다섯 개의 날카로운 손톱을 칼처럼 내리 그으며 덮쳐왔으나, 심화원은 미처 부검을 소환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시귀의 날카로운 손톱들 틈새로 갑자기 뒤쪽 지붕 위에서 사람 형체 하나가 훌쩍 뛰어올라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다!”

    심화원이 가볍게 외쳤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심협의 두 발이 시귀의 어깨를 힘껏 짓밟았다.

    시귀는 엄청난 힘에 짓눌려 몸이 꺾이면서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심화원에게 휘두르던 날카로운 손톱도 갈퀴처럼 땅바닥을 파고들었다.

    그 순간, 심협은 몸을 굽혀 두 손으로 시귀의 머리통을 감싼 뒤, 수박을 따는 것처럼 홱 비틀었다.

    빠각!

    시귀의 목에서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렸고, 뒤이어 심협이 두 손에 힘을 주자 머리통이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심화원은 이 장면을 보면서 그야말로 넋이 나갔다.

    그는 시귀의 몸뚱이가 얼마나 억세고 단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소뢰부로도 고작 팔에 상처 좀 냈을 뿐이다. 한데 맨손으로 그 머리를 뽑아버리다니, 얼마나 엄청난 힘을 지녀야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때, 남은 시귀가 갑자기 심협에게 달려들었다.

    심협은 가볍게 뛰어올라 시귀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스쳐가며, 소뢰부 두 장을 꺼내 양쪽 관자놀이에 붙였다. 뒤이어 그의 손끝에서 법력이 한 가닥 흘러나오자 새하얀 빛이 번쩍였고, 눈이 멀 듯한 하얀 두 줄기 번개가 시귀의 머리 양옆을 동시에 파고들더니 한가운데서 서로 만나 폭발했다. 당연히 시귀의 머리는 그대로 터져나갔다.

    심협은 현재 법맥의 절반 정도밖에 풀지 못했지만, 그래도 법력을 약간은 쓸 수 있게 된 상태였다. 그의 동작은 날렵하면서도 깔끔해 사람들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채기도 전에 전투는 이미 끝나버렸다. 심지어 아직도 적잖은 사람이 허둥지둥 폐허의 마당 밖으로 도망쳐 나오고 있었다.

    “도망가지 마시오. 이제 안전해졌소!”

    심화원이 크게 외쳤다.

    가주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심가 사람들은 우뚝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뜰에는 시귀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고, 심협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그러니 상황은 명백했다.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두려워했고, 슬퍼하면서도 기뻐했다.

    “살아남았어.”

    누군가 흐느끼며 말했다.

    “그가 우릴 구한 것인가?”

    누군가는 의문을 가졌다.

    “엉엉…….”

    그러나 가장 많이 들려오는 소리는 아이들이 목 놓아 우는 소리였다.

    “심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심화원은 심협의 실력에 진심으로 탄복하며 말했다.

    “예의 차리실 것 없습니다. 어서 사상자가 있는지 살펴보지요.”

    심협이 그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심화원은 그 말에 정신을 차리더니, 무너져 내린 방으로 급히 뛰어 들어가 부서진 기왓장과 벽돌 무더기 아래에 파묻힌 심전을 끄집어냈다. 다행히 정신을 잃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고 심화원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그때, 고택 폐허 바깥의 전투를 마무리한 심옥과 한 사람이 급히 돌아왔다. 그리고 아수라장이 된 뜰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

    그녀는 급히 아버지를 부르짖으며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심화원이 무사한 것과 심협이 한쪽 옆에 팔짱 끼고 서 있는 것을 보고서야 조금 안심했다.

    “어찌 되었느냐?”

    심화원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시귀는 이미 다 몰아냈습니다. 한데……. 심쇠(沈釗)가 시귀의 기습에 전사했고, 심창(沈創)과 진충(陣沖)도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심옥은 문을 등진 채 착잡한 목소리로 답했다.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으나, 슬픔을 감추기는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하나하나 살펴보니 심가에서는 심쇠 외에 평범한 집안사람 세 명이 죽었고, 10여 명이 다친 상태였다. 사람들은 감히 이곳에 더 머무르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라도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이들 모두가 심가의 후예라는 걸 알고 있었고, 분명 가슴이 아프긴 했지만 그리 큰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꿈속에서 이보다 훨씬 참혹한 일들을 너무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 * *

    눈 깜짝할 사이 7일이 흘렀다.

    심협은 밤낮으로 황정경을 갈고닦아 마침내 수소음심경과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을 포함한 다섯 개의 법맥을 관통해 지금의 실력은 이미 벽곡 중기 정도의 힘을 되찾았다.

    지난번 시귀 사건을 겪으면서 심가 사람들은 심협에 대해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특히 심옥은 틈만 나면 심협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눴고, 수행 중 어려움에 대해 답을 구하기도 했다.

    이 무렵, 심협은 심가 사람들이 수행하는 공법 이름이 수원결(水元訣)이라는 것과, 이 공법이 실제로는 무명공법을 개량한 것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심씨 집안에 이 공법을 전해준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라는 것도…….

    처음에 심협은 왜 자신이 무명공법을 그대로 남겨주지 않고 개량해 간소화했는지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무명공법은 그 자체가 워낙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자신은 기연이 있어 금세 익혔을 뿐이니 보통 사람들이 수련하기에는 더 어려울 터였다. 심지어 개량된 수원결도 어려웠던 터라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련에 완벽하게 성공한 이는 없었다고 한다.

