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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87화 (187/1,214)

187화. 푸른 연꽃

그때, 멀리서 낭생이 달려왔다.

“저 요괴의 경지는 우리보다 훨씬 위라서 힘으로는 이길 수 없네. 지략으로 상대해야만 해!”

“주인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심협이 목소리를 낮춰 말하자, 낭생은 연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조개요괴가 둘을 향해 돌진해오며 하얀 묘도를 휙 하고 휘둘렀다. 그러자 갑자기 칼날의 허상들이 잇달아 생겨나 끊임없이 심협을 덮쳐왔다.

이번에는 심협도 도망치지 않고 손목을 크게 털었다. 그러자 수십 줄기의 물화살이 그의 소매에서 일제히 쏘아져 나와 사방에서 덮쳐오는 칼날의 허상들을 쳐냈다.

꽈르릉!

허상의 칼날과 물화살이 서로 충돌한 순간, 물화살 끝에서 돌연 커다란 천둥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수십 장의 소뢰부(小雷符)가 동시에 번쩍였고, 하늘에서는 수십 줄기의 새하얀 번갯불이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주변의 가옥과 담장이 폭발하며, 벽돌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연기와 먼지가 가득 일어났다.

돌진하던 조개요괴는 자욱한 연기에 시야가 가려지자 우뚝 멈춰 서더니, 귓가에 바람소리가 들려온 순간 재빨리 몸을 틀며 뒤로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았다.

거의 동시에 두 개의 망치 그림자가 방금 전까지 그녀가 있던 곳을 할퀴며 지났다. 그 기세에 회오리가 일며 연기와 흙먼지를 휩쓸어갔다.

조개요괴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로 허공으로 세차게 솟구치더니, 하얀 검을 가로로 휘둘러 낭생의 허리를 베어버리려 했다.

그러나 그때, 밧줄 같은 물줄기가 낭생의 몸을 휘감아 뒤로 홱 잡아당겼다. 낭생은 가까스로 칼날을 피해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흥!”

조개요괴는 콧방귀를 뀌고는 곧장 낭생이 물러난 곳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막 두어 걸음 쫓아갔을 때, 그녀의 발이 뭔가에 걸렸다. 재빨리 고개를 숙여 보니, 그곳에는 소뢰부가 여러 장 매달린 물줄기가 가로로 걸쳐져 있었다.

“하찮은 수작을 부리다니…….”

조개요괴는 그렇게 냉소했으나, 그 순간 갑자기 무언가가 몸을 훅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 뜻밖에도 일고여덟 개의 물줄기가 연달아 감겨들며 대나무 잎사귀로 떡을 감싸는 것 마냥 휘감아왔다.

모든 물줄기마다 여러 장의 소뢰부가 매달려 있었다. 심협이 지니고 있던 소뢰부를 한 장도 남김없이 꺼낸 것이다. 뒤이어 그가 가볍게 외치자, 법력이 물줄기를 타고 흐르며 모든 부적에 불을 붙였다.

꽈르릉! 꽝!

우렛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리고, 줄기줄기 새하얀 번갯불이 끊임없이 폭발하며 원주사(圓珠寺)의 절반을 환히 비췄다.

화들짝 놀란 승려들은 잠에서 깼다. 이들은 벌벌 떨었고, 하나둘씩 앞뜰에 모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쉬지 않고 불경을 읊으며 기도했다.

잠시 후, 천둥소리가 잦아들자 먼지와 연기 속에서 껍데기를 오므린 조개요괴의 모습이 차츰 드러났다. 그녀는 뇌법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다시금 본 모습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지금이야!”

심협이 크게 외쳤다.

그 순간, 낭생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날렸다. 그는 온몸에서 빛을 뿜어내며 조개요괴의 균열을 향해 두 구리망치를 힘껏 휘둘렀다. 그의 생애를 통틀어 이렇게까지 힘을 끌어 모은 것은 처음이었다.

쾅!

첫 번째 망치가 조개요괴를 내리쳤다.

콰쾅!

뒤이어 남은 하나의 망치가 앞서 내려친 망치 위를 두들겼다. 그러자 두 번의 격렬한 힘이 서로 겹쳐지면서 한순간 위력이 수십 배로 증가했다.

쩌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조개요괴의 껍데기에 작았던 균열이 단숨에 벌어졌다. 뒤이어 조개껍대기 파편 한 조각이 툭 하고 떨어져 나왔다.

