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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90화 (190/1,214)
  • 190화. 추격병

    붉은 옷의 수사는 심협이 처박힌 구덩이를 바라보며 망설였으나, 그곳에 더 남아 있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겠다는 듯이 이내 몸을 돌려 날아갔다.

    성안에서 기승을 부리던 요충들도 겁에 질린 듯 두 빛줄기의 격전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그때, 지면의 시커먼 구덩이의 진흙이 들썩이더니, 잠시 후 사람 형체 하나가 뛰어 올랐다. 물론 심협이었다.

    그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옷은 너덜너덜했고, 머리는 산발이었다. 두 팔과 어깨의 살갗은 터져서 선혈이 낭자했고, 입에도 핏줄기가 흐르는 상태였다. 처참한 몰골로 미루어 부상이 결코 가볍지 않을 터였다.

    그는 허공에서 격렬히 충돌하는 두 줄기 빛을 두려움이 담긴 눈으로 한 번 바라본 후, 곧장 멀어져갔다.

    그러나 비행부를 꺼내 막 법력으로 효과를 불러일으키려던 그는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단전과 법맥에서 이름 모를 금제의 힘이 한 줄기 생겨나더니 체내의 법력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빠르게 내달리던 심협이 우뚝 멈춰 섰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바로 그때, 머리 위에서 여러 개의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라 올려다보니 검은 그림자 세 갈래가 덮쳐왔다. 세 마리의 응혼기 요충이었다. 낫처럼 날카로운 여섯 개의 발이 여섯 줄기 검은 그림자로 변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체내의 법력은 봉인당했지만, 육신의 힘은 그대로였기에 심협은 몸을 비틀어 날렵하게 피해냈다.

    요충들은 심협이 피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는지 일순 당황한 듯했다. 그러다가 이내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매서운 눈으로 심협을 노려보았다.

    심협은 그제야 이 응혼기 요충들이 보통의 요충들에 비해 더 크고, 몸에는 푸른 무늬가 더 많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녀석들은 바람 속성의 영력 파동을 끊임없이 뿜어냈고, 눈빛에서는 꽤나 높은 영지가 느껴졌다.

    요충들은 몸을 가다듬고 날갯짓을 해 돌진해왔다. 몸 표면에서는 푸른 빛이 한 겹 떠오르더니, 갑자기 몸이 세 줄기 맑은 바람으로 변했고, 녀석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됐다.

    “풍둔술(風遁術)?”

    심협은 움찔 놀랐지만, 마음을 가다듬고는 제자리에 서 있었다.

    다음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바람소리가 일었다. 이어서 검고 날카로운 두 개의 다리가 난데없이 튀어나와 순식간에 그의 등을 베려 했다. 워낙 가까운 거리에서 몹시도 빠르게 행한 공격이라 심협의 등은 꼼짝없이 갈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심협은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몸을 휙 돌리더니 두 손을 뻗어 단번에 요충의 다리들을 붙잡았다. 이어서 무릎을 굽혔다가 세차게 뛰어올랐다.

    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검은 요충 한 마리가 몸을 드러냈는데, 머리는 반절이 박살난 상태였다. 심협의 발길질에 걷어차인 것이다.

    그러나 이 요충은 생명력이 몹시도 질겨, 그 상태에서도 전투력을 전혀 잃지 않았다. 갑자기 녀석의 낫 같은 두 다리에서 날카로운 검은 가시가 확 솟아올라 심협의 두 손을 갈랐다. 심협의 손바닥에서는 두 줄기 핏자국이 생겨났다.

    이어서 요충은 검은 거충이 뿜어낸 검은 액체와 비슷한, 노린내가 나는 검은 기운을 입에서 뿜어냈다. 뿐만 아니라, 몸통 좌우에서 검은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나머지 두 마리 요충이 나타났다. 날카로운 네 개의 앞다리가 검은 그림자로 변해 심협의 몸을 산산조각 낼 듯 날아들었다.

    심협은 다소 어두운 안색으로 첫 번째 요충의 앞다리를 잡은 두 손을 힘껏 잡아당기면서 몸을 틀어 나머지 두 요충의 습격을 피했다.

    그러나 정면으로 덮쳐오는 검은 기운은 범위가 너무 넓어 완전히 피해내지 못했고, 왼손에 살짝 스치고야 말았다. 그러자 그 부위의 피부가 순식간에 검은 빛을 한 층 띠며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흥! 버러지 같은 것들!”

