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역공
심협은 뒤이어 한 바퀴 구르더니, 마치 독룡(毒龍)이 동굴에서 나오는 것처럼 거충의 다리를 향해 두 주먹을 휘둘렀다.
쩌적!
그의 주먹이 꽂히자 거충의 앞다리가 갈라지면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심협은 그 파편 중 길이가 3촌 정도 되는 것을 움켜쥐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서서 뛰었다. 순식간에 그의 모습은 또 다른 집으로 사라져버렸다.
“이 쥐새끼 같은 놈!”
검은 거충은 격노하여 날카롭게 외쳐대더니 검은 잔영이 되어 심협이 들어간 건물을 향해 돌진했다.
날카로운 다섯 개가 다리가 움직이자 다섯 개의 기다란 검은 발톱이 그 건물을 베었다. 건물은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 빠르게 무너졌다.
그런데 검은 발톱이 건물을 베기 직전에 심협은 이미 안에서 튀어나와 다른 집 담장으로 뛰어올랐다.
그가 또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검은 거충은 크게 분노해 거대한 몸을 꼿꼿이 세우고는 허공으로 솟구쳐 황급히 뒤쫓았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심협은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대신 두 발로 담장을 세차게 밀었다.
쿵!
담장은 순식간에 허물어졌고, 심협은 그 반동을 이용해 별안간 방향을 틀어 뒤로 돌진했다.
바짝 뒤따라오던 검은 거충은 화들짝 놀랐으나, 곧장 다섯 개의 앞다리를 치켜들어 한꺼번에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발톱이 서로 엇갈리며 커다란 죽음의 그물을 만들어냈다.
심협이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시자 가슴이 급격하게 움푹 꺼지며 납작해졌다. 그 상태로 그는 발톱 그물 사이를 누비며 눈 깜짝할 사이에 빠져나가 검은 거충 앞에 이르렀다.
그는 뒤에서 거충의 다리 파편 한 토막을 더듬어 꺼내더니 곧장 휘둘렀다.
쉬익!
한 줄기 검은 빛이 스쳐 지나가자 쩍 하는 소리가 나며 앞다리 밑동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키야아악!”
검은 거충은 비명을 내지르며 커다란 입을 벌려 심협의 머리를 향해 검은 액체를 한 줄기 뱉어냈다. 코를 찌르는 썩은 내가 풍겨왔다.
그때, 심협의 몸이 살짝 흔들리더니, 온몸이 기이한 각도로 뒤틀렸다. 검은 액체는 그의 몸을 스치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이어서 심협이 두 손을 휘두르자, 손에 쥐고 있던 앞다리 파편이 다시 한번 검은 빛을 그렸고, 이번에는 거충의 복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파지직!
거충의 배에는 서너 척의 상처가 생겨났고, 검은 피가 샘솟았다.
“으으으…….”
검은 거충은 두려움에 물든 얼굴로 재빨리 물러나며 또다시 입을 벌려 검은 액체를 내뿜었다. 심협을 물러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이번에 내뿜은 액체는 아까보다 훨씬 옅었고, 절반가량은 검은 기체였다. 대신 범위가 훨씬 넓었다.
그러나 심협은 물러나지 않고 몸을 엎드려 종잇장처럼 땅바닥에 바싹 붙은 채 단번에 검은 기체를 뚫고 거충의 앞으로 파고들었다. 뒤이어 다시 한번 두 손을 휘둘러 거충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그 역시 검은 기체를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탓에 왼쪽 어깨가 약간 검게 물들면서 곧 피부가 새카맣게 변했다.
한편, 검은 거충은 흉악한 본성이 자극을 받았는지 큰 소리로 포효하며 곧장 달려들었다. 녀석은 남은 네 개의 앞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거세게 공격해왔다.
심협은 거충이 정면으로 달려들자 기다렸다는 듯 신법을 발휘해 맞붙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왜소했지만, 워낙 민첩한 데다 황정경의 비법이 있었기에 갖가지 기이한 변화들을 만들어냈고, 거충의 공격들을 매끄럽게 피해냈다.
사람과 벌레가 마을 안에서 정면으로 얽혀 싸우자 그들이 지나는 곳마다 건물이 초토화되었고, 그들은 어느새 마을 밖의 강가에 이르러 있었다.
그 무렵, 심협은 전신의 대부분이 검게 변했고, 곳곳에는 뼈가 보일 정도의 상흔이 생겼으며, 피로 온몸이 붉게 물들었다.
