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73화 (173/1,214)

173화. 맞교환

“이어서 자유교역 시간입니다. 쓸데없는 말 길게 하지 않겠습니다. 각 도우께서 수중의 보물들을 꺼내 소개하시고, 교환하고 싶은 물건을 제시하십시오. 서로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거래가 성사됩니다.”

키 작은 가면이 선포하듯 말했다.

돌 탁자의 가장 왼쪽에 앉은, 몹시 늙은 귀물 하나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입을 벌리고 잔뜩 쉰 웃음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저부터 시작하지요. 여(厲)모가 이번에 가져온 물건은 많지 않소. 오엽충초(五葉蟲草) 한 포기와 황원석(黃元石) 두 덩이요. 오엽충초는 나무 속성의 상품 법기와 바꾸고 싶고, 황원석 두 덩이는 벽곡기 수련 경지를 높여주는 단약 한 병과 바꾸고자 하오.”

늙은 귀물은 그렇게 말하면서 검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돌 탁자 위에 거꾸로 뒤집었다. 그러자 옥합 두 개가 떨어졌다.

하나에는 작은 벌레처럼 생긴 검은 덩굴풀이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간간이 노란빛을 내뿜는 황토색 돌덩이 두 개가 있었다.

심협은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두 물건 모두 방촌산의 <선령백초>에서 본 적이 있다. 오엽충초는 특수한 영초의 일종으로, 벌레와 풀로 자유롭게 모습을 바꿀 수 있게 해준다. 또한, 태신단(蜕身丹)이라는 진귀한 단약을 만드는 주된 영재이기도 하다.

황원석은 보기 드문 흙 속성 영재로, 수십 장 깊이의 땅속에서 생겨난다. 속성이 단단하여 흙 속성의 법기를 만드는 데 아주 훌륭한 재료였다.

귀물 중 몇몇은 그 말을 듣고 꽤나 마음이 동했지만, 늙은 귀물이 요구한 물건을 갖고 있지 않은지 다들 입을 열지 않았다.

늙은 귀물은 다른 귀물들의 반응을 보고는 살짝 실망한 기색으로 옥합들을 거두어들였다.

다음 푸른 머리칼의 여자 귀신 차례였다. 피부와 머리카락 모두 기이한 녹색이었고, 하반신은 다리가 아니라 연녹색의 귀운(鬼雲)이라 섬뜩했다.

여인은 손을 휘둘러 새까만 뼈다귀 세 개를 꺼냈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놀라운 음기를 뿜어냈다.

“이건 응혼기 찬지귀(鑽地鬼)의 귀골이오. 은신의 신통력을 가진 중품 이상 법기와 바꾸고 싶소.”

푸른 머리칼의 여자 귀신이 말했다.

경매장의 귀물들이 한 차례 술렁였다. 응혼기 귀물의 귀골에는 분명 어마어마한 귀기가 담겨 있을 터. 만약 그 귀기를 빨아들여 정제할 수 있다면, 그들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러나 여자 귀신이 원하는 은닉 법기는 보기 드문 것으로, 중품 이상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난 은신법기는 없소만, 고급 은신부(隱身符)는 한 장 있소. 거기에 선옥 200개를 더 드릴 테니, 귀하의 귀골 세 개와 바꾸는 게 어떻소?”

두 손이 거대한 푸른색 집게발 모양인 귀물 하나가 귀골 세 개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심협은 앞서 백염이 그 귀물을 청오라고 소개해주었던 것이 기억났다.

“은신법기 외에 다른 것은 필요 없소.”

푸른 머리의 여자 귀신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청오는 실망한 표정으로 털썩 자리에 앉았다.

그때, 이상이 불쑥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내게 중품 법기인 연운번(烟雲幡)이 있는데, 은신 효과가 아주 좋소.”

그의 손에서 한 줄기 회색 빛이 날아가 푸른 머리 여자 귀신 앞에 떨어졌다. 그것은 작은 회색 번(幡: 수직으로 거는, 폭이 좁고 긴 깃발. 장례식에서도 쓰임)이었는데, 그 위에는 구름 도안이 수놓아져 있었다.