    최근 수백 년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더욱 나빠져 많은 사람이 통법성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으니, 벽곡기 경지에 이른 심옥이 실로 돋보이는 경지였다.

    심협은 비록 무명공법을 그들보다 더 깊이 깨닫고 있었지만, 신분을 직접 밝힐 수 없었기에 여러 자료들을 인용하거나 다른 사례를 들어 심옥의 질문에 답을 주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심옥은 자질도 뛰어나고 명민해 조금만 이끌어주면 늘 무언가를 얻어갔다. 그리고 몇 번의 심도 깊은 대화 후, 그녀는 이미 벽곡 중기의 경계를 어렴풋이 더듬어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요 며칠 동안 심협은 줄곧 마차에서 수련을 하며 바깥에 나가질 않았고, 심옥도 거의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앞서 시귀 사건의 결과로 심화원은 마음이 무거웠지만, 심협의 실력이 나날이 회복되고 심옥이 벽곡 중기를 돌파할 조짐이 보이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부상이 어느 정도 회복된 심전은 심화원과 같은 마차를 탔는데, 가주가 조금 마음이 편해진 듯하자 기뻐했다. 그는 선한 사람이라 심협이 자신들을 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는 직접 찾아가 고마움을 표했다. 한편으로는 미안해하기도 하며 심협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예를 갖추기도 했다.

    “가주, 그 심 선배님이란 분이 정말로 심옥의 어려움을 풀어주고 난관을 느슨하게 만들어주었습니까?”

    “옥아가 그리 말했으니 분명 틀림없을 것이네.”

    심화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심전은 눈을 빛내며 활기차게 말했다.

    “제 부상이 다 나으면 저도 가서 심 선배님께 가르침을 청해야겠습니다. 연기 후기에 갇힌 지 이리 오래되었으니,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집안을 위해서도 더 힘을 쓸 수 있을 겁니다.”

    “집안사람들 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네만, 안타깝게도 심 선배님께서는 지금 한창 힘을 회복하기 위해 수련 중이시니 방해하지 말게나.”

    심화원이 당부하자 심전은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밖에서 갑자기 말 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뒤이어 마차가 곧 멈춰 섰다.

    심화원은 굳은 표정으로 재빨리 휘장을 젖히며 마차 밖으로 나갔다.

    10여 장 앞에 건장한 몸집의 형체가 하나 서 있었다. 한 손에는 귀신 머리가 새겨진 커다란 추(*錘: 자루 끝에 둥근 쇳덩이가 달린 고대 병기의 하나)로 땅을 짚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아주 위풍당당해 보였다.

    키가 말도 안 되게 커 거의 1장쯤 되었고, 어깨는 떡 벌어진 데다가 허리가 우람하게 굵었으며, 발가벗은 웃통에는 보랏빛 피부가 드러나 있었다. 앞가슴 양쪽에는 각각 짙은 자줏빛 구름무늬가 두 줄기 있었고, 허리께에는 사나운 사자 머리가 새겨진 낡은 허리띠가 묶여 있었다. 허리띠의 껍데기에는 녹이 꽤 슬어 있었다.

    그가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큰 이유가 있었다. 그의 목에 붙어 있는 것이 사람 머리가 아니라 외뿔이 달린 코뿔소의 머리로 그는 코뿔소요괴였던 것이다.

    “이 길은 내가 냈고 이 나무들도 내가 베었으니, 이곳을 지나가고 싶거든 통행료를 내놓아라!”

    코뿔소요괴는 심가의 마차행렬이 멈춰 서자 즉시 목청을 돋워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는 거칠고 난폭해서 길을 막고 물건을 노략질하는 흉악한 비적 떼와 꽤 잘 어울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길은 나라에서 낸 관도고, 사방 수십 리는 황야라 아예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으니, 코뿔소요괴의 말은 헛소리라는 것이었다.

    “너는 웬 놈인데 감히 우리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이냐?”

    심화원이 크게 호통을 쳤다.

    “나는 코뿔소 장군이시다. 본 장군의 혁혁한 명성은 들어보았겠지? 어서 음식과 재물을 내놓지 않고 뭣들 하는 것이냐?”

    코뿔소요괴는 귀두대추(鬼頭大錘)를 휘둘러 어깨 위에 척 걸치고는 우쭐대며 말했다.

    “코뿔소 뭐라고? 들어본 적 없는데…….”

    심화원은 잠깐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너, 너…… 네놈은 견문만 좁은 게 아니라 사리분별도 못하는구나!”

    자칭 ‘장군’이라던 코뿔소요괴는 자신을 모른다는 말에 벌컥 화를 냈다.

    심화원은 문득 저놈이 도대체 뭘 하려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어쨌든 이전에 만났던 요물들은 거의 대부분 말도 없이 다짜고짜 달려들었으니, 이렇게 길을 막고 재물을 내놓으라고 말로 위협하는 모습은 강도에게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의 있어 보였다.

    한편, 심협도 마차 지붕에 올라 선 채 코뿔소요괴를 보고 있었다. 한데 코뿔소 장군이라는 요괴를 보던 그는 입가에 웃음기까지 머금은 채, 몸을 훌쩍 날려 마차에서 뛰어내려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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