거충도 무사하지는 않았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고, 가슴과 배 사이에는 종횡으로 10여 줄기의 거대한 상흔이 엇갈려 있었으며, 앞다리도 이제 두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심협의 주먹을 가까스로 피하고는 검은 안개를 잔뜩 뿜어냈다. 그리고 심협이 잠시 공격을 멈춘 틈에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심협의 몸은 순식간에 잔영을 그리며 검은 안개를 피하더니 어느새 거충 옆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한쪽 팔을 번개같이 뻗어 손에 쥔 날카로운 다리 파편으로 거충의 가슴을 찔렀다.
검은 거충은 황급히 몸을 틀며 옆으로 펄쩍 뛰어 이 일격을 피했다.
바로 그때, 심협의 팔뚝에서 우드득 하는 소리가 나더니 팔뚝 전체가 갑자기 커다랗게 불어났다. 이어서 손에 든 날카로운 다리가 다시 한번 거충의 몸을 세차게 그어 몸의 일부를 뭉텅이로 잘라냈다.
“크아아아!”
검은 거충은 비명을 내질렀고, 극심한 통증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심협은 두 발을 힘껏 내디뎌 단번에 거충의 머리 위까지 뛰어올랐다. 그의 움직임은 바람과 같았고, 지금까지보다도 더 빨라 보였다. 사실은 이제 힘이 거의 다 소진된 상태라 속전속결로 처리하기 위해 다소 무리를 하는 중이었다.
심협의 발은 거충의 머리를 찼고, 손에 든 날카로운 다리는 검은 그림자가 되어 거충의 눈을 찔렀다.
한데 그때,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거충이 갑자기 떨림을 멈추더니, 머리를 잽싸게 흔들면서 갑자기 심협의 몸을 덥석 물어 반 토막을 내려 했다. 좀 전에 몸을 떨었던 것은 심협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였던 것이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심협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돌연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복부가 갑자기 두 배로 불어났고, 안색이 순식간에 핏빛으로 변하면서 심장이 쿵쾅쿵쾅 세차게 요동쳤다. 전신이 한차례 부풀어 올랐고, 온몸의 뼈와 근육이 진동했다. 마치 천둥번개가 소용돌이치는 것만 같았다.
이어서 그는 두 손으로는 거충의 위턱을 붙잡고 발로는 아래턱을 디뎠다.
우지직!
끔찍한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거충의 아래턱뼈가 부서졌다. 거의 동시에 거충의 입은 불가능할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윗니와 아랫니가 거의 일직선을 이룰 정도였다. 그러니 위아래 할 것 없이 턱관절의 뼈는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으며, 거충의 눈과 콧구멍에서도 엄청난 양의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검은 거충은 입 전체가 거의 갈린 것처럼 부서져버려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목구멍 안에서 꺽꺽거리는 소리만 냈다. 그리고 이내 그 상태로 몸을 뒤집으며 쓰러져 강물로 빠져 들어갔다.
심협의 몸도 강물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손에 힘을 주어 손바닥을 크게 부풀렸다. 그 위의 솜털이 하나하나 터지면서 딱딱하게 볶은 누에콩 같은 덩어리가 송글송글 맺혔고, 곧 검은 그림자가 되어 거충의 위턱을 때렸다.
쩍!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의 오른 주먹이 거충의 위턱뼈를 뚫고 삐져나왔다.
몸을 뒤집어 일어나려던 거충은 이번 공격에 또다시 꺽꺽거리기 시작했다.
심협은 왼손 역시 거충의 위턱에 꽂아 넣고는 눈빛을 사납게 번득이며 두 손으로 있는 힘껏 찢어발겼다.
뼈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거충의 위턱과 함께 머리뼈까지 심협의 두 손에 그대로 조각이 나버렸고, 새하얀 뇌수가 흩뿌려졌다. 거대한 몸뚱이는 몇 차례 경련을 일으키더니 곧 움직임을 멈췄다.
심협은 거충의 입속에서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핏빛으로 변했던 전신은 빠르게 본래의 색을 찾았고, 육신도 평상시의 크기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안색은 창백하기 이를 데 없었고,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그가 방금 전에 시전한 것은 황정경의 건천강기(乾天罡氣)로, 육신의 잠재력을 불러일으켜 짧은 시간에 평소보다 수십 배는 강한 힘을 발휘하는 비술이었다. 다만 그 대가가 상당해 기혈의 소모가 크고,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심협은 힘겹게 강기슭으로 올라가려 했지만,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눈앞이 캄캄해지며 강 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강물은 물살이 꽤나 강해, 곧 심협의 몸을 집어 삼켜버렸다.
