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86화 (186/1,214)
  • 186화. 조개요괴

    섭채주는 번개 줄기에 한쪽 어깨를 맞아 옷이 찢어지면서 검붉은 핏자국이 배어나왔다.

    “꺄아악!”

    섭채주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제야 두 눈도 생기를 되찾았다.

    “오, 오라버니…….”

    그녀는 망연히 정신을 차리고도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몰라 심협의 손에 이끌려 비틀비틀 나아갔다.

    “정신이 들었구나! 어서 가자. 어서 이곳을 떠나야 해!”

    심협은 그녀를 돌아보더니 정신이 든 것을 알고는 약간 마음이 놓였으나, 안심할 때가 아님을 알기에 급히 말했다.

    “일단 벗어나서 자세히 말해줄게.”

    심협은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끌고 달려 나갔다.

    그때, 뒤쪽 통로에서 갑자기 야수의 그것과 같은 낮은 울부짖음이 들려왔고, 광풍이 휘몰아쳐 뭉게뭉게 분무(粉霧)를 밀어내면서 눈사태처럼 몰려들었다.

    “도망쳐!”

    심협은 심장이 바짝 졸아들어 황급히 섭채주의 팔을 끌어당겨 자기 앞으로 세웠다. 뒤이어 등 뒤에서 거대한 힘이 밀어닥치는 것을 느낀 순간, 그대로 떠밀렸다. 결국 그는 섭채주와 뒤엉켜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섭채주는 육체가 변했고, 요기를 품고 있었지만, 자신의 능력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 그 힘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물에 들어가자마자 숨을 쉬지 못하며 허우적거렸다.

    심협은 황급히 결인을 해 피수결을 시전하며 가볍게 주문을 읊조렸다. 그러자 몸에서 몽롱한 푸른 빛이 피어올라 그와 섭채주를 동시에 감쌌다.

    섭채주는 갑자기 숨통이 트이자 숨을 크게 들이마셨지만, 이미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 물 때문에 쉴 새 없이 기침을 해댔다.

    심협은 한 손으로 그녀의 가냘픈 허리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는 결인하여 물살을 조종해 마치 두 마리 물고기처럼 쏜살같이 통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채 우물로 달아나기도 전에 뒤에서 물결이 솟구치더니, 조개요괴가 쫓아왔다.

    심협은 한 손으로 섭채주를 밀며 앞으로 나아갔고, 동시에 남은 손을 뒤로 뻗어 물결을 세차게 한 번 내리쳤다. 그러자 그의 손아귀에서 법력이 가닥가닥 스며 나와 어수지술(御水之術)로 통로의 물결을 바짝 조였다. 물결은 여러 마리의 투명한 물 구렁이가 되어 서로 뒤엉킨 채 뒤쪽의 조개요괴를 들이받았다.

    펑!

    거친 물보라를 일으키며 미친 듯 솟구치던 물 구렁이들은 그 기세가 결코 약하지 않았음에도, 10여 장쯤 돌진한 뒤에는 바닷물에 소금이 녹듯 사라져버렸다.

    심협은 뭔가 잘못됐음을 눈치채고는 재빨리 온몸의 법력을 끌어내 더 빠르게 도망쳤다. 하지만 뒤에서 간간이 우르릉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마치 천둥번개가 거듭 울리는 것처럼 그 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물결 또한 점차 강해졌다. 슬쩍 돌아보니, 방금 자기가 조종해 조개요괴를 공격했던 물결이 요법(妖法)의 통제 아래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있었다.

    물이 응결되어 만들어진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어, 소용돌이는 마치 거대한 괴수처럼 보였다. 심협을 집어삼키려고 돌진해 오는 소용돌이에서는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힘이 느껴졌다. 그 힘이 심협과 섭채주를 끌어당기는 바람에 그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뒤로 끌려갔고, 머지않아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갈 지경이었다.

    그 순간, 심협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눈빛을 굳히고는 손을 뒤로 크게 뿌리쳤다. 그러자 몸 뒤쪽 물줄기에서 갑자기 10여 개의 틈이 갈라지면서 10여 장의 소뢰부가 소용돌이로 접근했다.

    꽈르릉!

    한 차례 격렬한 우렛소리와 함께 굵직한 번개가 소용돌이 안을 휩쓸었고, 곧이어 폭발하면서 새하얀 번개 그물이 되어 거대한 소용돌이를 찢어버렸다.

    폭발로 흩어진 물줄기가 어지러이 솟구쳤다. 심협은 그 힘을 이용해 단숨에 우물로 뛰어들었다.