    심협은 분노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두 팔에 혈색이 돌면서 두 배쯤 크고 굵어져, 요충의 두 다리를 마치 나뭇가지처럼 꺾어버렸다.

    우드득!

    거대한 힘이 솟구치자 요충의 앞다리는 완전히 부러졌다.

    요충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거대한 발이 하늘에서 내려와 반쯤 뭉개진 머리를 밟아 완전히 부숴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피와 뇌수가 튀었다. 이번에야말로 녀석은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

    단숨에 한 마리를 처리한 심협은 휙 몸을 돌려 다른 두 마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오른팔을 조금 더 부풀렸다. 푸른 힘줄이 울룩불룩 돋아난 그 팔을, 심협은 있는 힘껏 휘둘렀다.

    쐐애액!

    귀를 찢을 듯한 파공음과 함께 그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요충의 다리가 한 줄기 검은 잔영이 되어 허공을 갈랐다.

    심협이 모든 힘을 끌어모은 오른팔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빨라서, 요충은 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콰직!

    다소 불쾌한 소리가 울렸고, 어느새 낫 같은 다리가 요충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가슴팍이 너덜너덜해진 요충은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남은 요충은 크게 놀라 몸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며 풍둔술을 시전해 몸을 숨기려 했다.

    “올 때는 네놈 마음대로였지만, 갈 때는 그리 되지 않을 것이다!”

    심협은 피식 웃었고, 이번에는 왼손 팔뚝을 잔뜩 부풀려 휙 하고 휘둘렀다.

    쾅!

    왼손에 들고 있던 요충의 다리는 진동에 튕겨져 날아갔지만, 풍둔술로 모습을 감췄던 요충은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비틀거리는 몸으로 물러나려 했다.

    심협은 법력만 봉인당했을 뿐, 신식은 여전히 남아 있었기에 상대가 풍둔술로 종적을 감춘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다만 왼팔이 요충의 독기에 물들어 오른팔만큼 강력한 일격을 가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심협은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되어 빛처럼 빠르게 다가가더니 왼손을 내밀어, 휘청거리던 검은 요충의 앞다리를 붙잡았다.

    깜짝 놀란 요충은 크고 흉악한 입을 쩍 벌려 심협의 머리를 물어뜯으려 했다.

    그러나 심협이 더 빨랐다. 그가 왼손으로 검은 요충을 붙잡는 순간, 오른손이 흐릿해지더니 날카로운 칼날처럼 녀석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요충의 머리가 뎅겅 잘려나갔다. 목이 잘려나간 곳에서 검은 피가 솟구쳤다.

    머리가 잘린 검은 요충의 시체는 두어 차례 흔들리더니 서서히 거꾸러졌다.

    심협은 다소 창백한 얼굴로 살짝 숨을 몰아쉬었다. 법력을 봉인당한 상황에서 황정경의 효력을 억지로 이끌어내느라 적잖은 부담이 된 것이다.

    부풀어 올랐던 두 팔은 어느새 평소대로 되돌아왔다.

    그는 왼팔을 슬쩍 보았다. 아까 억지로 육신의 힘을 발휘하는 바람에 기혈의 흐름이 빨라져 독이 제법 넓게 퍼져 나갔다.

    심협은 잠시 망설이더니 곧 오른손으로 왼팔을 연달아 짚으며 중독된 곳 근처 혈 자리들을 막았다. 그리고는 두 손가락을 칼처럼 뾰족하게 만들어 왼팔을 그었다.

    피부가 갈라지면서 엷은 검은색을 띤 독혈이 쏟아져 나왔다. 일순간 퍼져나가던 독기가 멈추고 시큰거리는 느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심협은 그제야 한숨 돌리고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 금세 성문 앞에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성문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두 고수가 맞붙으면서 성안을 휩쓸던 요충들은 모두 성 변두리로 밀려난 상태였고, 이곳 성문 근처에서도 학살이 벌어졌다.

    다행히도 병사들과 수사들도 많아, 요충들과 한데 뒤엉켜 서로 죽고 죽이면서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활로를 열어주고 있었다.

    심협은 성을 나서는 인파에 뒤섞여 재빨리 성을 빠져나갔다.