그때였다. 미리 사월보를 운공하고 있던 심협은 곧장 내달려 조개껍데기 틈으로 낙뢰부(落雷符) 두 장을 쑤셔 넣으며 효력을 발휘했다. 뒤이어 방금 두 번의 망치질로 모든 기운을 써버린 탓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던 낭생의 어깨를 움켜쥔 채 재빨리 물러났다.

그들이 막 자리를 뜨자마자, 눈이 멀도록 눈부신 백색광이 작렬했다. 이어서 굵직한 두 갈래 벼락이 하나로 모여 조개껍데기 안의 좁은 공간에서 사람 머리통만 한 공처럼 뭉치더니, 기이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뿜어냈다.

꽈르릉!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조개껍데기 안에서 자색 빛이 새어 나왔고, 곧이어 무수한 번개 줄기가 폭발했다.

거대한 조개의 단단한 껍질은 안에서부터 부서져내려 산산조각이 났고, 세찬 비에 떨어져 내리는 배꽃처럼 사방으로 어지러이 날아갔다.

심협은 재빨리 몸을 날려 섭채주를 감쌌다.

잠시 후, 굉음이 차차 잦아들면서 원주사는 평정을 되찾았다.

심협이 조심스레 살펴보니, 텅 비어 부서진 껍데기만 있을 뿐, 조개요괴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심협은 안도하며 섭채주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몸이 뻣뻣하게 굳었고, 식은땀이 흘렀다.

멀지 않은 곳의 폐허더미에서, 온몸에 핏자국이 가득한 자색 옷의 여인이 천천히 일어났던 것이다. 그녀가 들고 있던 새하얗고 날카로운 검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두 눈은 짙은 살의로 번들거렸다. 아까와는 달리 온몸을 뒤덮었던 껍데기 갑옷은 보이지 않았고, 온몸의 피부는 성한 곳이 없었으며, 아랫배에는 시커먼 핏자국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녀는 독하게도 살아남았다.

심협은 의식을 잃은 섭채주를 천천히 부축해 일으켰다.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는 비행부가 들려 있었다.

“낭생 도우, 고마웠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게.”

말을 마친 그는 손을 한 차례 흔들어 낭생을 전송해온 물구멍을 다시 소환해냈다.

낭생 역시 상황을 깨달은 듯했다. 자신들이 합공을 해도 저 조개요괴의 적수가 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분노가 머리끝까지 솟은 조개요괴가 어찌 그들이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그녀의 몸에서 자색 빛이 사납게 번득이더니, 훌쩍 몸을 날려 낭생이 물구멍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녀가 움직이는 순간, 심협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다음에는 용서치 않겠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와 그와 섭채주를 감싼 채 하늘로 솟아오르려 했다.

이를 본 조개요괴는 낭생을 내버려둔 채 방향을 돌려 심협에게 달려들었다.

만약 낭생을 미끼로 삼았더라면 심협은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겠지만, 그는 그런 냉혈한이 아니었다. 자신을 도운 저 새우요괴가 목숨을 잃도록 내버려둘 수도, 그 틈을 기회로 삼아 도망칠 수도 없었다. 오히려 조개요괴의 주의를 자신에게로 돌려 낭생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그의 본능적인 선택이었다. 그저 자신과 섭채주도, 낭생도 모두 도망칠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 사이, 낭생은 무사히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섭채주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 순간, 쏜살같이 날아온 자줏빛 점액이 심협의 아랫배에 닿았다. 그러자 운공하던 법력이 순간적으로 흐트러지면서 비행부를 통제하지 못하고 곤두박질쳤다.

추락하는 순간, 심협은 몸을 뒤집어 자신의 몸으로 섭채주를 감쌌다.

쾅!

충돌음과 함께 두 사람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미처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심협은 누군가에게 목덜미를 붙잡히고 말았다.

조개요괴는 자줏빛 점액으로 한 겹 감싸인 두 손으로 심협과 섭채주의 목덜미를 각각 잡아 허공에 들어 올린 채 죽일 듯 노려보았다. 둘 중 하나를 한입에 집어삼키려는 모습이었다.

심협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전혀 움직일 수 없었던 반면, 이제야 정신이 든 섭채주는 두려움에 몸부림쳤다.

“누구를 먼저 먹어줄까?”

조개요괴는 입을 쩍 벌리더니 노파와 같은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심협과 섭채주를 번갈아보는 것이 실제로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바뀐 듯 표독스럽게 내뱉었다.

“아니야, 그냥 둘을 한꺼번에 먹어야겠어!”