푸른 머리칼의 여자 귀신은 작은 회색 번을 집어 들고는 체내의 음기를 운공하여 주입했다. 그러자 곧바로 잿빛 안개가 무럭무럭 솟아나 그녀의 몸을 뒤덮었다. 그러면서 몸뿐만 아니라 그 여자 귀신의 기운이 완전히 가려졌다. 잿빛 안개 자체에서는 법력 파동도 전해져 나오지 않아, 그저 평범한 안개 같았다.

심협은 놀란 와중에도 부러운 눈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잿빛 안개가 빠르게 사라지더니 푸른 머리 여자 귀신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이상 도우의 법기가 아주 만족스럽소. 바꿉시다.”

그녀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한 가닥 음기가 날아가 세 개의 귀골을 감싸 이상의 앞으로 보냈다.

이상은 귀골들을 집어 들어 챙겼다. 그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이번 교환이 하찮고 사소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교환은 계속돼 곧 심협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는 손을 뒤집어 대나무 한 토막을 꺼내 돌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바로 앞서 자신이 둘로 나눈 황천죽 중 한 토막이었다.

방금 경매에서 삼원진수를 구입하면서 많은 귀물들은 심협을 꽤나 주의 깊게 지켜본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평범한 대나무 토막을 꺼내 놓는 것을 보자 실망과 함께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경매대 위의 가면을 쓴 크고 작은 두 사람과 이상의 눈빛이 일렁인 것이다. 이들은 뭔가를 알아본 것 같았다.

“황천죽 한 토막이오. 벽곡기 파경단약과 바꾸고 싶소. 반드시 성공률을 3할 이상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하오. 구체적인 부분은 협의 가능하오.”

심협의 간결한 설명에 흑문의 입에서 가벼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황천죽! 황천대하 강가에서 자란다는 전설 속의 영죽! 정말 존재했구나.”

“내 일찍이 풍도성에서 열린 큰 규모의 경매에서 황천죽을 본 적이 있었소. 이것보다 훨씬 가늘었지.”

“굵고 가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오. 예전에 황천죽에 관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영죽은 나이가 많을수록 더 가늘어진다더군. 보아하니, 이 황천죽은 나이가 비교적 어린 듯하오.”

대청 안의 귀물들은 갑자기 의견이 분분해졌다. 그중에는 놀라 소리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심협이 원하는 단약을 가진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벽곡기 파경단약은 본디 매우 귀하여 벽곡기 수사(修士)로서도 얻기 힘든 수련 보조품이다. 게다가 성공률을 3할 이상 증가시켜줄 것을 조건으로 걸었으니 찾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심협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보아하니 정말 3층 단약상점에게 바가지를 쓰게 생겼군.’

심협은 속으로 탄식하며 황천죽을 챙기려 했다.

그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잠깐! 그 황천죽을 내게 좀 보여줄 수 있소?”

이상이었다.

“보시지요.”

심협은 일말의 기대를 걸며 손을 흔들어 대나무를 그에게 보냈다.

이상은 한 손으로 덥석 받아서 두어 번 살펴본 뒤, 손에서 검은 기운을 뿜어내 대나무 안에 주입했다. 그러자 푸른 대나무가 빠르게 검게 변하더니, 그 위로 점점이 붉은 반점이 떠올라 그의 손에 가닥가닥 붉은 빛을 쏘았다. 그러더니 너풀너풀한 검은 기운이 키 큰 가면의 손에서 날아와 검은 대나무에 빨려 들어갔다.

“황천죽이 틀림없소!”

이상의 눈에는 한 가닥 기쁨이 반짝였고, 손에서는 갑자기 끝없는 검은 빛이 솟아나와 놀랍게도 키 큰 가면의 음기를 빨아들이던 황천죽을 막아냈다.

황천죽이 음기를 빨아들이지 못하자, 붉은 반점이 내뿜던 빛은 몇 번 반짝이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대나무는 비취색으로 돌아갔다.

“젊은 친구,  내게 지령단(地靈丹) 세 개가 있는데, 돌파 가능성을 3할 이상 끌어올릴 수 있소. 황천죽과 바꿉시다. 어떻소?”

이상이 손을 뒤집어 검은 옥병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지령단? 그건 저승의 비법으로 만든 단약 아니오?”