* * *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심협의 두 눈이 가늘게 떨렸고, 천천히 눈을 떴다.
반호를 이룬 검은 천장이 시야에 잡혔다. 그 위에는 촘촘히 짠 등나무 돗자리 무늬가 보였다.
심협은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가슴께를 뭔가에 짓눌린 것 같았고, 온몸이 견딜 수 없이 쿡쿡 쑤셨다. 몸에 베어든 독성이 처음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도 않은 듯했다.
심협은 막 움직이려다가 옆에 높인 칠목(*漆木:옻나무) 상자에 어깨를 부딪쳤다.
주위를 살펴보니 넓지 않은 공간에 묵직한 나무 상자들과 켜켜이 쌓인 이불들이 보였다. 이삿짐을 옮기는 마차 내부 같았다.
심협은 어렵사리 몸을 뒤집어 팔꿈치로 몸을 받치고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마차가 돌부리를 밟았는지 갑자기 덜컹거렸고, 그는 한심한 꼴로 나동그라졌다.
“윽!”
심협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온몸의 통증은 더욱 심해져 안색이 다 하얘질 정도였다.
심협의 비명 때문인지, 마차가 멈췄다. 이윽고 마차의 휘장이 걷히더니 약간 어려 보이는 얼굴이 불쑥 들어왔다.
“깨셨습니까?”
젊은 마부가 웃으며 물었다.
“여기가 어디요?”
심협은 그렇게 물으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버둥거렸다.
“공자님, 대소저께서 부상이 가볍지 않으니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시라 하셨습니다. 어서 다시 누우시지요.”
“대소저?”
심협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고는 마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내 몸을 일으켜 뒤에 있는 상자에 기대앉았다.
“아, 우리 심옥(沈鈺) 대소저 말입니다. 강가에서 쓰러져 있던 공자님을 발견하시고는 구해내셨지요.”
젊은 마부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심협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물었다.
“한데, 여기는 어디요?”
“여기가 어딘지 저도 잘 모릅니다. 아마 송번현 경계 즈음 됐을 테지요. 에휴, 온 등주(登州)가 요마(妖魔)들에게 아작이 나서 현성과 주부(州府)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산과 냇가까지 다 초토화됐으니, 지금 어디가 어딘지 어찌 구분하겠습니까?”
젊은 마부는 연신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그런데 그 말에 심협은 순간 감정이 격해진 듯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송번현? 여기가 송번현 경계라고 했소?”
마부는 심협이 넘어져서 머리라도 다친 게 아닌가 의심하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말을 돌렸다.
“그게……. 아, 대소저께서 공자님이 일어나시면 저보고 알리라 하셨습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휘장을 놓고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심협은 멍한 눈빛으로 앞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마차 휘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쩐지 착잡한 심정이었다.
‘여기가 송번현 경계라면, 그건 이번 꿈에서 시공간을 뛰어넘어 내 고향인 등주 경내로 되돌아왔다는 것 아닌가? 그럼 아까 그 장엄한 성은 주성(州城)인 등평성(登平城)일 테지.’
생각을 좀 가다듬은 그는 조용히 탄식했고, 이내 힘겹게 가부좌를 틀고는 두 손으로 몸 앞에 원을 감싸는 자세를 한 채 호흡을 가다듬으려 했다.
그러나 심협은 운공을 하자마자 단전과 법맥 등이 모두 무언가에 가려진 것처럼 정신과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법력의 파동을 조금도 감지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심협이 충격에 휩싸여 있는데, 바깥에서 발소리와 고함소리가 연이어 들리기 시작했다. 꽤나 여러 사람이 있는 듯했다.
곧 휘장이 전부 걷혀 올라가 마차 지붕에 걸렸다.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마차 밖에는 이미 일고여덟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우두머리는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와 푸른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였다.
중년 남자는 적당한 체격에 피부가 거무스름하고 미간에는 세로로 주름이 잡혀 있어 꽤나 위엄 있는 외모였는데, 분명 이 무리의 주요 인물인 것 같았다.
젊은 여자는 그리 아름다운 얼굴은 아니었지만, 얼굴선이 부드러워 다정해 보였다. 아마도 젊은 마부가 말한 대소저 심옥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