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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94화 (194/1,214)

194화. 시귀(屍鬼)

심옥이 사람들을 데리고 떠난 뒤, 심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여전히 반짝였지만, 그에게는 어떤 압박감을 주었다.

잠시 후, 그는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황정경 공법을 곰곰이 떠올리기 시작했다.

“지극한 도에 이르는 비법은 전혀 번잡하지 않으니, 오직 정성된 마음으로 진기(眞氣)를 굳게 지키는 데 있느니라. 니환(*泥丸: 도가에서 뇌를 이르는 말)을 비롯한 인체의 마디마디에는 모두 그곳을 주재하는 신이 있으니, 머리털의 신은 창화요 자는 태원이며, 뇌의 신은 정근이요 자는 니환이라…….( 至道不煩訣存眞,泥丸百節皆有神。髮神蒼華字太元,腦神精根字泥丸)”

그렇게 전반부 열두 마디 구결을 속으로 외우자, 마음속에서 이를 발전시키고 깨닫는 과정이 다시 한번 변화했다.

공법을 막 운공하기 시작하자 사방에서 가벼운 바람소리가 들려왔고, 있는 듯도 없는 듯도 한 천지의 영기가 끊임없이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이 공법을 수련했을 때에 비하면, 이번에 모인 천지의 영기는 정말이지 처량할 정도로 적었다. 게다가 몸 밖에 하얀 안개가 만들어지기는커녕 기류의 소용돌이조차 맺히지 않았다.

심협은 실망을 금치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곧바로 포기하지 않고, 다시 그 천지영기를 이끌어 체내로 끊임없이 주입했다.

앞서 무명공법이나 순양검결과는 달리 천지의 영기는 단전에도, 법맥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피부에 한 방울씩 서서히 스며들면서 근육과 뼈로 들어가 몸 안쪽을 향해 느릿느릿 나아갔다. 비록 느리기는 해도 천지영기의 일부가 육체에 흡수되었고, 남은 천지영기는 여전히 법맥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심협은 결인을 한 채 수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식을 통해 체내를 들여다보며 변화를 관찰했다.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얼마 되지 않는 천지영기는 그의 인도를 따라 수소음심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소음심경 법맥의 금빛 광막은 이 천지영기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는 순간 금빛을 번쩍였고, 아까와 같은 밀어내는 힘이 다시금 전해져 왔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심협은 허탈함에 한숨을 내쉬려 했다.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금빛 광막으로 다가가던 천지영기가 놀랍게도 그 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광막을 뚫고는 법맥으로 들어간 것이다!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금빛 광막과 천지영기가 스며들어간 곳을 살폈다. 그곳에는 빈자리가 생겨난 상태였고, 그곳을 뒤덮었던 금빛 광막도 사라져 있었다.

심협은 즉시 운공을 시도했다. 역시나 아주 미약한 법력 한 줄기가 그 빈틈이 있는 곳으로 흘러나왔다. 다만 이동 통로로 삼을 법맥이 없어 흘러나오자마자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이 방법은 되는구나.”

심협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허공에 주먹을 몇 번이나 휘둘렀고, 주위를 몇 바퀴 거닌 뒤에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곧이어 공법을 다시 운공하자 사방의 천지영기가 계속해서 몰려들었고, 같은 과정이 그의 체내에서 반복되기 시작했다.

* * *

그 무렵, 고택 폐허의 다른 한쪽에는 몇몇 심가 사람들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있었다.

“그자의 말이 어느 정도 믿을 만하냐? 정말 응혼기 수사이겠느냐?”

심화원이 딸을 보며 물었다.

“뭐라 해야 할까요? 그의 몸은 실로 이상합니다. 제가 저녁에 봤을 때는 부상이 상당히 회복되어 있었어요. 혈돈수 고기를 먹은 뒤에도 곧바로 적잖이 회복된 것 같았고요. 이것만 놓고 봐도 이미 보통은 아니지요.”

“그토록 엄청난 회복능력이라니……. 설마…… 진짜로 요물은 아니겠지요?”

심가 사람 중 누군가가 걱정하며 말했다.

“과산부는 조금도 반응이 없었네.”

심옥은 소매에서 자운지 재질의 부적을 꺼내며 그렇게 답했다.

“그렇다면 괜찮겠지. 그가 정말 자신의 말대로 응혼기 수사라면 잘 대접해줘야…….”