    성 밖에는 검은 그림자가 요동쳤고, 빈틈없이 빽빽한 요충들이 동쪽 광야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다행히도 성 밖의 병사들과 수사들은 방진(*方陣: 병사들을 네모꼴로 배치하는 진)을 이루어, 습격해 오는 요충들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다.

    “요충들은 우리가 막을 테니, 모두들 어서 떠나시오! 멀리 도망갈수록 좋소!”

    성 밖 허공에서 응혼기 수사가 요충들을 막으며 성안 백성들이 도망치도록 인도했다.

    도망 나온 사람들도 감히 머물 생각은 없었는지 다들 황급히 멀리 도망쳤다.

    ‘성 밖에도 이리 많은 요충이 있다니……. 설마 광야 깊은 곳에도 아까 같은 검은 거충이 있는 건 아니겠지?’

    심협은 사람들 속에 섞여서 벌레 무리가 몰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현재 법력이 봉인된 상태라 스스로를 돌보기에도 벅찼으니 더는 머물 수가 없었다. 그러니 피난 가는 사람들을 따라 멀리 도망쳐야 했다.

    심협은 잠시 피난민 무리에 섞여 갔으나, 이내 홀로 벗어나 황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은 너무 몰려 있으면 요충들의 표적이 될까 두려워 삼삼오오 소규모로 흩어졌으니 심협이 무리를 이탈하는 모습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홀로 된 심협은 나는 듯이 달려 어느새 30여 리를 달렸다. 천만다행으로, 그를 공격했던 ‘천염노조’라는 자가 쫓아오지 않았기에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지금이 어느 시점인지도 모르겠군. 그리 크지도 않은 성안에 이토록 많은 수사가 있다니……. 이전 꿈속 장소들과는 달라. 일단 함부로 단정 짓지 말고, 누군가에게 물어보자.”

    심협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강을 끼고 세워진 마을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큰 마을 같았다.

    한데, 그 마을을 본 심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마을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마을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가옥들은 무너졌고, 나무들은 부러졌으며, 아직까지 불타고 있는 곳도 있었다.

    곳곳에 시체가 널려 있었는데, 노인도, 아이도, 건장한 남자도, 가녀린 여자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물려서 죽었거나 날카로운 것에 베여 죽은 것으로, 상흔으로 미루어 요충들의 소행이었다. 마을 옆 작은 강이 피로 붉게 물들 정도였다.

    “이 죽일 놈들!”

    심협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막상 처참한 상황을 직접 보자, 분노가 치솟았다.

    그때, 멀리서 분노에 가득 찬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죽일 놈이라고? 한낱 인간족 주제에 감히 충모(蟲母)를 죽였으니, 네놈의 죄야말로 천만 번 죽어 마땅하다!”

    이어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나타나더니, 빠른 속도로 몰려들었다.

    이를 본 심협은 표정이 변해 재빨리 내달렸고, 어느새 마을 한가운데 이르렀다.

    검은 구름은 여전히 그를 쫓아왔고,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구름 속에서 뛰어내려 곧장 공격해왔다.

    이번에 나타난 것은 한 마리의 검은 거충이었으나, 이전의 거충에 비하면 훨씬 작아 높이로는 대략 80장 정도에 이르렀다. 또한, 몸 뒤편에도 번데기가 없이 매끈했다. 몸 앞쪽의 낫처럼 날카로운 다리는 무려 여섯 개였다.

    심협은 검은 거충을 본 순간 동공이 졸아들었다. 그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순식간에 한 줄기 잔영이 되어 근처 건물들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거충은 사나운 눈빛을 번뜩이며 즉시 방향을 틀어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몸집이 워낙 큰 탓에 좁은 골목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콰쾅!

    녀석이 두 채의 가옥에 정면으로 부딪히자 요란한 소리가 울렸고, 꽤나 크고 높았던 두 건물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대신 거충도 아주 잠깐이지만 멈춰 서야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무너진 건물에서 튀어나와 순식간에 검은 거충 앞에 이르렀다. 당연히 심협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거충의 앞다리 두 개를 꽉 붙잡았다.

    “하앗!”

    심협이 낮게 기합을 지르자 그의 두 팔이 맹렬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 상태로 그는 두 팔을 당겨 거충의 다리를 힘껏 아래로 내리 꽂았다.

    엄청난 힘이 몰아치자 검은 거충의 거대한 몸뚱이도 잠깐 비틀거렸고, 10여 장에 달하는 앞다리는 빠직 소리를 내며 땅속에 반쯤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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