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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89화 (189/1,214)
  • 189화. 분노의 포효

    펑!

    법진이 폭발하면서 불기둥은 더욱 격렬하게 요동쳤고, 표면에 커다란 혹이 불룩 솟아올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르릉 하는 굉음과 함께 불기둥이 폭발하며 무수한 불꽃이 되어 흩어져 사라졌다.

    붉은 옷의 남자와 다른 두 명의 출규기 수사는 불기둥이 폭발한 충격파에 튕겨지듯 날아가고 말았다.

    ‘실로 엄청난 괴충(怪蟲)이로군.’

    불기둥에 가까이 있던 심협도 충격파에 휩쓸리긴 했지만, 이미 대비를 해둔 터라 휘몰아치는 폭풍에도 굳건히 견뎌냈다.

    한편, 검은 거충은 불기둥을 파괴하고도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커다란 입을 쩍 벌려 응혼기 수사들에게 검은 액체를 뿜어냈다. 그러자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겼다. 냄새만 맡아도 욕지기가 일어나는 게, 아주 독한 것이 틀림없었다.

    땅에 떨어져 있던 적의의 수사는 표정이 크게 변했고, 몸 표면에 붉은 빛을 세차게 번뜩이며 곧장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이어서 진홍색 빛 한 줄기가 그의 손에서 쏘아져 나왔는데, 알고 보니 위에 화봉(火鳳)이 수놓아진 새빨간 깃발이었다. 그 위에서는 심협이 보았던 그 어떤 법기도 능가하는 놀라운 영력 파동이 터져 나왔다.

    “법보(法寶)!”

    심협의 눈이 희미하게 번득였다.

    커다란 화봉기(火鳳旗)는 붉은 빛을 내뿜었고, 순식간에 몇 곱절로 커지더니 떨어져 내리는 검은 액체를 막아냈다.

    다른 두 명의 출규기 수사들 역시 허공으로 돌진하여 각자 법보를 하나씩 꺼내 들었다. 비취로 만든 여의(*如意: 옥·뼈·상아·대나무 따위로 만든, 길상을 상징하는 기물)와 황토색 커다란 반지가 응혼기 수사들을 대신해 떨어져 내리는 검은 액체를 막아냈다.

    그러나 세 사람이 온힘을 다했음에도 모두 막아낼 수는 없었고, 검은 액체 일부가 응혼기 수사들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민첩하게 출규기 수사들의 방어 범위 안으로 몸을 날린 자들도 있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 중 일부는 법기를 꺼내 들었다. 검은 액체들을 억지로 막아보려는 것 같았다.

    “아니 되오! 어서 피하시오!”

    적의의 사내가 다급히 외치며 결인을 맺자 화봉기에서 붉은 빛이 더욱 세차게 뿜어져 나오더니, 불 구름 같은 붉은 빛줄기들이 날아가 검은 액체들을 스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발 늦고 말았다.

    치지직!

    “끄아악!”

    검은 액체에 맞서던 응혼기 수사들의 법기는 순식간에 푸른 연기가 되어 사라졌고, 그 주인은 역시 검은 액체에 닿은 순간 끔찍한 비명만을 남긴 채 머리카락 한 올 남김없이 녹아버렸다.

    검은 액체는 수사들을 죽이고도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더욱이 이제 수많은 물방울로 흩어져 비처럼 쏟아져 내리려 했다.

    “망할 놈들!”

    심협은 안색을 일그러뜨리며 결인한 두 손을 휘둘렀다.

    콰르릉!

    성안 곳곳의 지면이 세차게 갈라지더니 그 틈새로 물줄기들이 쏘아져 나왔다. 이 물줄기들은 빠른 속도로 펼쳐져 거대한 물의 장막을 형성해, 떨어져 내리는 검은 액체들을 모두 막아냈다.

    치이직!

    달궈진 쇳덩이에 물을 끼얹은 듯한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안개처럼 흩날렸다. 물의 장막은 순식간에 침식돼 곧 뚫릴 것처럼 움푹한 구덩이들이 생겨났다.

    이를 본 심협은 다시 한번 결인했고, 그러자 땅에서 끊임없이 물이 솟아 나와 물의 장막을 보충했다. 동시에 물 장막 아래로 물줄기가 빠르게 흐르면서 검은 독액이 침식해 들어가는 것을 늦춰주었다.

    검은 액체는 물의 장막을 침식 시키면서 빠르게 소모되어 줄어들어갔고, 호흡 몇 번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완전히 사라졌다. 다행히도 그때까지 물의 장막은 무사히 버텨냈다.