심화원의 말은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손에 뚝 끊겼다.

다른 심가 사람들도 표정이 연이어 돌변해 손을 뻗고 있는 심옥을 바라보았다.

“뭔가 있습니다. 아버지, 심전(沈銓)과 함께 가셔서 모두를 모으세요. 다른 사람들은 저와 함께 가서 적을 맞을 준비를 하지요.”

심옥이 긴장한 얼굴로 짧게 명하자 모두 작은 소리로 대답하고는 흩어져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택 폐허 밖에는 밤바람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는 간간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먼 광야에서는 연기와 먼지가 사방에서 일어나더니 우뚝 솟은 모래먼지 벽처럼 그들 쪽으로 밀려들었다.

흙먼지 속에서 검은 형체들이 어렴풋이 보였는데, 쌍쌍이 짙은 녹색 빛을 띠는 눈이 마치 명귀(*冥鬼: 저승에 산다는 귀신)의 등롱처럼 번득였다. 연기와 먼지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심옥 일행은 서로 몇 장 간격을 두고 일렬로 늘어서서는 굳은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귀(屍鬼) 떼다! 열화부를 사용하시오!”

심옥이 낮게 외치자 심가 사람들은 저마다 품에서 누런 종이 부적 두세 장씩을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는 준비를 마쳤다.

뭉게뭉게 먼지구름이 끊임없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마침내 그 안에 숨겨진 것들을 볼 수 있었다. 키는 사람에 가까웠지만, 몸은 기괴하게 굽은 인간 형상의 괴물이었다. 생김새는 흉악했고, 입가는 찢어져 뾰족한 이빨들을 볼 수 있었다. 몸에는 대부분 인간족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남루하기 그지없었고, 그 위에는 녹슨 것처럼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마치 어두운 굴에서 금방 기어 나온 것 같아 보였다.

심옥은 족히 백 마리는 될 듯한 시귀들을 무거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는 거리를 재고 있었다.

‘90장, 80장, 70장…….’

다른 사람들도 모두 정신을 집중한 채 심옥의 명령이 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손에 든 화부(火符)를 던지려 했다.

30장…… 20장…… 10장.

“공격!”

심옥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람들의 손에서 붉은 빛이 타올랐다. 10여 개의 열화부가 마치 불화살처럼 날아가 시귀 무리 가운데로 떨어졌다.

펑! 퍼펑! 쾅!

열화부가 동시에 줄줄이 폭발하며 작열하는 화염이 연이어 솟아올랐다. 거리가 딱 맞아 떨어진 데다가 화염이 타오르는 범위가 적당해 거의 하나로 연결되어 이내 높은 불꽃 벽을 이루었다.

선두에서 돌진하던 수십 마리의 시귀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짙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타올랐다. 간간이 외치는 섬뜩한 비명이 광야에 메아리쳤다.

삽시간에 짙은 시체 냄새가 퍼져 나가면서 심옥을 비롯한 사람들은 코를 막고 구역질을 했다.

그러나 열화부의 위력에는 한계가 있어, 잠시 타올랐다가 급속도로 미약해졌다. 그러자 불의 벽 뒤에 웅크리고 있던 시귀들은 동료들이 타고 남은 재를 짓밟으며 달려들었다.

심옥이 두 손으로 결인을 한 후 크게 휘두르자, 허공에 수증기가 맺히며 수십 개의 물화살이 날아가 가장 앞에 선 시귀들에게로 향했다.

펑! 펑! 펑!

맑은 소리가 울리며 수십 마리의 시귀가 쓰러졌다. 그러나 곧 그중 두 마리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돌진해왔다.

심옥은 다시 한번 손바닥을 떨쳤다. 그러자 물화살 두 줄기가 날아갔다.

허공에 두 줄기 푸른 빛이 쌩 하고 스치자,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마리 시귀의 머리에 구멍이 생겨났다. 그러더니 두 눈의 짙푸른 빛이 꺼진 채 털썩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저들의 급소는 머리야! 머리를 베거나 꿰뚫어야 완전히 죽여 없앨 수 있어!”

심옥이 다시 한번 큰소리로 외치고는 손을 들어 허리부분에서 뭔가를 끌어당겼다. 그러자 허리에 감겨 있던 기다란 물빛 비단이 저절로 풀어져 내렸고, 손목을 한 번 털자 한 줄기 물결처럼 시귀 떼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이 모습을 보며 무기를 풀어 손에 쥐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품에서 부기를 꺼내 효력을 발휘시켰다. 그리고 시귀들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자 일제히 달려들어 뒤엉켜 몸싸움을 벌였다.