    그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이번에는 두 손을 아래쪽으로 내리눌렀다. 그러자 아래쪽 물줄기가 즉시 거세게 솟구치며 삽시간에 용솟음치는 물결로 변해 두 사람을 우물 입구로 곧장 밀어 올렸다.

    “캬아아아!”

    그들이 도망치자 조개요괴는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고, 이제 물결을 조종해 공격하는 대신 최대한 빠른 속도로 돌진해왔다.

    조개요괴는 어느새 노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는데, 짐승 같은 두 손이 허공을 그러쥐었다. 그러자 위로 솟구치던 물결이 차례로 얼음 결정처럼 굳어지며 심협과 섭채주를 가둬버리려 했다.

    ‘위기!’

    심협은 한 손을 위로 세차게 뻗어 섭채주를 한 발 먼저 우물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미처 벗어나지 못해 얼음 결정에 두 다리가 얼어붙고 말았다.

    한데 놀랍게도 그 얼음결정에서 음한한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종의 암석 결정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호기심을 해결할 때가 아닌 만큼, 그는 즉시 소매에서 귀소환을 꺼내 아래쪽에 대고 귀신의 포효를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매섭게 울부짖는 소리가 울리며 육안으로도 보이는 검은 음파가 곧장 얼음 결정의 표면을 때렸다. 이에 순간 우물 전체가 강렬하게 진동했다.

    하지만 그 결정체는 생각보다 훨씬 견고해 귀소환의 공격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때, 조개요괴가 유령 같은 몸으로 결정을 뚫고 나와 심협 곁에 이르렀다.

    “참으로 대단한 벽곡기 수사(修士)로구나! 조급해하지 말아라. 내 그 혈맥 안의 기운을 다 흡수하면 너로 몸보신을 할 테니까. 히히!”

    노파는 심협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노여움을 싹 거두고 헤벌쭉 웃었다. 그러더니 몸을 훌쩍 날려 곧장 우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꺄아악!”

    섭채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심협은 빠드득 이를 갈았다. 이어서 그의 손바닥 위로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물줄기가 생겨나더니, 그 한가운데 검은 물구멍에서 한 줄기 짙은 요기가 튀어나왔다. 이 요기는 허공에서 한 바퀴 돌더니, 손에 칠흑같이 검게 빛나는 망치 두 자루를 든 커다란 새우 병사가 되었다. 바로 낭생이었다.

    “주인님, 찾으셨습니까?”

    낭생이 나타나자마자 외쳤다.

    “어서 나를 구해주게!”

    심협이 절박하게 외쳤다.

    낭생은 즉시 거대한 두 개의 망치를 들어 올려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망치 표면에서 두 줄기 짙푸른 빛이 나와 허공에서 한 차례 회전하더니, 심협 옆의 결정체를 내리쳤다.

    쾅!

    마침내 커다란 소리와 함께 사방의 결정이 산산이 부서졌고, 심협은 우물 밖으로 튕겨나갔다.

    심협의 눈에 조개요괴가 다시 한번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들어왔다. 조개요괴는 껍데기를 딱딱 맞부딪치며 섭채주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조개껍데기 위에는 길이가 1촌에 이르는 균열이 있었고, 사방에 검게 탄 자국이 뚜렷했다. 낙뢰부(落雷符)가 만들어낸 흔적이 분명했다.

    “멈춰!”

    심협의 입에서 커다란 고함이 터져 나왔고, 소맷부리에서는 낙뢰부 한 장이 다시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미리 방비를 하고 있던 조개요괴는 부적의 빛이 번쩍이는 순간 껍데기를 벌렸고, 그 안에서 짙은 자주색 빛을 뿜어냈다. 하늘은 전에 보았던 불광(佛光) 같은 자줏빛 노을로 가득 물들었다.

    퍼펑!

    낙뢰부가 폭발했으나, 자줏빛 노을에 가로막혀 위력을 잃었다. 조개요괴는 조금도 상처도 입지 않았다.

    번갯불이 점차 사라지면서 자줏빛 노을도 차츰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모든 빛이 사그라드는 순간, 어슴푸레한 빛의 잔재 속에서 인영(人影)이 튀어나와 두 개의 구리망치로 조개껍데기의 균열을 맹렬히 내리쳤다.

    조개요괴는 낭생(浪生)의 급습을 예상치 못했는지, 자줏빛 노을이 다시 빛을 내긴 했지만 미처 완전히 발휘되지 못한 채 낭생의 망치에 얻어맞고 말았다.

    펑! 펑!

    두 차례의 굉음과 함께 엄청난 반동으로 인해 낭생이 나가떨어졌다.