    이에, 세 명의 출규기 수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검은 거충은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웬 놈이 나를 방해하느냐!”

    그런데 그 순간, 거충의 정수리에서 녹색 빛이 번쩍이더니 작은 형체 하나가 허공에 나타났다. 바로 심협이었다.

    그의 팔뚝은 순간적으로 흐릿해지더니, 찬란한 금빛 주먹을 휘둘렀다.

    거충은 심협이 느닷없이 나타나자 살짝 놀랐지만, 그리 개의치 않고 수십 장 길이의 낫 같은 앞발에서 검은 빛을 세차게 내뿜었다. 그리고는 심협을 아예 가루로 만들려는 듯, 뼈가 없는 촉수처럼 베려고 들었다.

    심협의 주먹은 방향을 살짝 기울이더니 거충의 거대한 낫 같은 발에 맞섰다.

    그리고 주먹과 다리가 맞부딪힌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심협의 조그만 주먹은 멀쩡했던 반면, 그보다 수십 배는 큰 거충의 발은 마디마디 부서져 무수한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날아간 것이다.

    검은 거충은 그제야 깜짝 놀랐지만,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심협의 주먹이 한 줄기 금빛 번개처럼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콰직!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거충의 검은 갑옷에 균열이 한 줄 생겨나더니, 빠르게 뻗어나갔다.

    그러나 거충의 머리는 엄청나게 거대한 데다 뼈 또한 매우 단단한지, 균열에도 그다지 큰 영향은 없었다.

    “크르릉!”

    검은 거충은 사납게 포효했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검은 빛이 한 겹 떠오르더니, 번쩍이는 검고 두꺼운 결정막을 만들어 머리를 감쌌다.

    그와 동시에, 거충은 입을 쩍 벌려 또다시 검은 액체를 뿜어냈다. 이 액체는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돌돌 말리더니 심협을 향해 날아갔다. 게다가 남은 세 개의 발에서도 검은 빛이 미친 듯이 불어났다. 다리들은 즉시 솟아올라 세 줄기 검은 그림자가 되어 각기 다른 방향에서 심협을 공격해왔다.

    심협의 동공이 졸아들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몸에서는 금색 빛이 뿜어져 나와 주위에 실재하는 듯한 빛의 고리를 만들었다.

    검은 액체가 먼저 금색 빛 고리 위에 뿌려졌다. 그러자 타들어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금색 빛 고리 일부가 푸른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빛 고리는 절반쯤 엷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심협은 당황하지 않고 두 손으로 가볍게 결인을 맺었다. 그러자 손에서 갑자기 밝은 푸른 빛이 번쩍였다. 심협이 손을 움직이자 그 빛이 날아가 검은 액체들과 충돌했다.

    부식성이 지극히 강한 검은 액체는 놀랍게도 이 푸른 빛줄기를 부식시키지 못하고, 격렬하게 요동치다가 갑자기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그러자 심협 몸 주위에 붙어 있던 금색 빛 고리가 갈라진 검은 액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 푸른 빛은 바로 무명법결을 응혼기까지 수련하면 시전할 수 있는 신통력, 분수결(分水訣)이었다!

    비록 검은 액체가 순수한 물은 아닐지라도 물의 기운을 품고 있었기에 분수결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그 순간, 심협은 망설임 없이 두 주먹에 세찬 금빛을 뿜어내며 돌진했다. 두 팔 위에는 코끼리 다리 허상이 하나씩 떠올라 거충의 날카로운 발들을 내리쳤다.

    펑!

    낫처럼 날카로운 세 발을 뒤덮었던 검은 빛이 산산이 부서지며 수많은 파편이 되어 비산(飛散)했다.

    심협은 허리를 슬쩍 움직여 좀 전에 내질렀던 두 주먹을 이번에는 아래로 휘둘러 거충의 머리를 공격했다. 그러자 두툼한 검은 결정막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심협의 주먹은 멈추지 않고 거충의 머리통에 생긴 균열을 연달아 내리쳤다.

    쾅! 쾅! 쾅!

    심협은 두 주먹을 비 오듯 퍼부었고, 빽빽한 금빛 주먹이 끊임없이 균열에 꽂히며 하늘을 뒤흔드는 거대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검은 거충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심협을 떨어뜨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심협은 거충의 머리에 딱 붙은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가까운 곳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출규기 수사들은 크게 놀면서도 기뻐했다.

    쿵!

    심협의 빈틈없는 주먹질에 이내 거충의 머리뼈에는 마침내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러자 심협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안으로 휙 달려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세찬 주먹의 위력이 거충의 머리 안에서 폭발했다.