고택 폐허 안에서는 심화원이 그래도 온전히 보존된 방에 심가의 다른 사람들을 모았고, 모든 마필(馬匹)은 수레에서 풀어 건물 밖 뜰에 몰아 놓았다.

그는 또 다른 수사(修士) 심전과 함께 한 사람은 앞에, 한 사람은 뒤에 서서 사람들을 한가운데 두고 경계했다.

그때, 퍼뜩 심협이 떠올랐다. 법술을 통달하지 못한 가족들을 모으는 데 정신이 팔려 심협의 존재를 잊었던 것이다.

심화원은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심전, 잠시 이곳을 맡아주게. 내 가서 심협 도우를 데리고 올 테니.”

“가주, 저 혼자서는 모두를 지키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는 수행 중인 사람이니 자신을 지킬 힘쯤은 지녔을 겁니다.”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능력에 자신이 없었던 심전이 조심스레 답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중상을 입어 아직 수련 경지가 회복되지 않았으니 혼자 두는 건 너무 위험하네. 우리 심가가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나 몰라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심화원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소저께서 이미 그를 한 번 구하셨으니 우리는…… 할 만큼 했습니다!”

심전이 그렇게 말하자 심화원도 잠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까 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심협이라는 자가 정말로 응혼기 수사라면, 그가 수련 경지를 회복하게 됐을 때 심가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심화원이 아직 망설이는 것을 보고, 심전은 참다못해 다시 한번 설득했다.

“가주, 이 안의 상황을 먼저 좀 보십시오!”

심전의 말에 심화원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방 안을 훑어보았다.

바닥에는 수십 명이 비좁게 앉아 있었는데, 그중에는 사내도, 여인도 있었다. 하나같이 젊은 청장년과 아직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심씨 일가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가족들 중 더 많은 사람, 더 늙고 약한 사람들은 일찍이 성이 파괴되었을 때 이미 자의로 혹은 타의로 성에 남아 생존에 대한 희망을 이들에게 양보해주었다. 이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심가의 앞날을 보호하는 것과 같았다.

심화원은 그들의 얼굴에 드러난 두려움을 보고는 그저 무겁게 한숨을 내쉰 뒤, 묵묵히 벽 쪽으로 돌아와 뒷짐을 지고 설 수밖에 없었다.

한데 심전이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순간, 머리 위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지붕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사람보다 키가 두 배는 큰 흉악한 시귀가 그 구멍으로 뚝 떨어져 내려오더니 깨진 기와와 벽돌 조각, 먼지구름과 함께 심전을 내리쳤다.

심전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방 안의 사람들은 기겁하며 우왕좌왕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심화원은 가슴이 철렁해 재빨리 한 손을 휘둘러 이미 썩어버린 문을 박살내며 외쳤다.

“이리로 도망치시오!”

그러나 심가 사람들은 여전히 우왕좌왕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진정하시오!”

심화원은 어쩔 도리 없이 앞으로 성큼 나아가, 이성을 잃고 날뛰는 사람 두 명을 붙잡아 문 밖으로 내던졌다.

허나 시귀가 눈앞의 먹잇감을 그냥 놓아줄 리가 있겠는가? 녀석은 길고 뾰족한 손톱이 가득한 손을 들어 한 아이를 붙잡으려 했다. 아이는 거의 넘어질 듯 비틀거리는 것이 곧 시귀의 손아귀에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꽈르릉!

우렛소리와 함께 방 안에 새하얀 빛이 번쩍 스쳐 지나더니 한 줄기 번개가 시귀의 팔뚝에 휙 내리 꽂혔다.

시귀의 팔뚝은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가 섬뜩한 상처가 생겨났다. 상처에서는 푸른 연기가 풀풀 솟았고, 지독한 악취와 부패액이 흘러나왔다.

시귀는 본디 음귀(陰鬼)에 속하는 귀물인지라 천둥번개를 가장 두려워했다. 녀석은 미친 듯이 울부짖었고, 짙푸른 눈동자에는 분노와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더는 공격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심화원을 바라보았다.

약관쯤 되어 보이는 심가의 청년 하나가 이 틈에 몸을 굽혀 방금 시귀에게 잡혀갈 뻔한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고는 뜰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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