    조개요괴는 얼른 껍데기를 닫았고, 거대한 진동이 울렸다.

    심협은 그 틈에 재빨리 몸을 날려 사월보를 시전했다. 그는 부서진 달빛 그림자를 드리우며 유령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섭채주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다른 손으로는 조개요괴를 철썩 내리쳤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청양수의 기운이 흘러나오면서 또 한 차례 반동이 일어났다.

    심협은 그 반동을 이용해 곧장 사월보로 조개요괴와 거리를 벌렸으나, 그의 품에 안긴 섭채주는 거센 진동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네놈들이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구나!”

    조개요괴는 마침내 분노가 극에 달한 듯 포효했고, 몸의 분홍빛을 거두고는 세찬 자줏빛을 뿜어냈다. 뒤이어 몸체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더니 곧 자색 치마를 입은 아리따운 자태의 소녀로 변했다. 그녀의 가슴과 등, 손발을 비롯한 전신은 손바닥만 한 갑옷 조각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 조각 하나하나는 조개껍데기가 변하여 만들어진 듯 새하얀 색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3척 정도 길이의 하얀 묘도(苗刀)가 들려 있었는데, 이 역시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진 듯했다.

    섣불리 나설 수 없었던 심협은 섭채주를 뒤쪽 담벼락에 눕혀 놓은 뒤, 한 손으로는 귀소환을 누르고 다른 손에는 낙뢰부를 끼운 채,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조개요괴를 노려보았다.

    ‘저 요괴는 벽곡 후기답게 방어력이 너무도 강하다. 낙뢰부 서너 장을 동시에 사용해야 껍데기나 겨우 깨부술 수 있을 게야. 그러나 내게 남은 낙뢰부는 고작 두 장에 불과하다.’

    어차피 낙뢰부를 충분히 지녔다 해도, 현재 벽곡 초기인 그의 수련 경지로 동시에 효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현실의 그는 꿈속의 그에 비해 단전과 법맥 모두 한참 부족했고, 체내의 법력은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다고 조개요괴의 껍데기를 피해 곧장 급소를 공격하는 것도 어려웠다.

    심협은 급히 나오느라 저승의 통령 계약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게 후회됐다. 구혼마면을 소환할 수만 있다면 두려울 게 없을 테니까.

    비행부를 써서 도망칠까도 생각해봤지만,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 조개요괴가 섭채주의 몽유현상을 조종할 수 있는 이상 그의 집안 상황에 대해서도 알 게 분명하다. 그러니 섭채주를 데리고 달아나면 조개요괴는 가족들에게까지 손을 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로군. 결국 정면 돌파밖에 방법이 없는 것인가!’

    그가 한창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자색 옷의 소녀로 변한 조개요괴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그 속도는 방금 전보다 훨씬 빨라, 그림자가 휙 스쳤을 뿐인데 이미 손에 든 날카로운 칼이 심협의 가슴팍에 이르러 있었다. 칼날에서는 서늘한 빛이 번득였고, 한기가 심장까지 곧바로 뚫고 들어왔다.

    그러나 칼끝이 심협의 몸을 파고드는 순간, 조개요괴는 뭔가 이상함을 알아챘다. 눈에는 약간 놀란 기색마저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찌른 심협의 형체가 갑자기 흩어지더니, 옆에서 흐릿한 사람의 잔영(殘影)이 줄줄이 미끄러져 나왔다. 잔영의 발아래에도 달빛이 부서진 듯, 빛과 어둠이 번갈이 달그림자를 만들어내며 옆으로 미끄러져 갔다.

    잔영 속에서 다시 나타난 심협은 털 끝 하나 다친 데 없이 멀쩡했다.

    ‘을목선둔을 시전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사월보를 대성한 덕에 실전에서 큰 도움이 되는군.’

    심협의 그림자는 다시 연이어 잔영들을 그려내며 이번에는 곧장 조개요괴의 옆으로 돌아갔다. 귀소환에서 날카로운 음파가 고리 같은 원을 그리며 세차게 솟아나와 조개요괴의 겨드랑이 아래를 곧장 파고들었다.

    “흥!”

    소녀의 몸이 된 조개요괴가 팔꿈치를 아래로 내리자, 팔뚝에 붙은 조개껍데기 갑옷이 음파를 막아내며 모든 음파를 흩뜨려버렸다.

    가볍게 휘청거린 조개요괴가 중심을 잡으며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하얀 비검이 손바닥 한가운데 나타나 심협의 가슴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심협은 사월보를 운공하여 피할 수밖에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