“그렇소! 이야기에 따르면 그 단약은 저승에만 있는 망정수(忘情水)를 주재료로 하는데, 거기에 영재 수십 종을 배합해 만든 것으로 몹시도 진귀하다 하오.”

“내 풍도성에서 지령단 경매를 본 적이 있지. 한 알에 선옥 수백 개가 넘었소.”

대청의 귀물들은 잠시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왁자지껄 떠들었다.

‘3할 이상의 성공률!’

심협은 흥분을 감추기 힘들었고, 즉시 제안을 승낙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잠깐!”

다른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러더니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흑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오?”

이상이 담담한 눈빛으로 힐끗 보며 물었다.

“이상 선배님께 제가 한 가지 여쭙고자 합니다. 선배님께서는 지령단을 더 갖고 계십니까?”

흑문은 이상을 마주봤지만, 특유의 기고만장한 태도는 어디 갔는지 가볍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 개뿐이오.”

이상이 고개를 젓자 흑문은 안색이 어두워졌으나, 금방 다시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선배님, 저도 지령단을 몹시도 갖고 싶은데, 하나만 제게 파실 수 있을는지요? 선옥 360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저자의 황천죽은 겨우 조그만 한 토막일 뿐이니, 분명 그 정도 가치는 없을 겁니다.”

흑문은 보퉁을 꺼내 돌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선옥 한 무더기가 안에서 굴러 나왔다.

성사 직전이었던 거래에 차질이 생기자, 심협은 벌컥 울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흑문이 이상과 거래를 하고 있는 데다가 자신은 빈털터리라 값을 올릴 수도 없으니 그저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됐소. 나도 선옥은 부족하지 않소.”

다행히도 이상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젓고는 옥병을 심협에게 던져주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제야 마음이 가뿐해진 심협은 옥병을 받아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새까만 단약이 세 알 들어 있었다. 단약들 주위에는 검은 빛무리가 감돌아 더없이 진기해 보였다.

‘한데 약향은 풍기지 않는군.’

심협이 그런 의문을 품는 순간, 약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단약의 정수가 바깥으로 새나갔기 때문인데, 단약에 한 점의 향기도 없이 모든 약효가 응집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령단의 현묘함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심협은 이 많은 이들 앞에서 이상이 자신을 속이지는 않으리라 믿었다.

병마개를 잘 막아 챙긴 심협은 가슴이 뭉클했다. 이제 지령단이, 그것도 세 알이나 생겼으니 자신의 자질이 떨어진다 해도 벽곡기를 돌파할 확률이 높았다.

“심 도우, 축하드립니다.”

사우흔이 낮은 목소리로 축하하자, 심협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이 광경을 지켜보던 흑문이 험악한 표정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러자 경매대 오른쪽의 키 큰 가면이 쉰 목소리로 엄숙하게 말했다.

“흑문 도우, 무상각 안에서는 어떤 형태의 싸움도 금지되어 있소. 자중하길 바라오!”

붉은 옷의 시종도 황급히 다가왔다.

“소주.”

흑문은 그제야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가까스로 분노를 억눌렀다. 그러나 자리에 앉기 전에 살기어린 눈으로 심협과 이상을 한 번씩 스쳐보았다.

그 살기를 느낀 심협은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사 도우, 귀시가 끝나고 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아시오?”

그는 사우흔에게 조용히 물었다.

“여기를 추천해준 이가 그런 것도 안 알려 줬단 말입니까? 인계로 돌아가려면 귀시가 닫힌 뒤에 우리가 이동해온 곳으로 돌아가야 해요. 시간이 되면 그곳의 금제가 저절로 우리를 건업성으로 보내줄 거고요.”

“그런 거였군요.”

사우흔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설명해주자 심협은 살짝 고개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이렇게 중요한 걸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니!’

믿음직스럽지 못한 구혼마면에 대해 조금 불만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황천죽과 지령단 같은 보물들이 등장한 탓인지, 뒷사람들의 물건은 다소 평범해 보였다. 다른 귀물들의 반응도 무심하여 거의 대부분이 급하게 거래를 끝냈고, 두세 명만이 원하는 물건을 얻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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