이어진 상황은 그야말로 섬뜩했다. 조개요괴의 미간에 균열이 하나 나타나더니 길게 뻗어나가, 콧날에서 입, 턱을 지나 목과 가슴, 배까지 이어진 것이다. 뒤이어 균열이 좌우로 쩍 갈라지면서 조개요괴의 몸뚱이가 그대로 나뉘었다. 뜻밖에도 그 안에는 사람의 장기가 아닌 매끄러운 살로 된 벽이 드러났는데, 그 위에는 자색의 반투명한 점액질이 한 겹 있었다. 양쪽 살의 벽에서는 검은 빛을 띤 짙은 자색 요단(妖丹)이 이따금 요력을 발산했다.

그때, 조개요괴가 두 팔을 동시에 거둬들이며 두 사람을 끌어당겨 갈라진 살의 벽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읍! 읍!”

섭채주는 몹시 겁에 질려 큰 소리로 도와 달라고 외치려 했지만, 그 조차도 쉽지 않았다.

한편, 심협은 황급히 머리를 굴려 벗어날 방법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은 살 벽에 바짝 가까워졌고, 점액의 썩은 내에 숨이 막혀왔다. 이대로는 곧 죽음을 맞게 될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짙은 구름으로 뒤덮였던 밤하늘에 갑자기 푸른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높은 하늘의 운무(雲霧)가 한 줄로 찢어지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푸른 연꽃의 허상이 떠올랐다.

‘저, 저게 뭐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중에도 크게 놀란 심협이 힙겹게 하늘을 올려다보니, 푸른 연꽃의 허상 위에 갑자기 여러 빛깔의 눈부신 빛이 한 줄기 비쳤다. 빛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정확히 심협과 섭채주 두 사람 사이를 지나쳐 조개요괴의 살 벽에 내리꽂혔다.

화르륵!

빛이 떨어진 곳에서 오색 불꽃이 솟구쳤다.

“끄아아아아!”

조개요괴는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얼른 두 사람을 내팽개치고는 갈라져 있던 몸뚱이를 오므려 몸 안에서 그 불꽃을 끄려 했다.

하지만 오색 불꽃은 꺼지기는커녕 오히려 갑자기 폭발하더니, 안에서부터 솟아나와 조개요괴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조개요괴는 더더욱 처참하게 울부짖더니, 이내 거꾸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생기가 사라지자 놀랍게도 오색 불꽃 역시 절로 사그라들었고, 마지막에는 한 알의 빛 구슬이 되어 푸른 연꽃의 허상 안으로 다시 날아가 사라졌다.

심협은 섭채주의 상태를 살핀 후,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곧 높은 하늘을 향해 멀리 절을 올렸다.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 깊이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섭채주도 그를 따라 예를 갖추었다.

높은 하늘에 있던 푸른 연꽃 허상의 빛은 점차 사그라들더니, 푸른 연화대(*蓮花臺: 연꽃 모양으로 만든 불상의 자리)로 변해 3장 높이의 허공에 멈췄다.

심협이 고개를 들어 보니, 연화대 위에 궁장(*宮裝: 고대 궁궐 안 여인들이 입던 옷차림)을 입은 맨발의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화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매우 아름다웠고, 독특한 청록색 긴 머리를 등 뒤에 늘어뜨린 채 맑고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속세를 초월한 듯한 느낌이었다.

“감히 선배님의 성함을 여쭙습니다. 어느 선문(仙門)에서 오셨는지요?”

심협은 약간 머뭇거리다가 물었으나, 여인은 답하는 대신 맑고 차가운 눈으로 섭채주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 심협은 아예 없는 존재인 듯했다.

다음 순간, 갑자기 푸른 빛이 연화대에서 내려와 섭채주를 뒤덮었다.

순간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 심협은 재빨리 섭채주의 팔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푸른 빛이 한 발 빨리 감싸더니 섭채주를 그대로 끌어올렸다.

“이 여인은 보타산(*普陀山: 중국 4대 불교 명산의 하나)과 인연이 있으니, 지금 문하생으로 들여 즉시 산으로 돌아갈 것이다.”

맑고 서늘한 목소리가 연화대 위에서 들려왔다. 질문 따위 허락지 않겠다는 기세가 느껴지는 목소리였고, 실제로 심협에게 질문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연화대는 푸른 무지개가 되어 섭채주와 함께 멀어져갔다.

“채주야!”

심협은 다급한 마음에 비행부를 움켜쥔 채 하늘로 날아올라 둔광(遁光)이 멀어져 가는 방향을 향해 급히 쫓아갔다.

그러나 그 둔광은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수백 리나 멀어졌고, 불과 두세 번 호흡할 시간 만에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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