    “크아악!”

    고통스런 비명이 온 천지를 진동시켰고, 미친 듯 몸부림치던 거충이 갑자기 우뚝 멈추더니 거대한 머리를 축 늘어뜨렸다. 뒤이어 머리가 쩌적 소리와 함께 갈라지면서 엄청난 양의 하얀 뇌수와 검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 안에서 나타난 심협은 가볍게 몸을 날려 지면에 내려섰다.

    거충의 거대한 몸뚱이는 완전히 생기를 잃었지만, 경천주(*擎天柱: 중국 전설 속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큰 기둥) 같은 여러 가닥의 거대한 다리가 떠받치고 있어 거꾸러지지는 않았다.

    심협의 등장부터 거충의 죽음까지는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했다. 이에 요행히 살아남은 응혼기 수사들은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졌고, 세 명의 출규기 수사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앞의 광경을 감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심협이 허공에서 가볍게 손짓하자, 물줄기 하나가 아래쪽에서 날아와 그의 몸을 받쳤다. 그는 몸 안에 요동치는 법력을 서서히 거두며 고개를 돌리고 수사들을 향해 뭔가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흥!

    갑자기 비웃는 듯한 콧소리가 하늘에서 울렸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심협은 끙 하고 신음했다. 가슴팍을 망치로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고통스러웠고, 발밑의 물줄기는 와르르 흩어져버렸다. 그러자 심협의 몸도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로 그때, 굵직한 금빛 한 줄기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별똥별처럼 재빠르게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리고는 엄청나게 거대한 힘이 하늘을 가르며 다가와 그의 몸을 짓눌러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간담이 서늘해진 심협은 말없이 체내의 법력을 죄다 끌어내, 쏘아져 날아오는 금색 빛을 향해 두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금색 빛은 너무도 빨라, 심협이 두 주먹을 완전히 뻗기도 전에 그의 몸을 두들겼다. 심협은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 꽂혔다.

    꽈르릉!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지면에서는 연기가 솟구치고 흙먼지가 일어났으며, 지름이 10여 장에 이르는 시커먼 구덩이가 생겨났다.

    심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허공에서는 금빛이 번쩍이더니 더 굵고 거대한 금색 빛줄기가 다시금 커다란 구덩이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때였다.

    “천염노조(千閻老祖), 감히 네놈이 나서다니!”

    하늘의 다른 쪽이 우르릉 울리는가 싶더니, 또 다른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목소리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기다란 녹색 무지개 한 줄기가 멀리서 휘감아 왔다. 어찌나 빠른지, 방금 전까지 수백 장 밖이었건만 어느새 구덩이로 쏘아져 간 금색 빛줄기 앞을 가로막았다.

    콰쾅!

    천지를 뒤흔드는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금색과 녹색 두 줄기 빛 사이에서는 돌풍 같은 진동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가까이 있던 응혼기와 출규기 수사들은 진동의 영향에 가을바람 앞의 낙엽처럼 휘말려 나가떨어졌다. 수련 경지가 약한 일부는 아예 법력을 상실하고 추락했다.

    “내가 나서지 못할 이유가 있나? 네놈은 지금도 그때와 같다고 여기는 것이냐? 우리 만요전(萬妖殿)의 여러 성인들은 그때의 약조를 지킬 마음 따위 사라진 지 오래다! 파란 머리 늙은이, 기왕 온 이상 곱게 갈 생각 마라!”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한번 하늘에서 들려왔고, 한 줄기 더 크고 세찬 금색 빛이 떨어져 내렸다. 그러더니 그 안에서 작은 금빛 검 한 자루가 어렴풋이 나타나 녹색 무지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녹색 무지개는 강렬하게 번뜩이며 금빛 검에 맞섰다.

    금색과 녹색 두 빛이 허공에서 격렬히 맞붙어 싸우는 동안 높은 하늘에서는 갑자기 번개가 치고 우렛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출규기를 훨씬 뛰어넘는 섬뜩한 기운이 한데 맞부딪치면서 강대한 풍압이 성난 파도처럼 사방을 휩쓸었다.

    진동에 나가떨어졌던 수사들은 또다시 표정이 급변해 황급히 최대한 멀리 흩어졌다.

    출규기 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잿빛 머리칼의 노인과 녹색 옷의 젊은 여인은 손을 휘저어 자신의 법보를 거둬들이고는 푸르고 노란 두 줄기 둔광이 되어 멀리 날아가며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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